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9
1부 179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언뜻 보기에 아무 요구 없이 건네는 도움이나 물건도 그 근본을 따져 보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이들이 유담년의 선물을 받고 긴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구나 조선에서 만든 여러 물건은 이 북방에서는 상당한 귀중품이었다. 골간 올적합들이 조선에서 약탈하거나 구입한 물건들을 이들에게 일부 넘기지만, 그 값은 상당히 비쌌다. 그런 물건들을 선물로 받았으니 저들도 그저 기쁘기만 하진 않을 터였다.
“당신 전에 왔었다. 그때 내 이야기 듣고 선물 줬다. 지금도 이야기 원하나.”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다. 연기를 보고 내가 온 줄 알았을 텐데 왜 진즉에 오지 않았나?”
“당신 사람들, 와서 큰 소리 냈다. 비도 안 오는데 천둥소리 났다. 무서워서 오지 않았다.”
역시 총성이 화근이었다. 늦긴 했지만, 나흘 전부터라도 절대 총을 쏘지 못하게 금지시킨 효과를 본 셈이다.
“그 소리는 진짜 천둥이 아니다. 총이라는 것이다.”
“총?”
지난번에도 총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한 발도 쏘지 않았을 뿐더러 밤이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저들은 총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
“보여주도록 하지.”
유담년이 손짓하자 김병천이 조총을 들고 나와서 옆에 섰다. 손목에 감아둔 화승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
“저기 나무 위에 앉은 새를 쏴 보게.”
지시에 따라 김병천이 활도 아니고 ‘기다란 쇠막대기’로 새를 겨냥하자 우데게 사냥꾼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뿌연 화약연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벽력같은 총성이 주변을 울렸다. 깜짝 놀라 바닥에 엎드렸던 우데게 사냥꾼들이 한참 뒤에 고개를 들자, 조선 군사들이 그들을 비웃었다.
“자, 여기 나무 위에 있던 새가 있다.”
사냥꾼들이 엎드려 있는 사이 주워온 새가 바닥에 놓였다. 총탄에 맞은 날개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화살에 맞은 것도 아닌데 박살이 난 날개를 보고 야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너희가 들은 천둥소리는 바로 이 총소리다. 우리는 상감마마께서 보내시어 이 땅에 왔다. 너희가 이제 조선 백성이 되었다고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유귀국을 찾아가는 길을 탐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연해주 해안에 사는 야인들에게 이제는 새 주인을 섬겨야 한다고 일러주는 일도 그것만큼 중요했다. 이들은 장차 조선 백성이 되어야 할 이들이니까 말이다.
“소문 들었다. 서쪽 땅에 조선군 쳐들어왔다고 했다. 강변이 피로 물들고 마을은 불탔다고, 많은 사람들이 도망쳤다고 했다. 우리 땅까지 도망친 이들도 있다.”
부여주에서 도망친 야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유담년도 알고 있었다. 요동부를 향해 도망간 자들이 대부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동쪽으로 도망친 자들도 있는 모양이다. 여기까지 왔다니 참으로 멀리도 도망쳤구나.
“하지만 우리 땅에는 조선군 안 왔다. 우리는 안 졌다. 우리 조선 임금 부하 아니다.”
유담년을 향한 야인의 얼굴에는 두려움 반, 우려 반이 섞인 감정이 떠올랐다. 유담년은 그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 한 마디를 던졌다.
“내가 이끌고 온 군사들이 조선군이다.”
한 손을 치켜들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군사 100여 명이 일제히 창과 활, 총을 겨누었다. 스무 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야인 사냥꾼들은 갑자기 바뀐 상황에 미처 대응하지 못해 저항을 시도하지도 못하고 허둥거렸다.
유담년이 천천히 그들을 위협했다. 사실 딱히 내키는 행동은 아니었다.
“명나라 황제께서, 남쪽 두만강에서 저 북쪽에 있는 큰 강(흑룡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그곳까지 펼쳐진 모든 땅을 우리 주상전하께 하사하셨다. 너희들은 더 이상 명나라에 조공을 바칠 필요가 없는 우리 조선 백성이다. 요동도사에게 받은 칙서와 인장을 내놓아라.”
“그런…건 하나도 없다. 황제가 우리 주인이라고 하긴 했다. 그런데 우리는 명나라 황제도, 군사도 본 적 없다. 칙서? 그게 뭔가?”
하긴 이 머나먼 동쪽 땅 끝까지 칙사가 돌아다니면서 모든 부락을 방문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상감의 권위를 세우기가 한층 쉬울 것이다. 타도해야 할 기존 권위가 없으니까.
“그럼 복잡한 절차 없이 바로 우리 상감마마를 섬기도록 하라. 우리 상감께서는 옛날에 이 땅을 지배했었던 발해국 왕으로부터 그 지위를 이어받은 분이시니라. 실로 하늘에서 결정한 임금이시니 너희들은 마땅히 그에 복종하라.”
발해가 멸망한 뒤로 그 영토와 백성은 거의 요나라로 넘어갔다. 이후 금나라, 몽골을 거쳐 명나라가 그 지배권을 얻었다. 그리고 조선은 명나라로부터 목단강 이동 땅을 지배할 권리를 인정받았으니, 굳이 따지자면 발해왕이 가졌던 권한을 이어받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우리 고려왕 받든 거 옛날이다. 오래 왕 없었다. 왕 세금 걷는다. 우리 왕 필요 없다.”
얼굴에는 진땀이 흘렀지만 뜻밖에 야인 사냥꾼은 당당했다. 백 명이나 되는 적이 둘러싸고 무기를 겨누고 있는데도 말이다. 유담년도 조심스럽게 상대를 회유했다.
“당장 세금을 걷겠다는 게 아니다. 단지 너희가 상감의 백성임을 인정하라는 거다. 우리가 떠나간다고 해도 다른 군사들이 또 올 거다. 복종하지 않는다면 너희에겐 이 땅을 떠나 다시 먼 곳으로 가거나, 아니면 싸우다 죽는 수밖에는 없다. 저 총 앞에서 말이다.”
지시를 받은 김병천이 다시 한 번 조총 방아쇠를 당겼다. 굉음과 함께 날아간 총탄은 야인 무리 가운데 서 있던 나무둥치를 두 치나 파고들어갔다.
“우리에게도 숲에 익숙한 자들은 많다. 작정하고 나서면 너희 부락을 찾아내 전멸시키는 건 쉽다. 그전에 귀순하면 전하께서 벼슬과 함께 많은 은전을 베푸실 것이나, 저항한다면 서쪽 땅에서 일어난 일이 너희에게도 일어날 뿐이다.”
니마차를 칠 때처럼 대군을 동원해서 이 먼 북방까지 원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육로 대신 배를 이용한다면 적어도 해안지대는 확실히 휩쓸 수 있다. 항구를 중심으로 거점을 구축하고 점차 내륙으로 영향력을 넓혀 나간다면, 연해주 장악이 부여주보다 빠를지도 모른다.
“무릎을 꿇어라. 그리고 바다 건너편 땅이 어떤 곳인지, 너희가 아는 대로 들려주기 바란다. 그것이 상감마마를 위한 너희의 첫 봉공이 되리라.”
동요하던 야인 사냥꾼이 동료들에게 유담년의 이야기를 전했다. 야인들은 주위를 둘러싸고 위협하는 조선군, 그리고 처음 보는 조총의 소리와 불꽃 때문에 이미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위협 내용을 전해들은 야인들은 마침내 하나씩 무릎을 꿇었다. 통역하던 자가 마지막이었다.
유담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실제 무력은 행사하지 않고 위협만으로 목적을 달성했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자, 이제 이야기해 보아라. 먼저, 바다 저쪽 땅은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
– 6 –
환구단에서 마지막으로 제사를 지낸 때는 세조 8년이다. 즉, 오늘 제사는 43년 만에 지낸 것이다.
“새 영토를 얻었으니 하늘에 고하여 알림이 가하다.”
뿐만이 아니다. 삼 년째 작황이 좋아 나라 살림이 풍성해지니 그에 감사하는 의미도 있다. 물론 나 개인이야 이런 행사가 그저 보여주기일 뿐, 누가 제사를 정말 받아먹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이 시대 눈높이에 따라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수밖에.
본래 조선에서 환구단 제사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언할 때까지 그대로 끊겼다. 중종 때를 기점으로 사림 세력이 강해졌고, ‘제후국 주제에’ 황제처럼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행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음, 그러고 보니 중종 때 일시적으로 소격서를 폐지시켰던 조광조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김굉필을 울릉도로 보내버렸으니 그 제자는 되지 못했을 텐데, 딱히 뭐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과거 준비는 하고 있겠지?
제사를 마치고 경복궁으로 돌아오며 백관에게 하례를 받았다. 신기하게도 어떻게 또 일이 세조 때와 똑같이 맞아 들어가는지, 올해도 세조 8년처럼 유구국에서 사신이 왔다. 3년 전에 양광과 양춘이 다녀간 뒤 3년 만에 온 셈이다.
“전하, 저 국사는 아무래도 진짜 유구에서 온 사신이 아니라 왜인이 가장한 듯합니다.”
“아니다. 내 보기에는 진짜가 맞는 듯하다.”
가짜 유구국사는 대개 일본 영주들이 보냈다. 이들은 자기들한테 배분된 무역 쿼터를 넘겨 교역을 하고 싶을 때, 또는 대장경을 얻고 싶을 때 가짜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는 쇼니 씨와 오우치 씨가 규슈 북부를 무대로 해서 격전을 벌이는 통에 상황이 달라졌다.
거의 모든 영주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올해 쿼터를 소진하지 못했다.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자들도 굳이 전쟁터를 통과하는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무역선을 보내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 굳이 가짜 유구 사신을 만들어서 보낼 필요가 있을까.
“그런가. 유구국은 지금 한창 힘을 떨치고 있는가.”
연회 자리에 앉은 사신은 유구국왕 상진(??)이 얼마나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왕권에 맞서는 국내 호족들을 모두 제압하여 수도인 슈리(首里)에 모여 살게 하고, 대신 직접 임명한 관리들을 보내 각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작업을 완료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군사를 보내 아직까지 자신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던 궁고도(宮古島)와 팔중산제도(八重山 諸島)까지 정복했다고 했다. 이거, 오키나와 열도 남쪽 끝에 있는 섬인 미야코지마랑 아에야마 제도 같은데?
중앙집권 확립에 영토 확장. 확실히 훌륭하다. 그렇다면 유구 왕국은 거의 대만까지 다다른 셈이다. 대만은 유구가 스스로 정복하기엔 도저히 불가능할 만큼 크니까, 지금 유구는 팽창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일전에 보낸 사신 편으로 귀국 국왕께 앞으로 더 자주 통교가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는데, 어찌 다음 사신이 돌아오는데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일본 구주에서 전쟁이 있다 보니 해적이 성합니다. 저희도 중도에 해적을 만나는 바람에 전하께 바치려던 공물 중 절반을 잃었습니다.”
“귀국 국왕께서는 함대를 지어 여러 섬을 정벌하셨다면서 어찌 사신들을 호송하는 데는 그 군선을 쓰지 않으시는가? 유구 본도에서 구주 남단까지 4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던데, 선단을 띄우기 힘들만큼 먼 길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당연한 질문이다. 유구 영토 중 최북단인 아마미 제도에서 규슈 남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섬이 징검다리처럼 늘어서 있을 터이다. 지난번 사신인 양광과 양춘이 ‘자기들은 뱃길을 모른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면 일본 상선을 길안내로 삼아 올라오면 될 게 아닌가.
더구나 지금 대만에는 유구를 공격할 세력도 없다. 말 그대로 바다가 장벽이 되어 보호하는 나라니까, 해적들이 노략질하지 못하게 할 정도 함대만 남겨 놓고 조선에 파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전국시대가 한창인데 사쓰마가 지금 유구를 침공할 리도 없고 말이다.
“저희 국왕께서도 군선을 보내 사행길을 호송하려고 고려하셨습니다. 허나 구주의 정세가 워낙 심각하여, 자칫 군선을 보냈다가는 왜국 영주들이 자신들에 대한 침공이라고 오해하고 공격해올 공산이 있어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흐음, 확실히 그건 말이 되는 이야기로군. 규슈 영주들이 갑자기 나타난 유구 함대를 보고 유구가 규슈를 노린다고 착각할 공산은 분명히 있다. 게다가 조선으로 오는 항로는 규슈 서안 일대를 지난다. 당연히 작정하고 습격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알겠다. 하루빨리 두 나라 사이에서 직접 오가는 뱃길을 만들어야겠구나. 우리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곧바로 나가면 귀국 본섬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길은 엄청나게 멀다. 대충 1천km는 되지 않을까? 도중에는 중계점으로 삼을만한 섬도 하나 없어서 정말 목숨 걸고 남쪽으로 가야 한다. 혹시 바람이 잦아들어 싣고 있던 물과 식량이 떨어지면 그대로 죽는다.
“다만, 어려운 길이지요.”
사신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한숨을 쉬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쳐 주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조선 어부들이 종종 저희 해안에 표착합니다만, 산 이보다는 이미 죽어 시체가 된 이들이 더 많이 떠내려 옵니다. 그만큼 멀고 험한 길이라는 이야기겠지요. 저희로서는 그 먼 항해를 감당할 재주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서양 항해술이 들어올 때까지는 일본을 거치지 않고 직교역을 하기는 힘들겠다. 동아시아에서 항해란 기본적으로 연안을 따라가는 항해니까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동중국해를 마구 들쑤시고 다닌 왜구들도 있고, 송나라 때부터 중국에서 일본을 오가던 일반 무역선들도 있다. 하지만 그놈들은 항로에서 좀 오차가 나더라도 목적지 근처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가야 하는 거리보다 이동거리도 짧다.
“만약 우리 두 나라가 직접 교역을 늘린다고 하면 우선 명나라에서 크게 질책을 하겠지요. 또한 구주 땅에 득실거리는 해적들도 우리 배들을 노릴 겁니다. 저희 국왕께서도 조선과 한층 교류를 늘리고 싶어 하시나, 당분간은 힘들겠습니다.”
명나라가 조공국들을 대하는 기본 태도는 서로 직접 교류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소국들이 자기들끼리 교류하게 두면, 엉뚱한 생각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조선-유구-안남이 몽골과 결탁해 동시에 명을 공격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는가.
때문에 조선과 유구는 서로 사신을 주고받더라도 가능한 그 사실을 숨겼다. 그리고 들통이 나면 표류민 송환 때문이라고 얼버무렸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명나라 쪽에서 이 문제로 크게 트집을 잡지는 않고 있다.
“아직은 아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먼 바다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자들이 바다를 건너 찾아오리라. 그들에게 항해술을 배우면 우리 두 나라도 쉽게 서로를 오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자들이 어디서 온다는 말입니까?”
사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얼버무렸다.
“세상 다른 곳, 서역 먼 땅에서 사는 색목인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가 사는 천하에 오려면 바다를 건너 올 테니 바다를 건너는 재주는 분명 우리보다 탁월하리라. 언제 올지는 아직 알지 못하나, 언젠가는 오리라고 본다.”
사자는 내 말을 납득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흠, 포르투갈 인들이 지금쯤 말라카에 도착해 교역을 시작했지 싶은데 아직 유구에는 그 소식이 퍼지지 않은 걸까.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서양인이 말라카에, 중국에 도착하는데 앞으로 20년이다. 그때쯤에도 나는 아직 쉰, 충분히 나라를 이끌 수 있다. 대양 항해가 가능한 선박과 항해술을 손에 넣게 되면 그때는 유구를 중계점으로 삼아서 동남아시아로 곧바로 나갈 수도 있겠지.
조선판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는 날, 그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