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23
4부 207화(1823화)
4.
안핵사 이용갑은 뜨끈한 구들에 누워 등을 지졌다. 이곳 동미주는 자신의 고향인 남미주 지선성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름에는 지옥처럼 덥고 겨울에는 또 지옥처럼 추웠다.
“풍토가 이렇게 다른데, 본국에서는 미주라면 다 미주인 줄 안다는 말이지.”
대과에 합격해서 출사한 지도 어언 30여 년, 이제 슬슬 환갑이 다가오는 나이다. 흔하지 않은 미주 출신 관료로서 참 고생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 직책에 따라 맡은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규정에 따라 처리하고 모르는 부분은 상급자들과 하급자들에게 물어서 처리하면 되니까. 그보다 훨씬 큰 어려움은 본국 출신이 아닌 사람은 겪을 수밖에 없는 폄하와 차별이었다.
도성에서 매년 배출되는 대과 합격자는 백 명이다. 대부분이 본국 출신이고 그중 절반은 경화사족이다. 나머지 중 절반이 본국 각지에 있는 사학당 출신이며 나머지는 서원, 향교와 같은 다른 교육기관 출신들이다. 미주, 북구주, 내담도, 누손주 등의 외지에서 건너온 지원자들은 아무리 많아도 전체 합격 인원의 1할을 넘지 못한다. 호 구로만 단순히 따진다면 이 지역에서 적어도 합격자의 4할은 나와야 하건만, 실제 합격자의 수는 나와야 하는 숫자의 1/4에 불과했다.
그나마 여기서 또 절반 이상이 대남도 출신이다. 대남도는 장조 시기부터 개척한 땅으로 세가(勢家)가 많다. 경화사족들이 설치한 농장과 분가도 많아서 그 연줄로 과거를 준비해서 출사하기 쉽다. 토인들은 문과는 안 보지만 무과로 출세하는 사례가 간혹 있다. 북구주는 무과에 합격해서 강무관으로 들어가는 자는 많아도 문과 합격자는 별로 없다. 구주 일인들은 학문보다는 무예나 장사를 선호하고, 과거를 준비하는 한인들은 구주에서는 여건이 부족하다고 경상도로 가서 공부하고 경상도 향시를 보니까 말이다.
그나마 합격자가 한 명도 없는 해가 허다한 누손주보다는 낫다. 누손주는 인구가 미주의 절반 정도지만, 그중에 또 절반은 토인이고 나머지 한인 중에도 반가(班家) 출신 이주자는 거의 없다. 여유 있는 가문들이 대남도보다 멀고 더운 누손주 이주를 꺼렸기 때문이다. 계미남변 당시 누손주에 땅을 받은 공신들이 있었지만, 이들도 본가는 본국에 계속 두고 누손주에는 농장만 두어 마름에게 관리를 맡긴 사례가 많다. 습하고 더운 풍토가 통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누손주 토인들은 아예 천민 취급이라 등과는 언감생심이다.
대남도 다음으로 많은 문과 합격자를 내는 미주에서도 북구주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출세를 노려 아직 어릴 때 일찌감치 본국으로 보내 공부시키는 사례가 종종 있다. 처음부터 본국에서 말고 학문을 익히면 조금이라도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이용갑의 집안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이용갑은 중종의 스승이던 문현공 이형준이 세운 향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미주총관부에서 치르는 향시에 급제한 뒤 본국으로 건너가 대과를 치렀다. 성적은 백 명 중에서 78등으로 그리 높은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주에서 매년 나오는 합격자 숫자를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였고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문제는 합격한 뒤였지만……”
황당하게도, 과거 합격 이후 받은 첫 벼슬은 한양의 길거리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지방관 벼슬을 받았을 때도 본국 13도에 있는 좋은 자리는 현감 자리 하나 받지 못했다. 이용갑이 담당했던 고을들은 죄다 옛 요동이나 대남도, 누손 등의 변방이었다. 본국에 연줄이 없는 외지 출신들은 죄다 이런 식으로 굴러야 했다. 일찌감치 사색당파 중 어느 하나에 말단으로나마 속해서 인맥을 만들어야 그나마 조금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외지 출신들이 주로 들어가는 당파는 남인과 북인이다. 귀화인 가문들이 포함된 남인과 여진계 가문들이 포함된 북인이 외지 출신자에게 비교적 개방적이고 관대해서다. 하지만 이용갑은 기를 쓰고 노력해서 서인들의 한폐가 되었다. 조정에서 가장 주도권을 쥔 집단이 서인이고 그 밑에 달라붙어야 뭐라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임지가 죄다 본국이 아닌 외지였다고는 하지만, 정말 생길 게 없는 고을로 보내진 적은 없었다. 덕분에 아주 한몫을 단단히 챙겼다. 본국에서 고위직으로 출세하는 건 일찌감치 체념하고 계속 외직으로 돈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슬슬 고향 생각이 났다. 30년 가까이 돌아가지 못한 지선성의 하늘과 바다 생각이 나고 선산에 묻힌 조상님들 생각도 났다. 뭔가 대단한 일로 경력을 마무리 하고 끝내면 좋겠다 싶던 참에 동미주를 평정할 안핵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내려오지 않았겠는가.
마침 누손주에서 돌아와 한양 자택에서 쉬던 참이었다. 바로 윗선에 뇌물을 고이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주십사 청했다. 혹시 아는가? 안핵사 일을 잘해내면 미주대총관이나 동변관리사로 영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주 개척의 역사가 240년에 가깝지만, 이제껏 미주대총관이나 동변관리사 자리에 미주 출신이 오른 전례는 한 번도 없다. 각 주 지사 자리까지는 미주 출신이 몇 차례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도 대부분은 본국인들이 앉았고, 미주인들은 토관으로 그 밑에서 일했다.
이용갑은 나른한 표정으로 미래를 꿈꾸었다. 자기가 미주 출신인 첫 미주대총관이 되는 그날을, 그런 말이 온다면 그의 이름은 미주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나리, 주무십니까?”
“아닐세.”
이용갑이 일어나 앉자 종사관 선규필이 문서를 한 아름 들고 들어왔다. 동미주 토호 중에 임금에게 귀순하겠다고 서약한 자들이 정기적으로 제출하는 정황 보고였다. 이용갑은 지난 1년 반 동안 남미주만큼이나 넓은 동미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들을 만났었다. 정말이지 힘든 여정이었다. 황량하고 혹독한 동미우 황야를 누비고 다니는 고생은 과거에 누손에서 밀림을 헤치고 다닐 때와는 또 달랐다. 나이까지 더 들어서 더 힘들었다.
길만 힘들었으면 또 모른다. 적이 있었다. 맥고성에 있는 메히꼬 공화국 중앙정부가 가진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이 태황의 신하가 되었다고 인정할 생각도 없는 토호와 도적들이었다. 호위로 대동한 미주순검대 순검들이 이들과 전투도 종종 치렀다. 누손이나 북한에서도 종종 겪은 일인지라, 크게 겁을 먹지는 않았다. 어차피 거기에서나 여기서나 직접 싸움에 임하지는 않았으니까. 전투는 군인들, 순검들이 맡은 일이고 자신은 혹시 유탄 따위에 맞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하면 되었다.
게다가 전투는 가외수입을 챙길 기회이기도 했다. 죽인 도적들의 수급이야 기둥에 매달아 백성들이 보고 경각심을 느끼게 할 용도밖에 없지만, 놈들이 가진 무기나 말 따위 전리품은 토벌대의 부수입이 되었다. 당연히 거기서 이용갑의 몫이 떼어졌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다닌 덕분에 무릎을 꿇고 임금의 신하가 되겠다고 서약하는 토호들이 점점 늘어났다. 어차피 그들도 바로 인접한 영토의 주인인 대한의 임금이 얼마나 부유하고 막강한 군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계속 맞서다간 파멸뿐이라는 사실도.
아직 평정이 완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귀순한 자들은 자기들의 명운을 쥔 담당자, 이용갑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서반아 금화나 은화가 자루재로 슬며시 전달도기도 하고, 숙소에서 하룻밤 상대로 혼혈인 미며가 제공되기도 했다.
“그런 재미도 없이 어찌 이런 일을 하나~.”
이용갑은 느긋하게 흥얼거리며 신규필이 가져온 서류를 살펴보았다. 귀순한 서반아인이나 매곡인 토호들은 자기가 다스리는 고장이 얼마나 평온한지를 자랑하는 내용을 스페인어로 빽빽하게 적어서 제출했다.
“반 이상은 거짓말이겠지.”
이용갑은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온갖 미사어구가 죄다 들어간 토호들의 보고서를 피식거리며 읽었다. 신규필 역시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섬기지 않고 살아온 놈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 솟아날 리가 있는가. 당연히 눈치를 보며 잠시 머리를 숙였을 뿐이다. 자칫하다가는 대한 본국에서 대규모 토벌군이 건너올지도 모르니, 미리 조심하려고 말이다. 서미주에서도 그랬다. 계미남변으로 서반아 국왕에게 넘겨받은 서미주가 완전히 안정되어 태황의 충성스러운 영토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20년이 넘었다. 한인의 수가 맥고인의 수를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완전한 대한의 강역이 된거다.
“참, 아파치 사포대로부터는 보고가 있었는가?”
“지난 두 달 동안 도적 무리 셋을 쳐부수고 도적 스물여섯 명을 쏘아죽였으며 열여덟을 포로로 잡았다고 합니다. 소와 말을 여든 필 노획했다고도 하였습니다.”
아파치 사포대(私捕隊)는 이용갑이 자기 권한으로 임의로 조직한 병력이다. 미주순검대에 속하지 않는 정원 외 인원들이라 급료가 없다. 대신 미주 관아에 쌓여 있던 낡은 활이나 총 같은 무기와 ‘도적’들과 싸워 이긴 뒤 전리품을 개인적으로 챙길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금이나 은은 없고.”
“보고에는 없었습니다.”
“음, 그거 유감이군.”
이용갑이 입맛을 다신 이유는 간단하다. 아파치 사포대가 노획한 재물의 1/3을 자기한테 바치겠다는 약속을 받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왕이면 저들이 가치 있는 재물을 얻기를 희망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귀순한 토호 중 아파치에게 습격받았다며 도움을 호소하는 자들이 꽤 있습니다. 상황을 보면 적어도 일부는 아파치 사포대에게 공격당한 것 같습니다만…….”
안핵사에게 고용된 것을 그저 재물을 얻을 기회로 여기는 아파치들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습격하고도 남는다. 이번에 넘겨받은 흑각궁의 위력에 신이 나기도 했을 테니, 얼마나 싸울 맛이 나겠는가. 물론 위력이야 총이 더 세다. 하지만 활은 소리가 안 나 짐승을 놀라게 하지 않을뿐더러 값비싼 탄약을 소모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인 사냥꾼들만큼이나 토인 사냥꾼들도 활을 즐겨 사용한다.
아파치를 비롯한 토인들이 쓰는 활은 본래 나뭇조각으로 만든 활몸에 동물 힘줄을 묶어서 탄력을 올렸다. 그것도 꽤 쓸만하기는 하지만, 물소뿔을 붙여 만든 한식이나 건주식 활만큼 세거나 멀리 나가지는 않는다. 그중 위력이 더 센 여진식 각궁이 좀 더 인기가 좋았다.
“아파치 사포대를 호출하셔서 범죄 여부를 확인하시고, 그중 죄인을 색출하시어……”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분명히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야. 도적질하는 아파치가 드문 것도 아닌데, 어찌 그자들이 우리 사포대라고 확언할 수 있는가?”
자기가 만든 사포대가 양민을 약탈하고 다녔다면 책임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미주대총관 자리를 노리는 이용갑으로서는 노획물의 처리 문제와 맞물려 절대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다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아파치 사포대 쪽에 경고는 보내 두도록. 행여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고.”
아파치들과 맥고인들 사이에 옛날 서반아 시대부터 누대에 걸친 피의 원한이 서려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용갑도 이미 알고 있다. 특별히 아파치들로 사포대를 조직한 데는 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사포대가 양민을 노략질하고 머리 가죽을 벗기고 다닌다면 곤란하다.
“알겠습니다, 영감.”
열심히 받아적던 신규필이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탄식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미주에서 원하는 일도 아니고, 본국에서 시킨 일 때문에 이리 고생하려니 억울하지 않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어허,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
“나리께서는 정녕 그리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주상께 충성하기 싫다는 게 아닙니다. 여기 미주를 맡아 다스릴 주지사와 대총관, 동변관리사 같은 사람은 우리 미주에서 뽑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지요. 언제까지 본국에서 오신 높으신 분들을 받들고 살아야 합니까?”
한번 터뜨린 불만의 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주의 현실에 맞는 법률 정도는 한양에 굳이 승인을 청하지 않고 제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불평도 나왔다. 본국 조정에다가 상신서 한번 써서 올리면 회답이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아시느냐면서 말이다.
“그만, 그만! 그만하게!”
신규필이 계속 불평을 늘어놓을 기미가 보이자 이용갑이 크게 나무라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자네가 신불랑에서 온 그 공화론이라는 것을 꽤 관심 있게 공부한 줄은 알지만, 우리는 임금의 신하로서 해야 할 바가 있네. 자네도 다 배우지 않았는가? 그러니 공연한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해 주상께 충성할 생각이나 하게. 그게 사대부의 도리니까!”
“알겠습니다, 나리.”
신규필이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물러 나갔다. 이용갑이 혀를 차면서 다시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임금의 녹을 먹는 신하 주제에 어찌 저런 망언을 하는지 원. 요즘 미주에서 젊은 놈들 사이에 ‘천부공화론’이라는 막된 사상에 관해서 호기심을 품는 자들이 자꾸 늘고 있다는데, 영 마땅치 않았다. 이게 다 신불랑에 있는 나폴레옹이라는 놈, 신불랑 황제 탓이었다. 그리고 그놈의 미국, 미주합중국에서 온 개신교 선교사들 탓이다.
지금도 이렇게 소란한데, 철도가 놓여 더 편하게 오가게 되면 그쪽에서 배운 망언을 저리 아무 데서나 늘어놓는 놈들이 또 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임금의 신하로서, 그런 막돼먹은 놈들한테는 맹세코 치도곤을 안길 터였다.
5.
남미주에서 신불랑 수도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은 이제 측량을 마치고 착공하려는 참이다. 봄이 오면 공사가 시작되리라.
“묘노 6천 명, 한공 3백 명이 천사동에 집결해 있습니다. 이제 봄이 오면 천사동에서부터 동쪽으로 공사를 시작할 겁니다.”
“우리 쪽에서 동원한 역군은?”
“7백 명입니다, 나리.”
미주대총관 이종우가 보고서를 들고 한숨을 쉬었다. 6년 전에 태자 – 당시는 태손 – 가 미주 순행을 나왔을 때만 해도 생각도 못 했던 일이 실현되려고 하고 있었다. 세상애, 이곳 미주에서 대서양으로 가는 철로라니. 그게 대륙을 건넌다니. 지금까지 그쪽 길로 대륙을 가로지르려면 걸어서 몇 달을 가야 했다. 험한 황야를 헤치고 가려면 맹수와 도적을 만날 각오가 필수였고 길을 잃고 사막을 헤맬 위험도 무릅써야 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안내인이 없다고 해도, 철로만 따라가면 어딘가에서는 역과 기차와 사람을 만날 테니까. 누벨 프랑스와의 교류는 지금까지 해온 바와는 비교할 수 없이 왕성해지리라.
“그걸로 끝은 아니지. 두 번째 노선도 이어야 하니까.”
기껏 만드는 철도가 대륙 남부, 신올랑으로만 간다면 그것도 아까운 일이다. 더 북쪽으로 가는 철도도 한 가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신불랑 북부에 사는 사람들도 기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종우는 도장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어떨까. 과연 이 철도가 완공되기 전에는 귀국할 수 있을까? 설마 중종 시절 미주의 귀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평원백 김성권처럼 20년을 여기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