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4
1부 1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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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밀물이 들려는 참에 바람이 잦아들었다. 동아줄로 연결된 배 네 척 모두 돛을 내리고 대신 노를 저을 준비를 했다. 한숨을 쉰 군졸들이 노를 잡았다.
“저어라!”
좌선에서 깃발 신호가 올랐다. 선장들이 호령하자 수졸들이 일시에 바깥바다를 향해서 노를 저었다. 여울에 얹힌 선체가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끌린다! 저어라!”
배를 가볍게 하느라고 좌초한 4선까지 다섯 척 모두 내릴 수 있는 짐을 다 내려서 해안에 쌓았다. 만약 쌓아둔 화물을 노리고 내륙에서 도적이라도 나오면 곤란하므로, 경계를 설 군사 약간만 남기고 모두 노를 잡았다.
“힘을 내서 저어라! 배를 끌어내야 한다!”
가벼워진 선체를 밀물이 들어 올렸다. 떠오른 4선을 다른 배 네 척이 전력으로 끌어당기자 좌초해 있던 선체가 차츰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4선 뱃사람들도 배를 암초에서 떼어놓기 위해 삿대를 잡고 전력으로 갑판 위에서 바위를 밀었다.
“떴습니다!”
암초 위에 올라앉았던 4선이 마침내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열흘 가까이 붙들려 있던 암초를 벗어난 4선은 되찾은 자유를 기뻐하는 듯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고생 많았네.”
좌선을 몰아 다가간 유담년이 위로를 건넸다. 유담년에게 격려를 받은 4선 선장 박온주가 한숨을 쉬었다.
“영감께서 와주셔서 살았습니다. 저희는 정말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
4선은 다른 배들과 떨어져서 남쪽으로 너무 멀리 흘러왔다. 게다가 날이 밝지 않았는데 무리해서 해안에 배를 데려다가 얕은 여울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싣고 있던 사후선을 내려서 배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물이 빠졌을 때 군사들을 내려서 몸으로 배를 밀어내자니 될 리가 없었다.
보이는 범위 내에는 도움을 청할 토인 마을도 없었다. 무작정 내륙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서 배에서 숙식하며 유담년 일행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다행히 약속한 집결 지점보다 남쪽에 내렸으니 기다리다 보면 북쪽에서 유담년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 기다림이 열흘이었다.
“물도 없어 받아놓은 빗물을 마시고, 가져온 식량이 떨어져 교역하려고 가져온 쌀을 덜어서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낚시를 하려니 낚시도구를 가져오지 않았고, 사냥을 하려니 바닷가에는 짐승 한 마리가 내려오지 않더군요….”
“정말 고생이 많았군.”
교역용으로 가져온 낚싯바늘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낚싯줄은 적당히 변통할 수 있고, 숲이 가까우니 나무를 잘라 낚싯대를 만들면 된다. 교역품을 사용했다 해서 크게 질책을 받을만한 일도 아니었는데 4선에서는 왜 사용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좌선을 비롯한 다른 배들도 낚시에 나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토인과 교역해서 어포를 손에 넣어 식량이 넉넉했으니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처음 교역했던 마을과 그 다음 들른 마을 두 곳에서 얻은 어포를 합치면 3천근이 넘었다.
“그래도 살아있어 주어서 고마울 뿐이네. 내가 2선, 5선을 거느리고 약속 지점에서 닷새를 기다렸건만 3선만 나타났을 뿐 6선은 나타나지 않았네.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원.”
선단 여섯 척 중 이제 다섯 척이 모였다. 처음부터 같이 있던 세 척, 그리고 유담년보다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간 바람에 이틀 늦게 북에서 내려온 한 척, 그리고 4선이 다섯 번째다.
“저희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희보다 더 남쪽에 표착한 게 아닐는지요.”
“알 수 없네. 어쩌면 좌선보다 한참 북쪽에 표착해서 뒤늦게 내려왔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계속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네.”
유담년이 씁쓸한 표정으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 기다렸으면 혹시 6선이 집결지까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고 있고, 더욱이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더 기다려줄 수가 없었다. 왕명도 완수해야 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표목을 박고, 그 밑에 서찰을 넣은 호리병을 묻어 놓았네. 만약에 6선이 자네들보다 남쪽에 표착했는데 배가 망가져서 올라오지 못했을 뿐이라면 앞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겠고, 북에서 뒤늦게 오는 중이라면 그 서찰을 읽고 뒤를 따라오겠지.”
최악의 가능성은 뒤늦게 집결지에 도착한 6선이 하염없이 다른 배들을 기다리다가 전멸하는 것이다. 유담년은 그런 상황만큼은 피하기 위해서 편지를 묻어놓았다. 가능한 빨리 남쪽으로 내려와라, 가급적 천천히 움직이겠다고 말이다.
“그날 풍랑으로 잃은 인원이 열한 명일세. 그만하면 충분해. 여기에 배 한 척을 더 통째로 잃을 수는 없네.”
출발할 때 인원은 군사, 선인, 관원에다 의원 여섯 명, 유담년 본인까지 합치면 341명이다. 여기서 11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됐고, 6선에 타고 있을 50명이 더 사라지면 총 손실이 2할에 가까워진다. 너무 많은 수다.
“어서 짐을 싣고 남으로 이동하세. 전하께서 내리신 명을 달성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네.”
“예, 영감.”
다른 세 척은 어느새 해안으로 다가가 짐을 다시 싣고 있었다. 유담년은 좌선으로 하여금 해안으로 다가가게 명하면서 4선을 찾아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된 일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두 가지 고민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6호선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조선에 따라가겠다는 아이누 토인을 구할 수 있을까?
– 16 –
큼지막한 지도와 문서 한 무더기가 내 앞에 놓였다. 내 앞에 쌓인 종이뭉치를 들고 온 이를 보자 외교협상이란 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일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대국 요동부 지휘첨사 이춘미와 부여주 변경을 함께 돌며 감계 후 정계를 마쳤기에 전하께 고하고자 하옵니다.”
남곤은 얼굴이 완전히 반쪽이 되어 있었다. 이춘미를 ‘모시고’ 넉 달 가까이 만주를 누비느라 몸도 힘들었겠지만 마음고생 깨나 한 모양이었다.
“고생이 많았다. 지휘첨사가 일부러 늑장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느냐?”
“지휘첨사가 늑장을 부렸다면 도리어 우리 군사와 백성들이 편했을 것이옵니다. 황제께서 서둘러 정계를 마치라 하셨다 하면서 얼마나 재촉을 해 대는지, 수행에 나선 인마가 줄줄이 지쳐 쓰러졌습니다.”
그 보고는 나도 받았다. 평안도 관찰사가 호소하기를, 이춘미가 하도 일정을 서두르는 통에 숙소, 식사 등에 드는 접대비용은 예상한 액수보다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감계사 일행이 소요하는 물품을 운반하는데 동원된 사람과 짐승이 하도 많아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경계선을 따라 세울 표석 3백 개, 그리고 군사와 역부들이 먹을 식량과 마초를 나르느라 소와 말 5백 필이 동원되었사옵니다.”
“표석을 3백 개나?”
“지휘첨사가 그리 요구했습니다.”
부여주는 아직 돈 나올 구석이 없으니 평안도가 주머니를 털었겠군. 평안도가 그나마 재정 형편이 넉넉한 편이지만, 사행길이 해로로 바뀌면서 공무역이 중단되자 경기가 좀 나빠졌다고 들었다. 큰 부담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명나라 쪽에서 금지하지만 않는다면 의주 일대에서 호시(互市)를 열고 거기 들어가는 상인들에게 입장세를 걷는 것도 괜찮을 거다. 수출세, 수입세 모두 10%씩만 걷어도 엄청난 수입이 될 텐데.
함경도 쪽에서는 무역에 대한 제한이 사라졌다. 부여주 야인도 이제는 조선 백성이나 매한가지가 되어, 명나라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전에 하던 교역은 반쯤 밀수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당당한 국내거래가 되었다.
곧바로 나타난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야인들과의 교역을 전면 허용하자 야인들에게 사서 들여오던 모피 값이 그전보다 반 이하로 떨어졌다. 황소 한 마리에 담비 모피 석 장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원인은 의외였다.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각 부락이 가지고 있던 모피를 급매하기도 했지만, 몇몇 조선 상인들이 직접 두만강을 건너 모피를 수집하기 시작한 탓이 컸다.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장사꾼의 본능은 아무도 못 막는 모양이다. 전쟁 치른 지 한 해도 안 지난, 아직 조선군에 대한 원한이 쌓여 있을 그 동네를 겨우 경호원 십여 명 거느리고 누비고 다니다니. 나로서는 흉내 내지 못할 배짱이다.
“정계는 백두산 산기슭에서 10리 떨어진 압록강 서쪽 기슭에서 시작했사옵니다. 그 장소에서부터 백두산을 오른편에 두고 원을 그리고 돌면서 계속 표석을 세웠고, 반 바퀴를 조금 더 도니 송화강 상류인 토문강에 도착했습니다.”
남곤의 목소리를 듣자 삼천포로 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음, 확실히 미리 지도 위에서라도 경계선을 다 그어 놓고 가니 일이 편했구나. 숙종 때처럼 이 강이 맞네, 저 강이 맞네 하면서 현장에서 다퉜으면 얼마나 골치가 아팠을까.
“토문강을 따라 북상하니 지도에 나온 대로 송화강 본류가 굽이치다가 남쪽으로 확 꺾이는 모퉁이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다시 표석을 세우며 북상하니 마침내 목단강에 도달하였고, 그 자리에 마지막 표석을 세워 두 나라 사이에 정계가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합의하였사옵니다.”
“표석에는 뭐라 새겼는가. 혹시 일전에 올린 바와 다르게 했는가?”
“아닙니다. 일전에 표를 올려 고하였던 내용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였습니다.”
남곤은 표석을 새기기 전에 장계로 표석에 새길 문안을 알려왔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지휘첨사 이춘미가 황지를 받들어 조선 감계사 남곤과 더불어 변계를 조사한 뒤 압록강과 토문강, 목단강을 대국과 조선 사이의 서쪽, 중간, 북쪽 경계로 삼게 했다. 또한 강과 강 사이 땅에 표석을 세워 경계를 표시한다. 홍치 18년 10월 일.》
표석에 새길 문안이 도착한 날이 마침 홍치제의 장례에 참석했던 주문사 안침과 이충순이 돌아온 날이었다. 새로 등극한 어린 황제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는 참에 장계가 왔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었다.
“바뀐 부분이라면, 단지 공란으로 남겨두었던 건립일자를 현장에서 새겨 넣었을 뿐입니다.”
그거야 뭐 당연한 일이겠지. 아무튼 정계는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이제 부여주를 확실하게 안정화하는 단계에 들어가야겠다. 반항적인 부락은 토벌하고, 순종적인 부락은 벼슬과 은상을 내리고. 몇 년이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내 영토로 만들어나가야겠지.
그나저나 바다 건너간 놈들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무사히 도착은 했겠지? 설마 아이누랑 싸움이라도 붙진 않았을지 모르겠다. 좋은 관계 수립하고 와야 할 텐데.
– 17 –
유담년이 이끄는 선단은 여섯 번째 마을에 들러서 교역을 마쳤다. 방식은 늘 똑같이 이쪽이 해안에 상품을 갖다놓으면 토인들이 물건을 살핀 뒤 현물로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였다. 행여 토인들이 두려워할까봐 다른 네 척은 멀찍이 숨겨 두고 한 척만 마을에 접근하곤 했다.
그동안 토인들과 교역하면서 말린 해삼 백여 근과 어포 5천여 근, 모피 2백여 장을 거뒀다. 이만하면 비용 면에서는 제법 수지를 맞췄지만, 통역으로 쓸 만한 토인을 데려오라는 어명은 아직 완수하지 못했다. 손짓발짓으로는 그런 교섭이 아예 불가능했다.
헌데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이상한 변화가 있었다. 이쪽에서 내주는 교역품을 받고 나서 토인들이 치러주는 값이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점점 낮아졌다.
“이는 필시 왜인들이 남쪽에 차려놓고 있다는 장사 거점과 가까워진다는 뜻이렸다.”
이 땅이 얼마나 넓은지는 아직 모른다. 얼마나 더 가야 왜인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남쪽에 왜인들이 있음은 분명하다. 물건 값이 싸지는 이유가 왜인들이 장사하는 터와 가까워지고 있어서일 테니까 말이다.
“저놈들을 몰아내려면 더 싸게 팔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내수사에서 나온 조 서방이라는 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조선에서는 바다를 건너와야 하지만 왜 땅은 이곳에서 가깝다고 했다. 운반에 드는 경비를 생각하면 왜인들보다 싸게 공급하기 어려울 게 당연했다.
“큰 배로 많이 운반하면 경비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탐사에 동원된 배들은 모두 중맹선이다. 하려고만 하면 다음번에는 수군에서 폐기하는 대맹선이나 조운선을 가져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감께서 하신 말씀이 옳기는 합니다만, 큰 배로 오가다가 사고가 터지면 피해도 커져서 말입니다.”
조 서방이 입맛을 다셨다. 먼 바다를 오가는 항해는 위험하다. 자칫 사람이고 배고 모조리 잃을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리! 저쪽에 배가 들어옵니다!”
갑자기 뱃머리 쪽에 있던 선인 한 명이 고함을 쳤다. 유담년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배?”
“예, 커다란 뱁니다!”
아이누 어부들이 타는 어선은 작은 조각배다. 절대 크다고 말할 크기가 아니다. 조 서방을 거느리고 급히 뱃머리로 가보니, 어딘가 눈에 익은 배 한 척이 남쪽에 있는 갑(岬)을 돌아서 아이누 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배 위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본 유담년이 눈을 부릅떴다.
“조 서방! 저 배는 왜선이 아닌가?”
“틀림없습니다. 왜선입니다!”
드디어 만났다. 왜인들이다! 유담년이 곧바로 지시했다.
“통사! 당장 이리 오라! 군사들은 즉시 갑판 아래로 내려가서 무기를 준비하라! 배 위에는 오직 선인들만 남도록 하라. 김 사정! 군사 한 사람을 시켜서 놈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배 뒤쪽에서 신기전을 준비하게 하라!”
유담년은 명령을 내린 뒤 천리경을 들어 왜선을 세세히 살폈다. 저쪽에서도 이제 이쪽을 발견했는지 타고 있는 왜인들이 법석을 떨며 갑판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배는 크기가 이쪽과 비슷했고, 타고 있는 사람 숫자는 서른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배를 왜선 방향으로 돌려라! 일단 이야기는 한 번 해보도록 하자.”
타공이 키를 돌리자 좌선이 방향을 돌렸다. 마침 바람은 이쪽에 순풍이었다. 왜선의 모습이 천천히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