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99
4부 183화(1799화)
15.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구나.”
사흘 동안 간다던 출장을 닷새 만에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온 태황은 문제의 그 익명서에 관한 보고를 받고서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큰둥한 태도로 흥 하고 콧바람을 뿜었을 뿐이다.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낼 자신도 없는 놈들이 익명의 탈을 쓰고 어둠 속에서 분탕질을 좀 벌였을 뿐이다. 너는 그 익명서를 보고 화가 나더냐?”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잠시 화가 치밀기는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마 안가서 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렇게 황당한 짓을 벌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더 커졌으니까. 애초에 내가 외국에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다닌 이유가 ‘조부와 태황이 시켜서’였다. 그걸 두고 마치 내가 원해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친분을 쌓은 것처럼 왜곡하다니, 이런 황당하게 기가 막힐 일이 있나.
이건 그냥 조부와 태황을 한꺼번에 까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쓴 놈의 본의가 진심으로 나를 견제하는 데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악수를 둔 것은 분명하다.
“익명서 앞부분은 짐의 덕을 칭송하고 있기는 한데…..”
성의 없이 익명서를 쓱 훑어본 태황이 책상 위에 종잇장을 던졌다.
“뒷부분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너를 비난하고 있다. 태자야, 이런 짓을 꾸밀 만큼 네게 원한을 품은 자들이 있느냐?”
내용으로만 보면 성종 시절이나 경성군 시절에 머리가 머물러 있는 꼴통 사람들이 쓴 듯하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그쪽은 후보에서 배제했다. 그런 놈들은 또 묘하게 당당한 면이 있어서, 떳떳하게 겉봉에 자기 이름을 적지 익명서 따위는 절대로 안 쓰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바마마.”
이번 생에서 나는 아주 얌전히 살았다. 성친왕 때처럼 망나니짓을 벌여 다른 사람들한테 반감을 사지도 않았고, 누구한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시중에 잠행을 나가서 시비 한 번 붙은 적이 없다. 그러니 개인적인 원한 같은 건 딱히 생길 게 없었다. 성친왕 시절이었다면야 내게 원한을 품은 이들이 오열종대로 연병장 세 바퀴를 채우고도 남았겠지. 성친왕 그 새기는 어려서부터 도성을 휩쓸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난 아니다. 정말 아니다. 누구한테 원한 살 짓이라곤 하지 않았다.
굳이 원인을 찾아보자면 내 태자 자리가 탐이 나는 놈이 달라붙었을 가능성인데….그것도 현실성이 별로 없다. 운이가 태자 자리를 탐낼 리는 없으니 – 그리고 그놈은 그만한 글을 못 쓴다 – 후보를 찾으라면 내 이복형인 효왕 이정밖에 없는데, 이정이 얼마나 납작 엎드려 사는지는 내가 잘 안다. 사람도 안 만나고 집 밖으로 외출도 잘 안 하는데 역모는 무슨.
“소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소자에게 원한을 품었을 만한 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쓴 역도도 언명한 바지만, 소자는 근래 들어 계속 나라 바깥에 나가느라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냐.”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나보다는 댁한테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였다. 애초에 ‘임금으로서’ 보여야 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장본인이 태황 본인 아닌가. 상소만 해도 그렇다. ‘폐하께서는 부디 품행을 바로 하시고 국정에 관심을 쏟으시라’라는 상소가 지금도 매일 쏟아지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쪽은 다 이름을 쓴 제대로 된 상소다.
애초에 내가 도승선의 ‘내용이 무도한 상소’라는 말을 듣고도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이유 중 일부는 여기 있었다. 태황이 일 안 한다고 까는 상소가 수시로 들어오니까 당연히 이번 것도 까도 태황을 까는 내용일 줄 알았지, 나를 까는 내용일 줄 짐작이나 했겠나. 임금의 도리를 따지는 고루한 산림들만 태황에게 반항적인 것도 아니다. 경화사족 출신인 조정 관리들도 불만이 많다. 이들의 불만은 태황이 일을 안 하는 것보다는 임금이 바뀐 지 2년이 다 되었는데도 대대적인 인사조치 한 번이 없다는 쪽에 몰려 있다. 그 문제를 내가 돌려서 이야기하자 태황은 무심하게 이렇게 대꾸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아무 문제 없이 일을 잘 처리하고 있는데 굳이 바꿔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이냐?”
“그래도 사람들 생각이 아바마마와 같지 않사옵니다.”
전에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임금이나 대통령이나, 최고 권력자가 바뀔 때면 자기 뜻대로 나라를 이끌기 위해 고위관리들을 한번 물갈이하는 게 보통이다. 그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빈자리가 생기고, 밑에서도 승진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태황은 그 당연한 절차를 시행하지 않았다. 국상을 포함해서 조부 시절의 고위직 대부분을 그대로 유임시켰고, 해당자 본인이 사망하거나 병으로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을 때만 새 사람을 뽑았다. 그게 벌써 2년이니, 불만이 슬슬 드러날 수밖에 없다.
“출세하고 싶으면 자기가 실력을 키워서 윗사람보다 잘났다고 증명하면 될 게 아니냐. 왜 자기가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고 윗사람이 물러나기만 기다리느냐? 그런 심보는 도둑놈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그따위 놈들은 출세를 못 해도 싸다.”
“아바마마……”
태황의 이야기를 듣자 태황에게 원한을 품은 두 번째 부류가 생각났다. 태황한테 거하게 뒤통수 맞은 놈들 있잖은가. 태자 시절 같이 놀던 술친구들. 아, 술만 같이 마신 게 아니고 사냥이나 노름도 종종 했던가. 가끔은 예쁜 기생 구멍동서 노릇도 했다고 하고. 그 패거리들도 태황이 즉위하면 감투 하나는 받으리라고 단단히 기대하고들 있었으리라. 하지만 태황은 서슴없이 그놈들을 팽개쳤다. 태황의 외사촌인 윤원성 정도가 겨우 6품직을 받았을 뿐, 나머지는 몽땅 버림받았다. 태황은 그놈들에게 이렇게 딱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그대들, 출세하고 싶거든 과거나 먼저 붙게나.’
애초에 과거에 붙어 제대로 출세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생각이 없는 놈들만 어울린 장본인이 할 말일까, 이게. 하여간 태황은 옛 친구들을 몽땅 손절했다. 출세에 대한 기대를 잔뜩 품고 있다가 졸지에 버림받았으니, 이놈들도 충격이 대단하리라. 개중에 몇 놈이 지금까지 태황에게 이를 갈고 있다고 해도 이상 할 게 없다.
“그런 놈들은 달콤한 꿀이 있는 곳만 찾으러 다니는 파리와 같은 놈들이지. 그런 놈들이 원한을 품건 말건 세상이 움직이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다. 무능한 그놈들이 가진 거라고는 가문이 주는 연줄과 혈통뿐이지 않나.”
아니, 그 말에는 어폐가 좀 있는데? 당장 당신부터가 실력이 아니라 혈통으로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인데 그런 말을 하면 양심에 걸리지 않나? 백부, 숙부들만 해도 서자 출신이라서 그렇지, 주변에서 그다지 못났다는 말은 안 듣고 사는 사람들인데? 학식이나 품행에서도 그 세 사람이 그렇게 떨어진다는 평은 없다. 혼자만 어머니가 다른 서장자 이선이나, 동복형제인 이종과 이청이나 모두 종학에서 평균 이상은 했다고 들었다. 종학에 간 종친들이 다들 대충 공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평범한 수준이었던 셈이다.
예전에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이 세 사람의 이름밖에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는 게 좀 늘었다. 최소한 그 세 사람이 태황보다 훨씬 상식적이라는 정도는 말이다. 음주운전 사고로 처를 죽이고 아들을 죽일 뻔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아니란 소리다. 물론 모난 돌니 정 맞는다고, 괜히 튀다가 역모 주동자가 될까 봐 정당히 사는 것일 수도 있긴 하다. 예왕이 일으킨 무인지변 이후로 종친들에 대한 감시가 더욱 엄중해졌고, 역당의 일원으로 간주되어 형벌을 받은 종친들이 그동안 여럿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옛날 중종 시절의 예왕처럼 세상의 추앙을 받는 그런 황손은 이제는 없다. 예왕만큼 잘난 사람이 쉽게 나오지 않는 탓도 있지만, 예왕이 남긴 엄청난 업보가 후대의 종친들이 행동할 범위를 제약해버린 탓이 크다. 실제로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옛날 예왕처럼 드러내놓고 잘난 티를 내면서 돌아다니면 혹시 역심을 품은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이 쏟아졌다. 실제로 그 이후로 터진 역모에서 주동자로 지목된 종친들은 하나같이 나름대로 잘났다는 소리를 듣던 이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종친들은 다들 몸을 사리는 게 중종 시절보다 더해졌다. 태황의 세 서형제도 있는 듯 없는 듯 산다. 물론 아무도 안 만나고 살 수는 없으니까 다른 종친이나 사대부들과 일부 교류는 하지만, 예왕처럼은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하지만 태황은 이 문제에 관해서도 나랑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주 당당하게 이렇게 말한 걸 보면 말이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있는지 아느냐? 부황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대한의 임금으로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영왕이나 전왕, 소왕이 더 잘하리라고 생각하셨다면 나를 폐위하시고 그 셋 중 하나를 새로 태자로 책봉하셨겠지.”
“…..그렇습니다. 아바마마의 덕이 실로 높으십니다.”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일찌감치 왕재를 드러냈으니 나도 안심하고 네가 태손이, 태자가 되도록 하였음이라, 네가 무능하였다면 어찌 지금 그 자리에 있겠느냐.”
지금 이게 태황이 진심으로 하는 개소린지, 아니면 중요한 건 혈통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성리학을 신봉하는 국가에서 언제부터 혈통보다 능력을 중시해서 이 자리를 물려줬다고? 그건 아름다운 선양이 존재하던 옛날 요순시대에나 통할 소리 아닌가. 정말 참신한 개소리였다. 기가 막힌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자 흥이 깨졌는지, 태황이 다시 책상 위에 놓인 익명서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네가 모르겠다고 하니, 의금부에 내려서 조사하게 하지는 하겠다. 하지만 뭐를 찾아낼 건 없을 듯하구나. 신문궤에 상소문을 넣고 가는 이들의 수는 하루에도 수십은 족히 되니, 그 많은 수를 어찌 다 추적하겠느냐. 화공이 그 앞에 앉아 화상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현대 사회에서 사방에 널려 있던 CCTV 생각나네. 실시간 전송까지는 어렵더라도 촬영만 하는 거라면 큰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이쪽 세상에서 그런 물건이 나오려면 적어도 백 년 이상은 더 있어야겠지.
“일단, 궁문을 지키는 시위대 군사들에게 신문궤에 상소를 넣는 자들의 봉투를 확인하게 해둬야겠다. 그러면 익명서를 넣으려는 놈을 잡거나, 다시 넣지 못하게 할 수 있겠지.”
신문궤에 넣는 상소는 봉투에 봉해서 제출해야 하지만, 꼭 어디에 이름을 쓰라는 규정은 없다. 봉투 겉에 쓰건 속에 쓰건 상소문을 쓴 속지에 쓰건, 쓰는 사람 마음대로다. 겉봉에다 이름을 쓰면 작성자의 신원이 쉽게 노출되므로, 필요할 때까지 비밀을 지켜주려는 조치다. 헌데 태황은 무조건 봉투 겉에 이름을 쓰도록 규정을 바꾸겠다고 했다. 혹시 안 써왔으면 현장에서 쓰도록 필기구를 빌려주고 말이다.
“거짓으로 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현장에서 호패를 확인하는데도 가짜 신원을 적는다면 호패를 위조했다는 뜻이겠지. 그럼 붙잡아서 법에 따라 처분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익명서를 작성하는 죄 자체가 교형 아니냐.”
호패 위조도 사형이다. 범인의 처자식은 노비가 된다. 전부터 내려오던 사노비가 대부분 해방된 지금은 신규 노비의 공급처는 대개 이런 범죄자와 그 가족들이다.
“이 역도들을 찾아 잡는 일은…..”
태황이 지긋이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수사관 노릇까지 시키려고? 그런 건 무종 시절에 잠깐 재미로 해본 것 말고는 경험이 없는데, 대조할 자료가 없어서 필적이나 지문을 추적할 수도 없잖아. 아, 지문 자체는 이쪽 세상에도 개념이 있다. 다만 원래 역사에서처럼 범죄 수사 때문에 관한 연구가 나온 건 아니다. 수상(手相), 즉 손금을 보고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점을 치는 기술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게 지문의 발견이다.
대한에서 점이라고 하면 주역, 토정비결, 사주팔자, 관상 등이 대세다. 그런데 영이 치세 후기에 수상이 크게 유행한 시기가 있었다. 관상보다 수상이 유리한 점이, 굳이 점쟁이한테 직접 가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장인(掌印)만 찍어 보내도 되었기 때문이다. 수상을 제대로 판별하려면 손바닥에 무식하게 ‘먹칠’을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옅게 바르고 부드럽게 살짝 찍어내야만 한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된 게 사람마다 각기 지문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영이나 선이는 다른 바쁜 일도 많고 해서 지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조부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여기 사람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그럼 활용해야 할 게 아닌가? 조부는 복역 중인 죄수들의 장인을 찍어 보존하게 했다. 혹시 재범을 저질렀다가 붙잡힌 범인이 자기 신원을 속였을 경우, 장인을 대조해서 적발한 뒤 가중 처벌할 생각으로 말이다. 실제로 이런저런 요인으로 죄인이 바뀌는 사례가 없지 않았으므로, 조부라면 그럴 만했다.
현대 한국에서처럼 전 국민의 호패에 지문을 찍어 붙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비용과 기술면에서 아직 그만한 단계로 갈 상황이 아니 어서다. 하여튼 이만큼 지문 활용이 자리가 잡혔는데도 범죄 수사에 피나 먹물 같은 게 묻어서 우연히 찍지 않는 이상 지문을 얻을 수 없어서다. 다양한 물건에서 지문을 채취할 기술이 부족하다.
“….네게 맡기지는 않을 테니 염려 마라. 너는 해야 할 공부도 많고 일도 많은데 어찌 이런 피라미를 잡는 일까지 맡으라고 하겠느냐? 감히 익명서를 넣어 황실을 능멸한 죄, 의금부에 맡길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따위 익명서는 잊어버리고 네 일에 집중하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나를 생각하는 태황의 배려에 잠시 감동이 스쳤다. 지난 10여 년간 태황이 내게 안겨준 수많은 고난이 안겨준 힘겨운 기억들이 잠시나마 기억의 수평선 밑으로 내려갈 만큼. 하지만 그 감동은 문자 그대로 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태황의 진심은 하루빨리 나한테 일을 떠넘기는 데 있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어서 가르쳐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저런 잡다한 익명서 수사 따위나 시킬 여유는 없겠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태황이 도성을 비운 닷새 동안 있었던 나머지 일들에 관한 보고를 계속했다. 태황이 사소한 문제로 시간 끌지 말고 어서 끝내라고 자꾸 재촉하는 바람에 얼른 마치려다 보니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음, 알았다. 별일은 없었구나.”
태황은 그렇게 한 줄로 인수인계를 끝냈다. 그리고 뒤로 기댄 채 태평하게 지시했다.
“다음 출타는 다음 달에나 나갈 테니, 그때까지는 공부에 매진하도록 하여라. 그때도 또 조정을 좀 맡기겠다.”
이젠 아주 당연하게 대리청정을 예고했다. 또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일본으로 시집보낼 아니는 누구로 정하셨는지요.”
“음, 얘기 안 했던가? 전왕의 둘째 딸을 보내려고 한다. 조만간 조정에서 공식적인 논의가 있을 거다.”
전왕 이종의 둘째라….걔가 나이가 열넷이었던가? 나이는 적당하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