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22
4부 206화(1822화)
1.
나하 시내는 늘 번화하다. 항구에 들어오는 배에서 내린 선원들과 나하에 거주하는 유구 백성들, 항구 바로 옆에 있는 수영에서 나들이를 나온 한국 해군 군관이나 병졸들이 언제나 몰려나오기 때문이다. 가장 북적거리는 곳은 항구 옆의 시장이다. 이 시장에는 식물이나 토산품을 파는 상점도 많다. 그런데 늘 번화하고 활기차던 이곳의 풍경은 근래 들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어이, 비켜!”
“죄, 죄송합니다, 나리.”
법석거리던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시장 거리에 갑자기 길이 좍 열렸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군복을 걸친 한국 해군 군사들이 으쓱거리며 지나갔다.
“아, 걸리적거리지 말라고!”
거친 수졸들의 발길에 차인 과일 광주리 하나가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장사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잘못 대들었다가는 광주리가 아니라 사람이 걷어차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이고, 나리님들,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으실까. 마중 나왔어요! 어서들 들어오세요.”
옆에 있는 주루에서 나온 기녀들이 얼른 양옆에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매달리자 험악한 분위기는 곧바로 사라졌다. 군사들이 껄껄거리며 화려한 대문 안으로 사라지자 겨우 주변이 평화로워졌다.
“한병(韓兵)들의 품행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전하.”
본래 유구에 주둔하는 유구첨사진 소속 군사들의 기강은 무척 엄중한 편이었다. 2백 년이 넘는 세월을 나하에 머무르면서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준 적이 거의 없었다. 도리어 치안을 유지하고 시내 분위기를 흥겹게 만드는데 한 몫을 크게 했다. 그런데 그게 달라졌다. 2년 전, 국왕 상육이 직접 한양까지 가서 태황 앞에 무릎을 꿇고 황제의 칭호와 인신(印信)을 모두 바친 뒤부터였다.
그전까지, 유구는 황제국이었다. 대한과의 관계는 동등했고 유구를 방문한 한군 장수들은 슈리성을 찾아 황제에게 바치는 예를 올렸다. ‘폐하’라는 호칭이 당연했다. 그런데 그 뒤로 달라졌다. 유구가 저들과 같은 황제국이었을 때, 한군은 유구를 지켜주러 온 형제국의 군대였다. 하지만 이제 저들은 유구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상국(上國)의 군대, 천병이 되었다. 그게 원인이었다. 물론 저들의 태도가 한순간에 바뀐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하에 있는 한군 장졸들의 태도는 거만해지고 거칠어졌다. 그 변화는 누가 봐도 선명하게 보였다. 한국에서 온 군사들이 유구를 자기네 속국이라고 대놓고 만만하게 보는 모습이.
“옛날 명나라 만력 연간에 한국과 일본에 출정한 천병, 명나라 관군의 행동거지가 저들과 비슷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땅에 있는 한군은 다소 거만하게 굴기는 해도, 백성들을 대놓고 약탈하거나 능욕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왕 상육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2년이다. 2년 만에 이렇게 무시당하는 처지가 될 줄은 몰랐다. 임금의 명을 받고 온 칙사도 아니고, 일게 수졸 따위들이 저렇게 방자하게 구는 꼴을 보는 날이 오다니.
“어쩌겠는냐. 조용히 참는 수밖에 더 있는가.”
항의할 권한은 있다. 태황 앞에서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했을 때, 임금인 광덕제는 유구를 계속 지켜 주리라고 약속했다. 그 지켜준다는 표현에는 당연히 주둔한 군사들이 함부로 굴지 못하게 해준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상육은 선뜻 그 문제로 공식적인 항의 서한을 쓰지 못했다. 이런 문제로 덤비다가 공연히 밉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컸다.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대한에서 파견한 집정대신이 이 유구의 국정을 전적으로 감시하며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백성들은 갈수록 더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한군이 엄포만 놓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조만간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 해를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무고한 백성들의 수급을 베어다 해적을 잡았다고 보고하는 건 아닐까, 힘들여 번 재물을 약탈하지는 않을까, 무고한 여자들을 잡아다가 겁간하지는 않을까. 그전과 태도가 달라진 한국 군사들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기만 했다. 국왕이 저항 없이 대한의 번신이 되기로 했을 때, 무관심했던 이들 중에 후회하는 자들이 적잖았다. 국왕이 황제 자리를 버리지만 않았으면 지금 자기들이 이렇게 무시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상육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비난이 자꾸만 저자로 흘러나왔다.
“요즘 나하 백성들은 과인을 담소왕(膽小王)이라고 부른다던가.”
제위를 포기했을 때는 황제 직위를 단 하루라도 누리려고 탐욕을 부린다며 ‘일일제’라고 부르더니, 지금은 그것도 못버티고 포기했다면서 쓸개도 없다고, 겁이 많고 배짱이 없는 ‘비겁한 왕’이라고 부른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라는 건가.
“지금 같아서는 그때 슈리성의 성문을 닫고 끝까지 버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군이 공성포를 밀면서 몰려오더라도 말이다. 어떤가. 과인의 말이 옳은가?”
“…..전하. 다소 수모를 무릅쓰고라도 사직을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성조께서 굴욕을 참고 머리를 숙이며 버티신 이유가 다 그것 때문입니다.”
중신들이 눈물을 흘리며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아직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면서 말이다. 무기를 들고 일어서는 건 저들이 단순히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하는 대신 이곳 유구 땅과 백성을 모두 내놓으라고 할 때여도 늦지 않으리라고들 했다.
“조금만 더 견디시옵소서. 그리하시면 백성들도 전하의 깊으신 뜻을 이해할 것이옵니다. 한병들의 품행에 관해서 차마 태황께 직접 고할 수 없으시다면, 태자께 도움을 청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온후하시고 관대하시니, 꼭 도움을 주실 겁니다.”
예전에 한국 태자가 왔을 때 안내를 맡았고 한양에 함께 가서 그 품성을 본 신하가 나서 진언했다. 상육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수밖에 없을 듯했다.
2.
노주들의 보고를 받는 이에츠구는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가 쇼군의 자리에 오른 분세이(文政) 2년(1819) 이래, 작황이 좋지 않은 해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올해처럼 대규모로 흉작이 든 해는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 데다 냉해까지 닥치는 바람에 도호쿠 일대의 피해가 엄청납니다. 각 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서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평소에 에도에서 소비하는 쌀 대부분을 공급하는 다테 가의 센다이 번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개간한 농지 대부분을 벼농사에 사용하는 바람에 벼농사가 타격을 입자 당장 영지 내의 물가가 폭등하고 공황이 닥쳤다.
“지역에 따라서는 텐메이 연간의 대기근에 버금간다는 호소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상황이 심각한 곳이 많습니다.”
사상 최악의 기근이라고 불리던 텐메이 대기근은 불과 50여 년 전에 일어났다. 그때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천하에 수만 명이나 살아있다. 그때와 비길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면 얼마나 심한 기근이라는 이야기인가.
“영주가 되었으면 자기 영지에서 일어난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할 게 아닌가? 각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들에게 전하라. 일단은 각자 준비해둔 바에 따라 대처하라고. 우리한테 천하 모든 백성을 구제할 여유는 없다.”
영주를 왜 앉혔는가. 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거기다 둔 것 아닌가. 그러면 기근도 알아서 해결 해야지. 이에츠구는 수백 년 동안 한국과 친하게 지내는 바람에 영주들한테 나쁜 물이 들었다고 투덜거렸다. 조금만 힘들면 막부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는가. 자립심이 부족한 놈들 같으니.
우리도 대한의 경세론을 전거로 삼아 농촌을 진흥하고 산업을 권장하려고 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든지, 아니면 아예 전부 알아서 하든지 어느 한쪽을 제대로 택해야 할 게 아닌가. 요네자와의 우에스기 영지는 후자의 좋은 사례다. 11년 전에 사망한 선대 영주, 우에스기 요잔은 번정을 일신하고 산업을 권장하여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막대한 준비금까지 모으는 성과를 올렸다. 왜 다른 놈들은 우에스기 요잔처럼 못 하나?
게다가 막부라고 해서 기근으로 피해를 안 입는 게 아니다. 막부가 챙겨야 하는 직할지, 어령(御領)이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다. 어령의 석고는 대략 8백만 석에 해당하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쇼군이 직접 책임져야 하는 백성 숫자만 8백만 명이라는 이야기다.
“자기 밑에 거느린 백성의 수가 기껏해야 몇 만 명, 혹 몇 십만 명에 불과한 자들이 8백만 명을 책임져야 하는 내게 도움을 청하는 이 태도가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들도 워낙 절박하니 그러지 않겠습니까, 쇼군.”
노주의 한 사람, 미즈노 타다나리가 좋은 말로 쇼군을 타일렀다. 메이와(明和) 2년(1765)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그 역시 지난번 대기근을 직접 겪어본 경험자다. 대기근이 끝나고도 한참 뒤에 태어난 이에츠구와는 다르다.
“상황을 세밀히 살펴 정말로 절박한 영지에는 다소간 도움을 주시고, 나중에 빚을 갚도록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막부의 여유자금을 금전으로 대출해주신다면, 양식을 구하는 일은 저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일본 한국, 중국, 남만을 잇는 해로는 늘 짐을 실은 상선으로 붐빈다. 올해 어느 나라에 풍년이 들고 어느 나라에 흉년이 드느냐에 따라 곡식 가마니를 실은 배들이 출발하는 곳과 도착하는 곳이 바뀐다. 돈만 치른다면 양식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츠구는 그 말을 듣고도 별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돈만 치르면 양식을 구할 수 있다, 바로 그 부분이 문제인 거다.
“각 번의 그 가난뱅이들이 과연 나눠준 곡식에 대가를 치를 수 있겠는가? 값도 받지 않고 귀한 곡식을 거저 나눠줄 수는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영주라면 자기 영민들에게 거저 곡식을 내줄 수도 있겠지만 쇼군인 이에츠구는 다른 영주의 백성들에게 도움을 베풀 의무가 없었다. 자기 백성이 아니니까.
“다만, 혹시 에조치로 이주하고 싶다는 자들이 있으면 에조봉행이 받아 처리하도록 하라. 에조치의 인구를 늘릴 기회일 수 있겠다.”
몇 가지 지시를 내리다 보니 한국 황실과의 국혼 때문에 예물을 마련하느라 낭비한 돈이 좀 아까워졌다. 27만 냥이라니, 너무 과도한 액수였다. 히로시마번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사실상 전액을 막부에서 제공했으니, 여유자금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때는 올해가 이렇게 심한 흉년이 들 줄 몰랐다지만…….”
게다가 저쪽에서 가져온 예물은 죄다 신부를 맞이한 간인 노미야에서 가졌으니, 막부에서 가져다 기근 구제에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로 금전적으로는 이래저래 손해가 컸다.
“어차피 돈을 벌려고 한 국혼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건 그렇소.”
양국 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다졌다. 그리고 천황가와 쇼군가의 피에 한국 황실의 피까지 섞은 고귀한 가문을 만들었다. 그 후손이라면 다음 대 천황 자리를 확실하게 노릴 수 있다. 지금 제위에 있는 닌코 천황에게 아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원래 제위라는 게 상황에 따라 누구에게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던가. 적절한 상황만 조성된다면 이에츠구 자신의 생질이 다음 대, 혹은 다다음 대 천황으로 즉위할 수 있다.
이번 국혼의 가장 큰 목적이 여기에 있었다. 이에츠구는 쿄토에 시집온 한국 공주가 어서 아들을, 그것도 최대한 많이 낳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그중 하나가 천황의 양자로 들어가서 제위를 이을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는가.
3.
어느 나라건, 군주의 후궁은 언제나 시끄럽게 마련이다. 주인인 군주를 둘러싼 여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후계자가 확실하지 않을수록 그 시끄러움은 더 커진다.
“전하! 정말이지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카나이나는 한인이 되어버렸다고요!”
하와국의 새 왕비, 카네카폴레이가 마구 고함을 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국왕 앞에서 이런 방자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겠지만 그녀는 그래도 괜찮았다. 국왕 칼라니오푸의 단 하나뿐인 정식 왕비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첫 번째 정식 왕비는 아니었다. 그녀 이전에 몇 사람의 정식 왕비가 국왕의 옆을 지켰지만, 그들은 모두 죽었다. 지금 그녀가 칼라니오푸의 옆에 있다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보세요. 5년이에요, 5년! 용맹을 과시하러 나간 전사들도 5년이면 돌아온다고요. 하지만 카나이나는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편지랍시고 종잇조각이나 보낼 뿐이죠. 그게 이 하와이 땅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해도 되는 행동이라고 보세요?”
하와국 왕실에서는 당연히 서로를 하와식 이름으로 부른다. 카나이나는 하진교의 하와식 이름이다. 하진교는 전 태황의 죽음을 조문할 겸, 신부감을 찾을 겸 해서 한양으로 갔다. 그리고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대한의 공주를 신부로 맞아 결혼한다는 소식이 왔는데 막상 결혼하고서도 귀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를 맞으러 갔으면, 아내를 맞았으면 돌아와야지요! 하지만 그 정신 나간 놈은 그저 한양에서 보내는 호화로운 삶에 취하고 황실의 공주에 취해서 돌아올 생각도 없어요! 그런 못난 놈을 기다리다가 죽은 칼레이아만 불쌍하지요!”
칼레이아는 하진교의 생모다. 하진교를 어릴 때부터 폭 감싸고 돌면서 바깥 활동은 일체 못하게 하고 글공부만 시켰다. 다른 왕족들은 모두 칼레이아와 하진교를 비웃었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게 본국 황실에 잘 보이는 비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녀는 지난달에 급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나마 카나이나가 결혼했다는 소식은 받고 죽었으니까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그렇게 정성껏 키우면 뭐 합니까! 제 어미가 기다리다 지쳐 죽도록 코빼기도 안 비치는 못난 아들놈인데! 전하, 그런 불효자는 폐위하셔야 합니다. 제가 낳은 전하의 당당한 아들, 쿠아이와를 후계자로 선택해 주세요. 그놈은 한양에 처박혀 있게 내버려 두시고요!”
칼레이아의 뒤를 이어 왕비 자리에 오늘 카네카폴레이는 정말이지 성질이 억세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국왕 칼라니오푸 – 한명(韓名)은 하민상 – 는 그녀의 억센 성질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풍만하고 큰 체구는 좋아했다. 그 아들인 억세고 날랜 쿠아이와도 좋아했다.
“확실히 카나이나는 제대로 된 전사라고 할 수 있는 놈은 아니지.”
마치 돼지처럼 살이 쪄서, 창을 들고 사냥을 나가면 걸어다니는 것도 힘겨워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한에 가서 호랑이를 잡았다며 가죽을 보내오긴 했는데 그게 정말 그놈이 잡은 호랑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실은 한인 포수들이 잡았을 게 분명하다. 게다가 5년 동안 부모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고, 결국 결혼하고서도 바로 돌아오지 않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왕비 카네카폴레이의 말마따나, 한인 미인을 끼고 한양에 눌러앉을 생각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칼라니오푸의 나이도 이미 쉰다섯이다. 판단력도 참을성도 젊을 때보다 떨어졌다. 5년을 보지 못한 아들보다 매일 보는 아내와 아들 쪽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좋아, 그대의 말대로 하지. 내일 당장 카나이나를 폐위하고 쿠아이와로 후계자를 바꾸는 왕명을 내리겠다.”
“현명한 판단이시옵니다!”
카네카폴레이가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칼라니오푸도 씩 웃었다. 후계자를 정하느 것은 아비의 마땅한 권리니, 한양에서도 별말은 없을 터였다. 더구나 카나이나는 한인들이 그렇게 중한 도덕으로 여기는 ‘효’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밖에서만 놀아나는 놈 아닌가. 집에서 쫓아내도 싼 놈이다. 그러니까 세자를 바꿨다고 해서 항의가 들어오는 일 같은 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