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11
4부 195화(1811화)
“그, 그건 야….약으로 쓰느라 좀 마련해둔 겁니다. 태자마마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소인의 집에 거느린 식솔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약이 자주 필요해서…..”
내 질문을 받은 이청이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그 염초와 유황은 전부 약재였다고, 집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아프거나 할 때 응급약으로 필요해서 마련해뒀던 거라고. 본래 한의학에서는 별의별 물건들을 다 약재로 쓴다. 염초는 이뇨, 변비, 해독, 붓기 및 어혈 제거에 효능이 있으며 유황은 개선(疥癬), 습진, 변비 등 숱한 질환에 약재로 쓰인다. 단약을 제조할 때도 꼭 들어가는 재료이며 천을 표백하거나 그릇 만드는 데도 쓴다.
상희도 아닌 내가 왜 약재의 효능을 아느냐고? 그야 염초와 유황이 화약 원료니까 알지. 별 관심 없는 다른 약재들 효과 같은 건 거의 모른다. 인삼과 녹용이 보약인 줄은 안다만, 이청의 대답을 들은 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신가요. 알겠습니다.”
이청이 이토록 어리석을 줄은 몰랐는데. 지금 구석으로 몰리다 보니 판단력이 저하됐나? 이럴 때는 일단 잡아떼야지! 지금 집에 화약 원료가 있는 걸 알았다고 인정해버렸잖아! 만약에 내가 지금 이청과 같은 상황에 몰려있었다면, 나는 아예 사랑채에 염초와 유황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잡아뗐을 거다. 그게 통하든 말든 말이다.
어디, 단계를 하나 올린 다음 질문에는 어떻게 답하려나.
“소왕저에 화약이 좀 숨겨져 있었다는 고변도 있더군요.”
“그, 그것은…..사냥할 때 쓰려고 마련해둔…..겁니다. 어느 집이든 조총 몇 자루랑 거기에 쓸 화약 약간 정도는 있지 않습니까.”
조총(鳥銃)은 원래 역사에서는 용도를 불문하고 화승식 총의 대명사였다. 무종 시절에 내가 화승총을 처음 만들었을 때도 내 기억 때문에 조총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중종 때도 화승총을 조총으로 불렀다. 요즘은 군용으로 뇌관총이나 수석총을 사용하고 화승총은 민간에서 수렵용으로만 쓰고 있다 보니 조총이 거의 엽총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같은 총으로 호랑이도 잡고 멧돼지도 잡는데 하필 새 잡는 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니 뭔가 좀 우스운 상황이 되었다.
“화약 한 냥만 있으면 조총을 열 발은 족히 쏘는데, 소왕께서는 서른 근이나 되는 화약을 집에다 쌓아둘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한 냥은 37.5g, 서른 근은 18kg이다. 여기에 그 정확한 수량을 알 수 없는 염초와 유황이 더 있었으니 소왕저에 있었던 화약은 적어도 수십 kg이다. 전문 사냥꾼이라고 해도 집에다가 화약을 그렇게 잔뜩 쌓아두지는 않는다. 많아야 두어 근 정도 마련해두는 게 보통이지. 화약이야 화약점(火藥店), 쉽게 말해 총포사에 가면 언제든지 살 수 있다. 화약점에서는 수렵용 조총과 그 탄약, 폭죽 따위를 판다. 여차하면 이번에 이청의 문객들이 했던 것처럼 염초와 유황, 숯을 따로 사다가 취향에 맞춰 조합해서 만들어도 된다. 그런 포수들도 많다.
그러니 화약을 그렇게 집에다 대량으로 쌓아둘 필요가 더더욱 없다. 화약을 숙성시킨다고 화력이 더 세진다거나 터질 때 연기가 줄어드는 물건도 아니고, 묵히면 묵힐수록 습기 먹고 굳어져서 그거 깨다가 사고가 날 위험만 더 커진다.
“아, 그 그게…..혼례를 치를 때 불꽃놀이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직접 만들려고 했습니다. 며느리에게 제가 직접 준비한 불꽃을 터트려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물론 관아에 청해 허가는 받으려고 했습니다.”
변명이 갈수록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구먼. 불꽃놀이? 불꽃놀이? 불蹂樗缺缺?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나? 종성공과 도쿠히메의 혼인이 국혼에 버금가는 혼인이니만큼 그 축하를 위해 불꽃놀이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멋진 기념이 될 텐데 왜 못하게 하겠는가. 물론 사전 허가는 필요하다. 예전에 내가 불꽃놀이를 벌였을 때처럼 변란이 일어났다고 백성들이 오해하거나 화재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탓에 허가 없는 불꽃놀이는 절대 금지다. 하지만 종성공의 결혼 축하 불꽃놀이에 태황이 허가를 안 내줄 리 없지 않은가.
물론 화약 값이 싸지는 않다. 종성공의 결혼 축하 정도라면 수천 냥 어치 정도는 허공에다 쏴 날려야 할 거다. 하지만 그 만한 돈은 이청에게도 있고, 태황에게는 더 많지 않은가. 태황 성격이면 화약을 십만 냥 어치쯤 대주면서 한번 신나게 쏴보라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말 계획을 세워서 처음부터 밝혔을 때 이야기다. 혼약을 맺고 1년이 갈 동안 일언반구도 없었던 불꽃놀이 계획으로 집에서 발견된 화약의 변명을 해보려고 하다니, 이건 너무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이럴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불꽃놀이용이라는 명분으로 대놓고 화약을 사 모으는 편이 나았으리라. 물론 그랬으면 그 위험한 물건을 왜 집에 쌓아두느냐는 합당한 의문에 답해야 하는 두 번째 난관이 생겼겠지만.
“음, 염초와 유황은 약재였고, 화약은 불꽃놀이에 쓰려고 모아두신 거였다고요. 폭죽이야 화약점에 가서 간단히 사도 될 것을 굳이 집에서 만드셨던 이유는 새로 맞이할 며느리에게 특별히 정성을 보이시려고 한 것이고.”
“예, 예!”
그동안 나는 이청이 일반적인 상식 정도는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심문을 진행하면 할수록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어갔다. 물론 외부로부터 고립된 데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들킬 것 같아 제정신이 아니긴 하겠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물론 자기가 한 짓을 그대로 털어놓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했을 거다. 하지만 그걸 숨기다가 털리기 보다는 자기가 자백하고 남의 탓으로 미는 쪽이 훨씬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언제까지 현실을 부정할 생각인가.
“그러면 말입니다. 소왕 전하. 방화범들이 전하를 해치려고 지른 불이 재수 없게 폭죽으로 만들려던 그 화약에 옮겨 붙는 바람에 그 참상이 일어난 거로군요.”
마지막으로 자백할 기회를 줄 생각으로 슬쩍 미끼를 던져보았다. 하지만 이청은 내가 준 이 마지막 기회를 아주 거하게 걷어차 버렸다.
“그렇습니다! 그 못된 놈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저희 가솔들이 큰 피해를 보았으니, 정말 슬프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청은 격분한 모습을 보이며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려니 어처구니가 없으면서 기까지 좀 막혔다. 아니, 아무리 몰렸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잡아떼나, 이쯤 되면 이청이 공포감으로 인지부조화라도 일으킨 게 아닌가 생각될 지경이다. 이쯤 왔으면 엎드려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미수범이니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빈다면 적당히 처벌 수준을 조절해줄 수도 있는데. 이래서야 개전의 정이 전혀 없지 않나. 됐다. 시간을 더 끌면서 대화해 봐야 내 스트레스만 더 오를 것 같으니 이젠 끝내야겠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못된 놈들이 아무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새벽에 소왕 전하의 저택 근처를 돌아다닌 외부인은 아무도 없었더군요. 불은 소왕저 내에서 난 겁니다.”
“예, 예? 그럴 리가….그렇다면 실화…..인 겁니까?”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조용히 뒤로 손을 뻗쳐 디에고가 들고 온 서류 중 남응중의 공술서를 받아 펼쳤다. 그리고 소왕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 화약으로 폐하와 저를 죽이려고 하셨잖습니까, 소왕 숙부. 이미 남가 놈이 의금부에서 전부 불었습니다. 고창후의 장례식에서 폭탄을 터트려 모두 죽이고 그 죄는 청나라 황실에 떠넘기려고 계획하셨다면서요.”
그것도 참 기가 찬 계획이었다. 청나라가 후금을 공격해서 중원일통보다 건주일통부터 할 생각을 품었는데, 우리가 제지하고 나서면 목표를 이루기 곤란해진다. 그래서 우리 간섭을 막기 위해서 우리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고 창끝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일을 벌이는 거다. 쉽게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다. ‘우리 분노를 후송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후송이 한 짓으로 위장한 테러를 청나라가 저지르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이청 일당이 폭탄을 터트린다는 계획이었다. 언뜻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면서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음모였다.
‘”자, 더 말해 보십시오. 더 할 말이 있으십니까?”
내가 차갑게 쏘아붙이자. 이청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풀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비로소 오열하며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태자마마!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소, 소인이 그만 간사한 도적들의 꾐에 빠져서 잘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보아서라도 부,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잠시 그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으면 진즉에 빌기나 할 것이지, 내가 먼저 다 까발린 뒤에 이게 무슨 꼴인가. 정말 추하다.
24.
태황은 느긋한 표정을 하고서 내가 직접 기록한 이청의 진술서를 읽었다. 끝까지 다 읽은 뒤에도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 소왕이 우리 부자를 폭살하고 보위에 오르려고 했다고.”
“예, 당장 전란이 일어날 상황이 되면 어린 아우들보다는 장성한 자기가 보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남응중을 비롯한 측근들의 진술만으로도 그 전모는 파악했다. 이청의 진술은 본인의 입을 통해 죄상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자수하여 광명을 찾을 기회까지 줄 생각이었지만 그건 이청 본인이 아주 확실하게 날려버렸다. 무릎을 꿇은 이청은 정말로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거기 적힌 진술 대부분을 인정했다. 부정한다면 당장 자기 패들이 받은 고문이 자기와 자기 가족에게도 가해지리라고 생각하고 완전히 겁을 먹은 듯했다.
“아직 창경궁은 봉쇄되어있고, 의금부와 금위사 관원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바마마께서 결단하시고 그에 따라 알리라 명하시면 되겠사옵니다.”
평소였다면 역모는 역모로 그대로 공표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정말로 전례가 없는 대사건이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국구의 장례식장에서 폭탄을 터트려서 태황과 태자를 한꺼번에 폭살하려고 하다니, 정말로 전대미문의 사태가 아닌가. 장조 시절에 이런 사건이 터졌다면 그 주범은 임해군 꼴이 났을 거다. 중종 시절이었다고 해도 거열형을 면치 못했으리라. 무종 시절? 그때였으면 중종 시절보다 더한 진짜 거열형을 했겠지. 사지를 진짜 생을 찢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진 데다 정치적ㆍ외교적으로 다소 곤란한 상황이다. 경희궁에서 혼례식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도쿠히메 일행은 또 어떡하란 말인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해결책이 있기는 하다. 다만 태황이 묻기도 전에 내가 먼저 제안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대기 하고 있다.
“소왕이 끌어모은 역당들은 주로 어떤 자들이었던가?”
태황도 바로 대답하기는 곤란했는지 말을 돌려 다른 것부터 물었다. 마침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해서 나도 선뜻 답했다.
“크게 네 부류였습니다. 동기는 제각기 차이가 있습니다.”
금위사에서 올린 지난 1년여 동안의 감시 보고서와 이번 사건 이후 의금부와 금위사에서 작성해 올린 공초(供招) 문서를 종합해 보았다. 그러자 그동안 소왕저에 드나들었던 자들을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 이청이 어려서부터 가깝게 지내던 종친이나 친구들. 이들은 이번 건과는 별 관련이 없었다. 이들은 이청과 가까운 만큼이나 세상의 눈길에도 크게 드러난지라, 이청이 끌어들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끌어들인다고 감히 동조할 위인들도 아니었다. 만약 이청이 이들을 포섭하려고 했으면 바로 고변이 들어왔으리라.
둘째, 태황이 조정을 개편하지 않아 인사조치가 없었던 데 불만을 품은 일부 관원들. 이들은 작년에 태황이 뒤늦게나마 개각을 진행하면서 인사적체가 대폭 해소되자 소왕 편에 기웃대는 숫자도, 열성도 줄었다. 그래서 이쪽 부류도 변란을 기도한 핵심에는 거의 없었다.
셋째, 태황에게 배신당한 옛날 놀이친구들. 이놈들은 문자 그대로 역모의 주역들이었다. 폭탄 테러로 우리 부자를 한꺼번에 날리자는 발상은 이청 본인이 처음 떠올렸지만, 그 구체적인 장소와 대상까지 기획한 남응중은 여기 속했다. 소왕저 사랑채에서 화약을 제조하고 기폭장치를 제작한 놈들도 전부 이 부류였다. 이놈들이 역모를 주도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이놈들이 태황에게 품은 원한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름 활이나 칼 좀 잡아봤다는 놈들이 섞여 있다 보니, 자기네 솜씨라면 폭탄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넷째, 자기가 서자라서 능력만큼 출세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일부 관원들. 이건 정말이지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동조 세력이었다. 아니, 서얼의 출사에 관한 제한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이제는 문과건 무과건 붙기만 하면 얼마든지 출사할 수 있는데 이게 무슨 정신 나간 행동인가. 태황도 이 문제에서는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서얼금고법이 폐지된 지가 3백 년도 더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출세를 못 했다면 그건 그저 그놈이 못난 탓이지 서얼이라서가 아니지 않느냐?”
“소자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서자라고 해서 집안에서 적자보다 지원을 덜 해줄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건 자기 집안 분위기를 자기가 바꿔야 하는 것이지, 짐과 너를 폭살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된다던가. 그런 반편이 같은 놈들이니 애초에 출세를 못 하는 것이다.”
태황은 서얼 출신인데도 자기 능력으로 출세한 인물인 의무대신 이현모를 언급하면서 그 네 번째 부류에 속하는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깎아내렸다. 나 역시 동감이었기에 그 비난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하오면 폐하, 역당들을 어찌 처결하실 생각이시옵니까.”
“그야 법대로 처분해야지. 네가 잡아낸 역적이 근 3백 명에 달하니, 그중 죄가 중한 자들 30여 명은 참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북변으로 유배함이 옳을 것이다. 그 일가도 예전 같으면 관노로 만들어 북으로 보냈겠으나…..”
태황이 잠시 말을 멈췄다. 구태여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속뜻을 알 수 있었다. 사건의 진상을 공표했을 때 닥칠 후폭풍이 걱정되는 거다. 지금 소왕의 역모를 공표하면 우리 황실에는 천하의 대망신이 된다. 일본인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보는 앞에서 ‘너희와 혼사를 맺을 예정이던 임금의 동생이 실은 역적이었다’라고 알리는 꼴이다. 그걸 적발한 것도 우연한 화재 덕분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망신인가.
결혼이야 다른 종친을 내세워도 된다. 하지만 그 사정을 드러내 알리는 것만 해도 엄창난 치욕이다. 어떻게 해야 그 난감한 상황을 피하면서 계획대로 국혼을 진행할 수 있는가. 국혼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청은 다른 자리도 아니고 장례식이라는, 이 성리학 국가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중요한 예식을 망치려고 계획했다. 그것도 일반인도 아니고 임금의 장인, 태자의 외조부인 국구의 장례식이다.
‘
만약 세상에서 이 소식이 퍼져나간다면 이청 개인의 망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분명 대한의 땅에 사는 사대부라는 사대부가 모조리 분개해서 들고 일어날 거다. 그따위 인간을 세상에 내보낸 황실 자체가 엄청난 망신을 당한다. 그런 사건을 과연 공표해야 할까. 지금 태황의 머릿속에는 이런 계산이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얼굴만, 눈빛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타개책을 이미 준비해두고 있었지만, 일단 태황에게도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보았다.
“아바마마, 소왕의 죄상을 천하에 밝히시겠습니까?”
“….좀 어려울 듯하다. 너는 생각해둔 바가 있느냐?”
뒷일 따위 생각도 안 하고 다 까발리고 본다는 쪽이 아니라서 차라리 다행이다. 안도하는 한숨을 속으로 살며시 쉬고, 내가 생각한 계획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