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32
4부 116화(1732화)
7.
태황이 신하들 앞에 건주 방문 건을 끄집어낸 날은 스페인령 동인도 매입 문제로 조정을 한번 뒤흔들어놓은 나흘 뒤였다. 그전에 슬쩍 넘어가는 것 같던 누벨 프랑스령 캐나다 매입 문제도 다시 한 번 논란이 되었다.
“폐하. 신불랑령 북변은 서반아령 동인도보다도 쓸모가 없는 땅입니다. 서반아령 동인도는 기항지로라도 쓰지만, 그 얼어붙은 땅을 도대체 무엇에 씁니까? 일전에 말씀드렸듯 산물도 빈약하고 교통도 불편합니다. 돈까지 주고 살 자치가 없습니다.”
스페인령 동인도는 조부의 유지라는 명분이 있어서 중신들로서도 계속 반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누벨 프랑스령 캐나다에는 그런 핑계도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태황은 이 문제에서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웬만한 국사는 전부 관례에 따라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린 양반이, 유독 자기가 관심을 쏟는 문제들에 대해서만은 강경했다.
“우리가 그 땅을 안사면 잉글국이 살 것이니, 어차피 우리는 완충지대를 잃게 되오. 그럴 거라면 저들이 다가오는 것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소. 현지에 가서 그 사정을 직접 살피고 온 태자 역시 같은 의견이오.”
역시나 이 문제에서도 태황은 나를 팔았다. 하지만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이번에는 내 이름만 팔고 나를 편전으로 불러들이지는 않았다.
“누벨 프랑스령 북도 지방을 사는 게 쓸모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면, 괜찮은 땅을 덤으로 추가해서 사는 건 어떻소. 내 듣기로 미주대령 인근에 천지가 진동하고 대지가 끓어오르며 산과 들이 매우 아름다운 황천동(黃泉洞)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소. 거기도 사면 좋겠소.”
황천동(黃泉洞)은 옐로스톤에 내가 붙인 이름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Yellewstone이니까 황천이 아니라 황석(黃石)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만, 그 지역에 펼쳐진 풍광이 ‘이 세상이 아닌 지옥을 연상하게 한다’라고 하기에 일부러 ‘황천(黃泉)’으로 의역했다.
태황도 옐로스톤에 관해 알고 있었다. 지선성에서 너무 멀어서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미주에 순행을 갔을 때 소문은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귀국 보고에서 전하는 그곳의 환상적인 풍경에 관해 맞장구를 쳐 가면서 들었었다. 물론 나도 직접 가본 건 아니다. 옐로스톤까지 다녀오기에는 시간 여유가 없었다. 기차로 유타성까지 가는 건 비교적 쉽지만, 옐로스톤까지는 거기서 산길로만 1,300리를 더 가야만 한다. 가는 데만 한 달은 족히 걸린다. 그만한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종종 때 국경을 정하면서는 미처 물랐던 일인데, 옐로스톤은 그때 우리와 프랑스 정부가 정한 국경 동쪽에 대부분 걸쳐 있었다. 아무리 나폴레옹이 나한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지만, 멋대로 국경 연변에 놀러 가는 건 지양하는 편이 옳았다. 그래서 옐로스톤에 관한 내 보고는 다른 이들이 쓴 전언과 보고서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래도 태자는 그 내용을 들으면서 무척 즐거워했고, 자기가 미주에 간 김에 거기 가봤으면 참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내가 은연중에 풍긴 욕심을 눈치 챘던 모양이다.
분명 나는 옐로스톤을 가지고 싶다고 태황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태황은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옐로스톤을 사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어쩌면 그냥 자기 욕심이려나.
“태자가 말하기를, 그 권역의 땅이 매우 넓어 경기도 정도는 된다고 하였지. 그럼 그 땅을 덧붙이는 조건으로 돈을 조금 더해서 누벨 프랑스 돈으로 6백만 냥 정도면 되지 않겠소?”
태황은 반대 의견을 듣기는커녕 옐로스톤을 덧붙이면서 되려 값을 세 배로 끌어 올렸다. 이거, 욕심이 맞을 것 같다. 내 이름을 팔아 옐로스톤을 사들이는 건 그저 핑계고, 실상은 나폴레옹에게 돈을 퍼 주고 감사 표시를 받고 싶은 게 태황의 본심인지도 모른다.
“신이 생각하기에는 천만금을 주고 황천동을 사들여도 괜찮을 것 같사옵니다. 그 자태가 금강산에 버금갈 뿐 아니라 그 일대의 원주민들도 무척 신령하게 여기는 곳인지라, 우리가 사들여 길이 보존하면 천지신명의 가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태황의 말을 들은 신하들이 너무 큰돈 아니냐고 웅성거리는 와중에 김유근이 끼어들었다. 젊어서 미주에 체류한 적도 있고, 나와 같이 미주 순행도 다녀왔으며 내가 옐로스톤을 얻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 이 문제에 관여하기에는 최적이다. 김유근의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과거 중종께서는 우리 강역이 미주대령을 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지만 황천동은 미주대령 너머가 아니라 미주대령에 걸쳐 있으니, 점유한다 해도 중종께서 남기신 뜻을 크게 어기는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금강산 운운한 발언부터가 나하고 의논해서 미리 검토한 내용이었다. 지난번에는 부르지 않았던 태황에게서 편전에 들라는 명을 받고, 분명 태황의 설계라고 생각해서 회의 전에 잠시 동궁에 들러 무슨 용건으로 불렀을지 나와 논의한 결과다.
김유근은 이 발언으로 척박한 북쪽 땅을 사는 거래를 금강산에 버금갈 만큼 아름다우면서 경기도만큼 넓고 비옥한 땅을 사는 거래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러면 대신들을 설득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태황이 맞장구를 쳤다.
“그대들이 지적했듯이 누벨 프랑스 북도 지방은 춥고 척박하오. 하지만 한성판윤이 방금 말했듯이 황천동은 풍광 좋고 아름답소. 그런 땅을 사는 거라면 그대들도 반대하지 않겠지.”
“……….”
편전 안은 침묵했다. 당장 터져 나오는 반대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옐로스톤이 어떤 땅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조정에 거의 없는 탓이었다. 뭘 알아야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결정할 게 아닌가. 여기에 김유근이 천연덕스럽게 쐐기를 박았다.
“우리 대한의 동단에 그처럼 아름답고 신령한 땅을 둔다면 가히 동방을 지키는 성소가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고작 6백만 냥으로 금강산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신불랑 황제는 무척 돈이 급한 상태인지라, 그만한 돈이면 분명히 팔 겁니다.”
“그렇지, 그렇지.”
김유근은 나와 의논한 대로 이야기를 몰아갔고 태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태황이 확실하게 결심했음을 눈치 챈 신하들이 하나둘 태도를 정했다.
“신 외무대신 아뢰오. 신불랑 북방 땅이 춥고 척박하다고 하나, 황천동 땅이 그토록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면 그쪽은 사들여 우리 강역으로 삼아도 좋을 듯합니다.”
“신 내무대신 아뢰오. 그 땅이 지금은 좀 접근하기 힘들다고 하나, 유타성에서 미주대령을 따라 북상하는 철도가 조만간 부설되면 훨씬 관리하기 편해질 것입니다. 그만하면 사들여도 무방하리라 사료되옵니다.”
현재 미주에서 부설된 철도는 대부분 해안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동서 방향의 노선이다. 북미주, 중미주, 남미주 각지역 내에서는 남북으로 움직이는 철도선도 있지만, 각 지역을 서로 연결하는 노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2백 년 전부터 그 역할은 바닷길이 해왔다. 하지만 인구와 산업이 해안에 집중되어 있던 옛 시절이라면 몰라도, 수십만에 달하는 주민이 내륙으로 들어가 거주하는 지금은 다르다. 제대로 된 육상 교통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무부와 미주총관부는 유타성에서부터 미주대령 서쪽 산기슭을 따라 북미주까지 올라가는 철도 노선을 기획하고 있다. 이게 완성되면 미주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P자 모양 철도망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국상은 어찌 생각하시오? 북방의 벽지가 아니라 금강산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산과 강을 얻는 거래라면 받아들일 만하겠소?”
태황이 승리감을 만끽하면서 느긋하게 질문을 던졌다. 중종 이후 받은 사람이 세 명밖에 없는 정1품상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을 제수 받은 명신인 정약용으로서도 이 상황에서 반대를 주창하기는 쉽지 않은지, 한참을 머뭇거렸다.
“….신불랑 돈으로 6백만 냥은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들이 돈에 졸리는 상황이라고 하면 마땅히 값을 더 낮춤이 옳지 않겠습니까?”
은화 6백만 달러는 우리 돈으로는 대력 440만 냥 정도 된다. 정약용은 그건 너무 많으니 1/3쯤 줄여 말끔하게 3백만 냥으로 낮추자고 했다.
“음, 알겠소. 하지만 짐은 보나파르트 황제 앞에서 쩨쩨하게 굴고 싶지 않소. 우리 대한이 누벨 프랑스보다 뭐가 못하기에 그깟 땅값 몇 푼을 깎으려고 기를 쓴단 말이오? 내 생각에 6백만 달러도 많은 돈이 아니니, 저들이 스스로 깎아주면 몰라도 먼저 오구하지는 않겠소.”
이렇게 태황은 나폴레옹에게 한 푼이라도 더 보태주고 싶은 자기 심정을 조정 중신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증했다. 태황이 예전부터 서양 문물을 좋아하는 거야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 취미가 국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고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
8.
이런 난리를 치르고 난 뒤에도 곧바로 내 건주 답방 계획이 논의된 건 아니었다. 국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미뤄진 국사가 한둘이 아닌 까닭이다. 태황은 자기 앞에 놓인 안건 대부분을 ‘전례에 따라’ 처리하라고 명함으로서 간단히 자기 앞에서 치웠다. 하지만 전례가 없는 문제, 즉 영토 매입 등의 외교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편전에 또 불려간 날도 이런 논의가 먼저 나왔다.
“합중국에서 아국에 특임대사를 파견하여 한양에 공사관을 열었으니, 우리도 합중국 수도 와싱톤(瓦??)에 공사관을 개설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신불랑 수도 신올랑에도 관리를 보내 공사관을 여소서.”
현재 우리가 대사나 공사를 보낸 유럽권 국가는 러이사 하나뿐이다. 러시아가 한양에다가 대사를 주재시키는 만큼 우리도 러시아에 대사급 주재관을 두고 있다. 미국과 누벨 프랑스 양국에 공사를 보낸다면 우리 외교관계가 크게 넓어지는 셈이다.
본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두 나라 모두 바다 건너 먼 나라다. 하지만 우리 미주와 육로로 붙어 있으니만큼 그런 면에서 인접국이라고 볼 수 있고, 공사관을 설치하는 게 큰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장차 북아메리카에서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뤄야 할 사이니까 말이다.
“태자는 어찌 생각하느냐. 공사로 보낼 만한 사람을 혹시 생각해두었느냐?”
내 귀국 보고 중에도 공사관 개설에 관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지금 당장 하자는 건 물론 아니고 언젠가는 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 언급이었건만, 태황은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하던 바를 답했다.
“지금 덕진성에서 합중국과의 외교를 담당하는 참의 황사영을 공사로 임명하여 와싱톤에 보내면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황사영은 정3품 참의이니 그대로 공사로 보내도 품계가 딱 맞고, 합중국과의 교류 경험도 많아 딱 좋은 인재라고 판단됩니다.”
황사영과는 지선성에서 헤어졌다. 지선성에 도착한 내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황사영은 자기 임지인 덕진성으로 바로 돌아갔다. 영어 통역관 노릇을 하던 원재신과 함께 말이다. 만약 황사영이 미국 주재 공사로 뽑힌다면 서기관으로 원재신을 데려가게 할 심산이었다. 미국에 간 김에 정식으로 신학교에 다니면서 미국 조야에 인맥을 쌓는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우리 쪽에 이익이 될 일 아니겠는가. 물론 황사영 본인은 대륙 반대편에 있는 워싱턴으로 임지를 옮기는 대신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있는가. 유능하고 경험 많은 신하는 본래 힘들게 사는 게 법도인 것을.
“누벨 오를레앙에 주재할 공사는 누가 좋겠느냐?”
“송구하옵니다, 폐하. 신이 불민하여 그쪽까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나이가 열다섯이나 되고 보니 편전에서는 폐하, 신 같은 용어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황이 자기 입으로 ‘아바마마라고 부르거라’라고 시키기는 했지만, 그런 건 사적인 자리에서나 통하는 말 아니겠는가. 아런 데서는 신하의 자리를 지켜야지.
“알겠다. 그럼 누벨 프랑스에 보낼 공사는 외무부에서 적절한 인재를 골라서 추천하도록 하라.”
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끝을 맺었다. 그리고 다시 거론된 게 며칠 전부터 계속 묘당을 뜨겁게 달군 문제, 내 건주 방문 문제다. 태황이 처음 세운 계획에 따르면 나는 기차를 이용해서 심양을 들러 상도로 가고, 거기서 다시 남으로 내려와서 북경을 거쳐 개봉으로 갔다가 황하를 따라 서해로 내려와서 배편으로 귀국하도록 되어있었다. 참으로 길고 험난한 여정이다. 심지어 그것도 봄이 되자마자 출발하는 거였다.
‘기왕 가는 거, 아예 카로코룸까지 가면 어떻겠느냐? 철도는 아직 안 깔렸다만, 상도에서 한 달쯤 말을 타면 갈 수 있다고들 하던데.’
‘아바마마, 그리되면 다들 아바마마께서 소자를 미워하여 괴롭히고자 건주에 보냈다고들 떠들어댈 것이옵니다.’
‘그건 곤란하지. 무지한 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상도까지만 올라가거라.’
태황은 정말로 이 답방을 종속국들을 둘러보는 순행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들은 조정 중신들은 물론이고 이 일을 어쩌다 접한 국자감의 유생들 사이에도 선뜻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논의가 지금까지 끌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저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대놓고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엄연히 우리 대한은 건주 양국의 상국입니다. 숲속에서 짐승을 쫓고, 변경을 노략질하는 도적에 불과하던 저 오랑캐 놈들이 어찌 지금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그게 다 장조께서 베푸신 은덕 때문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들이 일방적으로 예를 올리러 우리한테 찾아오는 게 당연하고, 우리가 허리를 굽힐 필요 따위는 전혀 없다는 게 조정 일각의 주장이었다. 물론 조정 전체가 이런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습니다. 분명 우리는 저들의 상국이 맞습니다. 그리고 상국이라 하면 가끔 행차해서 아랫것들이 어떻게 사는지 한 번씩 살펴주는 것도 의무 아니겠습니까? 신은 폐하께서 처음 말씀하셨듯이 상도와 개봉에 모두 방문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옵니다.”
이들은 상대를 정말로 우리와 동등하게 여겨서 답방을 가주자는 게 아니다. 태황이 내게 농담처럼 이야기한, 번국을 시찰하러 간다는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본다.
“그렇다고 해도 상도나 개봉까지 가줄 필요는 없습니다. 태자께서 멀리 개봉까지 찾아가 저들의 보좌 앞에 고개를 숙이신다면, 자들은 태자께서 입조하셨다고 여겨 광희난무할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결단코 안 됩니다!”
수적으로는 이쪽이 가장 많았다. 내가 아무리 대한의 태자라고 해도 같은 태자들 사이에 비교했을 때나 우위에 있지, 청나라 황제나 후금 대칸 앞에서는 엎드려 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여기에는 신진 관료들이 많았다. 스페인령 동인도 매입 문제에서는 대뜸 태황 편을 들던 박규원 같은 이도 답방 문제에서는 이쪽 편에 섰다. 정약용 같은 노신 다수가 되려 두 번째 의견을 지지했다는 걸 보면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태자 전하께서 가시더라도, 한성판윤이 제시한 의견처럼 북경까지만 가시는 편이 좋다고 사료됩니다. 부디 통촉하소서, 폐하.”
태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 의견 모두 경청했다. 이미 너덧 번은 들었을 텐데 태연하게도 듣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참을성….이 아니겠구나. 저 자식, 분명 한 귀로 들으면서 한 귀로 흘리고 있겠군.
“그러면 태자의 의견은 어떤가. 한번 들어보겠다.”
그리고 태황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상한 순간이기에 크게 심호흡부터 한 번 하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