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36
4부 220화(1836화)
1.
이별이란 언제나 아쉬운 법이다. 아무리 오래 같이 지낸 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그 감각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백 년이 넘게 살았는데도 말이다. 겨울이 끝나자마자 하진교는 하와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배를 타기 전, 태황과 중전의 앞에서 큰절을 올린 하진교가 내게도 절을 올리려 하기에 되었다고 말렸다. 그리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대와 함께 보낸 지난 몇 년이 참으로 즐거웠다.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겠구나.”
혼례 때 궁인들이 걱정하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평소 하진교의 장난기 많은 패도를 알고 있던 일부 궁인들이, 하진교가 혼례식장에 제대로 된 예복을 입는 대신에 하와국 전통 혼례복이랍시고 풀떼기와 허리천이나 두르고 나타나면 어떡하냐고 크게 걱정했었다.
“사실 그러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명주공부인도 고향 방식대로 예복을 입고 혼례를 치렀으니, 제가 그 선례를 따라도 안 될 거 없지 않았습니까?”
“참아주어서 고맙구먼. 조야가 발칵 뒤집힐 뻔했는데.”
그리고 둘이 마주 보면서 소리를 죽여 낄낄거리고 웃었다. 역시나 하진교와 나는 죽이 맞는 놀이친구다. 정말로. 생각 같아서야 하진교한테 하와국에 돌아가지 말고 한양에서 내 동무 노릇이나 하는 편이 더 즐겁지 않겠냐고 권하고 싶었다. 하진교가 디에고처럼 지차 왕자였으면야 정말 망설이지 않고 권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하진교는 왕세자였다. 게다가 모친상도 치러야 한다.
결혼 소식을 보낸 배와 엇갈리다시피 하며 하와국에서 연락이 왔을 때, 하진교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목소리로 통곡했었다. 하지만 곧 겨울이었다. 하진교 혼자라면 모를까, 아내인 현순공주도 동반하는데 위험을 무릅쓸 수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끝나자마자 가는 거다.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또 만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순행을 또 나오셔도 되고, 제가 전하를 뵈러 입조해도 되지요. 새 배가 생겼으니, 별로 먼 길도 아닐 겁니다.”
태황은 기어코 하진교에게 결혼 선물로 배를 한 척 주었다. 3백 톤급 목조 기범선, 최대 손도 8노도(怒濤) – 스페인 어로 노트(knot)를 뜻하는 Nudo에서 유래한 표현 – 까지 낼 수 있는 우수한 배다. 무장은 대구경 단포신 함포 1문에 소구경 속사포 4문을 갑판에 실었고, 승무원은 70명이다. 하진교는 이 배에 ‘코아 누이(위대한 전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하가 뵙고 싶거든 당장 이 배를 타고 달려오겠습니다. 하하.”
벌써 배가 남산만 하게는 아니어도 동네 뒷산만큼은 부푼 – 모친상 소식이 도착하기 전에 들어선 아이다 – 현순공주를 데리고, 하진교는 아주 느긋하게 배에 올랐다. 덤으로 하진교가 데리고 온 시종들과 제대하는 익위사 소속 하와병 40여 명도 동승했다. 이 병사들을 딸려 보낸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이제 슬슬 귀향하고 싶다고 한 병사들에게 거저 가는 직행 배편을 제공할 생각이었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
“만수무강하십니오, 폐하! 꼭 놀러 오십시오, 전하!”
“그래, 잘 가세!”
생각 같아서야 동진을 타고 어디 한 덕적도까지만이라도 배웅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태황이 또 배를 째고 일을 안 하기 시작한 탓에 대리청정을 맡아 매일 책성 위에 쌓이는 엄청난 업무를 처리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가을까지는 그럭저럭 일을 좀 하는 것 같던 태황은 겨울이 다가오자 이제 당연하다는 듯 일에서 손을 놓았다. 그래서 강무도 또 내가 나갔다. 웃기는 게, 이제는 삼군부에서도 으레 내가 나오겠거니 하고 알아서 준비할 정도였다.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가 태손이던 시절, 네 몸은 네가 지켜야만 하고 그러자면 평소에도 몸 쓰는 법을 익혀두어야 한다면 말고 활을 연습하라고 가르치던 태황을 말이다. 말과 활을 다루는 솜씨도 꽤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모습은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저게 10년 전의 그 사람이 맞나……’
배웅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와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태황이 정말 많이 변해서다. 그것도 퍽 안 좋은 쪽으로만 변했다. 일을 안 하는 거야 그렇다 치고, 건강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시작했다. 태황은 보위에 오르고 나서부터 운동을 게을리 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손을 놓았다. 말도 안타고 활도 안 쏜다. 사냥은 아직 나가긴 하는데, 자기는 직접 짐승을 쫓지도 않고 쏘지도 않는다. 남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사냥한 짐승을 안주 삼아 잔치만 벌인다.
운동 비슷한 거라고는 걷고 숨 쉬는 것밖에 안 하면서 산해진미를 퍼먹기만 하니, 당연히 살이 무섭게 쪘다. 태황의 키는 170이 안 되는데, 지금 체중은 24관, 90kg에 가깝다. 하진교도 체중이 80대 중반이니 비슷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진교는 태황보다 키가 세 치, 7.5cm는 크다. 나보다도 두 치쯤 크다. 게다가 전신이 근육질이다. 출렁거리는 비곗살을 전신에 두른 태황과는 비교가 안 된다.
예전 모습을 생각하면 몸 쓰는 솜씨가 없는 사람도 아닌데 왜 몇 년 새에 저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나이도 아직 젊은데. 보위에 오르더니 긴장이 확 풀린 건가? 그거 말고는 도저히 떠오르는 답이 없다. 하여간 태황은 봄이 왔는데도 편전에 복귀하지 않았다. 복귀는커녕 ‘멀리 떠난 딸이 너무 그립고 슬퍼서’ 잠시 마음을 안정시켜야겠다면서 또 금강산에 놀러 갔다. 대체 몇 번째로 가는 금강산 유람인지 기억도 안 났다.
‘백두산 유람을 안 가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젠장.’
한양에서 백두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열흘쯤 된다. 동북선 열차를 타고 길주까지 가는 데 이틀, 거기서 아직 미개통 상태인 백두산선을 타고 혜산까지 가는 데 하루, 미개통 구간을 말과 가마로 움직이는 데 이레가 걸린다. 백두산 등반을 하면 당연히 더 걸린다. 그게 힘들어서 그런지 아직은 백두산까지 가겠다는 소리는 안 한다. 하지만 백두산선이 완공되는 날이 오면 백두산 유람도 철마다 다녀올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한라산에 먼저 가려나. ‘중종께서도 한라산에 가셨는데’ 자기도 가봐야겠다는 소리를 전에 했었으니.
하여간 태황이 자리를 비웠으니 내가 또 조정을 도맡아야 했다. 이제는 내가 편전에 앉아 정사를 돌보는 데 아주 익숙해진 중신들과 올해 농사는 잘 좀 되어야겠다는 걱정을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외무부에서 급보가 들어왔다.
“전하! 하와국에서 세자를 폐하겠다고 합니다!”
“무엇이라? 하와국에서 세자를 폐한다고?”
아니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2.
봄이 되어서 뱃길이 열리자마자 하와이에서 도착한 첫 배가 싣고 온 소식치고는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이게 무슨 난데없는 연락이란 말인가.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상세히 고하라!”
“여기 표문이 있사옵니다.”
표문은 세 통이었다. 일단 하와국왕 하민상이 올린 정식 국서가 있고 그다음은 하와국에 주재하는 우리 관원들의 대표 격인 ‘왕과 공들을 앞서 가르치는 자’, 즉 왕사(王師) 윤호원 명의로 온 표문과 하와첨사 이희권 명의의 표문이었다. 만사 순서가 있는 법이니 먼저 하민상의 올린 글부터 펼쳤다. 중언부언 미사여구로 채운 서두를 눈길만 살짝 주고 빠르게 넘기니 핵심적인 내용이 적힌 후반부 내용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어리석은 자식이 불효하여 기나긴 세월 동안 집을 떠나 있으면서도 자기 소식 한 번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심지어 제 어미가 명을 다하였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니…..」
“아니, 이런 미친 인…..아니,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발언이 다 있나?”
하도 화가 나서 쌍욕이 나올 뻔했다. 하진교가 매일은 아니더라도 석 달에 한 번쯤은 꼭 편지를 쓴 걸 내가 알고 있는데 ‘소식 한 번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바로 안 돌아왔다고? 아니, 소식이 도착을 안 했는데 어떻게 가?
하지만 엄연한 현임 번왕에게 태황도 아닌 내가 쌍소리를 퍼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발언 도중에 가까스로 욕설 내용을 바꾸어 상황을 수습하고 국서를 계속 읽어나갔다. 일단 참고 끝까지 읽어보니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래서, 세자가 불효자라서 폐위하겠다고?”
하진교는 부모에 불효하고 나라에 불충하였으니 폐위하고, 현 왕비 카네카폴레이의 여러 아들 중 장남으로 올해 만 열여덟이 되는 하원교, 쿠아이와를 세자로 삼겠다는 이야기였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지 황당할 뿐이었다.
“하와국왕은 혹시 세자가 우리 폐하의 부마가 되었음을 모르고 있는가?”
“아니옵니다. 분명히 알고 있사옵니다. 표문에도 적었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언급이 있었다. ‘아무리 폐하의 부마가 되어 영광을 누린다고 해도 그 태도가 이토록 방자해져서는’ 운운하는 대목이. 그리고 이리저리 돌려서 말하긴 했는데, 요점은 ‘그 자식이 너무 건방져서 싫으니 폐위하겠다’라는 데 있었다. 덧붙이자면 ‘어차피 그놈은 하와이에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고’라는 의미의 구절도 있었다. 그러니까, 하진교가 집에 안 온다고 삐져서 폐위하겠다는 건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기분을 느끼며 두 번째 표문, 윤호원이 올린 표문을 펼쳤다. 이쪽 알맹이에는 하민상이 대체 왜 이런 난리를 쳤는가 하는 이유와 하와국 조정에서의 반응이 적혀 있었다.
“…..역시 새 중전이 욕심을 부렸나.”
칼레이아가 살아있을 때야 하진교가 자기 자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5년 동안 집에 한 번도 안 돌아가고도 아무 걱정이 없었던 이유가 그거다. 어머니를 믿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칼레이아가 사라지니 곧바로 이 사달이 났다. 보아하니 애비인 하민상이 주동해서 하진교를 폐위하려고 나선 것도 아니고, 새 왕비인 카네카폴레이가 제 아들을 보위에 올릴 욕심에 늙은 남편을 부추긴 게 분명해 보인다.
윤호원이 보고한 하와국 조정 중신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하와국 중신들은 하진교가 불효하긴 했지만 – 하와이 같은 나라에서 ‘불효’가 탄핵 사유로 인정받다니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이미 본국에서 상국의 부마가 되지 않았느냐며, 태황께서 진노하실 테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하민상은 듣지 않았다.
‘그대들은 대체 내 신하인가, 태황 폐하의 신하인가? 하와국왕은 나야! 내 후계자는 내가 정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반대했다가는 곧바로 머리가 떨어질 판이니, 하와인 대신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계속 반대한 사람은 우리 조정에서 통제역으로 보낸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 윤호원 하나뿐이었다.
‘전하. 세자께서 저지르신 잘못은 그리 큰 것도 어니고, 본인이 뉘우치시면 충분한 사소한 것들입니다. 폐세자를 논할 것이 아니라 일단 돌아온 뒤에 잘못을 뉘우치게 하시지요.’
‘그만두시오! 이 하와국의 보위에 불효자를 올릴 수는 없소!’
하민상은 어떤 반대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세자를 폐한다는 교서를 쓰도록 했다. 이제는 하와인들도 글 쓰는 법을 꽤 익힌 터라, 중종 때처럼 윤호원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서도 못 쓰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불효자를 앉힐 수 없는 자리라고……”
하와국 왕실의 개조(開祖)인 마우이 그놈은 과연 효자이면서 충신이었던가? 그놈, 섬기던 주군 등에다 칼을 꽂고 하와국을 세우지 않았던가. 나한테는 사기를 쳐서 엿을 먹였고. 심지어 후손이라는 작자들은 그 사연을 아주 자랑스럽게 역사책에 기록해두기까지 했다. 그런 놈들이 효자 운운하다니, 이건 뭔가 헛웃음이 날 수박에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세 번째 표문을 펼쳤다. 하와첨사 이희권의 보고에 다르면, 하와국 내에서 나타난 군사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섬 사이에 병력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외부에서 대량으로 무기가 반입되지도 않았다. 움직이는 건 늘 바쁜 노예사냥 부대뿐, 하와국은 태평했다.
“이놈들을 어찌하면 좋을꼬.”
생각 같아서야 헛소리하지 말고 하진교를 고이 세자로 올리라고 ‘아주 점잖게’ 쓴 편지 한 통으로 문제를 간단히 끝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임금이 아닌 이상, 이정도 중대사를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분명 태황은 내게 대리청정을 맡기면서 웬만한 사안은 다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체계대로 돌아가는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에 불과하다. 지금 이 사태와 같은 중대한 사안을 처리하려면 태황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다.
“폐하께서 돌아오실 때가 되긴 했으나, 선전관을 보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돌아오시도록 진언하도록 하시오. 이 일은 지금 결정할 수 없소.”
“예, 전하.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사태를 접하고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던 대신들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자인 내가 임의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라는 데 모두 동의한 기색이었다.
태황은 나흘 뒤에 예정보다 더 빠르게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자 기차를 타고 바로 출입할 수 있는 궁은 여기밖에 없으니, 아무래도 앞으로 이어는 안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로 놀랄 일은 그다음에 이어졌다.
“하와국왕, 그 돼지 같은 놈이 감히 내 딸을 폐서인하겠다고?!”
깜짝 놀랐다. 늘 느긋하던 태황이 이렇게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진교를 폐위하면 이론적으로는 세자빈인 현순주도 함께 폐위되어 서민으로 신분이 떨어지는 게 맞기는 하지만, 대한의 공주라는 근본까지 없어지는 건 아닌데. 기차에서 내린 태황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도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마구 화를 내는 모습이 생판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하민상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던 태황은 옥좌에 앉자마자 이렇게 호령했다.
“도저히 용사할 수 없다. 당장 하와첨사에게 명하여 하와국왕을 압송하도록 하라!”
아니, 이건 너무 나갔잖아. 그동안 번국의 내정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게 우리 대한의 기조였는데 대뜸 군대로 진압하라고? 물론 하와첨사진은 우리 억제력으로 작용하라고 설치한거긴 하다. 하지만 칼이 상대에게 겁을 줄 수 있는 건 칼집에 꽂혀 있는 동안이다. 일단 빼면 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는 도로 집어넣을 수 없다. 그게 규칙이다.
“폐하, 군사를 움직이기 전에 먼저 글을 보내 하와국왕이 잘못을 깨닫도록 효유학심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섰다. 당장 하민상을 잡아 오라는 어명에 당황한 건 나나 다른 중신들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태황의 뜻에 조금이나마 ‘개길’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태자! 너는 지금 네 누이가 폐서인이 되려는데 글줄이나 보내고 있겠다는 거냐!”
“폐하, 필시 이 표문은 하와세자가 탄 배와 도중에 엇갈렸을 터, 아직 현순공주에게 무슨 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단 하와첨사에게는 공주를 수영으로 들여 보호하라는 명만 내리시고, 하와국왕에게는 옳은 도리를 일러 깨닫게만 하소서.”
“태자께서 하시는 말씀이 옳습니다.”
“폐하, 일단 하와국왕을 편지로 꾸짖으심이 옳겠습니다.”
내가 제발 진정하시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나자 정신을 차린 신하들이 합세했다. 하지만 태황은 쉽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대들은 하와국왕 따위가 이 황실을 능멸하는데도 짐에게 참고 있으란 말인가! 번국인 하와국이 이러는데도 참아야 한다면, 송나라나 일본이 나서서 황실을 모욕하면 그때는 대체 무슨 명분으로 참으라고 할 텐가!”
전혀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태황은 똑같다고 주장했다. 그 격노를 가라앉히느라고 조정 전체가 며칠을 끙끙거리는 데 제물포에서 파발이 들어왔다.
“폐하! 하와국에서 온 표문입니다. 하와국에서 고하기를, 난적들을 제압해 그릇된 정사를 제대로 돌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 표문을 올린 사람은 국왕인 하민상이 아니고 세자인 하진교였다. 야, 엄마 상 치르러 돌아간다던 놈이 가서 무슨 짓을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