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79
4부 163화(1779화)
18.
미토는 고산케인 오와리, 기슈, 히로시마 세 번에 비하면 격이 낮은 편이다. 이들 세 번이 쇼군위의 계승권을 가지는 데 비해 미토는 쇼군을 보좌할 뿐 쇼군위를 계승할 수는 없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막부 내에서 갖는 영향력은 무척이나 강하다. 왜 하필 그런 지위에 있는 미토가 존왕파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그 근원을 파고 올라가면 2대 번주 미쓰쿠니 시절에 유학을 권장하고 학자를 우대한 데서 시작되었지만, 그게 어떻게 이런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원.
애초에 미쓰쿠니가 유학자들을 미토로 불러 모으고 영내에서 학문을 권장한 배경부터가 ‘쇼군을 더 잘 보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막부는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라는 구호를 내놓는 게 됐으니, 미쓰쿠니도 저세상에서 기막혀하고 있지 않을까.
만약 미토 번이 도쿠가와 일족인 신판(親藩) 다이묘가 아니라 외부 출신인 도자마(外樣) 다이묘면서 그렇게 존왕파 티를 냈으면 진즉에 영지에서 쫓겨났으리라. 군마 번에서 ‘일본 최강의 3만 철기’를 보내서 짓밟았을지도 모르지. 웃기는 게 미토 번만 존왕파에 기울어진 것도 아니다. 확고한 막부파여야 할 고산케 중에 필두이면서 다이묘 중 가장 격이 높은 가문인 오와리 도쿠가와가 대대로 조정 쪽을 은근히 옹호하는 분위기기 있다. 그나마 그 다음 순위인 기슈와 히로시마는 확실한 막부 편이다.
이는 오와리 번 시조인 이에야스의 9자 요시나오가 ‘조정을 존중하라!’는 유훈을 남기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심지어 7대 만에 대가 끊어진 오와리 번주 자리에 쇼군가의 인척인 히토쓰바시 도쿠가와가에서 양자를 들여 대를 잇게 했는데도 그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지만, 이해하지 못할 결과는 아니다. 번을 다스리는 중신들 태반이 선대부터 내려오는 신하들인데 번주가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번의 정책이 바뀔 리 없지 않은가. ‘초대 번주님의 유훈’이 갖는 위력이 그 정도로 막강하다.
결국 반항도 가진 배경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반 도자마 다이묘였으면 벌써 한참 전에 가이에키를 당하거나 무력으로 토벌 당했을 짓을, 오와리와 미토라는 막번체제 내 최고 수준으로 유력한 번들이 하니 막부조차 손을 못 대고 있지 않은가. 혹시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모를까, 존왕파 학자들을 후원하는 정도로는 막부가 미토 번을 제재하기 어렵다. 앞서 말했듯이 ‘이에야스가 직접 설치하고, 막부의 조언자 역할을 맡도록 명한 번’이기까지 하니 더더욱 문제다.
“미토 번주가 그대에게 그런 제안을 한 이유도 알 만하오. 아마 대한의 공주를 자기 처로 맞아들여 존왕파에 힘을 보탤 생각일 거요.”
당연하게도 이에츠구는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다. 쇼군가의 지배권을 확고하게 지키려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는 편이 당연히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미토 번이 우리를 배경으로 두고 존왕론을 펼치기 시작하면 막부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군. 강항 공으로부터 일본 땅에 학문이 퍼졌다 하나, 학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원칙으로야 왜황, 천황이 정권을 되찾는 게 옳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우리한테 좋은 결과로 돌아오겠느냐는 말이다. 원래 세계에서의 전례를 볼 때, 왜황을 중심으로 새 정권을 수립한 존왕파는 민족주의, 국수주의를 내세울 공산이 크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막부를 쓰러트리고 정권을 잡은 존왕파가 다름 수순으로 어디로 칼날을 돌릴까? 당연히 북구주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가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북구주는 분명 ‘신주 66주’에 포함되어 있으나 우리가 다스리는 땅, 당연히 반환을 요구할 게 분명하다.
“그 3개 주는 노부나가 공이 조선 국왕께 양도했고 이에야스 공께서 이를 인정해 맡기신 땅이었으나 교토에 계신 폐하께서는 한 번도 이를 인정하신 바가 없소. 이른바 존왕파라는 자들이 귀국이 설치한 구주총관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에 기인하오.”
“하지만 저희는 북구주를 귀측에 환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곳 주민들도 다들 마찬가지 생각일 겁니다.”
오늘날 북구주에는 140만에 달하는 주민이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다시 일본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인구는 단연코 거의 없을 거다. 한인 40만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백만 명이 넘을 일본인들도 말이다. 왜냐고? 이들 대부분이 박해를 피해 이주한 천주교도 후손들이거든.
“옳은 말이오. 우리도 그자들을 억지로 다시 데려오고 싶지는 않소.”
그 문제에 있어서는 막부도 우리와 이해가 일치한다. 도쿠가와 막부는 초기부터 천주교를 탄압했다. 일부 신자들이 불교나 신도와 충돌하여 불안을 조성했고, 지방 영주들이 천주교 선교사를 매개로 외국과 교역하면서 부를 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백 년이 넘게 지나면서 일본에서 천주교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원래 역사에서는 탄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신자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거의 없다. 탄압을 견디며 버티느니, 천주교 신앙이 합법인 북구주로 이주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고로 막부의 시각에서 보면, 북구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경인왜란에 대한 피해 보상과 재침 방지를 위해서 조선(대한)에 빌려준 땅이지만, 실질적으로 보자면 일본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불온 분자들을 격리해 우리한테 관리를 맡긴 곳이기도 하다.
“미토 번주는 분명히 다이묘 중 손꼽을 만큼 유능한 사람이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지라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정말 필요한 게 뭔지 모르오. 그러니 자기가 생각하는 원칙을 따르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실제가 아닌 이론에 불과한 것을.”
존왕론은 원칙의 문제다. 이에츠구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원칙은 그저 원칙일 뿐이고, 현실은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역시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절대 그 혼사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사실 또한 분명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쇼군의 친자를 공주나 옹주와 혼인시킨다고 해도 성사가 될까 말까다 그런데 미토 번주 ‘따위’가 부마가 되겠다고 나서면 과연 그 혼담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 계획대로 옹주가 아니라 내 사촌누이인 여러 현주 중 하나를 보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노부를 부마로 들였을 때하고도 또 상황이 다르다. 사노부는 아예 우리 조선으로 귀순했고, 우리가 인정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코앞에 닥쳐온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유능한 무장을 부마로 삼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토 번주가 우리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처가 쪽 배경을 믿고 마구 날뛰어 막부와의 평화로운 관계 유지에 방해만 될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 사위는 없는 편이 낫다.
“내 누이 중에 폐하의 사촌과 혼인한 이가 있으니, 올해 열세 살이 되는 그 아들을 이번 혼사에 내보내려고 하오. 이번에 태자가 귀국할 때 그 아이도 함께 한양에 간다면 어떨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정식으로 혼담이 성립된 뒤가 좋겠지.”
일본에서도 아무나 황실과 혼인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허수아비 제사장 신세라지만 일단 천황은 천황인 탓이다. 혼인할 때도 따져야 할 게 많다. 쇼군가에서도 황가와의 관게 유지를 위해 어쩌다 한 명씩 한다. 지금 이에츠구가 언급한 이는 이에츠구의 손위 누가로, 세습 친황가인 간인노미야(閑院宮)에 시집갔는데 남편이 6년 전에 죽어 과부가 되었다고 했다. 외삼촌인 쇼군이 혼인을 좌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후계자가 될 아들을 보내기로 했는데 부마가 될 조카까지 동행해서 보내는 건 쇼군 측에서 너무 숙이고 들어오는 셈이니 꺼릴 만도 하다. 신붓감도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데 신랑이 먼저 찾아가다니,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겠는가.
“우리 쪽에서 시집보낼 아니는 내 사촌의 딸로 해도 괜찮겠소? 히로시마 번주의 딸 중에 무척 아름답고, 현숙하여 황실의 며느리로도 어울릴 만한 아이가 있는데, 그리고 그쪽에도 황실의 피를 받은 어머니가 있소.”
일본 황실은 나름대로 쇼군을 견제하려고 그러는지, 히로시마 번주의 아내로 황실의 딸을 내릴 때가 많다. 물론 막부에서 알면 펄쩍 뛸 공주나 옹주는 아니고, 왜황의 5촌 조카나 7촌 조카 등 애매하게 가까우면서 먼 관계에 있는 친족들이다.
“그리고 혼담은 우리가 제안하는 걸로 해 달라…..뭐, 좋소. 양국 간의 우호를 우리가 무척 중시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 정도야 상관없지. 우리 양국이 유구국과 아모국에서 각지 가진 영향력을 혼수의 일부로 삼아 교환하자는 제안도 우리가 한 걸로 하지. 좋소.”
이렇게 대략 합의가 이루어졌다. 고로 ‘공식적인’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우리가 유구의 태도를 문제 삼아서 유구를 그만 우리 번국으로 들이기로 했고, 이를 일본 측에 통보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아모국을 일본의 번국으로 두도록 과거에 맺은 우호조약을 갱신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일본 측에서는 아무 계기 없이 두 나라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이참에 양측이 국혼을 맺어 인연을 단단히 더 다지면서 양국에 대한 지분을 혼수로 삼아 맞바꾸자고 역제안 했다. 우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게 공식적인 설정이다.
“그럼, 이제 조약문을 준비하도록 합시다. 합의할 사안은 대충 정리가 끝난 듯하니.”
“그러지요, 대군.”
회담, 사냥, 연회 등이 이어지다 보니 여기까지 오는 데 대충 한 달쯤 걸렸다. 여기에서 바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겨울 바다 때문에 애 좀 먹었을 태니, 역시 여기서 유구에 갔다가 나하 찍고 한양으로 가는 게 낫기는 하겠다.
19.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뭐라고 하는지 다 듣기도 전에 대답했다.
“안 간다.”
“전하, 아니, 형님, 그게……”
“안 간다고.”
“아, 전하! 제발 제가 뭐라고 하는지 끝까지 듣기나 하시고 말씀하십시오!”
박규원, 박규수, 기타 문관들과 둘러앉아 이번에 체결할 조약문 최종안 정리하느라 바바 죽겠는데 엿새 만에 에도성에 들어온 하진교가 자꾸 귀찮게 굴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는지 듣지도 않고 계속 잘랐더니 서운한지 짜증을 냈다.
“알았다, 알았어. 일단 듣기는 하마. 날 보고 어디에 가자는 거냐?”
들고 있던 석묵필을 내려놓고 뒤로 돌아앉았다. 그랬더니 잔뜩 흥분한 하진교의 큼지막한 덩치가 눈앞에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고 묻자 정말이지 예상을 어긋나지 않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하! 우리 같이 요시와라 한번 가시지요!”
역시나 그 소리였다. 나도 생각할 것도 없이 답했다.
“안 간다.”
하진교가 한양이나 북경에서도 이렇게 색을 즐기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상국에 다니러 온 번국의 왕세자로서 품위를 지켰다. 물론 약간 경망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하와국 왕자’라는 면에서 그 정도는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마 장가 들러 온 처지인지라 한결 더 조심스러웠을 거다. 함부로 놀아나다가 우리 황실 어른들 눈 밖에 나면 좋은 혼처 따위는 꿈도 못 꿀 테니까. 그래서 가끔 색주가에 가보기는 해도 너무 야단스럽게 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본에 오니 그 제한이 풀려 버렸다. 눈치를 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다. 차라리 내가 끌고 다녔으면 내가 적당히 품행을 단속했을 텐데, 내가 쇼군을 포함해서 막부의 높은 사람들이나 고위 다이묘들을 만나느라 바쁘다 보니 그럴 사람이 없었다. 그 결과가 엿새 동안 돌아오지 않은 이번 외출이었다. 살아는 있다는 보고를 들었기에 아 정신 차리면 들어오겠지 하고 놔뒀더니 돌아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같이 나가잔다.
“나 바쁘다. 색주가 같은 데 갈 틈이 없느니라.”
“아, 방사에 삼 년쯤 필요한 것도 아니고 석 달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사흘 걸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세 시간이면 떡을 치고도 남을 것을 뭘 그리 빼십니까?”
이게 왕세자 말투인지 종로 뒷골목 건달패 말투인지 모르겠다. 하진교 이놈, 그새 한국어 솜씨가 이만큼이나 늘었나. 나를 동네 형 대하듯 하는 것도 좀 당황스럽고. 이놈이 이러는 거 태황이 보면 무척이나 재미있어하겠다. 둘이 잘 놀겠네.
“전하, 비 마마와 떨어지신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었잖습니까. 사내가 여색을 지나치게 멀리하면 나갈 곳을 찾지 못한 원기가 칠공을 뚫고 분출하여 사람이 죽는 법입니다.”
“….그건 어떤 돌팔이가 내놓은 헛소리냐.”
하진교가 훼방을 놓은 김에 휴식을 선언하고 다른 이들은 죄다 밖에 내보냈다. 하진교와 디에고만 남겨두어 잠시 한담을 나누며 쉬기로 했다. 그러자 하진교는 신나게 자기가 즐긴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별세계였습니다! 한양에 있는 색주가하고 비교가 안 되던데요? 눈앞에 계집을 죽 늘어놓고 고르라고 하는데, 피부가 눈처럼 하얀 계집부터 흑단처럼 까만 계집까지 수십 명이 단장하고 늘어서 있는 광경이 실로 기가 막혔습니다! 머리카락 색깔도 다양하고요!”
일본이 원래 역사처럼 쇄국하지 않고 일찌감치 개국한 효과가 이런 데서 나타났다. 이런 것도 나비효과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다른 수행원들도 외출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요시와라로 달려간다는 보고가 올라오긴 했었다. 문관들도, 호위병들도 한두 번씩 안 다녀온 놈이 없다고 말이다. 군사들은 칼까지 차고 – 막부는 우리 군사들이 총을 휴대하고 에도 거리에 나가지는 못하게 했지만, 일본인들도 다 차고 다니는 칼은 허용했다 -외출을 나가 거기서 즐기고 왔다.
“싼값으로 부를 수 있는 계집들은 말이 안 통합니다만, 오 뭐라더라 비싼 애들은 한어도 능숙하게 할 줄 알더군요. 예쁜데 말까지 잘 통해서 더 좋았습니다.”
“오이란이겠지.”
‘오이란’은 일본 유곽에서 가장 비싸고 급이 높은 유녀(遊女)를 가리킨다. 얼굴이 예쁠 뿐 아니라 상류층 손님을 접대하느라 예악과 시, 서, 화를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일패기생’ 정도 되겠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생과 달리 대놓고 몸을 판다는 거. 최고급 유녀인 오이란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건 한국어를 하는 손님이 그만큼 많이 찾는다는 소리겠지. 에도를 왕래하는 사신들이나 배 타고 미주 가는 도중에 들른 상인들이 주된 고객이겠구나 싶다.
“오이란이고 오이장수고 난 안 가겠다. 너나 조피 잘 챙겨서 다녀오려무나.”
어느새 나도 하진교를 동네 동생 대하듯 말하고 있었다. 북경 갔을 때만 해도 격식 갖춰 대화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원. 따지고 보면 나이도 이놈이 윈데.
“신나게 노는 건 좋다만, 그러나 혹시라도 화류병에 걸리면 끝장이다. 양매창이 아니라도 뭐든지 걸리기만 하면 장가고 뭐고 다 허사가 될 테니 알아서 조심하여라.”
“물론이죠, 전하. 조피고 왜국제가 아니라 한양에서 가져온 좋은 물건으로 꼬박꼬박 쓰고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놈들은 체구만 X만 한 게 아니라 X도 X만 한지 조피라고 만들어놓은 것도 X만큼 작아서 도무지 제대로 쓸 수가 있어야지요?”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저놈이 욕도 장말 찰지게도 해대는 구나. 저따위로 말을 배우다니, 그동안 대체 어떤 친구를 사귄 거야?! 정말이지 모르는 사람이 저놈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만 들으면 아무도 하와국 왕세자라고 생각 안 할 거다. 그냥 내금위에 있는 하와병인가보다 하겠지.
“말버릇 좀 조심해라. 본국에 가서도 그러다가는 장가고 뭐고 다 그렀다. 폐하께서야 네가 입이 좀 험해졌다고 해서 쫓아내지는 않으시겠지만, 할마마마나 중전께서는 다르실 거다.”
다를수밖에, 하진교가 장가들고 싶다고 찜한 상대가 바로 황빈 홍씨 소생 현순옹주니까. 그 두 어른의 의견이 지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