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82
4부 166화(1782화)
1.
겨울 바다가 거칠다지만 그래도 이쪽은 한양 인근보다는 나았다. 여름보다 좀 추운 거야 당연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어떻소. 세사는 바다에 이렇게 나와본 적이 있소?”
“없습니다, 전하.”
앞서 에도에서 언급했듯 일본에서는 쇼군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세자(世子), 세사(世嗣), 세계(世?) 등으로 부른다. 확실히 어느 것을 써야 한다고 규정된 호칭은 없다. 그렇다 보니 사실 우리 쪽에서는 전부터 쇼군의 아들을 가리킬 때 약군(약군)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이 단어는 본래 쇼군이 아니라 관백(關白)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라 정확하게 쓰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우리 내부에서 관습적으로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문제로도 막부 측과 논의가 있었다. 그랬더니 막부 측에서 요청하기를, ‘조정의 호칭과 막부의 호칭은 명확히 별개’이므로, 한양에 데려간 무네타케를 ‘약군’이라고 칭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우리 내부에서야 뭐라고 부르든, 면전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막부에서 쓰는 호칭 중 하나를 골라야 하게 되었다. 그중 세자는 단번에 후보에서 탈락했다. 한일 양국 사이의 관계상 같은 급이어야 할 태자와 비교해서 격이 낮다고 대놓고 드러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남은 호칭 중 세계는 동음이의어가 워낙 많아 혼동되기 쉬워서 제외됐다. 그래서 일단은 그중 무난한 ‘세사(世嗣)’를 공식 호칭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유람 삼아서 에도만까지 나가본 적은 있습니다만, 이토록 큰 배를 타고 이처럼 멀리까지 나와본 적은 없습니다.”
무네타케는 평범한 열 살배기 사내애였다. 부친인 쇼군에게 한양에 다녀오는 이번 여행은 절대로 유람이 아니라고 교육은 받았다지만, 생전 처음 떠나는 장거리 여행의 흥분 때문에 들떠 있는 것이 영락없는 ‘초딩’이었다. 무네타케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입장이 반대로 바뀌어서 내가 열 살, 진짜 열 살 때 도쿄 여행을 가게 됐다면 나도 흥분해서 잠을 제대로 못 이뤘을 것 같으니까. 저렇게 뱃전에 매달려서 경탄하는 것도 당연하지.
우리 황실에서 해외에 나온 황태자는 내가 처음이듯이, 막부에서도 쇼군의 후계자가 나라 밖에 나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막부 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고 들었다 개중에는 이런 소리를 하는 놈도 있었다지.
‘우리가 한태자를 불러들인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멋대로 보낸 것인데, 왜 우리가 답방을 강요받아야 합니까? 그런 요구 따위는 그냥 무시해버리십시오!’
막부 쪽에서는 할 수도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미래를 구축하는 대신에 당장 기분 내키는 대로만 움직일 작정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에츠구는 당장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대한과 보조를 맞춰 가면서 함께 앞으로 나가는 편을 택했다. 그 증거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소년이다.
“전하! 전하께서는 정말 세상을 한 바퀴 도셨습니까?”
“그대가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나, 본인은 미주에 갔다가 돌아왔을 뿐이오. 거리를 따지면 대략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가본 장소를 생각하면 반 바퀴밖에 돌지 못했소.”
대한에 관해, 중국에 관해, 미주에 관해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답해주려니 왠지 기시감이 머리를 스쳤다. 아, 이거 지난번 생에서 내가 애들이랑 하던 대화와 비슷하구나. 가장 기억이 선명한 중종 때 자식들하고 이런 시간을 자주 가졌었다. 맏이 은이부터 한참 아래 막내 연주까지, 적서를 불문하고 자식들을 다 둘러앉혀 놓고 – 내 무릎은 당연히 막내 몫이었다 – 내가 ‘직접 보고 온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중 준이가 가장 호기심이 많아 이야기를 재촉하고 질문도 많이 했었다.
지금 심왕부 가풍이 여행을 좋아하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도 준이 그 녀석의 피를 받은 탓일 거다. 만약 권이가 심왕이 됐다면 심양에 커다란 대학교를 설립해서 동양 최고의 명문 공대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만약 홍이가 심왕이었다면….
‘….그렇게 죽지는 않았겠지.’
그놈이 한양에 있을 때 한 짓을 생각하면 심왕부에 아방궁을 만들고 방탕하게 살았을 것 같다. 심양 안팎 여기저기에 별궁을 짓고 후궁을 삼백 명쯤 거느렸을지도 모르지. 어쨌든지 고래한테 끌려가서 죽는 비극은 면했으리라.
그동안 전례를 보면 비명에 죽은 황손은 몇 백 년 뒤에라도 사면하고 복권해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하다못해 역적으로 처리되었던 이방석 같은 사례도 다시 복권되어 의안대군까지 봉해졌다. 선조, 내 손자였던 연이 시절의 일이다.
하지만 지난 백여 년 동안 홍의를 복권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뒤를 이은 영이는 불효자식인 숙부의 이름만 거론돼도 이를 갈 정도였으니 당연히 해줄 리가 없고, 그 후손인 선이나 조부도 해줄 리가 없었다. 지금 태황은 아예 홍이 한테 관심도 없고.
나중에 내가 보위에 오르면 홍이를 복권해줘 볼까. 그놈의 자식이 불료자인 건 분명한데, 그래도 내 새끼를 내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는가.
“이제 규슈를 떠나는데, 나하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전하?”
“나흘이면 되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느라 조금 늦게 입을 열었더니 하진교가 냉큼 끼어들었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일행이 생기니 신이 났는지, 하진교는 무척이나 점잔을 빼면서 형 노릇을 하려고 들었다.
“하와국에서 유구까지 가는 뱃길은 에도에서 유구에 가는 뱃길보다 여덟 배쯤은 멀다오. 그 먼 길을 내가 이 동진을 타고 오면서 얼마나 별의별 일들을 겪었는가 하면 말이오.”
곧이어 하진교는 지금 무네츠구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 덩치만큼 큰 참치 – 여기서 참치를 참치라고 부르게 된 건 장조 시절에 내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 를 낚시로 낚은 이야기를 참으로 실감 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진짜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 솜씨였다.
2.
유규로 가는 이 뱃길이 시작된 시기는 지금보다 조금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달여에 걸친 협상을 끝내고 이에츠구와 마주 앉아 ‘제2차 경인조약’을 체결한 날이 동짓날이 지난 뒤인 11월 14일 – 양력으로는 12월 28일 – 이었고, 그 뒤로 열흘이 조금 넘게 에도성에서 머무르며 이런저런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26일 – 양력 1월 10일 – 에 요코하마에서 배에 올랐다.
그 열흘 동안 초대받은 연회만 대여섯 곳은 되었다. 가장 큰 잔치를 베푼 사람은 당연히 쇼군이었고, 우리와 인연이 깊은 히로시마 번이라거나 나가오카 번 같은 곳들도 번저에서 크게 연회를 열어 우리 일행을 대접하고 노고를 위로했다. 여기서 나가오카 번이 어딘가 아리송할 사람이 꽤 있을 텐데, 옛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인 에치고가 바로 나가오카 번이다. 우에스기는 원래 역사에서는 서군 편을 들었다가 북쪽으로 크게 밀려났지만, 이쪽에서는 동군도 성골 동군인 셈 이라 옛 영지를 지키고 있다.
을미동정 이후에는 영지가 늘기도 했다. 그때 이에야스는 자기편을 들어 참전한 보상으로 아이즈 영지 50만 석을 다테ㆍ사타케ㆍ우에스기 세 가문에 나누어주었다. 다만 그 뒤에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세 가문 모두 아이즈는 도로 토해네게 했다. 막부 계열 다이묘들한테 아이즈를 내주고 본래의 본거지인 애치고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본래 영지까지 빼앗기지는 않았다. 이에야스를 도와 싸워서 히데요시를 쓰러트린 큰 공적이 있으니, 막부로서도 본래 영지까지 뺏기는 난감했던 모양이다.
현재 우에스기 령의 석고는 50만 석에 이르는데, 이는 고산케에 속하는 기슈 번의 55만 석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토번도 35만 석밖에 안 된다. 오와리가 62만 석, 히로시마 번이 40만 석이라던가. 나가오카 번은 강항과의 인연 때문에 우리를 무척 환대했다. 이들은 성향도 확고한 막부 지지파여서, 막부의 경계를 받지 않고 내게 접근할 수 있었다.
미토 번의 나리아키나 오와리 번의 나리하루도 나를 초청했지만, 이들의 초청은 초청장을 대신 접수한 막부 선에서 모두 걸러졌다. 그래서 나는 거북할 수 있는 자리에는 하나도 안 가도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면 사나이가 아니리라. 이들은 나와 이에츠구가 조인한 조약 내용을 자기들, 즉 존왕파 쪽에 더 유리하다고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저희는 믿고 있었습니다. 태자께서, 한실(韓室)이 정녕 옳은 길을 택하시리라고요! 이제 양국 황실이 국혼을 맺게 되었으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정말 기쁜 일입니다!”
이런 해석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와 국혼을 치를 상대인 간인노미야(閑院宮) 5대 당주 나루히토(愛仁)는 현 왜황의 당질(堂姪)이기 때문이다. 나와 이에츠구는 나루히토가 쇼군의 누이의 아들이라는 데, 존왕파들은 왜황의 당질이라는 데 제각기 중점을 둔 거다.
그래서 존왕파들은 비록 지금 일본이 처한 현실 때문에 우리가 막부와 조약을 갱신하기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황실 쪽을 지지한다고 속단했다. 그리고 장차 자기들이 막부를 타도 할 때가 오면 우리가 자기들 편에 힘을 실어줄 거라고 멋대로 추측했다.
“태자께서 이런 깊으신 뜻을 품이신 줄도 모르고 서운하게 굴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얕은 생각으로 범한 실례를 사과하는 뜻에서, 귀로에는 성대하게 대접하겠습니다.”
에도에서는 막부의 견제 때문에 잔치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고야와 교토에서는 어떤가, 올 때는 특별열차로 그냥 통과했지만, 돌아갈 때는 좀 더 여유 있게 움직일 테니까 그 두 고을에도 들를 수 있지 않은가.
“꼭 들러주십시오, 태자. 아쉽지 않으시도록 잘 대접하겠습니다.”
과거 사신들이 오사카에서 에도까지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에 나고야는 중요한 중계점 중 하나였다. 대한에서 건너오는 사절단, 속칭 통신사 – 장조 시절 파견한 사신을 통신사라고 칭한 이후로 일본에 보내는 사신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 는 막부의 위신을 끌어올리는 주요 수단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들의 의도가 여기서 그칠 리 없다. 나고야와 교토를 지나가는 동안에 왜황과 나를 연결하려는 심보가 뻔히 들여다보였다. 내가 직접 왜황을 만나게 하지는 못해도, 왜황이 쓴 친서라도 내가 받게 하려는 그 계산이 말이다.
“감사하오. 여유가 되면 들르리다.”
조약과 밀약이 성사되도록 막부 인사들 앞에서 전력을 다해 기를 쓴 뒤다 보니 이 존왕파 다이묘들의 시도가 무척 귀엽게 보였다. 실패가 예정된 발악 같은 거라서. 사실 내 능력을 숨길 생각도 못 하고 전력을 다해 맞설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설득해서 우리한테 유리한 조건으로 조약을 맺으려면 열다섯 살밖에 안 된 몸을 가지고는 턱도 없는 게 상식이니 말이다. 혹시라도 얕보이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해 앞서는 게 나으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방문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슬슬 이 연극을 끝내볼까 하는 참에 동진이 요코하마에 들어왔다. 내가 자기네 본거지에 갈 줄만 알고 있었던 존왕파 인사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태자께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교토를 찾으시겠다고요!”
솔직히 이런 반응도 양반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들이 진짜 밀약의 존재, 일본 황실의 황통을 아예 바꿔버리겠다는 내 계획을 알아챈다면 당장 허리에 찬칼을 빼 들고 달려들어 나를 난자했을 테니 말이지. 그래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얼른 일본을 떠나야 했다.
“방문할 여유가 되면 교토와 나고야를 꼭 방문하려고 했는데, 여유가 안 되는구려. 본국에 계시는 부황께서 서한을 보내 당장 움직이라 명하셔서…..나도 어쩔 수가 없소.”
그렇게 얼렁뚱땅 상황을 수습하고 일행과 함께 짐을 챙겨 배에 올랐다. 사전에 나와 함께 계획을 세운 이에츠구는 당연히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었고, 내가 빨리 떠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둔 짐과 사람을 신속하게 실어서 출범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일본을 떠난 날이 11월 26일, 양력으로는 1월 10일이었다. 아들을 먼 외국으로 떠나보내게 된 쇼군이 부두까지 배웅을 나왔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은 존왕파 다이묘들도 한구석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느긋하게 잔교를 올랐다.
“일본 땅에서 베풀어주신 성대한 환영은 잊지 않겠소이다. 답례는 한양에서 해드릴 테니 염려 놓으시지요.”
나와 함께 뱃전에 선 막부의 세사, 무네타케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고향인 에도를 떠나는 길이다. 그것도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간다.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일본을 떠났다.
“그러더니 단 며칠 만에 이렇게 밝아질 줄이야.”
하진교가 목말을 태워주자 그 위에 올라앉아 신나게 꺅꺅 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어린애가 따로 없다. 내 호위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디에고가 느긋하게 한 마디 던졌다.
“정말 어린아이니까요, 전하.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내 신분이 오르면서 나를 지키는 디에고도 계속 품계가 올랐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는 드디어 정4품 정령까지 진급했다. 오군영이면 대대장, 지방군이면 연대장까지 할 수 있는 직급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배에는 왕자만 네 명이나 타고 있는 셈이다. 태자도 일단은 군주의 아들이니 왕자인 셈이고, 하진교에 무네타케에 디에고도 따지고 보면 왕자 아닌가. 그러니 이번 항해는 참으로 대단한 항해다.
“점점 따스해지니 좋군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한테는 여전히 본국이 춥습니다.”
“이해하네. 자네야 술루국 사람이니까.”
술루국은 황실의 종씨이므로 이번에 태황이 계획한 국혼 대상 번국에서 빠진다. 대신 뭐 다른 걸 주겠다던데, 무엇으로 정했으려나.
“본국에서 작위와 봉지를 회수하지 않고 이제까지 지내온 것처럼 해준다는 보장만 있으면 별다른 불만이 없을 겁니다. 저희만이 아니라 조홀국에서도 그럴 거고요. 거기에 있는 저거인네 동네는 무슨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디에고가 하진교를 바라보며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올해 서른이 되어 배에 탄 ‘왕자’들 중 가장 연장자이자 보호자인 셈인 디에고로서는 하진교의 방정맞은 태도가 마음에 안 들 수 있으리라.
“전하! 섬입니다! 유구국입니다!”
그때 마침 돛대 위에서 망을 보던 파수꾼이 크게 소리쳤다. 나도 그 소리를 듣고 곧바로 뱃전으로 달려가서 바다를 보았다. 드디어 조부 사망 이후에 반쯤 억지로 나선 외교 순방의 마지막 여정, 유구국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