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59
4부 143화(1759화)
5.
카라코룸의 황궁은 상도에 있는 궁전에 비교하면 무척 소박하다. 애초에 카라코룸은 원이 망할 때 폐허가 되었고, 후금 황실은 이 도시를 몽골 서부를 제압하기 위한 군사 근거지로 재건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삭막한 환경인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화려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대칸의 정처, 대복진의 처소만큼은 상도에 위치한 본궁만큼이나 호화롭게 꾸며놓았다. 매년 황야를 오가면서 보내는 시간만 절반이나 되는데, 처소라도 호화롭지 않으면 어떻게 그 고생을 견디겠는가.
올해로 35세가 되는 대복진 아이신기오로씨는 친정에서 온 시녀들에게 손톱을 손질하게 시키다가 벌컥 화를 냈다. 어둠이 주변을 덮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애타게 기다리는 이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칸께서는 오늘도 안 오신다뎌냐!”
“송구하옵니다, 마마. 곧 알아보겠습니다.”
후금 황실에서 쓰는 일상어는 당연히 만주어다. 몽골어도 꽤 쓰고, 프랑스어도 쓴다. 도 의외로 많이 쓰는 말이 한국어다. 만주 황실이니 만주어는 당연히 기본이다. 전체 인구의 1/4이 몽골인이고 보르지긴 출신인 대복진이 여럿 있엇으니 몽골어 사용도 자연스럽다. 프랑스어는 선교사들과 대화할 때 종종 사용한다. 한국어는 이처럼 일상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다. 대한의 공주였던 초대 대복진 효단문황후(孝端文皇后)와 그녀가 데려온 궁인들의 영향으로 한실(韓室)에서 쓰던 궁중용어 상당수가 흘러들어와 정착했을 뿐이다. ‘마마’나 ‘상궁’과 같은 단어가 그 사례다.
태조 누르하치는 불과 전사 수십 명을 거느린 일개 소부족의 지도자에서 건주국왕까지 그 지위가 급상승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뤄낸 위업은 남자들의 영역에서 이룬 것이지, 여자들의 영역에서 이룬 것은 아니었다. 여자들의 영역인 내명부의 법도에 관해서라면, 예로부터 내려오는 근본이나 전통 따위는 정말이지 쥐뿔도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초라한 일개 여진족 부락에 불과했던 건주위에서 그런 게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이를 명나라나 조선에 견주어보기라도 할 수 있을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들이 누르하치가 들인 조선 출신 두 며느리, 희정공주와 희연공주였다. 여기서 다이샨의 비였던 희정공주는 나중에 청나라 황실에서 효단장황후(孝端章皇后)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들은 명나라를 제외하면 천하에서 제일가는 예의 나라인 조선의 공주들이었다. 게다가 남편의 총애도 받았으니 내궁의 법도를 세우는 문제에서도 아주 강한 발언권을 쥐었다. 물론 내궁에는 이들의 웃어른인 시어머니 효열무황후(孝烈武皇后)가 있었다. 하지만 워낙 위세 있는 친정을 둔 데다 가장 힘 있는 두 아들의 정처였으니, 효열무황후도 며느리들에게 크게 간섭할 수는 없었다. 다만 북경을 얻은 이후에 청나라 황실은 방침을 바꿔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궁궐 법도를 바꾸었다. 수십 배나 되는 한족들 사이에서 동화되지 않고 남기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후금에서는 그런 문제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므로, 효단문황후가 자기 마음대로 궁궐 법도를 정할 수 있었다. 또한 성종의 대복진 효성인황후(孝誠仁皇后)도 한인이었으니, 나머지 대복진들이 모두 만주인과 몽골인이었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마마, 다녀왔습니다.”
대복진이 무척 총애하는 청나라 출신 수녀(秀女)가 급히 들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수녀는 청나라에서 궁녀를 가리키는 말로, 관노비를 궁녀로 뽑는 대한과 달리 팔기에 속하는 지체 있는 집안의 딸 중에 뽑는다. 한족이라고 해도 기인(旗人)이기만 하면 뽑힐 수 있다. 이들은 황제의 비빈 자리에 들어갈 일차 후보기도 하며, 황태자나 친왕과 같은 여러 황실 인사들의 처첩이 될 수도 있다. 누구도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입궁한 지 20년이 지나면 출가해서 그냥 혼인할 수도 있다.
“대칸께서는 주교 각하와 심각하게 논의를 나누시더니 모두 나가라 하시고는 아무도 방에 들이지 않고 계십니다. 저녁 수라도 방으로 들이라고 하신 뒤 혼자 드셨다고 합니다.”
대칸이 늘 자기 옆에 붙어 다니는 두 측복진까지 물리고 혼자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주교가 대칸께 내 이야기를 잘 말씀드렸을까.”
자신이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려고 사방에서 저주가 쏟아지고 있다. 사악한 악령들에게 기도를 올려 자신의 태를 저주하는 자들이 주변에 있다. 후금 황시르이 대를 끊고자 기도하는 죄인들에게서 자기를 지켜주는 유일한 존재가 교회였다. 그래서 성당을 세 개나 지어서 바쳤다. 헌금도 막대하게 했다. 본국인 청나라 황실에서 부처님께 비느라 절을 짓고 공물을 바치듯이, 천주님께 똑같이 했다. 그러면 그분이 자기를 지켜주시고 소원도 들어주실 테니까.
큰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황실의 대를 이을 아들 하나만 얻게 해달라고 빌었을 뿐이다. 아들 하나만 얻으면 지금 이 상황을 완벽하게 뒤집을 수 있으니까. 그러자면 남편인 대칸이 충실하게 남편 노릇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칸은 주님 앞에서 한 맹세를 어기고는 밖으로 나돌았다. 굴마훈이 태어났을 때 이미 한번 용서했건만, 같은 죄를 또 저질렀다. 그리고 대복진에게 자기 서자를 입적하라고 요구했다.
격분한 대복진은 대칸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죄악의 씨앗들을 절대로 자기 자식으로 삼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 대칸도 얼굴이 시뻘게져서 대복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부부의 사이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결국 대칸이 대복진의 침전에 아예 발을 끊은 게 4년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칸은 측복진들을 궁에 들이지는 않았다. 대궐 밖에 두고 가끔 나가서 찾았지, 궁에 들여 대복진과 마주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복진의 침소에 들지 않으면서 그 둘을 입궐시키더니 보란 듯이 데리고 다녔다. 대복진은 그 꼴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대복진에게 들어오는 차에다 족을 넣었다. 아끼던 시녀가 독이 든 줄도 모르고 그 차를 마셨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 뒤에는 과자에 독이 있었다. 혹시나 하고 부스르기를 마당에 뿌렸더니 새가 쪼아먹고는 즉사했다. 대칸이 미쳤다고 확신한 대복진은 개봉에 있는 오라비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라비 면녕은 즉각 호위병과 궁인들을 보내 누이의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쌌다. 하지만 독살 건을 들어서 대칸을 공박하지는 못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대복진은 대칸이 증오스러웠지만, 자식 얻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남편 구실만 제대로 하면 옛 일은 용사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소용없었다. 대칸은 공공연하게 두 측복진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입적 요구를 반복했다. 그렇게 4년을 보냈지만 대복진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서른다섯이면 아직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나이다.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몸을 보양하고 부부 관계에 공을 들이면 하느님께서 분명 황태자를 내려주실 터였다.
“제발 이번에는 대칸께서 오셨으면…..”
질투심 때문만이 아니다. 이제는 그저 살기 위해서도 자식이 필요했다. 인제 와서 대칸의 뜻에 따라 서자 중 하나를 입양해 봐야, 편안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동안 쌓인 원한 때문에 감정이 격해진 대칸이 쓸모를 다한 아내를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지금 대복진이 이만큼이라도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건 친정이 벼경으로 있고 서자 중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를 입적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권한을 행사해서 대칸의 서자를 적자로 만드는 순간 그녀의 쓸모는 사라지고 더 존재할 피룡도 없어지고 만다.
하지만 대칸과 화해하고 자식을 하나라도 낳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기 자식을 낳은 아내를 죽일 만큼 대칸의 성품이 모질지는 않으니까. 독살 시도만 해도 최근 2년간은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입양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게 안 된다. 대패륵으로 책봉된 서자는 뒤늦게 태어난 ‘진짜 적자’를 살려둘 생각이 조금도 없을 테니까. 그가 자기 자리를 가장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은 이복동생을 어미와 함께 치워버리는 거다.
끝내 대칸이 마음을 돌리지 않아 끝까지 자식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입양은 거부해야만 한다. 그래야 계승자 후보 전원이 대복진의 호감을 사려고 서로 경쟁할 테니까. 후게자 없이 대칸이 죽는다면, 후계자를 정할 권한은 대복진에게 돌아온다. 다음 대칸을 결정할 권한을 쥔 대복진에게 함부로 할 사람은 없을 테니, 대복진은 황태후 지위에 올라가 안정된 권세를 누릴 수 있으리라.
“마마. 그건 너무 불확실합니다. 그보다는 소인이 말씀드린 대로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번에 대칸께서 오시면, 바라시는 대로 하겠다고 답하신 뒤에 준비한 술을 드시게 하면…..”
초조하게 중얼거리는 상전이 안쓰러운지, 늘 옆에 두면서 가장 신뢰하는 상궁이 시녀들을 모두 내보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권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대복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네 뜻은 알겠지만, 너무 위험해. 만약 들키면…..”
상궁은 어려서부터 대복진을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었고 충성심도 믿을만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계획이었다. 가짜 황태자를 만드는 계획이 위험한 게 아니라면 뭐가 위험한 계획이겠는가. 대칸이 찾아오면 무슨 말을 해서든 마약을 탄 술을 먹여 정신을 잃고 대복진의 침소에서 자고 가게 한다. 정사를 정말 나무면 좋지만 안 나눠도 상관은 없다. 다음 날 아침, 간밤에 정사를 나누었다며 뒷정리하느 시늉만 하고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회임한 척을 한다.
회임 진단은 청나라에서 보내준 의원을 시켜서 내리도록 한다. 그리고 남몰래 수소문해서 임신 시기가 적당히 맞아들어가는 임부 몇 사람을 물색해 돌본다. 거기서 태어난 아이중 가장 건강하고 튼튼한 사내아이를 골라 은밀하게 궁으로 데려와 아들로 삼는다. 이집트 왕실에 들어간 모세가 그랬듯이, 황실의 피라곤 전혀 섞이지 않은 가짜를 속여서 황자로 만드는 일이다 만약에 들킨다면 누구도 덮어줄 수 없는 큰 범죄인지라 망설여졌다. 친오빠인 도광제라고 해도 그런 큰 죄를 덮어줄 수는 없을 거다.
“마마. 한시가 급합니다. 다음 대칸위는 어떻게든 마마께서 두신 아들이 물려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고 있네,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
만약 들킨다면 태후 자리에서 쫓겨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난구넹 잡혀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길 수도 있고, 그 자리에서는 목숨을 건지더라도 멀리 사막이나 빙원(氷原)으로 추방될지도 모른다. 대복진은 그 끔찍한 광경을 생각만해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단은…..그건 미뤄두세. 잘 말씀드리면 대칸께서 진정으로 마음을 돌리실지도 모르니까.”
고민하던 대복진은 일단은 좀 더 대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기로 했다. 나는 아직 젊다. 분명히 아이들 낳을 수 있다고 설득해보리라. 진심으로 빌면 하느님도 도와주실 거다. 그동안 그토록 많은 재물을 봉헌하지 않았는가.
“알겠습니다, 마마.”
상궁이 고개를 숙였다. 주인에게 조언은 하지만, 결정은 언제나 주인의 몫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한 역할은 주인의 결정이 최선의 결과를 얻도록 돕는 일이다. 대복진이 대칸의 마음을 좀 더 돌려보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거다.
7.
“기관이란 청소를 제때 안 하면 무슨 고장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데, 2번 선과 3번 선은 기관 상태가 좋지 않다. 먼지와 탄가루가 잔뜩 끼었으니, 제대로 닦고 털도록 하라. 행여나 어전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네놈들 모두 일개 군졸로 강등할 테다.”
부두에 정박한 전선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나온 회주도통하 장문성(張文星)이 부하들에게 호통쳤다. 사흘 뒤에 황제께서 직접 시찰을 나오시기로 했는데, 폐하께서 보시는 어전에서 장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예, 도통사 대인.”
회주도통부는 장강과 회수를 방비하는 강남주사와는 별도로 예하에 직접 통제하는 수군을 거느리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평시에 담당구역을 경비할 정도는 된다. 만약 청군이 본격적으로 공격해와서 막아내기가 힘에 부치면 강남주사에 지원군을 청한다. 회주도통부에는 철갑선도 있다. 문제는 그게 기선이 아니라 강남주사가 백 년 전에 잠시 싸다 버린 족답 추진식 외륜선이라는 거다. 이제 강남주사와 복건주사에서는 증기 철갑선을 장비하는데, 그러면서 이 낡은 배들을 각 도통부에 떠 넘겨버렸다. 물론 돈을 받았다.
“망할 놈들. 개자식들. 거북이 새끼들.”
40년 전, 이 배드을 떠맡을 대를 생각하면서 장문성이 이를 갈았다. 그때 장문성은 정6품 천총이었다. 곧 시작될 북벌을 위해서 수군이 철갑선을 새로 넘겨준다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 배를 직접 본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겉에 바른 철판은 녹이 슬었다. 목조로 된 골조는 여기저기 썩었고 내부에는 쥐와 벌레가 우글거렸다. 취사용 솥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여기에서 최악의 상황이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장문성 자신이 그 배를 맡아 몰고 다녀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참장 대인, 저는 배와 물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나는 아는 줄 아나? 도통께서 명하셨으니 따르기나 하게!’
빠득빠득 이를 갈면서 휘하 군사들을 데리고 그 썩어가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전력으로 배를 고쳤다. 배 안에 유황 냄새가 밸 지경으로 유황을 태워 쥐와 벌레를 쫓고 녹슨 철판이 광이 날 때까지 사기그릇 가루로 문질렀다. 썩은 기중은 새 재목으로 바꿨다. 죽을 고생을 한 끝에 겨우 멀쩡한 모습으로 만들어서 북벌에 투입하려나 했더니 덕성도의 난이 터졌다. 그런데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이 배를 맡은 덕에 장문성은 난을 진압하는 데 투입되지 않았다. 군영에 남아 배를 지키면서 그 난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지냈다.
그 뒤로도 이 낡은 배 때문에 화를 피하거나 공을 세우는 일이 몇 번이나 이어졌다. 결국 도통사 자리에 오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이 배와 얽혀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은인인지 원수인지 알 수가 없으니…..”
장문성이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배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공들여 관리한 덕에 배는 여전히 철판에서 광이 나고 내부도 깔끔하다. 하지만 아직 기관은 없다.
“장형! 폐하를 영접할 준비는 잘 되고 있소?”
황제의 행차를 미리 준비하러 나온 상장군 고문휘(高文輝)가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상장군은 우림군과 시위군, 금군을 통할해서 지위하는 중앙군의 최고 보직이지만 그 품계는 도통사와 같은 정2품이다.
“오, 물론이오. 잘 지내셨소, 고형? 오래간만에 뵙는구려.”
같은 품계라고 해도, 보통은 상대방의 직함을 부르면서 ‘대인’으로 존중하는 게 예법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상대를 ‘상장군 대인’, ‘도통사 대인’이라고 부르지 않고서 스스럼없이 성으로 부르며 친숙하게 대했다. 여기가 공석이 아니기도 하고, 오랜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들 두 사람만 친구인 게 아니다. 두 집안 전체가 백여 년전부터 친분이 깊다. 장 씨가 원래는 고 씨의 소작인 집안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는 하지만, 이들은 그 문제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지냈다.
“저 썩은 배가 아직도 있소? 그냥 버리거나 아니면 기관을 다시구려. 그럴 돈은 있잖소.”
고문휘가 부두에 정박한 족답식 외륜선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 뜻을 이해한 장문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놈은 사실상 수상포대 노릇을 하고 있어서 굳이 기관을 달 필요도 없소. 석탄 때는데 들어갈 돈 쪽이 차라리 더 부담이 크지.”
평시에 순시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크다. 어차피 세워만 둘거라면 기관을 왜 장착하는가? 우지하기만 힘들 뿐이다. 장문성은 그런 사정을 간단히 설명했고, 고문휘는 곧 이야했다.
“오늘 살펴볼 건 이쯤이면 됐으니, 우리 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80년 된 양하주가 한 통 잇소.”
“양하주라! 좋소. 갑시다.”
두 사람은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중요한 화제는 역시 사흘 뒤에 여기에 찾아올 황제 영강제였다.
*파트 5는 원래 어제 연재됐어야 했는데 실수로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설정상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대복진은 선선대 황제인 명종 강희제의 딸이 아니라 선대 황제인 광종 계정제의 딸이어야 맞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쓰다가 무슨 착각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는데, 대복진이 명종의 딸이라면 아무리 늦둥이로 태어났어도 박락보다 스무 살 이상 나이가 많아야만 합니다;; 그래서야 애초에 혼인 상대가 될 수가 없고, 혼인했더라도 남편이 일찌감치 정나미가 떨어져도 아무런 무리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대복진은 도광제 면녕의 고모가 아니라 누이동생이 되어야만 설정이 아귀가 맞으며, 고로 황태자 덕명에게는 고모할머니가 아니라 친고모가 됩니다. 다행히 스토리 전개에서 영향을 크게 미치는 부분은 아니나, 독자분들께 혼동을 드린 것은 분명하기에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