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00
4부 184화(1800화)
주요 종친들이 다 그렇지만, 전왕 이종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게 조용히 살아온 사람인 건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듯이 너무 잘났다고 주목받아 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공연히 역괴(逆魁) 후보로 꼽힐 뿐이니까. 자식은 딸이 둘이고 아들이 셋이다. 제일 맏이인 큰딸은 이미 혼인했고 이제 열넷인계둘째 딸은 아직 미혼이다. 그 밑인 아들 셋도 다 미혼이다. 이종이 태황보다 나이가 아래니까 그 자식인 내 사촌들도 대체로 나이가 어리다.
형제 중 맏형인 이선이나 동생인 이청과 마찬가지로 이종도 정치적으로는 별 힘이 없다. 그러니까 그저 두 나라 간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정략결혼 대상으로 내세우기에 적당한 사람인 셈이다.
“신랑이 될 상대편 황족…..한원궁가의 당주인 ‘애인’이라고 했던가. 여인네들이라면 몰라도, 사내가 부르기에는 참으로 민망한 이름이로고. 하여간 그 친구도 올해 열넷이라고 들었다. 전왕의 딸과 동갑이니 잘 지낼 수 있겠지.”
한원궁가(閑院宮家), 즉 간인노미야는 현 왜황의 직계에서 가장 가까운 세습친왕가다. 그 외에 계승권을 가진 다른 방계 가문들은 죄 수백 년 전에 황실 적통에서 갈라진 가문들이라 솔직히 남이나 마찬가지다. 현직 당주의 이름인 ‘애인(愛仁)’은 일본식으로 읽으면 ‘나루히토’지만 한국어로는 애인(愛人)과 음이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민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긴 하리라.
전에 언급했나 싶은데, 간인노미야 나루히토는 현 왜황의 당질이다. 간인노미야가 분가한 지 얼마 안 돼서 황실의 대가 갑자기 끊기는 바람에 2대 당주의 여섯째 아들이 사후양자로 황실에 입적되어 황통을 이었다. 그리고 아직 살아서 태상황 자리에 있다. 이 태상황은 자기 조카손자이자 본가의 후계자인 나루히토를 무척이나 아낀다고 들었다. 어저면 이미 조카손자를 위해 봐둔 혼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거야 이에츠구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다.
“전왕께서는 알고 계시는지요?”
“그래도 명색이 아비인데, 딸을 내놓으라고 하기 전에 한번 불러서 이야기는 해야지.”
아직 안 했다는 말이로군. 뭐, 상관없는 일이다. 혹시 전왕의 딸의 혼처를 잡아놓았다고 해도, 그게 공식적인 약혼이 아닌 이상 태황이 깨라면 깨는 수밖에 없겠지. 사촌누이에게 남몰래 숨겨둔 정인(情人)이나 없기를 바라야겠다.
16.
태황이 복귀한 덕분에 나는 다시 편전에서 동궁으로 돌아왔다. 태황은 ‘다음 달에나 다음 출타를 할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큰 기대는 되지 않았다. 왜냐고? 태황이 돌아온 날이 바로 2월 30일 – 양력으로는 4월 12일 –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음 달’이라고 해 봐야 겨우 하루 뒤였다.
“당장 다음 날 아침에 튀어 나가지는 않았으니 다행인가.”
태황은 그 익명서를 보고 뭔가 느낀 게 있었는지 한동안은 밖에 안 나가고 얌전히 대궐을 지켰다. 그동안 나는 동궁에서 밀린 공부를 하고, 외숙부 김유근을 따로 만나서 지금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반년 동안 수업을 쉬셨음에도 공부가 일취월장하셨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내구(內舅, 외숙부의 존칭).”
그동안 내가 고생했다고 생각했는지, 일본 및 유구 방문에서도 태황은 북경에 갔을 때와 같은 배려를 해주었다. 여행에 시강원 스승들을 동반하지 않고 딱 회담을 보조할 인력들만 데려가게 한 거다. 반년에 걸친 외교적 방문이 덕분에 좀 더 편안했다. 에도에 가서도, 나하에 가서도 미주 방문 때처럼 수업에 시달려야 했다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나마 북경 방문은 50일 남짓밖에 걸리지 않아서 주변의 걱정이 덜했다. 하지만 일본과 유구를 두루 돌고 오는 이번 여행은 5개월이나 걸렸다. 그렇게 오래 공부를 쉰다고 했으니 주변에서 어느 정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유근도 좀 불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모두 기우였습니다. 전하게서는 한번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책이 없으시고 한번 들으면 기억하지 못하시는 말씀이 없으시니, 실로 이 나라의 큰 홍복입니다.”
“감사합니다, 내구.”
김유근은 여전히 정2품 한성판윤으로 재직하면서 태황의 측근 중 한 시람으로 있다. 이것 역시 인사에 별 관심이 없는 태황의 게으름 덕분이다.
“하지만 이 자리도 조만간 놓게 될 것같습니다. 아버님께서 조만간 벼슬을 내려놓으시게 되어서요. 몸도 좋지 않으신 참인데 국상께서 사직하신다니, 함께 물러나시겠답니다.”
“외조부님께서 병환이 깊어지신 모양이군요. 한번 찾아뵈어야겠습니다.”
외조부 김조순은 조부 때부터 정말 오랜 세월을 재상으로 봉직했다. 하지만 그도 올해로 벌써 예순일곱, 정약용은 무려 일흔이다. 둘 다 은퇴할 나이가 되긴 한 거다.
“주상께서 윤허하실지 모르겠으나…..”
“윤허하실 겁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국구이신 외조부께서 몸이 좋지 않아 사직하신다고 하는데 불허하실 리 있겠습니까. 게다가 국상도 나이가 나이니…..”
두 사람이 그동안 세운 공적이 얼마인가. 그 둘을 최석정처럼 퇴임하는 날 저녁에 그대로 눈을 감게 만들 수는 없지 않겠는가. 조금이라도 쉬다가 마음 편히 가야지. 그 파장은 무척 클 거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국상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가 빈단 말이지. 태황이 그렇게나 미루고 미루던 대대적인 개각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사실 나는 태황이 개각을 미룬 진짜 이유는 내게 말한 것처럼 ‘지금 있는 이들로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서’ 따위가 아니라 ‘사람 뽑기 귀찮아서’이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 큰 게으름도 이제 끝낼 때가 됐다. 국상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을 테니.
“그러면 내구께서도 대신 자리 하나쯤은 맡게 되시겠군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주상께서 판단하실 일이기는 합니다만, 가능하다면 전하를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보탬이 되고 싶기는 합니다.”
대신을 포함한 고위직에 오르려면 지방관 경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성판윤은 자리가 정말 큰 특혜다. 한성판윤을 지내면 지방관 경력으로 인정해주는데, 실제 한성판윤은 경관직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어지 현대에서도 서울시장이 안동시장하고 같은 시장이던가. 김조순이 은퇴하면 이제 김유근이 안동 김씨를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원체 자기 능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별다른 부담을 느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문의 위세를 유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층 더 번창시킬 수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외척이 너무 설치는 것도 곤란하기는 한데…..’
나는 흔들이지 않을 수 있다. 김유근이나 김좌근이 아무리 출세한다고 해도 그 기반에는 내 지지가 없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내 다음 대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여러 외척 가문이 번갈아 권세를 잡았다가 떨려 나간 과거를 생각하면 그렇게 큰 걱정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당장 다음 외척으로 권씨 집안이 대기하고 있으니.
물론 내 장인인 재무부 협판 권세직은 안동 김문과 대결하면서까지 권력을 잡겠다고 나설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 중전이, 태후가 될 사람이 권씨이니만큼 아무래도 안동 김씨가 가진 권세는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내가 보위에 오른 다음 하기 나름이긴 하겠지만.
“권 협판도 벼슬이 오르긴 할 겁니다. 진작에 올랐어야 했던 사람이 아직도 협판이라니,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분도 국구가 아니십니까.”
“오르시면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요.”
권세직이 태자의 장인이면서도 아직 종2품 협판에 불과한 것도 태황의 게으름 탓이 크다. 태황이 나서서 따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니 누가 권세직의 벼슬을 올려주겠는가. 그나마 내 혼인 때는 정3품 참의였는데, 조부가 죽기 전에 한 단계 올려줬다.
“권 협판도 종3품 남원부사까지는 했으니, 대신 자리까지 오를 자격이 충분히 되십니다. 전하의 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더 높은 자리를 내리실 수도 있고요.”
영돈령부사 같은 자리를 내리려나. 하지만 기왕이면 실직을 줬으면 좋겠다. 권세직은 내 장인이 아니라도 꽤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 능력을 사장하면 아깝지 않은가.
“시중에서는 이번 국혼에 관해 어떻게들 이야기하고 있는지요. 제가 나가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말입니다.”
귀국한 지 한참 됐지만 아직 잠행을 한 번도 못 나갔다. 태황이 있으면 내게 밀린 공부를 시키겠다고 달려드는 시강원 스승들한테 시달리느라 바쁘고, 태황이 나가고 없으면 편전을 지키면서 나랏일을 돌보느라 바쁘다. 물론 김유근이 인정했듯이 나는 안 배워도 그것들을 다 안다. 하지만 스승들은 뭐라고…..음…..까놓고 말해서 현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중이다. 내가 설마 자기들만큼 뛰어날 리는 없다고. 아직 가르칠 게 많이 남았을 거라고.
그래서 자기들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반년간 밀린’ 진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쉴 틈도 없이 수업을 진행하고 엄청난 양의 과제를 내고 있다. 도저히 밖에 놀러 나갈 틈 따위를 낼 수가 없을 만큼. 왜 하진교가 나랑 같이 한양에 안 있고 태황을 따라 수원에 갔겠는가. 내가 이렇게 바빠 자기랑 같이 놀 틈을 못 내니까 나갔지.
“유구와의 국혼이야 다들 반기는 분위깁니다. 백 년 동안 앙탈을 부리던 – 저속한 표현을 써서 송구합니다, 전하 – 유구가 드디어 정식으로 번국으로 들어온 것만 해도 좋은데, 이제 주상께서 공주를 내려 부마국으로 묶으신다고 하니 더 좋아들 하는 것이지요.”
다만 우리 대한이 이제껏 적통 공주를 해외로 시집보낸 전례는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두고 불만을 품는 이들도 없지는 않으나, 괜찮다고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 대상이 다른 나라가 아닌 유구기 때문이다.
“유구는 과거에 천자께서 직접 책봉하셨던 제후국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공주를 하사함은 건주나 하와국에 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래도 아직 이 나라의 여론을 주도하는 건 사대부 계층이니 말이다. 이들은 여전히 명나라 황실을 존중한다. 대명동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참배객이 넘쳐나는 이유가 뭐겠는가.
“일본과의 국혼은 어떻게들 말합니까. 그것도 보내는 혼사와 받는 혼사를 모두 치른다고 하니 더 요란한 반응이 나올 법한데요.”
이렇게 소문을 모으는 일에서 한성판윤이라는 김유근의 직책이 아주 빛을 발한다. 임금이 있는 도성을 담당하는 행정관이니 도성 백성들의 민심을 파악하는 데는 이만한 자리가 없는 탓이다.
“정식으로 발표된 게 아니고 수문만 퍼진 것이다 보니, 일본 황족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이 모르고 양쪽 모두 대군의 조카라는 말만 돌고 있습니다. 옛날에 장조 때 일본에서 시집왔던 안토부인의 전례도 있어서, 반응은 꽤 좋은 편입니다.”
‘
안토부인(安土婦人)이란 차차를 뜻하는 호칭이다. 처음에는 ‘임해군부인’이라고 불렀으나 임해군이 역적이 되어 봉작이 박탈된 뒤로는 당연히 그 호칭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나중에 쓰기 시작한 호칭이 ‘아즈치(安土)’를 한국식 독음으로 읽은 안토부인이다.
당시 차차는 세간에서 무척이나 호평 받은 아내였다. 부자에다 미인이고, 그 개망나니였던 임해군을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무척 평이 좋았다. 얼마 안 가서 일본과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일본에서 며느리를 구하고 싶다는 이들이 여럿 나올 정도로. 만약 그때 노부나가가 침략 대신에 공존공영을 추구하거나, 우리를 공격하는 대신 강남을 직접 공격했다면 한일 아니 조일 커플이 꽤 여러 쌍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때 맺어질 뻔했던 혈연 교류가 그 전재 때문에 250년 쯤 미루진 셈이다.
황실에서 피가 좀 섞인다고 해서 영구한 평화가 자리를 잡으리라는 생각 따위는 안 한다. 어디 1차 세계대전은 국왕과 황제들이 친척이 아니어서 일어났던가. 어차피 국인 앞에서는 군주의 혈연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 다만 꼭 싸워야만 할 상황이 아니라면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데 조금 보탬은 된다. 이번에 맺을 혼사가 부디 그렇게 작용해주면 좋겠다.
17.
“소인의 딸을 일본 대군의 조카에게 시집보내라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러하다. 어차피 지금 혼약을 맺은 상대도 없지 않으냐?’
태황은 이복형제들을 불러들여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평소에 형제들에게 별 관심도 없던 태황이 이런 지시를 내리자 지목받은 당사자인 전왕 이종만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도 무척 놀랐다.
“영왕에게는 나이가 맞는 적녀가 없고, 소왕에게는 아예 딸이 없다. 그러니 그대의 딸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는 일본 대군의 생질(甥姪)이면서 일본 황실의 친왕이다. 그런 귀한 상대한테 서녀를 시집보낼 수는 없다는 게 태황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폐하, 옛날 중종께서도 루스와 건주에 서녀인 옹주를 공주로 책봉하여 내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이종은 이 혼사를 거부하고 싶었다. 태황의 눈 밖에 나고 싶지는 않지만, 귀한 딸을 나라 바깥에 보내 자주 보지 못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영왕 전하의 셋째 딸이 나이가 적당한 듯하니…..”
“전황은 짐의 말이 가벼이 들리는가.”
이종은 말을 끝까지 마치지도 못했다. 주상이 아주 차갑고 거만한 태도로 그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
“짐이 판단하기에 그대의 딸이 적당하다고 보았다.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고 하지 마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이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둘째 달의 혼사가 결정되었다.
“다른 종친 중에는 기꺼이 보내겠다는 이도 있을 터인데……”
며칠 전 대궐에 불려 들어갔다 돌아온 후, 이종은 바깥출입을 끊었다. 나가서 누굴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과거 한때는 금상이 태자에서 폐위되면 그 자리를 얻을 욕심도 품었다. 어차피 다 똑같은 서자라면 자신도 다른 두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부황은 태자를 바꿀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종은 일찌감치 공부 따위는 싹 때려치우고 최대한 눈에 안뜨이게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종학에서의 공부도 적당히 대충 해서 머저리 취급만 안 받게 했다. 그렇게 조용히 살았는데도 이런 결과가 닥쳤다. 이종은 금상에게서 칙서가 내려오기 전에 왕비에게 이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무겁게 한숨만 쉬었다.
“청이 그놈은 자기 아들을 내보내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나설 수 있겠지만……”
딸을 시집보내는 건 강제로 지명하던 금상이 며느리를 맞을 사람은 자원을 받았다. 그와 이선은 그때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이청이 대뜸 지원했다. 기꺼이 대군의 본가 쪽 조카를 며느리로 들이겠다면서 말이다.
“나라고 해도 둘 중에 고르라면 며느리를 들이는 쪽이 낫지만…..”
하지만 억지로 떠맡겨진 혼사에 마음이 심란한 참이라 손을 들고 어쩌고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청은 그 틈에 파고 들어 자신의 열의를 열심히 피력했다. 그리고 태황에게 허락도 받았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물고 있던 곰방대를 탁자 위에 내려놓은 이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울적해 있을 시간에, 일본으로 가야 할 딸의 얼굴이나 한 번 더 보는 게 나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