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34
4부 218화(1834화)
22.
후송 황제 영강제 조형윤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도통사들이 장악한 각 지방 관리는 사실상 포기하고 자기 손에 쥔 3개 성만 확실하게 다스리고자 하건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놈의 도통사들이 아직도 자기 멋대로 놀고 있으니…..”
8개 도통부 중 황제가 확실하게 손에 쥔 도통부는 남경 가까이에 위치하는 양주도통부와 회주도통부, 오직 두 개뿐이다. 황제 직할지인 강서성에 있는 요주도통부와 절강성에 있는 항주도통부, 명주도통부도 조정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금군과 직할 2개 도통부의 전력을 총동원하면 반항적인 도통사들을 하나씩 토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청나라를 상대하는 북방 방어선이 그대로 뚫린다. 아직도 강남을 호시탐탐 노리는 청군 앞에 문을 활짝 열 수는 없었다.
“그래도 폐하, 몇 년 전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그렇기는 하다.”
황제 직할지인 직례 – 상해를 비롯해 원래 강소성의 일부였던 지역도 직례성으로 통합된 상태다 – , 절강, 강서의 3개 성은 후송 전역에서, 아니 중원 전체에서 따져도 가장 인구가 많고 부유한 지역이다. 풍요로운 장강 하구에 자리를 잡아서 농토가 비옥한데다가 상업에도 유리하다. 예로부터 수공업도 크게 발전했다. 넉넉한 인구 덕분에 일손이 풍부해서 손으로 직물을 짜도 한국이나 영국에서 기계로 짠 직물보다 값을 싸게 할 수 있다. 값만 싼가? 면직물이건 견직물이건 그 질도 우수하여 기계 따위로 짠 직물은 비교도 안 된다.
교역 조건도 최고다. 내륙 지방에서 철도와 장강, 운하를 통해서 모여든 상품들이 해외로 가는 창구인 개항장도 전체 4곳 중 2곳, 상해와 항주가 황제 직할령에 있다. 남은 두 개는 복주와 광주로, 각기 정주도통부와 양광총독부의 주요 기반이 되고 있다. 조형윤은 공업과 상업을 육성하면서 세입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직할지인 세 성의 농토는 최대한 목화와 차, 뽕나무 같은 상품작물 재배로 돌리고 식량은 장강 중상류 지방에서 배로 들여왔다. 이게 황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다만 기계로 짜는 외국산 직물도 점점 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조형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러다가 저들이 만들어낸 직물이 더 싸면서도 질까지 좋아진다면 후송에서 짜낸 직물을 수출하기는커녕 국내 시장까지 빼앗길 터였다. 이쪽에서도 증기 직조기를 도입할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곗값이 비쌌다. 숙련된 직조공들을 거저나 다름없는 값으로 쓰는 데 익숙해져 있는 공장주들은 그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계화를 시도하는 대신 조형윤은 수입 직물에 5할이라는 비싼 관세를 매겨 국내 직조업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직조업 기반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관세 수입도 올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기도 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한 덕으로 오랜만에 황실의 금고에 돈이 두둑히 쌓이고 중앙군인 금군과 두 개 도통부는 정예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직할지에 있는 세 개 도통부도 다시금 황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각 도통부는 독자적으로 수입원을 가기고 있고, 사치에 미쳤던 태녕제조차도 거기는 손을 대지 못했다. 하지만 요주, 항주, 명주도통부는 재정적으로 독립한 부분과는 별개로 그 소재지가 황제 직할지다 보니, 황실과 조정이 강해지자 아무래도 허리를 좀 숙이게 되었다. 하지만 한양 – 한국의 수도 한양과 이름이 같다 – 에 주재하는 한양도통부나 강릉에 있는 형주도통부, 복건에 있는 정주도통부와 양광의 양광총독부는 쉽게 손을 대기 어렵다. 이들 모두 지위를 세습하며 문무관을 마음대로 임명한다.
앞서 언급한 세 도통부는 황제 직할지에 소재한 탓으로 그나마 지방관에 대한 통제권은 없다. 하지만 이들 넷은 아예 자기 지역을 다스리는 번왕이나 마찬가지다. 조형윤은 이들을 폐지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제발 조정의 눈치라도 좀 봤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요원하기만 했다. 이 네 놈은 조정에서 몇 년째 심사숙고하며 결단하지 못한 아편 유통 합법화 문제도 자기들 멋대로 해치웠을 정도니 말이다. 놈들은 자기 구역을 지나는 잠상들에게 아편 유통을 허용하고 대신 세금을 매겨서 엄청난 세수를 확보했다.
격분한 조정에서 엄히 꾸짖는 칙서를 보냈으나 세 도통사와 양광총독에게는 마이동풍일 뿐이었다. 이들은 황실이 힘으로 자기들을 제압할 수 없다는 시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믿고 신나게 자유를 누렸다.
“그놈의 아편 유통 때문에 우리가 입는 피해가 얼마인지…..!”
조형윤도 몰랐다. 자신이 가까스로 복구한 재정이 전쟁이나 내란도 아니고 고작해야 아편 때문에 다시 흔들릴 줄은 말이다. 막대한 은이 서부로 빠져나간다. 운남과 귀주, 광서에서 재배한 아편은 장강과 바다, 철도 등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동쪽으로 흘러왔고 대가로 은을 받아 갔다. 죽을힘을 다해 비단과 차, 도자기 따위를 팔아 번 은이 허망하게 서쪽으로 흘러가서 사라졌다.
물론 그 죽일 놈들이 아편 거래를 대놓고 허용하기 전에도 아편 문제는 심각했다. 하지만 그놈들 때문에 더 심각해졌다. 물론 지금 당장 나라가 망할 정도는 아니다. 아편이 본격적으로 후송 땅에 퍼지기 시작한 건 고작 20년쯤 전이니까. 겨우 20년 동안 퍼진 아편 정도로 망할 만큼 후송이 허약하지는 않다. 다만 이대로 놓아두면 다시 20년이 지난 뒤에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 뻔할 뿐이다.
“폐하. 무리해서라도 아편을 단속해야 합니다. 지금 북적의 땅에도 아편이 만연하여 심히 저들의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하니, 이틈을 타서 우리 내부를 정리하시옵소서.”
강소안찰사(江蘇按察使) 임칙서가 진중한 자세로 진언했다. 복건 출신이지만 홍씨 일족에 봉직하기보다는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과거에 응시, 출사한 충신이다.
“도통사들이 가진 군사가 황실에서 움직일 수 있는 군사보다 많다. 그런데 어찌 저들에게 황명을 강제할 수 있겠는가.”
“적은 나누어서 쳐야 합니다. 요즘은 한과의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이니, 도통부 중 한군을 주로 상대하는 요주, 항주, 명주의 세 도통부는 무너지더라도 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세 도통부를 일단 제압하여 황권을 다지시고, 이를 기반으로 서부를 치소서.”
수군 중에도 장강주사는 조정의 통제가 비교적 잘 먹히므로 괜찮다. 하지만 복건주사는 같은 복건에 위치한 정주도통부와 짝이 되어 붙어먹는 놈들이니 뒤엎어야 한다. 그놈들과 정면으로 충돌해서도 안 된다. 자칫하면 기껏 공들여서 육성한 직할령의 산업이 잿더미가 된다. 나라를 강성하게 할 기반을 무너뜨리며 내란을 벌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 최대한 온건하게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웅대한 구상을 들은 조형윤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 부담이 큰 계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내란이 벌어지고 청군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빚어진다.
“어려운 일이로다 솔직히 짐은 도통사들을 제거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아편만 유통하지 못하게 해도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 후송에서 유통되는 아편 대부분은 운남, 귀주, 광서 일대에서 생산된다.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들여오는 인도산 아편은 개항장인 광주와 복주로 들어온다. 상해와 항주에서는 아편 반입을 엄금하고 있으니 그 두 항구로 몰리는 거다.
“그러시다면 신을 흠차대신으로 임명해주시옵소서. 서쪽에서 들어오는 아편을 모두 막아 보겠사옵니다.”
“그대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아편을 어찌 잡아낼 생각인가?”
생산지를 출발한 아편은 실로 다양한 경로를 거쳐 후송 각지로 퍼진다. 길목 하나, 항구 하나를 막는다고 해서 막히는 게 아니다. 길 하나를 막으면 다른 길로 우회할 뿐이다.
“이이제이, 이독제독이라 하였습니다. 관의 힘을 쓸 수 없다면 민의 힘이라도 써야지요. 여러 사교도 중 덕성도는 교단 차원에서 아편을 매매하지 않으니, 그들을 움직여 잠상들을 토벌하게 할까 합니다.”
후송 조정과 덕성도 사이는 매우 나쁘다. 선황 소태제가 대대적으로 덕성도를 탄압하면서 시작된 적대관계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임칙서는 덕성도를 종교단체로 공인하는 대신 아편 근절을 위탁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덕성도를 인정하면 한황과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덕성도는 그 본산을 한국에 두고 있는 자들이라, 저들이 우대받으면 한황도 기꺼워하겠지요.”
“그다지 내키지 않는데……”
조형윤이 망설이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리 목적이 있어서라지만 특정 종교단체를 특별히 취급한다면 그자들이 나라를 뒤흔드는 존재로 성장할 수도 있어서다. 아무리 아편 문제가 심각한다고 해도 덕성도가 나라를 주름잡을 기회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임칙서는 그 수밖에 없다며 강력하게 주장했다. 결국 조형윤은 나중에 추밀원에서 논의해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임칙서가 한 가지 제안을 더 내놓았다.
“우리 대송에서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외방(外邦)과 통상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지금은 상선이 간간이 오가는 정도지만, 한국과 일본이 하듯이 정식으로 공사를 교환해 외교적으로 친근한 상대가 된다면 장차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은 유럽에서 보낸 공사를 받기는 해도 자기네가 공사를 내보내지는 않는다. 후송에서 그들과 달리 유럽에 주재공사를 보내 유럽 각국과의 외교를 다진다면 장차 국제적인 지지가 한국이 아닌 후송으로 모일 수도 있다.
“저들이 대동양을 쥐고 있다고 하나, 우리는 중원을 쥐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국입니다. 도통사들을 제압하고 폐하의 권위를 세울 수만 있다면 저들도 우리가 한국보다 더 교류하기 좋은 상대라고 보고 우리 손을 들어줄 겁니다.”
유럽 열국의 도움을 받아 한국과 싸우겠다는 건 아니다. 청나라와 대결할 때 한국이 뒤를 치지 않도록 견제만 해줘도 충분하다. 임칙서는 그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저들의 천하는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중원을, 저들은 대동양을 쥐고 살면 됩니다.”
충심을 다한 임칙서의 진언에 조형윤의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였다. 그리고 그 제안 역시 추밀원에서 의논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23.
회주도통사 장문성이 혀를 찼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옷차림이 마땅치 않았다.
“벼슬도 못 오르는데, 어째 그대는 옷이 더 화려해지요?”
“꼭 벼슬이 올라야 좋은 옷을 입소? 옷이야 입고 싶을 때 입고 싶은 걸 입는 거요.”
상장군 고문휘 역시 지난 4년 동안 벼슬이 오르지 않은 건 장문성과 마찬가지다. 그동안 두 사람 모두 별다른 전공이 없어서 승진하지 못했다. 그동안 청이건 후송이건 동부에서는 비교적 조용히 보냈다. 일부 충돌이 일어나긴 했으나 대부분 한양도통부가 담당한 서부 지역에서 벌어졌다. 그렇다 보니 이들이 윗자리로 올라갈 만한 기회가 없었다. 잠시 너스레를 떨던 고문휘가 씩 웃더니 사연을 털어놓았다.
“우리 가문이 투자한 철도에서 수익이 쏠쏠하게 나와서 말이오. 덕분에 한몫 잡았소.”
후송에서 철도가 부설된 건 선황인 소태제 조승번 시절부터다. 본래 후송은 강과 운하를 이용한 수운이 주요 교통수단이었던데다 증기기관의 보급이 늦어서 철도 건설도 좀 늦었다. 당시 소태제는 표준 궤간을 영조척(營造尺)으로 3척 – 대략 96cm – 으로 정했다. 조정의 영향력이 약한 서부 지역에서도 지선은 몰라도 간선은 이 규격이 지켜졌다. 그래야 열차가 굳이 짐을 옮겨 싣지 않고 직통으로 왕래할 수 있어서다.
협궤(狹軌)를 채택한 이유는 수로 운송이 주가 되는 후송에서는 어차피 철도는 보조적인 운송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궤간을 넓혀 큰 차량을 운용할 필요가 없었다. 덤으로 철도 공사비도 낮출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철도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두 푼은 아니다 보니, 조정에서도 일시에 많은 노선을 공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문휘 집안과 같은 부호들을 사업에 끌어들였다. 철도 부지나 건설비를 제공하면 투자로 인정해서 수익을 나눠주는 조건이었다.
“돈 많이 벌어서 좋겠소. 고형네 철도도 아편을 나르오?”
“나야 모르오. 나는 일 년에 두 번 차와 소금으로 배당을 받을 뿐이지, 화차에다 뭘 싣고 다니는지 그 적하목록까지 받는 건 아니니까.”
열차에 실제 아편을 실었다고 해도 당당히 공지하지도 않으리라는 점은 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다만 아편이 초래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들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요즘 아편을 피우는 자들이 많이 늘긴 했소. 우리 회주도 통부 군사 중에도 종종 있어서 곤란하오.
“우림군에서도 가끔 나오오. 엄히 단속하고는 있지만….그러고 보니 우리 고향에서도 제법 있다고 하더구려.”
몇몇 지주나 광산주들이 일꾼들에게 아편을 주어 중독시키고 아편을 미끼로 삼아서 계속 일을 시킨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고씨 집안에서는 그런 일은 안 하지만, 소작농 중에 스스로 아편에 빠지는 중독자가 나오는 것까지 차단할 방법은 없었다. 두 사람은 아편이 군대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했다. 도통사들의 군대야 아편에 취해 자빠지든 말든 알바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황제의 명을 직접 받드는 중앙군과 회주도통부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여기에 옆에 있는 양주도통부도.
24.
덕성도는 40년에 걸친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바다 건너에 있는 교단 본부로부터 원활한 지원은 받을 수 없었지만, 교도들의 끈끈한 관계와 신앙심이 그 고난을 이겨내도록 해주었다. 살아남기만 한 게 아니었다. 관의 탄압을 피해 지하로 더 넓고 깊게 파고들었다. 비슷한 단계를 거친 천지회나 백련교와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질하는 건 필연이었다. 분명 예수불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도를 닦고 세상을 위해 일하며 구원을 준비하자는 이타적인 단체였던 덕성도가, 그 본연의 자세 대신 순전히 세속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밀결사로 탈바꿈한 사례가 적잖다.
“그대들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붉은 옷을 입은 청년이 연단 위에서 크게 소리쳐다.
“예수불의 아우님이십니다!”
연단 밑에 선 군중이 일시에 외쳤다. 그러자 청년이 더 크게 외쳤다.
“누가 그대들에게 구원을 전하는가!”
군중이 또다시 외쳤다.
“예수불의 아우님, 천왕(天王)님이십니다!”
청년이 또 외쳤다.
“그러하다! 그러니 그대들은 나를 공경하고 내 말을 따르라!”
청년이 호령하자 곧바로 우렁찬 함성이 뒤따랐다.
“만세! 만세! 천왕님 만세!”
“천왕님 만세! 예수불 만세!”
청년은 연단 위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그 환호를 받으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과거에 한때 덕성도 접주로 활동했던 청년, 홍수전은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상제회(徘上帝會)를 창립해서 광서 지방의 산속에서 수많은 신도를 모으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홍수전은 약과 주문으로 환자의 병을 고쳐주면서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었고, 일단 모여든 사람들을 두고는 교주 노릇에 아주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지금까지 배상제회에 가입한 신도는 2만여 명에 육박하고, 성장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자기 앞에서 울면서 부르짖는 신도들을 보면서, 홍수전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이 들이 장차 십만으로 백만으로 늘어날 때 자기도 천하를 걸머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