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42
4부 126화(1742화)
10.
서경 요양부는 요심도(遼瀋道)의 중심이다. 요심도는 옛날 북방에 설치되어 있던 5주를 재편해서 설치한 10도 중 하나로, 옛 요동주의 서쪽 절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 북방의 행정구역은 북변을 빼고 총 6개 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후금과 맞닿은 지역인 요서주 하나는 국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여전히 주로 칭하지만, 나머지 5개 주는 모두 10개 도로 재편되었다. 이를 통해 북한 지방이 완전히 행정적으로 본국에 통합되었다.
요동주는 둘로 나뉘었고, 부여주와 연해주는 셋으로 나뉘었다. 다른 주보다 면적이 좁은 편이었던 속말주와 영락주는 나뉘지 않고 그대로 명칭만 도로 바뀌었다. 북한 지방이 본국으로 취급받게 되면서 이쪽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북인도 정치세력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계속 과거처럼 속지(屬地)로 취급받았다면 이쪽 출신 관리들이 어찌 본국 출신들과 제대로 어깨를 맞댔겠는가.
요심도로 들어간 기차는 요양을 향해 곧바로 북상했다. 이건 심양선과 별개로 공무부에서 부설한 철도로, 심양에서 발해만에 있는 잉구로 내려가는 심양선과는 달리 압록강에서 요심(遼瀋) 지방을 향해서 곧바로 북상한다. 심양선과는 요양에서 합류한다. 이는 두 철도 노선이 서로 다른 주체에 의해 서로 다른 목적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다르니 뻗어나가는 방향도 달랐다.
심왕부가 돈을 내서 건설한 심양선은 심왕부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노선을 정했다. 운임 수입을 최대한 많이 거둘 수 있으면서 공사비가 덜 드는 방향으로 기차를 움직일 수 있도록 철로를 깔았다는 이야기다. 심양선에서 가장 많이 실어 나르는 상품은 콩이다. 요동일대에서 수확한 콩은 화물차에 실려 잉구로 보내지고, 잉구에서 간장이나 된장으로 가공되어 배에 실린다. 두부로 만드는 콩도 많으나 두부는 죄다 현지에서 소비된다. 물론 콩 상태 그대로도 많이 실려 나간다.
심왕부의 이익에 중점을 둔 철도인지라 본국과의 직접 연결은 중요하지 않다. 연결하면야 물론 좋지만,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철도 공사에는 평지보다 훨씬 큰 공사비가 든다. 그러니 딱 평지를 달려 요동산 물품을 항구로 실어내는데 필요한 부분까지만 만든 거다. 이에 반해 본국 조정은 본국과 북방을 긴밀히 연결하는 데 철도의 의의를 두었다. 그래서 서북선의 연장으로 의주에서 산악지대를 통과해 곧바로 북행하는 철도를 만들었다. 필요에 따라 물자와 사람, 군대가 신속하게 남북으로 움직이려면 그래야 하니까.
사실 이 목적은 원래 역사에서 일본이 남만주철도 안봉선을 부설한 목적과 일치했다. 그 목적이 같으니 노선도 거의 같다. 다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일제가 건설한 안봉선은 요양을 거치지 않고 신의주에서 곧바로 심양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 기차는 살짝 돌아 요양을 거쳐서 간다. 요양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았던 일본인들과 요동 통치의 중심을 요양에 두고 있는 우리의 차이다.
원래 역사에서처럼 만주가 발전했다면야 당연히 우리도 심양에 요동을 다스리는 행정 및 군사 중심지를 두었으리라. 하지만 심왕부가 심양에 위치한 이상, 예상하지 못한 불상사가 터질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요양을 군사와 행정의 중심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먼 구간이로군.”
한양에서 의주까지 오는 동안에는 길어야 세 시간이면 다음 역이 나왔다. 하지만 의주를 출발해서 요양까지는 열 시간이 넘게 걸린다.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구불구불한 노선인지라 속도를 내기 쉽지 않아서 더 느리다.
“풍광을 구경하기에는 살짝 느린 것이 더 좋구려.”
“그렇사옵니다.”
우리는 식사를 들면서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즐겼다. 오늘 점심은 이번 여정에서 처음으로 기차 안에서 먹는 식사다. 그동안은 정거장 간 거리가 짧았기에 기차 안에서 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타기 전에 먹고, 다음 끼니는 도착지에서 먹으면 됐으니까. 요리는 시종들이 탄 칸에서 했다. 시종들이 타는 칸에 취사실이 있어서, 따라온 숙수들이 막 조리한 요리를 내 전용칸으로 날라왔다. 나와 내 측근들은 그 음식으로 대궐에서와 거의 차이가 없는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호위병이나 시종들까지 우리와 똑같은 식사를 줄 수는 없다. 수행원들은 주먹밥이랑 건량 같은 간단한 식사를 받았다. 이들에게도 국과 찬을 포함한 제대로 된 식사를 주기에는 열차 내 여건이 다소 불비했다.
“대공자께서는 식사가 마음에 드시오?”
“맛이 무척 좋습니다. 동궁의 숙수들이 참으로 솜씨가 훌륭합니다.”
“수하들이 칭찬받으니 윗사람으로서 기분이 퍽 좋구려.”
주성진 역시 손님으로 초대받아 식탁에 함께 앉았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기차에서 굳이 어린애를 따돌릴 필요 있는가. 같이 먹어야지. 그리고 밥상에서 이야기도 좀 나누고.
“이제 압록강을 넘었으니…..엄밀히 말하면 확실히 대명의 옛땅에 들어온 셈이오. 대공자가 이 땅을 보는 감회가 정말 남다르리라고 생각하오.”
“남다를 게…..있겠습니까.”
남다르지. 남다를 수밖에. 남다르지 않을 수가 있는가.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대패하기 전만 해도 이 지역은 요동도사의 통제 밑에 있는 건주위사에 불과했으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김정희 이하 측근들도 같은 생각으로 주성진의 태도를 주시했다. 아직 여정이 많이 남았는데, 혹시 주성진이 괜한 감상에 빠져 추태라도 부린다면 곤란하니까. 이런 걱정은 다행히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주성진이 품위 있는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흘러간 옛꿈은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흘러간 강물을 아무리 목 터지게 불러봐야 강물은 돌아오지 않지요. 이 땅이 옛 천자께서 다스리시던 곳이라 하나 지금은 한양에 계신 태황께서 다스리시는 땅입니다. 어찌 다른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대답에는 트집을 잡을 부분이 없었다. 이 정도면 나 말고 다른 누가 동석하더라도 문제가 될 일은 없겠구나 싶어 안심 됐다. 그런데 좋은 분위기를 깨는 뜬금없는 소리가 나왔다.
“전하. 기차가 여기를 왕래한 지도 수십 년이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곰과 멧돼지가 수시로 보입니다. 차를 세우고 한 마리쯤 쏘아다가 구워 먹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건 부황께서 즐기시는 유희잖습니까, 외숙. 지금 우리가 유람하러 나온 거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중한 나랏일을 수행하러 가는 길이니 참도록 하시지요.”
김좌근이 태황이랑 같이 자주 놀러 다니더니 그예 물들었나 보다. 나무 사이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곰이나 멧돼지하고 눈이 마주쳤다고 기차를 세우고 사냥이나 하자니, 내가 고개를 저으니 부리나케 농담이었다고 하는데, 과연 정말 농담일까.
11.
열차는 저녁이 다 되어 요양에 도착했다. 선견대로 앞서나간 선향 열차가 먼저 도착해서 알려둔 덕분에 승강장에는 환영 인파가 빽빽하게 나와 있었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요심도 관찰사에 서경부윤, 요심도 병마절도사까지 요심지방을 책임지는 최고위 관리들이 총출동해서 허리를 조아렸다. 평안북도 관찰사는 공석이고, 평안북병사는 사전에 계획한 일정에 따라 임지를 순시하러 나가고 없어 임승훈이 혼자 나왔던 의주와 비교됐다.
“귀한 몸으로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전하. 비록 초라한 고장이지만, 부디 평안히 지내고 가시기 바랍니다.”
관찰사 이명현이 대표로 나서서 인사를 올렸다. 세 사람 모두 품계는 종2품으로 같지만, 엄연히 선임은 문관인 관찰사다. 그게 우리 대한의 법도다. 관찰사 이명현이 건넨 인사는 사실 매우 겸손한 내용이었다. 요심도가 장조 이전에 얻은 다른 지역들보다 나중에 우리 영토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사실 북한에서 가장 잘 개발되고 풍요로운 지역이니까 말이다. 평지가 많은데다 자원도 풍부하다.
그러니 ‘초라한 고장’이라는 말은 그저 인사치레로 들어두면 된다. 정말로 이 땅이 그토록 초라했다면 지금껏 유지하지도 못했으리라.
“행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연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고맙소.”
딱 한 번이지만 조부가 다녀간 적이 있어 요양에도 행궁이 있다. 본래는 요양부에서 객관 용도로 쓰던 건물이라 50칸 정도밖에 안 되는 소규모였는데, 북순(北巡)에 나선 조부가 이 객관을 숙소로 삼으면서 간판만 행궁으로 바꿔 달았다. 이곳 역시 의주 행궁과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그 본래 역할인 객관 노릇을 비롯해서 온갖 잡다한 용도로 쓰인다.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 행궁 본연의 구실을 하게 됐다. 아마 녀석도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있다면 무척이나 뿌듯하게 여기리라.
제멋대로 차려입은 기수들이 종회무진으로 질주하며 솜씨를 선보였다. 말 위에서 일어서 고삐도 안 잡고 말을 달리는 가 하면 몇 번씩이나 재주넘기를 했다. 말 위에 거꾸로 서기도 하고 안장 좌우를 넘나들며 말 옆구리에 몸을 붙였다. 말 배에 매달려 몸을 숨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자세에서 총과 활을 자유자재로 쏘았다. 날아간 탄환이 표적을 깨트리고 허수아비를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참으로 놀라운 재주였다.
“참으로 훌륭하다. 역시 왜인여진 기병들의 솜씨는 명불허전이로구나.”
정해진 제복을 입지 않고 멋대로 주워 입고 다니는 건 왜인여진 군사들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다. 개중에는 4백 년 전에 규슈에서 건너온 선조가 쓰던 물건이지 싶은 일본 투구를 쓰고 있는 녀석까지 있었다. 저 투구, 대체 얼마나 수선하고 도 수선한 걸까.
“연회에서 그저 여흥으로 보기에는 아깝구나, 아까워.”
실전에서 저 능력을 발휘하면 참으로 좋겠지만, 우리 대한에서는 꽤 오래 전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그렇다 보니 저 마상재도 그저 유희용으로 소비될 뿐이다.
“솜씨는 잘 보았다. 상급을 내리겠으니, 고루 나눠 가지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전하!”
왜인여진은 여전히 황실의 사병으로서 평시에는 농사를 짓고 소집이 있을 때 무기를 챙겨 나오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사라진 지 오래다 보니 이들도 예전과 같지는 않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김좌근도 그 이야기를 했다.
“옛날 장조 폐하 시절과 비교하면 저놈들도 배에 기름기가 끼어서…..”
문제는 그 형식이었다. 내가 헛기침으로 주의시키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젠장, 김좌근이 김유근보다 띠동갑으로 어리다지만 이런 식으로 주체하지 못하고 입을 놀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김조순이 ‘집안의 큰 시름’ 운운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구나.
“요즘 요심도에서는 만사가 평화로운가.”
김좌근이, 혹은 박규원이 뭔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러자 이명현이 침착하게 답했다.
“폐하께서 선정을 베풀고 계시는데 어찌 불상사가 있겠습니까. 곡식은 무르익어 대풍년이 들 전망이고, 상인들이 소리쳐 물건을 거래하는 소리가 드높습니다. 만사가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임승훈이 의주의 발전상을 자랑하느라고 입이 여섯 개라도 모자랄 기세였던 것과는 달리, 이명현은 차분한 태도로 현재 상황을 소개하기만 했다. 그저 고을 하나만 책임진 사람과 도 전체를 책임진 사람의 태도 차이라고 보면 자연스러웠다.
그나저나 의례적인 표현인 줄은 알지만, ‘폐하께서 선정을 베풀고 계시는데’라는 말이 참 거슬린다. 태황 그 빌어먹을 자식이 툭하면 어전회의에 지각을 일삼고, 경연은 정말 어쩌다 한번 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세 사람은 알까. 그나마 아직은 지각은 해도 무단결석은 하지 않는다. 내가 편전에 ‘참관’하러 나가지 않는 날에도 출근하기는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러다가 언제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둘러대면서 나보고 편전에 나가 대리청정을 맡으라고 할지 모른다는 게 태황의 무서운 점이다.
“그대들이 보기에 심왕부의 상황은 어떠하고?”
“심왕부야 늘 그렇듯 흥겹게 지내고 있지요. 지금은 전하께서 도착하시면 맞이할 준비에 바쁩니다. 금나라에서 온 사절은 이미 어제 도착한 지라, 전하께서만 오시면 곧바로 성대한 연회를 열어 환영할 거라고 합니다.”
심왕부의 환대는 유명하다. 대궐 안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자면 조부가 심왕부에서 한 열흘쯤 머무르다가 돌아갔을 때, 심왕 이제원이 기름진 음식을 하도 많이 대접해서 체중이 한 관(3.75kg)이나 늘었다는 풍문이 있다. 이제원은 모친이 한인이라서 우리 황실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친근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후금 공주고 며느리는 청나라 공주다. 심왕부의 참으로 복잡한 정치적 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가족관계인 셈이다.
“지금 심왕부에는 기병 3백여 기가 있습니다. 그 인원을 모두 동원해서 사냥에 나서리라 하기에, 우리도 군사를 넉넉히 보내 전하를 돕도록 준비하였습니다.”
요심도 병마절도사 김중겸이 보고하기를, 우리 쪽에서도 몰이꾼으로 준비해놨다고 했다. 후금에서도 대칸의 두 동생이 4백 기를 데리고 왔으니, 그들 앞에서 내 위신을 세우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나. 심왕부 소속 군대는 초기에는 우리와 청나라, 후금이 1/3씩 맡아서 총 1천 기를 파견했다. 그런데 이게 꽤 번거롭기도 해서 40년쯤 전부터 심왕부가 알아서 병력을 고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대신 규모가 대폭 줄었다. 사실 심왕부에 대군이 필요하지도 않잖은가.
심왕부가 군대를 쓴 사례라고 하면 청이나 후금이 준가르나 후송과 전쟁을 벌일 때 일부 원군을 파견한 전례가 있다. 이제는 그것도 직접 파병하는 대신에 전비를 원조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사실 그게 더 효율적인 건 분명한지라 양국도 이를 더 반긴다.
“심양에 이미 와 있다는 대칸의 두 동생은 누구인가?”
“이패륵과 삼패륵입니다.”
대칸 박락은 카라코룸에 있다. 동생들을 대리로 보낸 건 할법한 일인데….작년에 조부의 상을 치를 때 조문 사절로 찾아왔던 넷째가 아니라 그 위의 둘이 온 건 조금 의외다. 아마 한양에 왔던 막냇동생이 자기 얼굴도장만 찍으러 돌아다닌 걸 알고 바꿔버린 모양이다.
“굳이 두 형제가 함께, 북경이 아니라 심양으로 오는 이유가 궁금하구려.”
과연 그놈들 속셈은 어디 있으려나. 솔직히 이야기할지, 무게를 잡으면서 돌려 말하기만 할지 모르겠다. 내일 오후에 심양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