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51
4부 135화(1751화)
9.
이쪽 세계에서는 청나라 황실에서 만든 만한전석(만한전석) 같은 요리는 없다. 그걸 만든 강희제가 없어서 그런지, 청나라가 강남을 먹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쪽 세계 청나라는 화북 지방만 확실하게 쥐었을 뿐 강남까지 얻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북방의 만주족이나 몽골 문화가 원래 세계보다 영향을 크게 미쳤다. 당연히 음식문화도 그 영향을 받았기에 명나라 시절보다는 원나라 시절에 더 가깝다.
아 청나라에서 강희(康熙)라는 연호를 쓰던 황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덕명의 증조부, 즉 후궁을 스무 명이나 거느렸다는 전전대 황제 홍신이 연호로 강희를 썼다. 서로 다른 세계의 전혀 다른 사람이 같은 연호를 쓰다니, 참 신기한 유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사실 원래 세계 청나라 황제들과 똑같은 연호를 쓰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지금 황제인 면녕의 연호가 도광(道光)이다. 도광제, 원래 세계에서 아편전쟁을 겪은 황제의 묘호다.
이쪽 세계 강희제가 연호만 원래 세계 강희제와 같았을 뿐이지 나라를 다스리는 솜씨까지 강희제 같지는 않았던 걸 생각하면 – 재위 기간부터 겨우 18년밖에 안 됐다 – 도광제라고 해서 원래 세계의 도광제처럼 청나라가 아편전쟁을 겪고 몰락하는 계기를 만들 것 같지는 않다. 그냥저냥 다스리지 않을까.
어쨌든 오늘 연회는 꽤 화려했다. 지난 이틀 동안 ‘비교적’ 간소해졌던 음식상이 또 온갖 진수성찬과 미주(美酒)로 뒤덮였다. 식탁위에는 적어도 수십 가지는 넘을 듯한 요리 접시가 놓여 있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북경에 도착한 첫날 대접받았던 것보다는 가짓수가 좀 적지만, 확실히 공을 들인 상이었다. 다만 심왕부에서 자랑거리로 삼는 심양전석(瀋陽全席)에 비길 만한 수준은 아니다.
심양전석, 중종으로 살 때는 말로만 들어봤다. 그것을 이번에 심양에 들러서 드디어 맛을 보았는데, 진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정말이지 백 년에 걸쳐 사방에 떨친 그 명성이 헛된 게 아니었다.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작금의 심양전석은 7끼에 걸쳐서 끼니마다 70가지 요리가 상에 나오는 식으로 이어진다. 하려고만 하면 490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몽땅 낼 수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다 먹지도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게 이제원의 설명이었다.
‘이건 단순히 심왕부의 부를 과시하고자 차리는 상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갖가지 진미를 마음껏 즐기고자 만든 요리지요. 그러니 적당히 차려야 합니다.’
아니, 한 끼에 70가지 요리가 상에 오르는 것부터가 적당히 차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태황이 받는 수라상도 밑반찬에 국, 김치까지 다 합쳐도 상에 오른 음식이 30가지를 넘지 않는다. 물론 하나하나 요리 종류는 꽤 정성을 들인 것들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심양에 도착한 다음 날 저녁부터 넷째 날 저녁까지, 일곱 끼를 매 끼니 70가지 요리로 먹었다. 심지어 사냥터에 나가 있었는데도 그 화려한 음식들이 끼니때마다 차려졌다. 그리고 우리 일행 모두 배가 터지도록 그 음식들을 먹었다.
덕분에 사냥터에서 말 타고 돌아다니면서 살을 빼겠다던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승마로 소비하는 열량보다 더 많은 양을 입으로 집어넣었으니 뭐 할 말 있나. 그 심양전석으로 눈이 한껏 높아진 게 불과 며칠 전이다 보니, 북직례총독 혁경이 정성껏 준비했다는 오늘 잔치고 심양에서 먹는 것보다는 못한 게 눈에 들어왔다. 물론 상대적으로 좀 못할 뿐이지, 절대적으로는 이것도 화려한 상이다.
“오 웅장(熊掌)이로군요. 준비하기 힘드셨겠습니다.”
“아닙니다. 예전과 달라 하루면 준비됩니다, 전하. 대한제 압력솥 덕분이지요.”
마침 바로 앞에 큼직한 곰발바닥 요리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어서 그걸로 말문을 텄다. 곰발바닥은 대한에서도 꽤 인기가 좋은 요리다. 맛이 좋아서가 아니고 팔진(八珍)에 속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맹자가 미식의 상징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사대부들이 좋아한다.
본래 곰발바닥은 가마솥에 사흘쯤 푹 삶아야 익는 식재료였다. 하지만 지난 생에서 내가 보급한 압력솥 때문에, 혁경이 언급했듯이 그 요리에 드는 시간이 하루로 대폭 줄어들었다. 여기에 경제력이 향상되니 그 영향으로 곰발바닥 요리 수요가 폭증했다.
요리 재료인 곰발바닥은 본래는 사냥으로 조달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곰이라는 짐승이 호랑이만큼 귀하지는 않더라도 멧돼지만큼 흔한 건 또 아니다 보니 수요를 대는 데 문제가 있었다. 당연한 귀결로 도축용으로 곰을 키우는 곰 농장이 나타났다. 물론 순전히 발바닥 장사를 목적으로 곰 농장들이 들어선 건 아니다. 웅담이야 옛날부터 없어서 못 파는 영약이었고, 곰의 뼈와 고기, 지방도 죄다 약재로 팔렸다. 그러니 곰 사육이 어떻게 돈이 안 되겠는가.
처음에는 아이누나 길랴크 같은 수렵민족들처럼 어미곰을 포살(捕殺)하고 새끼를 잡아다 키우는 식으로 곰을 키웠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농장 안에서 자체적으로 곰을 번식시켜서 수를 늘리는 게 일반화되었다. 지금 전국에서 사육하는 곰 숫자가 2천 마리는 족히 넘는다. 이런 곰 농장들은 비슷한 목적으로 운영하는 담비농장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동해나 북해(오호츠크해) 바닷가에 위치 한다. 사료로 쓸 물고기와 고래 내장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한양에서도 돈만 좀 들이면 곰발바닥 요리를 먹는 건 어렵지 않다. 궁중에서 먹는 거야 당연히 따로 돈 들일 필요가 없고….. 밖에서 먹으면 얼마더라, 발 한 개에 1냥쯤 하던가. 물론 은으로. 물론 그다지 싼 값은 아니지만, 돈 좀 있으면 크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원재료가 농장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덕분이 크다.
제사를 다 마쳤기 때문인지, 어제까지는 없었던 무희와 악공도 나왔다. 미모의 무희들을 본 우리 관원들이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지만 뭐, 인지상정이다. 김좌근도 지난번에 들은 주의 덕분인지 체통을 해칠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고 있다. 아주 점잖은 태도로 허허거리며 손뼉을 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자, 여러분께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다.”
덕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세상에, 군왕의 성장(盛裝)을 갖춰 입은 륵극덕혼이 덕명 옆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입고 있던 일반 병사 갑옷을 벗어 던지고 화려한 예복을 입은 모습이 갈 데 없는 귀공자였다.
“여기 선 이는 대금국의 다라순승군왕입니다. 대한의 태자께서 대명공부 대공자를 모시고 북경에 참배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수행하고 싶은 마음에 불철주야 달려왔으니, 귀찮다 해서 내치지 마시고 부디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의 태자 전하와 대공자 각하를 뵙습니다.”
륵극덕혼은 천연덕스럽게 내게 인사를 올렸다.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비밀 회동에서 그를 직접 본 사람들로서는 기가 찬 일이었다. 하지만 의도는 이해가 갔다. 저들은 지난 이틀 동안 비밀스럽게 내게 로비를 한 셈인데, 그게 공공연하게 드러나면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아는 사람들은 알아볼지언정 일단 저런 식으로라도 위장하려는 게지.
덕명은 륵극덕혼이 여기서부터 우리와 동행해서 역대제왕묘와 청나라 황릉 참배까지 모두 참여할 거라고 했다. 그 의도도 알만했다.
‘같은 줄에 서게 만들겠다는 거지, 나나 자기와.’
심양에서 나를 만난 두 패륵은 내게 호소하며 공을 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둘은 결국 접반사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나를 잘 대접하며 자기들 사정을 호소했을 뿐, 칸의 자리를 물려받을 계승자로서 해야 할 격에 맞는 업무는 거의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륵극덕혼은 대칸의 명을 받아 공식적으로 파견되지는 않았을지언정 나와 주성진, 덕명 등 후금 주변에서 다음 보위를 물려받을 주역들과 함께 역대제왕묘를 참배하고 역대 청나라 황제들과 후금 대칸들의 묘소를 참배한다. 이거 정말…..
‘후계자가 할 일 그대로구먼.’
아파태와 두도는 심양에서 나를 만나면 안 됐다. 다소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북경에 와서 덕명처럼 나와 주성진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륵극덕혼이 끼어들 틈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신변이 걱정됐다면 내 옆에 껌딱지처럼 – 그러고 보니 이쪽 세계에는 아직 껌이 없군 – 딱 붙어서 움직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기회는 지나갔다. 지금 그 둘은 기차를 타고 상도로 돌아가고 있겠지. 북경에서 륵극덕혼이 후금 황태자처럼 행세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연회장 한가운데서 자기소개 중인 륵극덕혼을 보니 문득 의문이 솟았다. 신분을 위장해서 몰래 북경까지 오고, 나를 만나고, 저렇게 극적으로 신분을 드러내고. 이게 다 륵극덕혼이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걸까? 누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가장 가능성이 큰 후보는 역시 부친인 박락이다. 박락이 뒤에서 손을 써주고 있다면 지금 이런 행동이 가장 확실하게 설명된다. 덕명을 비롯한 청나라 황실이 뒷공작을 벌인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청나라 황실도 박락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은혜를 팔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니까.’
후금에 시집간 청나라 공주가 애를 못 낳은 게 문제의 근원이니, 근본적으로 빚을 진 건 청나라 쪽이다. 하지만 지금 후금이 처한 상황 때문에 청나라 쪽에서 뜻밖에 주도권을 쥐게 된 상황이다. 박락은 자기 아들에게 칸위를 물려줄 수만 있다면 세 군왕 중 아무도 칸이 되어도 좋다는 태도다. 즉, 청나라는 박락을 도와주는 대신 그중에 자기 입맛에 맞는 후보를 고를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세 군왕 중에 청나라가 보기에 가장 적절한 후보가 륵극덕혼이다. 평민 출신이라 외가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뒷배가 없으니까. 대복진의 양자로 들어가는 형식만 취하면 청나라 황실이 그대로 륵극덕혼의 뒷배가 되어줄 수 있다. 덕명이 륵극덕혼과 함께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다른 이들에게 륵극덕혼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자 그 의도가 훤히 들여다보여 쓴웃음이 났다. 그래, 한번 열심히 해봐라.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보자.
11.
명십일릉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 제사를 지내느라 피곤했다고 해서 하루를 쉬고 돌아왔는데도 말이다. 돌아와서도 하루를 또 쉬었다. 일정이 급한 게 아니라서 쉬어도 상관없기는 했지만 쉬는 자리도 편하지는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전하. 우리 대금에서는 대한을 어머니의 나라로 부릅니다.”
“고맙네.”
내가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해동관으로 찾아온 륵극덕혼은 해가 질 때까지 죽치고 앉아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내게 잘 보이려고 온갖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점심에다 저녁까지 얻어먹었다. 넉살 하나는 확실히 좋았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일 역대제왕묘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나.”
그새 한국어 공부를 좀 더 했나 보다. 억양은 조금 이상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역대제왕묘’라고 하고 가는 걸 보면 말이다. 만에 타고 멀어져가는 륵극덕혼의 뒷모습을 보미, 저 애송이가 과연 대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우리가 패륵들 편으로 끼어들지만 않으면 무난하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 일이란 게 본래 모르는 거 어닌가.
11.
역대제왕묘도 꽤 컸다. 가장 중요한 건물인 경덕숭성전은 층은 1층이지만 폭은 9칸이나 되는 큰 건물이다. 2백 명 가까운 황제들의 위패를 안에 모시고 있으니 그 크기가 작아지려 해도 작아질 수가 없다.
“관제묘도 참 큽니다.”
주성진은 또 엉뚱한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명동에 있는 관제묘보다 역대제왕묘에 있는 관제묘가 훨씬 크다며,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관우 신앙은 원래 세계 조선에서는 꽤 성했다.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관제묘, 아니 관왕묘만 해도 도성에 다섯 개나 있을 정도였다. 그중 현대까지 건물이 남아있었던 건 둘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관우 신앙이 퍼지는 계기였던 임진왜란과 조선을 도와서 왜군과 싸우러 온 명나라 지원군의 존재가 없다. 그러니 관우 신앙을 조선(대한)에 퍼뜨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명나라에서 직접 이주한 유민들 말고는. 대한에서도 관우가 충절의 상징이기는 하다. 삼국지도 인기를 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관우를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이들은 무당 정도밖에는 없다. 무묘에 배향되기는 했지만 그게 다다. 관우 앞에 절을 올리고 뭔가 빌어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대한 본국에 있는 관제묘는 단 둘뿐이다. 대구 대명동에 하나가 있고, 인천 소명동에 또 하나가 있다. 둘 다 명나라 유민들이 뿌리를 박고 사는 곳으로, 이들이 마음을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관제묘를 유지하고 있다.
“대명동에 있는 관제묘를 더 크게 개축하고 싶으면 뜻대로 하시구려. 그까짓 일로 폐하께 글을 올리실 것도 없으니까.”
“아닙니다. 그런 중대한 일을 어찌 폐하의 칙허도 없이 진행하겠습니까. 하지만 전하께서 그리 걱정해주시니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전하.”
주성진은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경덕숭성전으로 들어갔다. 오늘 제사도 주성진에게 맡아서 책임을 지도록 했으니 – 대한과 청나라는 모두 천자의 지위를 잇지 않는다고 했으니 제사는 주성진이 맡을 수밖에 없다 – 우리로서는 그 뒤를 따라만 다니면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2백 명에 가까운 황제 전원에게 제사를 지내지는 않는다는 거다. 아무리 작정하고 제사를 지내러 북경에 왔다고 해도 그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미리 논의한 끝에 각 왕조를 개창한 개조 21명에게만 잔을 올리기로 했다. 물론 그것도 적지는 않은 일인지라, 저녁에 허리가 꽤 아프리라는 각오는 해 두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