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
1부 0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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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사항은 정보를 모으는 일이다. 남변, 북변 모두 정보가 필요했다. 어느 쪽과 먼저 싸울지에 따라 정보 방향도 달라진다.
일단 여진족 쪽의 정보를 먼저 모으기로 했다. 일본과 싸우려면 군선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군선 건조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대일전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정보를 얻으려면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긁어모으는 게 먼저겠지만, 수동적으로 얻는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 많은,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가서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가면야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믿을 만한 요원이 필요하다.
“그대가 향화부장, 훈련원 습득관 동청례인가. 여러 달 만에 보는구나. 작년 가을에 건주위에 다녀온 이후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 앞에 꿇어 엎드린 향화(向化, 귀화)인은 다부진 체격을 한 장년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무장으로서 한 가닥 하게 생긴 외모였다. 이 사람이 바로 동청례, 조선 역사상 최고로 출세한 여진인이다.
“과인이 이번에 그대를 또 중히 쓰려고 한다. 다소 힘든 일일 수도 있겠으나, 이 나라의 사직을 위하여 부디 완수해 주기를 바란다.”
내 부탁을 들은 동청례가 머리를 깊이 숙였다.
“이 비천한 몸이 조정에 들어 성은을 입은 지 벌써 30여 년이 다 되어 갑니다. 소신의 부친과 형이 모두 선대왕 시절부터 조정에 출사하여 은혜를 입었고, 그에 보답하고자 소신 역시 전하를 위해 신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동청례는 순수한 여진인은 아니다. 조선인 피가 절반 섞인 혼혈로, 아버지는 임금을 경호하러 들어온 시위(侍衛, 국왕 경호대) 출신 여진인이지만 어머니는 조선인이다. 그 인연으로 일찌감치 조선에 귀화를 했다.
처음 출사한 건 성종 4년이다. 아버지와 형처럼 무과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성종에게 직접 청원해서 기회를 얻었다. 말과 활을 귀신 같이 다루어서 벼슬도 많이 올랐고, 그 뒤로 북방의 여진족들과 관련된 여러 직책을 맡아 수행했다.
동청례가 그동안 벌인 활약은 상당했다.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여진족과 직접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많은 공헌을 했다. 여진족들의 부락으로 들어가 우두머리들과 회담을 나누고, 정보를 수집하거나 포로로 잡혀간 이들을 되찾아왔다. 그것도 여러 차례나.
작년 가을에도 함경도 북방에 있는 여진족들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건주위! 훗날 누루하치가 이끌고 후금을 건국하는 바로 그 건주위에 말이다. 동청례의 부친이 바로 이 건주위 귀족 출신이다.
사실 여진족 토벌에 대한 논의 자체는 내가 따로 꾸밀 것도 없이 조정 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 위치와 인구 규모 등 압록강 및 두만강 일대 여진족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지리를 조사하는 등 활동은 꾸준히 했다. 성종 재위 시기인 7년 전, 경술년에도 토벌이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평락사라는 스터디그룹을 따로 만든 건 단순한 토벌 이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그 이유를 아는 건 그룹 멤버들뿐이지만.
“이미 지난 가을에 심처(深處, 여진족이 거주하는 만주 내륙부를 가리킴)에 가서 야인들을 효유하고 왔음은 잘 알고 있다.”
“예, 전하의 성은에 힘입어 무사히 다녀왔사옵니다.”
“그대는 건주위와는 혈연이 있고, 다른 족속들의 우두머리와도 면식이 있다. 이에 과인은 그대를 한 번 더 북으로 보내 저들이 생각하는 바를 탐지하고 그 허실을 살피게 하려 한다. 수행할 수 있겠는가?”
“이 몸은 대를 이어 전하께서 내리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이룬 공도 적은데 품계를 올려 주셨습니다. 전하께서 내리시는 명이라면 주저 없이 따를 것입니다.”
동청례의 인사치례를 듣자 작년에 겪은 고생이 떠오르면서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으으, 망할 대간 놈들!
동청례는 작년에 여진족 추장들을 만나러 만주 깊숙이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그 상세한 보고를 받은 뒤에 감탄해서 당상관 급으로 품계를 올려 주고 쌀과 베를 내렸더니 대간들이 들고 일어났다.
“동청례는 우리 백성 하나 되찾아오지 못했는데, 말로 하는 보고만을 받고 품계를 올려 상을 줌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 문제를 가지고 몇 달이나 상소가 계속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정보가 갖는 가치를 역설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니, 꼭 물질적인 뭐가 있어야 공이냐? 모가지 잘라 오는 것만 공이고 인맥 구축이나 정보 수집은 공이 아니야?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대간들에 대한 악감정이 점점 쌓여 간다. 너희들 두고 보자. 이제 딱 1년 남았다. 1년 뒤에는 너희들 중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놈들이 나올 거다.
“그대가 작년에 심처에서 야인 추장들과 ‘명년 봄에 만포에서 만나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들었다. 헌데 조정에서 의론이 분분하여 파송이 늦어진 바, 야인 추장들이 왜 그대가 오지 않느냐며 독촉을 해 왔도다.”
“저들로서는 약조한 바가 어긋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그렇겠지.”
대간들이 동청례에 대한 대우가 과도하다고 난리를 친 것도 문제였지만 사실 다른 장애도 있었다. 동청례는 비록 출세했다고는 하지만 분명 여진족 혈통이었다. 때문에 조정 내에서는 ‘동청례가 야인들과 합세하여 우리 기밀을 넘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여기에 지난해 겨울 내내 여진족들이 국경 일대, 특히 압록강 연변에 출몰하여 백성들이 겁을 먹게 만들었으니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했다. 동청례 파견 건이 거론될 때마다 ‘야인에게 넘어가면 어떡하느냐!’고 반발하는 신하들이 나오니 보낼 수가 없었다.
여진족 토벌 관련해서는 전담부서라고 할 수 있는 병조에서도 동청례를 즉시 파견하자는 의견에는 부정적이었다.
“과거 건주좌위에서 청례를 보내달라고 청했을 때는 딱히 손해 볼 것도 없고, 적의 내실을 탐지해 귀순하게 만들거나 훗날 죄를 묻기 용이하다고 여겨 찬성했습니다. 헌데 이번에 건주삼위의 추장들이 일제히 사자를 보내 청례를 보내 달라 청하니 그 의도를 알기 어렵습니다.
저들이 청례가 오겠다 하고 오지 않으니 우리가 계교를 꾸민다고 의심을 해서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지? 지난 경술년에 우리 군사들에게 혼이 난 뒤, 또 쳐들어올까 두려워 화해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지? 청례가 가져올 하사품을 얻으려고 급히 만나고자 하는지?
저들이 가진 의도는 분명 이 세 가지 중에 있으리라고 여깁니다. 예로부터 제왕이 이적(夷狄)을 대우하는 도는, 배반하면 토벌하고 항복하면 위무(慰撫)하는 것으로서, 은혜와 위엄 두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야인이 여러 번 변경을 침범하는데 군사를 보내 죄를 묻지 못하고, 귀순하겠다고 성언(聲言)하는데도 또 곧 은혜를 베풀어 불러들이지도 않으면서, 그저 앉아서 오랑캐로 하여금 무서워서 항복하여 도적질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하려 하니, 이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삼위의 요청이 더욱 돈독한데, 이제 만일 보내지 않는다면, 장차 무슨 말로 대답하겠습니까. 자고로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오랑캐의 상황을 잘 아는 이들을 불러서 전에 의논한 신하들과, 돌려보내는 것의 가부에 대해 대답한 말을 함께 다시 상의하여 아뢰게 하소서.”
병조판서 노공필이 이렇게 주장하면서 동청례를 보내는 일을 서두르지 말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밀고 나간단 말인가. 젠장, 내가 진짜 연산군만큼 깡이 있었으면 내 뜻대로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
그나마 함경도 쪽 지방관들로부터 올라온 보고가 동청례를 활용할 여지를 만들었다. ‘야인들이 는 태도를 보인다’는 함경도 관리들의 보고 덕분에 지금이나마 동청례를 파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를 삼위선유관(三衛宣諭官)으로 임명한다. 비록 저들과 약조한 날짜보다 늦었으나, 이제라도 북으로 가서 저들을 효유하여 양순하게 만들도록 하라. 추장들에게 하사할 사여(賜與)품은 호조로 하여금 준비하게 할 터이니, 가지고 가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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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청례를 보내기로 결정한 뒤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젠장, 이게 조선이지. 왕이 하라고 명한다고 그대로 다 실행되면 조선이 아니지.
“전하, 동청례가 전날 쇄환해온 우리 백성은 하나도 없고, 저들이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한 7살 어린아이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들이 하는 말만 믿고 동청례를 보낸다면 명분이 없을 뿐더러 국위가 크게 손상을 입게 됩니다.”
“저들이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할 때 곧바로 보내 준다면 우리를 얕잡아보아 더욱 무례하게 굴 것입니다. 차라리 좀 더 저들의 태도를 살핌이 어떠합니까? 곧 장마철인데, 농사에 종사할 인마를 끌어내어 먼 길로 오고가게 해 보아야 아무 이로움 없이 군량만 허비할 것입니다.”
동청례를 보내지 말라는 이들은 대개 문관들이었다. 뭐, 내가 무오류한 존재는 아니니 반대하는 건 저 사람들 자유다. 하지만 왜 이리 내가 새롭게 좀 하자는 것마다 죄다 반대냐? 꼭 하던 일을 하던 방식대로만 해야 하는 거야?
포로를 되찾아오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거야 새삼스럽지도 않다. 헌데 얕보인다고 하는 주장은 내가 듣기에는 정말 참신했다. 아니, 약속을 위반해서 원한을 사는 쪽이 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무관들의 의견은 대체로 동청례를 보내자는 쪽이었다.
“저들이 도대체 우리를 따르겠다는 것인지 안 따르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청한다고 하여 청례를 보냄은 명분이 없습니다. 허나 이번에 청례를 보내는 길에 눈치 빠른 군관들을 딸려 보내 도로와 산천을 파악해 두면, 훗날 군사를 풀어서 저들에게 죄를 물을 때 군사를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매번 군사를 보낼 때마다 길을 알지 못해 허겁지겁 들어갔다가 들어온 길로 나오기가 일쑤였습니다. 저들은 우리 군사가 들어가면 슬쩍 피했다가 돌아오면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니,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군사를 낸 효용도 없었습니다.
지금 저들이 청례를 보내주면 예전과 달리 바른 길로 인도하며 굴혈(窟穴, 소굴)을 숨기지 않겠다고 하니, 이참에 청례를 보내 산천과 도로를 살피게 하고, 부락의 위치와 인구를 살피게 하소서. 또한 사여품을 나눠주면서 저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을 꾸짖게 하소서.
청례는 건주위 대추장의 종자(從子, 조카)라, 저들이 업수이 여기지 못합니다. 청례의 자제가 여기 있으니, 볼모가 있는 셈이라 불미스러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소수이기는 해도 후자 쪽 의견이 확실히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내 결심이 동청례를 파견하는 쪽이기도 했으니까.
결국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청례 파견을 위한 준비는 계속 진행되었다. 사소한 고민거리도 끊이지 않았다.
“만약 동청례를 따라 들어와 벼슬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어찌 하는 편이 좋겠습니까?”
“받아들여도 좋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저들은 그 속셈이 음흉한 이리와 같으니 믿을 수 없습니다. 불러들여 시위하게 함은 옳지 않습니다.”
“그럼 따라오는 자가 있거든 그때 가서 고민하도록 하자. 그리고 동청례에게 부채를 주어 보내자 하더니, 수량은 충분한가?”
“130자루를 주기로 했는데 호조에 지금 물건이 없습니다. 급히 만들자면 백성들에게 폐를 주게 되니, 궁궐 내상고(內廂庫)에 저장해 둔 것을 쓰면 어떨까 합니다.”
“전하. 청례에게 줄 부채는 고작 백여 자루로, 시중에서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아랫사람들이 함부로 어고(御庫)에 손을 대게 하심은 옳지 않습니다.”
“갑자기 물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느냐, 어고에서 일단 꺼내 쓰고 나중에 채워 놓도록 하라.”
그래도 파견 자체를 취소할 만한 문제들은 없었다. 다른 일거리도 쌓여 있는데 고민이 늘지 않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