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05
4부 189화(1805화)
9.
김조순이 조만간 눈을 감으리라는 건 누구나 하던 예측이었다. 다만 하필 이 시기에 죽는 바람에 황실과 예무부, 외무부에서는 상당히 골치를 앓았다. 예무대신 홍의직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두를 꺼냈다.
“예법에서 규정하기를, 대부(大夫)가 죽으면 3개월 동안 상을 치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창후는 그 품계가 정1품에 올랐으며 국구이기까지 하니, 마땅히 3개월 동안 상을 치르는 게 맞습니다.”
같은 예법에 따르면 제후의 상은 5개월이고 천자의 상은 7개월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국상을 5개월만 치른다. 과거 연이가 명나라의 천자 자리를 이어받지 않았다는 의미로 자기 모후 – 성이의 중전이던 인열황후(仁烈皇后) 김씨 – 의 장례를 5개월 만에 끝낸 탓에, 그게 전례가 되어 지금도 국상 기간이 5개월이다.
“그래서?”
태황은 아주 짤막하게 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빨리하라는 재촉이었다. 김조순이 자기 장인이라고는 하나, 그 장례는 자기가 맡을 게 아니라 처남들 몫이므로 그런 예법에는 별 관심 없다는 태도가 팍팍 드러났다.
모후 – 내 생모인 효비 김씨는 태황이 즉위하자 ‘선의황후(宣懿皇后)’로 추존되었다 – 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그 눈치를 봐서라도 조금 더 충실한 모습을 보였으리라. 하지만 모후는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당연히 태황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하기야 평소대로라면 별로 관심을 안 둬도 될 일이 맞기는 하다.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고 한 차례쯤 얼굴을 내밀기만 해도 된다. 임금은 가장 높은 사람이니까 상청 앞에서 절은 안 한다. 여차하면 아예 행차하지 않아도 뭐라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기존에 한 번도 생긴 적 없었던 문제다.
“소왕도 일단은 종친입니다. 국구는 소왕에게도 사장어른이 되는 높으신 분이니, 사대부의 예를 다하자면 집안의 혼례를 미루고 조의를 표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애매한 문제였다. 자기 장인이 돌아가셨다면야 당연히 혼례를 연기하는 게 옳다. 자식의 처지에서 보자면 외조부가 돌아가셨는데 하하호호 웃으며 시집장가를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그게 내 장인이 아니라 형의 장인이라면 어떨까. 물론 이복형이라는 부분은 굳이 강조할 필요 없다. 이 사회에서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민간에서라면 별로 생각할 것도 없을 일이다 사돈댁에 조문이야 당연히 다녀오겠지만 내 자식의 혼사를 늦출 필요는 없다. 늦추려고 하면 못 늦출 이유는 없지만, 상대편 집안에서 순순히 동의해 주느냐는 문제는 별개다. 그리고 이건 민간의 혼례가 아니다.
“소왕이 나서서 혼례를 늦추겠다고 하면 짐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늦추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여기서 외무대신 조만영이 끼어들었다. 외무부에서는 또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
“이 혼인은 국혼으로, 단순히 소왕께서 며느리를 보시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황실이 일본 대군과 혼맥을 맺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늦춘다고 하면 일본 측에서 불쾌히 여길 게 분명하니, 그대로 진행하는 편이 옳습니다.”
양쪽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나는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있기로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내 외조부의 상이 아닌가. 함부로 입을 놀리기 어렵다. 물론 나는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달려가서 문상부터 하고 왔다. 김조순은 내 외주부지만 조부 못지않게 나를 아껴주었다. 바로 달려가는 게 마땅한 도리였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건 나와 태황, 둘뿐인 듯했다. 중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패가 갈려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예무대신의 말이 지극히 옳습니다. 이번 혼례에는 폐하께서도, 태자께서도 참석하실 텐데 고창후의 장례가 진행되는 중이라면 어찌 두 분께서 마음 편히 참례하시겠습니까?”
“외무대신의 말이 옳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서 이미 약속한 일을 우리 쪽에서 사정이 좀 생겼다고 하여 임으로 늦춘다면 이 어찌 신의를 지켰다고 하겠습니까.”
확실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이는 재무대신, 내 장인 권세직뿐이었다. 그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보니 정치적 입장보다는 ‘일본인들이 본래 예정보다 오래 머무르면 그만큼 체류비가 많이 들 텐데’하고 걱정하는 게 환히 들여다보였다, 아이고, 장인어른. 소심하기도 하셔라. 다른 이들은 앞 다투어 자기 의견을 내느라 바빴다. 태황이 빠르게 결정을 내리지 않으니, 한마디라도 더 해서 태황의 눈에 띄고 싶은 거다.
“폐하. 소왕도 황실의 일원이니 이럴 때는 경사를 뒤로 잠시 미루도록 권함이 옳습니다.”
“폐하. 이는 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소왕저에서 혼인이 늦어지면 그에 따라 일본에 건너갈 황양현주의 도일도 늦어지고, 일본에서 치를 혼례까지 줄줄이 늦어집니다.”
황양현주(況壤縣主)는 간인노미야의 아내가 될 이종의 둘째 딸의 봉호다. 봉호 말고 본래 이름은 따로 모르겠다. 예전에 들은 적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평소에 이름으로 부를 일이 없다 보니 잊어버렸다.
“폐하. 일본에서 온 성혼사(成婚使)를 불러 어찌할 의향인지 물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혹 선뜻 미루겠다고 하면 혼사를 두 달 미루면 되는 것이고, 안 되겠다고 하면 본래 일정에 따라 스무날 뒤에 소왕저에서 혼사를 치르게 하소서.”
전임 외무대신이던 우참정대신 심세원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결정하기 귀찮아하는 태도가 역력하던 태황은 그 제안을 당장 받아들여 어명을 내렸다.
“경희궁에 승선을 보내 당장 성혼사를 입궐하게 하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겠다.”
“예, 폐하.”
경희궁에 머물고 있던 미즈노 타다나리가 태황의 부름을 받아 사정전에 나타나는 데는 딱 두 시간이 걸렸다. 자기를 부른 이유에 관해들은 타다나리는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 일정은 에도에 계시는 쇼군께서 폐하와 논의한 끝에 결정하신 것인지라, 제 임으로는 늦출 수 없습니다. 연기를 원하신다면 임금께서 쇼군께 서한을 보내시어 조정하심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역시 그러한가.”
에도로 편지를 보낸다면, 가장 빠른 배편으로 엿새쯤 걸린다. 회답이 오는데도 마찬가지 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저쪽에서 답장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대략 보름 정도는 필요한 셈이다. 예정된 혼례 날짜까지는 20일가량 남았으니, 에도에서 답장이 오는 데 따라 혼례 일정을 늦추려면 늦출 수는 있다. 혼례식 전날까지 막부에서 회담을 보내오지 않는다면 거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 그냥 진행하면 그만이다.
“짐은 그냥 진행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나…..예무부에서 이리도 연기를 주창하니, 대군에게 서한을 보내 문의해야겠다. 예무부와 외무부는 협의하여 오늘 중에 초안을 제출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결국 혼례식을 연기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내가 심사가 삐딱해서 그런지, 지금 태황이 일본과의 기싸움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논의를 이어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쪽의 무리한 요구를 막부가 받아들이는지 안 받아들이는지 보려는 의도라는 말이다. 1라운드는 돈지랄 배틀이더니, 2라운드는 배짱 튕기기 배틀인가. 이번에는 저쪽이 확실히 유리한 고지에 있으니 과연 승부가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그래도 기왕이면 우리가 이기면 좋기는 하겠다만…..
10.
날짜가 연기될 가능성과는 별개로 혼례식 준비는 계속 진행됐다. 태황이 경희궁 정원에다 전안청(奠雁廳)을 차리도록 허락했으므로 그 준비도 하고, 신혼부부에게 하사할 결혼선물도 최종적으로 정리해야 했다. 평범한 종친의 혼례였다면 이렇게 챙길 필요가 없지만, 몇 번이나 언급했듯이 이 혼인은 한일 양국 사이의 관계를 더 굳게 다지기 위한 정략혼이다. 당연히 준비에 공을 크게 들일 수밖에 없고, 당사자들이 느끼는 부담도 크다.
“일희는 사실 혼례 날짜가 더 늦어졌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더군요.”
비궁은 오늘도 경희궁에 다녀왔다. 다른 후궁들은 이제 호기심이 충분히 채워졌는지 별로 안 가고 싶어 해서, 김 선시 한 사람만 함께 다녀왔다고 했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사내를 잘 몰라서 혼인이 두렵기도 하고, 아직 이국에서 보낼 삶이 낯설어서 망설여지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혼례 날짜를 단 하루라도 더 미뤘으면 하고 소망하더군요. 아무래도 어리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비궁도 혼인할 때 겨우 만으로 14세 아니었던가. 도쿠히메보다 딱 한 살 많았다. 하지만 뭐, 비궁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장래의 중전을 목표로 키워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평범한 규수들과는 수준부터가 다르긴 하다.
“종성공은 어떤가요. 그쪽에서도 혼인이 연기되기를 바라는가요?’
“잘 모르겠소. 통 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종성공은 – 괜히 기분이 좋지 않은 봉호(封號)다 – 얼굴도 볼 수 없었다. 태황이 부르지 않으면 입궐할 생각도 없는 태도는 여전하다 평소에는 왕래도 없었으면서 새삼스럽게 지금 찾아가기도 난감하니, 그 속셈을 알 수가 없다.
그 부친인 이청은 뒤늦게야 소식을 듣고 입궐해서는 불만을 터트렸었다. 어떻게 당사자인 자기들한테는 묻지도 않고 국혼을 미룰 수 있느냐며, 태황에게 처음으로 반발 비슷한 것을 했다. 하지만 태황은 화를 내지 않았다. 무심하게 이렇게 답했을 뿐이었다.
‘조정 중론으로 정한 일이다. 혹 불만이면 혼인을 그만둬도 된다. 아들은 영왕에게도 있고 전왕에게도 있다. 두 왕이 모두 싫다고 거부하면 순친왕이나 정왕의 아내로 삼아도 되니, 그대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게 해주마.’
정왕(靖王)은 운이 바로 아래 동생인 이철의 봉호다. 운이보다 두 살 아래, 만으로 올해 11세다 조금 이르지만 혼인하자면 못 할 것도 없다. 태황이 화를 내며 윽박질렀으면 이청도 맞받아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연하게 아무런 동요도 없이 싫으면 관두라고 말하니 도리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물어물 말을 흐리다가 물러갔다.
“그런 상황이니 섣불리 소왕저를 찾아갈 수도 없소. 소왕편에서 부황께서 잘못하셨다고 주장하는데 맞장구를 쳤다고 오해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이건 딸을 떠나보내게 된 이종을 위로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종은 처음에는 다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뒤로는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태황 앞에 나가서 대놓고 반발한 이청과 경우가 다르다. 그러고 보면 이름으로 찝찝한 건 종성공만이 아니다. 두 숙부도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다. 예왕의 두 아들인 경평공과 경창공의 이름이 이종과 이청 아니었던가. 물론 한자까지 똑같지는 않지만, 대하면서 늘 조금 거북했다.
“일희와 만나면서 본 바지만…..경희궁도 무척 아름답더군요.”
목소리에서 부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그 속에 내포된 뜻을 알겠기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비궁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일희와 종성공의 국혼을 치른 뒤에, 경희궁으로 이어하자고 부황께 아뢰어봅시다. 황실이 경복궁에서 머무른 지도 벌써 6년째니, 슬슬 궁을 옮겨도 될 시기요.”
조부는 사람이 안 살면 궁이 망가진다면서 3년마다 꼬박꼬박 이어했었다. 하지만 태황은 이사가 귀찮았는지 그 주기를 무시했다. 도성 안에 살아서 경복궁으로 출퇴근하는 게 편한 고위 관료들도 은근히 그 조치를 반겼기에 주변의 반발은 거의 없지만.
“경희궁의 동궁도 무척이나 아름답다오. 거기서 지내는 시간도 즐거울 거요.”
웃으며 말한 뒤에 일어나 의관을 챙겼다. 비궁도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지금 나가시나요, 전하?”
“그래야 할 듯하오. 또 외조부께 가봐야지.”
종성공의 혼례 준비와는 별개로, 태황은 이번에도 조부 때처럼 내게 대리효도를 시켰다. 자기 대신 외주부의 상을 치르는 외가에 수시로 가서 앉아있으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나마 상주 노릇까지는 안 해도 되니 다행이었다. 태황도 한번은 다녀왔다. 하지만 그 뒤로는 일이 바쁘네, 몸이 안 좋네, 운운하며 대궐을 떠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전히 기생집이나 색주가 출입은 삼가는 점이랄까.
아마 국혼이 끝나고 외조부의 장례를 마칠 때까지는 지금처럼 얌전히 지내줄 것 같다. 그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11.
소왕 이청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일본 왕실 – 대군의 가문을 그냥 편하게 ‘왕실’이라고 부르는 이는 이청 말고도 꽤 많다 – 에서 가져올 지참금을 받을 날이 멀어졌기 때문이다. 태황의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두 달은 더 늦어질 터였다.
“그것만이 아니야. 잘만 되면 대군을 배경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는데…..”
자기 조카사위가 대한의 옥좌에 앉을 길이 보인다고 하면 분명 대군도 귀가 솔깃할 거다. 그러면 분명 지원을 보내겠지, 군사를 보내기는 어렵겠지만, 돈이라도 보내줄 거다. 그러면 사람을 모으고 힘을 키우는 데 확실한 보탬이 될 수 있다.
“하필이면 고창후는 왜 이럴 때 눈을 감았단 말인가! 한 달만 더 버티지.”
이청이 투덜거리자 그를 둘러싼 측근들이 애써 위로했다. 이 일은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조금 늦어질 뿐이라고 말이다. 지난 1년 동안 새로 모집한 동지들도 여럿이니, 이제 차근차근 실행에 들어갈 준비만 하면 된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전하. 이번 고창후의 장례는 전하를 방해하거나 성공을 지연시키는 악재가 아닙니다. 이건 전하께서 단박에 목적을 이루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준 최고의 호재라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동조할 사람을 찾으러 지방에 내려갔다 막 올라온 수하인 남응중이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논조로 주장하고 나섰다. 남응중은 예전에는 태황의 절친한 동무 중 하나였으나, 이젠 철천지원수가 된 사람 중 하나다.
“우리한테는 아직 군사가 없습니다. 무인지변 때 역도 이환은 마침 발생한 화재를 이용해 1만이나 되는 군사를 모았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하인배 기백 명을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니, 어찌 병으로 싸우겠습니까? 그리고 넉넉한 병을 모으면 그게 대체 언제쯤이겠습니까?”
“그래서 폭탄을 준비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예, 그렇지요. 하지만 금상과 태자를 모두, 효왕까지 한 번에 박살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 하나를 먼저 저승으로 보낸 다음에 두 번째를 실시하려면 어려워질 겁니다.”
경호가 엄중해질 테고, 아예 대궐 밖으로 나오지도 않을 거다 그렇다고 이쪽에서 자객을 대궐로 들여보내기도 어렵다. 대궐을 둘러싼 성벽은 도성 성벽보다 높고 그 위에는 금군이 계속 순찰한다. 무인지변 때 반적들도 대궐 성벽은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니 대궐 바깥에서 한 번에 날려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가장 적합한 장소가 바로 지금 상을 치르는 고창후의 저택입니다. 금상과 태자가 함께 상가에 있을 대를 노려 그 집을 날려 보리면 그대로 보위는 궐위 상태가 되는 겁니다.”
“너무…..성급하지 않은가?”
이청이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남응중은 강력하게 설득을 계속했다.
“전하. 이 점을 생각하시옵소서. 지금은 태자 말고 다른 황자들이 모두 어린아이들이므로 전하께서 태후마마께 ‘소인을 선택해달라’라고 청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그 아이들이 자랍니다. 그러면 어찌 보위가 전하께 오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태황이 방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혹시 태황 측이 소왕이 뭔가 꾸민다고 의심하더라도, 그 시기는 며느리의 지참금으로 목돈을 얻은 뒤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 돈이 생길 때까지는 얌전히 있으리라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어쩌면 그걸 노리고 일부러 혼사를 늦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틈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되려 저들에게 크게 한 방을 먹일 수 있습니다.”
“음, 맞는 말이오. 남공의 말이 옳소.”
이청이 고래를 끄덕였다. 확실히 남응중이 말했듯이 완벽한 준비가 갖춰지기를 기다릴 게 아니었다. 한시바삐 일을 저질러 태후에게 다른 대안이 없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보위를 얻을 수 있었다.
“다들 힘써 주시오. 이제 곧 서얼이라 하여도 임금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니.”
“전하를 위해 진력하겠습니다.”
모인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태황은 지금 방심하고 있을 터, 그 틈을 치면 확실히 성공할 수 있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