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3
1부 183화
– 13 –
요즘은 암행을 나갈 때 데리고 다니는 호위가 둘로 늘었다. 새 멤버는 바로 선전관 이장곤. 선전관이 본래 수행하는 임무 중 하나가 임금 호위니까 제도상으로도 별 문제될 일은 아니다.
다만 이장곤은 산도적놈 소리 들을 만큼 체격이 우람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은밀하게 돌아다니기는 좀 곤란했지만, 든든하기는 확실히 든든했다.
“어이, 어딜 부딪히고 그냥 가는 거야!”
“뭐, 문제 될 것 있소?”
“…아닙니다. 그냥 가십시오, 나리.”
이장곤과 다니니 어두운 뒷골목에서 취객과 시비가 붙는다든가 하는 문제에서 해방되었다. 예전에는 이럴 때 대개 다지가 나섰는데, 체구로는 상대를 쫓아내지 못하다 보니 팔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뜨려야만 문제가 해결되곤 했다. 아니면 대가리를 깨트리거나.
“그대를 동반하니 주정뱅이들에게 약값이나 하라고 던져줄 일이 없어 저화가 남는구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이장곤이 두 눈을 꿈뻑거렸다. 앞에서 걸어가던 다지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걸어갈 뿐이었다.
“각다귀들을 털어내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한 잔 하고 가자꾸나.”
오늘도 암행을 나왔을 때 종종 들르는 피맛골 주점으로 들어갔다. 내가 팔자 좋은 한량인 줄로만 아는 주인이 반색을 하며 맞았다.
“아이구, 어서 오십시오. 늘 쓰시는 방이 비어 있습니다요. 술이랑 안주는 늘 드시는 대로 올릴까요?”
“그러게.”
암행에서 술을 제대로 마시기 시작한 건 이장곤과 다니면서부터다. 취해서 뻗어도 업고 올 사람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동안은 차마 다지에게 업힐 수 없어서 참았다. 여자한테 기대거나 업히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일단 키가 너무 안 맞아서….
방에 들어가 잠시 기다리니 술상이 들어왔다. 안주는 양념에 재워서 석쇠에 구운 닭고기로, 근래에 내가 가장 즐기는 안주다. 요즘 도성 일대에 닭 사육이 늘어서 비교적 값도 싸다.
“그대들도 잔을 채워라. 백성들이 마시고 싶은 만큼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조선에서 술을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는 건 경제, 사회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풍년이 들었으니 곡식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조선에는 과실주가 없다. 고구마나 감자, 사탕수수 따위도 없기 때문에 술은 온전히 곡식을 써서 빚는다. 때문에 식량이 부족한 흉년에는 수시로 금주령이 내리곤 했다. 나도 이제까지 10년 동안 5년 정도는 금주령을 내렸던 것 같다.
작년과 올해는 다행히 술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곡식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풍년이 들었다. 농사가 잘 되니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사이비종교 같은 것도 세가 팍 죽었다. 요즘은 미륵신앙 같은 건 소문도 잘 들리지 않는다.
“니마차 때 이야기 좀 해보아라. 듣고 싶구나.”
가능하기만 하다면 나도 친정에 나서서 군사를 이끌고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곤란하다.
반정을 걱정해서 출정을 삼가는 건 아니다. 내가 도성을 비우면 반정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은 이제 접었다. 경군은 완전히 내 손아귀에 있고, 왕실 내에서 나한테 맞설 만한 존재인 이복동생들은 거의 제거되었다. 만약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금방 진압할 수 있다.
그러니만큼 전선에 나가는 것까지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나가서 제대로 군사를 지휘할 자신이 없다. 힘든 야전 생활을 버텨낼 자신도 없고.
역시 군대를 지휘해서 싸우는 건 경험 있는 군인들에게 맡기고 난 도성에 있어야겠다 싶다. 쓸데없이 전선에 나갔다가, 장수들이 괜히 나 때문에 마음껏 움직이지 못해도 문제니까.
대신 이장곤 같은 참전자들에게 현장 이야기를 듣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즐겨보던 전쟁영화도, 소설도 없으니 이런 거라도 대신 들어야지.
“여기 고 사정이 조총을 연사해서 야인 놈들을 쓰러트리는 모습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직접 보셨다면 나리께서도 진실로 감탄을 하셨을 겁니다.”
니마차 토벌 때 이야기를 하는 이장곤에게서는 다지 칭찬이 줄을 이어 나왔다. 다지는 아무 말 없이 닭갈비를 뜯고 있을 뿐이었다.
“고 사정의 총 솜씨야 잘 알지. 그대가 활을 쏘는 만큼은 쏘니까.”
이장곤은 조정 신료들을 대상으로 한 활쏘기 대회에서 1등을 기록한 적도 있다. 물론 문관 중에 1등이지만 그 정도면 웬만한 무관 이상은 쏘는 셈이다.
“고 사정뿐만 아니라 다른 군사들도 많은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모두 면천이 되고 당당한 양민이 되었지. 물론 진짜 양민으로 대우받기 힘들다는 건 나도 안다.”
정확한 숫자는 잊어버렸지만, 대마도 정벌에 니마차 정벌까지 치르면서 공을 세워서 면천된 산척, 재인, 백정 출신 군사들 수가 적어도 천여 명은 되는 듯하다.
아쉬운 점은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진짜 양민이 되려면 길이 멀었다는 거다. 밭을 갈고 베를 짜며 사는 이들만 양민으로 보는 조선 사회다. 여전히 사냥이나 도축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호적만 고쳐서 양민으로 부른다 한들 양민으로 대우받기는 어렵다.
“허나, 세월이 흐를수록 바뀔 것이다. 양민이 많은 세상이 바람직하지 천민이 많은 세상이 어찌 바람직하겠느냐? 내, 앞으로도 천민을 계속 줄여나갈 테니 너희도 그 뜻을 살펴 충실히 따르기 바란다.”
“예, 나리.”
사실 이 문제는 정말 어렵다. 이제까지는 무관을 확보할 겸 해서 서얼허통 문제에만 신경을 썼지만, 사실 서얼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어쨌든 웬만큼은 집안 배경이 있잖은가?
정말 심각한 건 그보다 훨씬 수가 많은 노비, 백정과 같은 일반 천민들이다. 이들도 실력을 펼 기회만 생기면 양반 자제 이상 가는 능력도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게 안 되고 있다. 그나마 말 타고 활 쏘는 데 익숙한 자들만 군공으로 그 처지를 벗어날 뿐이다. 비록 허울이더라도.
“허나 나리, 백정이나 산척을 면천하는 문제는 그나마 쉽다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군무를 수행하는 만큼 양민과 마찬가지 지위를 준다 해도 감히 반발할 자가 없습니다. 더구나 저들은 누구에게 속해 있지도 않습니다. 허나 노비는 주인이 있으니 면천이 지극히 어렵습니다.”
이장곤이 말한 바가 옳다. 백정이나 승려, 기생이나 공장(工匠)은 신분은 낮을지언정 일단 자유민이다. 그러니만큼 나라에서 법을 바꾼다면 바로 양민이 될 수 있다. 사회적인 대우까지 바뀌려면야 물론 부지하세월이 걸리겠다만.
문제는 노비다. 노비를 자유롭게 풀어주면 당장 그 주인이 금전적 손실을 입는다. 더군다나 노비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부와 권세도 크다. 내가 노비해방령이라도 반포했다가는 바로 반정 모의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당장 나부터도 손실이 생긴다. 노비를 없애면 내수사에서 소유한 농장, 어장, 염전, 광산은 누구 손으로 관리하란 말인가. 다 내수사 노비들이 운용하는 재산인데.
물론 노비들도 잘 사는 이들은 잘 산다. 내수사 노비들은 자기 몫으로 분배받는 수입에다 임금 빽까지 써서 부유하게 산다. 양반가 외거노비들도 보통 양민보다 잘 사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양반들 뒤치다꺼리하는 솔거노비들도 가난한 양민보다야 당연히 잘 먹고 잘 산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가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자유를 얻고도 지금 자리에 머무를 노비는 거의 없을 거다. 지금도 도망노비가 널렸고, 북방에 사민할 인력은 순전히 이들을 잡아다가 조달하는 참이다. 올해에만 벌써 7천 명 가까이 붙잡아서 북평으로 보냈다.
신분으로 사람을 옭아매고, 더구나 범법자를 양산하는 방편인 노비제도는 분명히 악습이다. 하지만 당장 그걸 없애면 기득권에서 터트릴 반발도 반발이고, 사회구조가 무너진다. 이것도 언젠가 풀기는 해야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그대가 하는 말이 맞다. 군공을 통해 노비들을 해방하려 해도 그 주인이 내놓지 않는 한은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추후 제도를 바꾸어 줄여나가려 한다.”
작년 초에 죽은 지중추부사 성현은 ‘우리나라 사람 절반이 노비’라고까지 발언한 적이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 많기야 할까 싶지만, 상당한 숫자임은 분명하다. 그걸 정확히 알기 위해서도 군적청이 제대로 일을 할 필요가 있다.
“태종께서는 양민의 수를 늘리고자 종부법을 시행하고 일천즉천의 제도를 폐하게 하셨다. 후대에 권신들이 농간을 부려 종모법을 내세우고 사천(私賤)을 늘리니, 이 어찌 옳은 일이라고 하겠느냐.”
태종 이전에는 고려 말처럼 일천즉천(一賤則賤), 또는 종모종부법(從母從父法)을 시행했다. 종부법은 아비의 신분을 따르고 종모법은 어미의 신분을 따르는 법이니, 종모종부라고 하면 양친 중 하나만 노비여도 자식은 노비가 된다. 태종은 이를 바꾸려고 했었다.
“지금도 노비를 가장 많이 가진 이가 조정 대신들이고 종친들입니다.”
“알고 있다. 그러니 어찌 노비를 풀어주는 일이 쉽겠느냐. 나 스스로도 당장 노비를 모두 속환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한들 잘 시행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칫 전조 광종이 시행한 노비안검법이나 공민왕 때 요승 신돈이 설치했던 전민변정도감 꼴만 나지 않겠느냐?”
고려 광종은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비들 중 본래 양민이었던 자들을 해방시켰다. 당연히 반동이 일어났고, 30년쯤 뒤 성종이 노비환천법을 제정해서 그 정책을 되돌려버렸다.
공민왕도 권문세족이 약탈한 토지와 사람을 도로 토해놓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신돈으로 하여금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게 했지만, 권문세족 세력의 역공으로 실패했다. 결국 공민왕은 목숨까지 잃었다.
“일단은 기존에 있는 노비는 손대지 않고, 종부법을 엄하게 적용하여 새롭게 증가하는 노비 숫자라도 줄일까 한다. 그리하면 서얼 문제도 절로 해결되지 않겠느냐.”
“언제부터 종부법을 적용할 것이며 그 이전에 태어난 아이는 어찌할지도 관건일 것입니다. 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가 연령 차이로 양천으로 갈릴 수도 있사온데 그 문제는 어찌 처결하시겠사옵니까.”
이장곤을 데리고 암행을 나와서 진짜 좋은 점은 술친구가 생겼다는 게 아니다. 이런 토론이 된다는 거다. 조정 대신들이나 승지들과 공식적으로 정사를 논하는 자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정을 살피며 즉석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상대도 필요했다.
상희는 가장 말하기 편한 상대다. 하지만 상희는 이 시대, 조선에 대해서는 자기 주변에서 직접 관련된 사항이 아니면 잘 몰랐다. 다지는…그냥 든든한 경호원이다, 든든한 경호원.
물론 정호찬도 있다. 하지만 정호찬은 금위사를 맡고부터는 정책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물었다.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제한을 두는 태도가 가끔 답답했지만 이해는 됐다.
이장곤은 충분히 학식도 있고, 문무를 겸비하고, 신분에 따른 차별의식도 별로 없다. 암행을 나가는 내게는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파트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는 추후 군사를 일으키실 때 권신들에게 노비를 내놓게 하여 이를 짐꾼이나 역부로 사용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나라에 큰일이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느냐며 사람을 내놓게 하고,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면천시켜주면 저들이 어쩌겠습니까.”
“반발이 크지 않겠는가?”
“저화로 약간의 대가를 주면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좋은 생각이긴 하다. 헌데 무작정 면천시키면 저들의 생계는 어찌하겠으며, 주인이 여전히 데리고 있을 저들의 처자는 어찌한단 말이냐?”
“본인이야 군공으로 면천하더라도 처자까지 면천하기는 힘드니, 나라에서 주인에게 속전을 넉넉하게 내주어 처자를 방면케 하소서. 대신 일가를 부여주에 보내어 20년간 둔전을 일구게 하시고, 유사시에 종군케 하여 그 대가를 거두어들이시면 어찌 문제가 어렵겠사옵니까.”
노비 해방과 인력 조달을 동시에 전개할 수 있는 좋은 방책인 듯하다. 흐음, 내년에 일본에 쳐들어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로군. 전쟁을 해야만 노비들을 노무자로 동원했다가 해방시킬 수 있을 테니까.
자리 하나 만들어주고 내보내려고 했었는데, 당분간은 이장곤을 선전관으로 계속 둬야겠다. 의논 상대로 좋네, 아주.
– 14 –
“가난한 백성들이 병들었을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기구가 부족하다. 더 만들어야 하겠다.”
닷새 만에 열린 조참(朝參) 자리에 모인 백관들이 놀란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웬 소린가 싶은 모양이다.
“국립병원 같은 거 새로 만들 생각 없어? 연속 풍년이라 요새 호조에 돈 많다며.”
“너 아는 혜민서 사람들 자리 만들어주려고 로비하는 거냐?”
“그 사람들이야 지금도 가끔 보지만 그것 때문은 아냐. 그보다 정말 생각 없어?”
“국립 병원…내의원이야 왕실 전속이니까 좀 그렇지만, 그거 말고 전의감도 있고 혜민서랑 활인서도 있잖아. 그만하면 됐지 뭘.”
“그거 다 서울사람들밖에 혜택 못 봐. 지방에는 돌림병이라도 퍼져야 감사가 임시로 의원 모아서 뭔가 하는 척하는 것밖에 없다고. 너 서울왕국 임금이야? 조선 임금이잖아. 그럼 조선 임금다운 정책을 더 펼쳐야지.”
“알았어, 생각해 볼게.”
“전하, 이미 혜민서와 활인서, 양의사(兩醫司)가 백성들을 보살피고 있사온데 굳이 새로운 의사를 만들려 하시나이까?”
“양의사는 오직 도성 백성들만 돌보지 않느냐. 팔도에 사는 모든 백성이 내 자식들이거늘, 어찌 도성 백성들만 보살핀단 말이냐.”
상희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확실히 도성 이외에 각 지방에는 공적 의료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상희가 말했듯, 지방관이 임시로 주변지역 의원들을 모아서 응급의료캠프를 설치하는 정도가 끝이다. 상설 보건소가 생긴다면 형편이 확 달라질 거다.
“태조대왕 때도 그런 건의가 있었고, 세조대왕 시절에는 양성지가 제안하기를 각 도와 군과 현에 의원을 두어 백성들을 보살피게 하자 하였다. 물론 일거에 그리할 수는 없겠으나, 차츰 그 제도를 넓혀 나간다면 충분히 이를 수 있으리라 본다.”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도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이렇게 했다. 돈이 부족하니까 3면 1교, 1면 1교 식으로 순차적으로 목표 세워가면서 수십 년에 걸쳐서 공립학교를 설립했다. 나도 그런 식으로 보건소를 지으면 되겠지 싶다.
“전하, 건물을 마련하고 의원을 고용하려면 재원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전국에 의료관서를 설치하겠다고 하시면 그 재원이…게다가 갑자기 그만큼 많은 의원을 구하기도 힘듭니다.”
“일시에 모든 고을에 의료관서를 세우자는 건 아니다. 내년에는 경기도에서부터 대동법을 시행할 예정이니, 그 수입을 써서 경기도에 속한 큰 고을부터 차례로 의관을 두어 각 고을에 속한 백성을 보살피게 하면 어떠냐. 명칭은 향의원(鄕醫院) 정도면 좋을 듯하다.”
아무래도 국가 시스템 상, 중앙에서 예산을 보내 보건소를 운영하기는 무리다. 각 지역에서 지방재정으로 운영하게 해야지. 내년부터 대동법을 시행하니까 지방관청으로 들어가는 수입도 늘어날 거고, 그 정도 여유면 충분히 보건소 운영이 가능할 거다.
“전하, 각 지역에는 이미 환자를 보는 의원이 수다하게 있습니다. 어찌 관에서 의원을 세워 저들의 밥줄을 뺏겠습니까?”
누구더라, 대간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뭐 이 정도 반박이야 수용할 만한 수위지. 예스맨 일색으로 물든 조정도 바람직하진 않으니까.
“향의원을 설치하고자 함은 의원이 없는 고을에 의원을 두고, 돈을 내고 의원을 쓸 여유가 없는 이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자 해서이다. 재산이 있는 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부대끼기 싫어서라도 다른 의원을 찾을 터이니, 의원들이 밥줄을 끊길 일은 없다.”
게다가 향의원에 찾아올 정도 서민들은 어차피 제대로 의원을 찾아갈 돈도 없는 사람들일 게 분명하다. 혜민서에서도 그러니까. 애초에 고객층이 다르니 별 상관없겠지.
각 향의원에 배치할 의원은 의과 합격자로만 한정하면 의료 수준도 평준화될 거다. 충분한 임상경험을 쌓은 초짜 의사들 실력도 향상될 거고. 의과 합격 후 3년 정도는 의무적으로 지방 향의원에서 복무하게 하고 그 뒤에 자유롭게 개업할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장차로는 향의원 근무자에게 충분한 급여를 줘서 개업 대신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게 만드는 조치도 필요하겠다. 으음, 할 일이 많구나.
“알겠사옵니다, 전하. 집현전에 명을 내려 시행 방안을 연구토록 하겠나이다.”
영의정 유순이 허리를 굽히며 답했다. 이제 조정 내에서는 결론이 난 셈이다.
“좋다. 내년 가을 정도에는 문을 열 수 있도록 하라.”
요즘은 정말 일하기 편하다. 황이가 보위에 오를 때까지도 이래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