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26
4부 210화(1826화)
9.
올해 초에 노예를 해방하면서 좀 소란하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 별로 큰 충격은 없었다. 영국 정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장차 노예 제도를 폐지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조금씩 단계를 밟아왔기 때문이다.
“문명인이라면 노예 따위는 부리지 말아야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재산으로 취급한단 말인가. 안 그렇소, 외무장관?”
총리대신인 2대 그레이 백작, 찰스 그레이가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외무장관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총리 각하.”
백 년 전에는 외교를 담당하는 장관이 두 사람이었다. 담당 지역을 나눠 북부 국무장관과 남부 국무장관으로 불렀다. 하지만 조지 3세 시대에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서 북부 국무부가 유일한 외무부가 되었고, 남부 국무부는 전쟁과 식민지를 관리하는 부서가 되었다. 현 외무장관인 파머스턴 자작은 1830년부터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외교 방침은 ‘영국의 이익 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라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었다. 어느 나라를 상대로 하건, 국익에 도움이 되면 손을 잡았고 도움이 안 되면 손을 놓았다.
“다른 나라들도 조만간 이 대열에 동참할 겁니다. 비도덕적인 나라라는 손가락질을 계속 당하고 싶은 이들은 없을 테니까요. 뭐, 나서지 않아도 우리로서는 상관이 없습니다만.”
영국으로 실려 오는 목화, 설탕, 담배 등의 상품작물 중에서 노예노동으로 생산되는 양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정도다. 자메이카와 같은 영국령 식민지 외에 프랑스, 스페인, 미국, 누벨 프랑스 등의 영토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은 대부분 노예가 생산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 공장에 값싸게 원료를 제공하면서 우리 노동자들의 허기를 값싸게 채워주며 우리 노동자들의 시름을 값싸게 달래주기만 한다면 목화, 설탕, 담배를 누가 경작했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 땅에서는 비도덕적인 노예노동은 금지해야지요.”
값싼 설탕을 잔뜩 퍼 넣은 홍차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는 건 영국 노동자들에게 일상이다. 당연히 그런 홍차가 질이 좋을 리 없다. 진짜 찻잎이기는 한지부터가 의심스러운 물건이다.
“장관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사악한 노예 제도를 이 세상에서 없애는 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오. 그래서 그동안 시간과 돈을 들인 것이고, 그 정에서는 후회가 없소.”
1806년에 노예무역을 금지했을 때 외무장관이 바로 그레이 백작이었다. 그레이 백작은 젊을 때부터 휘그당 개혁파로서 노예제 폐지와 선거권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해왔다. 3년 전 총리에 취임한 뒤로는 구빈법 개정, 도시 자치 기구 개혁, 공장법 개정 등에도 매진했다. 이번에 노예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면서 노예주들에게 지급할 보상금으로 2천만 파운드를 준비했을 정도다. 그레이 백작은 저기까지 생각이 닿지는 않았겠지만, 이 돈만으로도 무려 미국 정부 연간 예산의 5배가 넘는다.
“노예 해방은 이제 끝났지만, 공장법이 남았소. 앞서 제정한 법안들의 전철을 따르지 않고 잘 준수되도록 감독을 철저히 합시다.”
“예, 각하.”
올해 제정된 공장법의 핵심은 아동 노동의 제한이다. 견직공장을 제외하고는 9세 이하 아동의 고용 금지, 9~13세이 하루 노동시간은 9시간 이내, 13~18세의 하루 노동시간은 12시간 이내, 아동의 야간 노동 금지, 아동에게 2시간 이상 의무교육 실시 등이다.
이전에도 공장법은 몇 번이나 제정됐다. 1802년부터 시작해서 다섯 번이나 새 공장법이 제정됐다. 그만큼 노동 현장에서의 사정은 심각했고, 기존 법률안들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방치하는 건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은 일이고, 정치적으로도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레이 내각에서는 특별위원회를 조직해서 노동 현장에서 아동이 겪는 고난을 다시 확인했다. 마침 외부의 자극도 있었다.
“한국 같은 나라도 공장법을 두고 아동 노동을 규제하는데, 우리 국왕 폐하의 정부가 그 정도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 세기 번만 해도 한국을 옛 이름에 따라서 ‘조선’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두 가지 이름이 큰 혼동 없이 병용되고 있다.
“총리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유럽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인들이 백인이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인 일반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한국인 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터번을 쓰고 터키풍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던 셰익스피어 시대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러니 한국인들이 이룬 사회적 성취에 대해서도 선망과 질투가 뒤섞인 시선이 쏠리기 일쑤였다.
“‘동양인 따위’에게 뒤졌다는 말은 다들 듣기 싫어하니까요.”
전쟁 및 식민지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 for War and the Colonies), 고드리치 자작 프레데릭 존 로빈슨이 한마디 했다. 그는 그레이 백작의 전전대 총리를 역임하기도 한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내각에서 한국과 가장 ‘대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상황이 크게 심각한 건 아닙니다. 인도에 주둔한 한국군은 벵골과 실론에 있는 상관 두 곳을 수비할 병력 1천 명 정도에 불과하고, 그 대부분은 일본인 용병들이니까요.”
올해 초에 시크 왕국이 무너지자 사실상 인도 전역이 영국이 지배하는 무굴제국의 영역이 되었지만, 프랑스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이 과거 고아나 퐁디체리 등지에 설치한 거점은 모두 그대로 유지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이 차지한 영역은 일개 거점 정도가 아니다. 벵골을 영향권으로 두고 있으니까.
벵골은 누가 보더라도 탐이 날 곳이다. 풍요로운 농토와 초석 광산이 있고, 인구는 한때 격감했으나 지금은 다시 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면직업도 발달했다.
“동인도회사에서도 벵골에 욕심을 내는 이들이 있기는 했습니다만…..다들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인도가 가진 부의 1/3이 몰렸다는 곳이지만, 상대가 워낙에 벅차야 말이지요.”
식민지 장관이라고 해서 동인도회사를 직접 감독하는 건 아니다. 동인도회사를 감독하는 건 의회다. 하지만 직책이 직책이다 보니 인도 방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관한 정보 입수는 외무부만큼이나 확실한 편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력으로 정복하는 거지만, 동인도회사로서도 정복에 나설 명분이 없었습니다.”
인도 각지를 다스리던 번왕들은 모두 한때 무굴제국의 신하들이었다. 고로 동인도회사가 황제를 등에 업고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벵골의 대칸은 외국인 정복자였으므로 그 수법이 통하지 않았다. 무굴제국은 이슬람교를 믿는 황제가 힌두교도들을 다스리는 제국이었다. 하지만 벵골은 불교도들의 나라이니 종교적인 권위를 내세울 수도 없었다. 국왕의 개인 영지인 랭카스터 공국 총리, 홀랜드 남작이 다른 의문을 던졌다.
“그자들은 본래 페르시아 왕의 봉신이었다지 않았소. 혹시 동인도회사에서는 페르시아를 움직여서 명을 따르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소?”
이번에는 파머스턴 자작이 고개를 저었다. 동인도회사의 멍청한 인간들을 비웃는 기색이 드러났다.
“안 해봤겠습니까, 홀랜드 남작. 그자들은 자기들은 나디르 샤의 핏줄만 따른다면서 우리 동인도회사가 보낸 전갈을 그대로 찢어버렸습니다.”
페르시아의 알렉산드로스라고 불리던 군주, 나디르 샤는 90여 년 전에 죽었다. 그 후손인 아프샤르 왕조는 현재 페르시아를 통치하는 카자르 왕조에 의해 멸망했다. 그것도 벌써 40년 가까이 된 일이다. 당연하게도 벵골 대칸은 카자르 왕조의 이름으로 날아온 서한 따위는 열어보지도 않았다. 카라르 왕조를 이용해서 어떻게 벵골에 영향을 미쳐 보려던 동인도회사 측의 시도는 그렇게 무위로 돌아갔다. 고드리치 자작이 다시 부연 설명을 했다.
“우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승인한 상대에게 명분도 없이 무력을 행사하자니, 부담이 너무 컸지요. 동인도회사군의 전력으로는 중앙아시아 출신 기병대를 보유한 벵골군만 상대하기도 벅찬데 한국군의 보복까지 각오해야 했으니까요.”
자칫 한국과 진짜로 충돌하게 되면 큰일이 난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벵골까지는 영국에서 벵골까지 거리의 1/4밖에 안 된다. 이쪽에서 파견한 선단이 겨우 인도에 도착했을 때 한국이 파견한 선단은 본국에서 인도까지 두 번 왕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해군도 그렇다. 영국 해군이 전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는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당연히 본국 방어다. 여기에 대서양과 지중해를 비롯한 여러 바다까지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전력은 늘 부족하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장갑 전열함이나 증기 철갑선 같은 배들은 대부분 본국이나 지브롤터 같은 곳에 집중해 있다. 여기에서는 제1해군경 제임스 그레이엄 경이 그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국왕 폐하의 해군은 쓸데없는 일에 나설 여유가 없습니다. 대서양을 확고하게 지배하며 유럽에서 우리 지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지요. 태평양과 인도양의 안정과 뉴홀랜드 식민지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국인들과 싸우자고 나서는 건 광인이나 할 짓입니다.”
다시 고드리치 자작이 나섰다.
“게다가 한국은 조호르와 술루에 자기네 속국을 만들어놓아서 그쪽에서도 병력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칫하면 기껏 동아시아에서 확보한 우리 거점, 홍콩을 빼앗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신중할 수밖에 없지요.”
“무력으로 싸우는 것 말고 좀 부드러운 방법도 있잖소? 현 한국 임금에게 한 것처럼 다음 왕위 계승자한테 태자 시절부터 열심히 뇌물을 먹인다거나 말이오. 그쪽 전문일 텐데.”
“당연히 해봤지요. 왕위 계승이 유력한 왕자를 골라 뇌물을 먹이면서 열심히 우리 편으로 만들었지요. 그랬더니 그자가 글쎄 갑자기 콜레라에 걸려 죽어버렸지 뭡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세상이란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법이다. 동인도회사 쪽에서도 나름대로는 벵골에 영향력을 뻗어 보려고 노력해봤지만, 매번 뭔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발이 걸리곤 했다.
“결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를 접었습니다. 자칫 벵골 때문에 한국과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본래 목적이던 벵골은 얻지도 못하고 피해만 크게 볼 수 있으니가요. 지금은 일반적인 교역으로 수익을 올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드리치 자작이 동인도회사 수뇌부가 준비해둔 모든 계획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는 외부자였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우리 외교정책에서도 아주 중요한 축이니까요.”
잠시 침묵했던 파머스턴 자작이 냉철하게 지적했다. 사실 그에게는 한국에 관해 의회에서 받는 압력이 있었다.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북태평양에서 자유롭게 고래를 잡을 수 있게 해달라는 포경업자들의 요구였다. 풍요로운 북태평양 어장은 모든 포경선의 꿈이었다. 하지만 파머스턴 자작은 그 요구를 거부했다. 겨우 고래 기름 때문에 한국과 분쟁이라니, 말도 안 됐다.
“제1해군경께서 방금 말씀하셨듯, 한국 해군이 북태평양과 동인도 제도 일대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있기에 우리 상선들이 안심하고 태평양을 왕래할 수 있으며 우리의 식민지도 훨씬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고래 몇 마리보다 훨씬 큰 가치지요.”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한국 해군의 가치가 드러났다. 그들은 본국이 무너지면서 붕괴할 뻔한 네덜란드령 동인도 식민지를 프랑스 혁명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었다. 지금처럼 영국과 한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영국 식민지에 위기가 닥쳤을 대도 도와줄 터였다.
“저들이 우리를 도울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야 우리 욕심만 차려도 상관없겠지요. 하지만 한국은 유사시에 우리를 도울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저들과 잡은 손을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폴레옹을 쓰러트려 신대륙으로 내쫓는 뒤, 영국에는 큰 적이 없었다. 프랑스는 기세가 한번 꺾였고 다른 열강들은 영국과 맞서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러시아가 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전통의 원수, 오스만 제국을 계속 위협하면서 페르시아 방면으로 남진했다. 페르시아를 자기네 세력권이라고 생각하던 영국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인도를 위협하는 러시아에 맞서서 영국을 도와줄 동맹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고작 고래 몇 마리 때문에 분쟁을 만들 라니, 말이 되는가. 파머스턴 자작으로서는 콧방귀나 뀌고 말 요구였다.
“산업적으로도 한국인들은 우리 영국에 뒤지지 않습니다. 누가 프랑스보다 철을 더 많이 생산하고 우리 것보다 성능이 우수한 증기기관을 생산하는 나라를 함부로 대합니까? 그들은 마땅히 존중해야 할 이웃입니다. 비록 이교도라고 해도 말이지요.”
기술의 바탕이 되는 기계나 화학, 의학과 생물학, 철도공학에서는 한국의 성취가 확실히 뛰어나다. 영국에서도 한국산 기관차를 일부 수입할 정도다. 이에 반해 유럽은 물리학이나 수학, 지질한, 금속광학과 조선술 같은 분야에서 한국을 앞선다. 수학의 경우, 그저 문제 푸는 실력만은 한국 수학자들도 뛰어나다. 하지만 한국 학자들은 증명이나 원리를 설명하는 데서는 다소 취약한 전통이 있다. 이건 2백 년도 더 전인 레이디 이 시절부터 그랬다.
“그러고 보니, 웰즐리 후작은 잘 있습니까?”
생각났다는 듯이 그레이 백작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파머스턴 자작이 미소를 흘렸다.
“이제 충분히 있었다면서, 그만 귀국하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겨울이 너무 추워서 못 견디겠다는군요.”
장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한양의 위도가 런던보다 더 낮을 텐데 여기보다 춥다고 하는 걸 보니, 돌아오고 싶어서 핑계를 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레이 백작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이 한국으로 간 지 5년이 다 되었으니 오래 재임하긴 했군요. 한양의 겨울 추위와는 별개로, 후임자를 인선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웰즐리 후작이 인도에서, 아일랜드에서 몇 년씩 총독 임무를 수행했던 사람이기는 하다. 그만큼 아시아에 익숙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좀 오래 두긴 했다. 그래도 5년은 좀 심했다. 이제 돌아와서 그쪽에서 익힌 지식과 경험을 런던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