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53
4부 237화(1853화)
6.
내가 각성하고 선황이 죽을 때까지 지난 12년 동안, 홍씨와 나는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였다. 딱히 신경을 쓸 필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가끔 보는 홍씨는 선황의 후궁A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선황이 후궁을 몇 명이나 들이든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뭐 저따위로 색을 밝히는 놈이 다 있을까 하면서 속으로 혀나 차는 거 말고는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홍씨도 내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홍씨한테 외아들인 석왕 이헌이 있기는 하지만,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데다 자신이 미주 출신이니 자기 아들이 보위에 오르는 일 따위는 절대로 꿈도 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홍씨는 자기 작위도 빈으로 만족했다. 후궁의 봉작으로 빈보다 더 높은 비, 귀비, 황귀비 등의 칭호가 분명히 있는데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허울뿐인 칭호보다는 실질적인 혜택, 재물이 더 좋다고 했다. 지금 비 칭호도 선황 죽고 나서 비로소 나한테 받은 거다. 선황이 자기 원하는 대로 전부 맞춰주니 홍씨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 풍족하게 살았지만…..엉뚱하게 다른 후궁들에게 유탄이 튀었다. 선황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이 고작 빈에 머물러 있으니 다른 후궁들도 빈 이상으로 봉작이 오르지 않는 거다.
하지만 홍씨는 다른 후궁들이 죄다 자기를 원망하든 말든, 두 사람이던 중전 모두 자기를 경계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에 대한 남편의 총애는 영원할 터였으니까. 그렇게 믿고 20년을 살았으니까. 그렇게 자신감을 가질 만도 했다. 여자 외모에 환장하는 선황이 20년 동안 가장 총애하던 상대 아닌가. 올해 나이가 만 35세라지만, 아직도 외모건 몸매건 자기보다 아홉 살이나 더 어린 태후 박씨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 저것도 참 큰 복이다.
“대한의 지존이신 주상 폐하를 뵙나이다.”
헌데 내게 인사를 올리는 홍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자기 자식 중 가장 맏이인 현순공주와 사위인 하진교를 동반하고 왔다. 심지어 하와국 원자가 될 외손자까지 데려왔다. 대체 이 일가족 단체 방문은 뭐란 말인가.
“어쩐 일로 경희궁까지 오셨소?”
분명 홍씨는 아직 어린 남매를 데리고 경복궁에서 지내고 있을 터였다. 조만간 창경궁에 들어가겠지만 그 세부는 태후에게 맡겼다. 그러니 혹 불만이 있더라도 나한테 와서 따질 건 없을 텐데.
“폐하. 신첩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고향?!”
아니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황당해서 빤히 쳐다보니까 갑자기 영롱한 두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 두 방울이 도르르 흐른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지난 20여 년, 신첩은 오직 돌아가신 선황 폐하의 사랑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세상을 뜨시자마자 이토록 신세가 기구해졌으니, 어찌 계속 버티며 살겠습니까?”
훌쩍이며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황태후가 선대 후궁들에게 처소를 배분하면서 갑질을 제대로 한 모양이다. 자기와 친분이 두터운 후궁에게는 넓고 좋은 전각을 배정하고 사이가 나쁜 후궁에게는 안 좋은 처소를 주었다고 한다. 전에도 언급한 듯하지만, 황태후는 선황이 생전에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녀도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공연히 다투다가 남편에게 밉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하니 당연히 중전의 권위를 세워 내명부를 장악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보위에 오른 나는 확실하게 황태후의 손을 들어주었다. 황태후 박씨로서는 눈치 따위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고, 아주 후련하게 화를 풀었다. 과거 선황의 총애를 내세워 으스댔고, ‘미주 촌것’이라 싫어하던 홍씨는 좋은 표적이었다.
“신첩보다 살림이 적고 거느린 아이가 적은 이들에게도 넓고 편안한 처소를 내리셨으면서 제게는 작고 좁은 처소를 주고 지내라 하시며 어려움을 청해도 듣지 않으시니, 어찌 신첩이 그 뜻을 모르겠사옵니까. 황태후께서 출궁(出宮)하라고 제게 명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본래 조선의 법도에 따르면 선왕의 후궁은 왕실에서 궁(宮)을 별도로 마련해서 내보내는 게 관습이었다. 세종대왕이 태종의 후궁들을 의빈궁(懿嬪宮)에서 거처하게 한 게 시초다. 하지만 무종 때 내가 그 관습을 바꿨다. 나는 창경궁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성종의 후궁들을 창경궁에 몰아넣었고, 아들이 혼인해서 분가하면 아들의 집에 가서 살도록 했다.
당연히 이건 법도가 아니라고 반발하는 신하들이 있었으나, 당시 ?ㅁ뮌?워낙 살벌한지라 그 반발은 강경하지는 못했다. 사화 때문에 수시로 칼춤이 벌어지고 줄줄이 사람 모가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겨우 그깟 후궁들의 처소 분제가 얼마나 중요했겠는가. 더구나 창경궁에 갇혀 있던 후궁 중 숙의 홍씨 일가는 진짜로 역모죄로 걸려서 피를 보는 지경까지 갔다. 그러니 더더욱 처소 문제 따위로 나를 귀찮게 구는 이가 없을 수밖에.
그 뒤로 관습이 바뀌었다. 상희가 욱이네 집에서 노후를 보냈듯이, 선대 임금의 후궁들은 분가한 아들의 집에서 거처하는 게 새 관례가 되었다. 아들이 없는 후궁들만 별도로 처소를 마련해주고 여생을 보내도록 했다. 이 외로운 후궁들을 보낸 처소가 자수궁(慈壽宮)이다.
자수궁은 그다지 크지는 않다. 면적이 60칸 정도 되는 작은 궁으로, 너덧 명 정도 지내면 적당한 규모다. 임금이 죽은 뒤에, 아들도 없이 남은 나이 든 후궁들이 들어가 사는 곳이니 규모가 클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조부의 후궁 두 사람이 아직 남아 살고 있다. 그 조용한 장소에 열두 명이나 되는 선황의 후궁과 스무 명이나 되는 그 소생들까지 집어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자수궁 대신 창경궁에 집어넣겠다고 계획한 거고, 이런 잡음이 생길 줄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태후께서 정해주신 방 두 칸밖에 안 되는 처소에 들어가려면 선황께서 내리신 하사품을 다 버려야 합니다. 더구나 석왕과 옹주는 남매지간이라고 하나 남녀가 유별하니 그 처소를 달라해야 하는데 그럴 방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태후께서 명을 거두지 않으시니……”
이러니저러니 죽 늘어놓은 변명의 골자는 황태후가 괴롭혀서 서러워서 못 살겠으니 그만 바다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남은 두 자녀가 모두 혼인하면 헌이 집에 가서 살게 될 텐데, 그냥 미리 나가는 셈 쳐달라나. 그 호소를 들으니 일단 황태후에게 짜증이 좀 났다. 창경궁에 방이 수백 칸인데 공간 좀 넉넉히 내주지, 홍씨한테 옛날에 앙심 좀 품었다고 이런 식으로 앙갚음해서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냐. 아무리 자기가 내명부의 큰 어른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태후에 대한 짜증과 별개로, 홍씨의 요청은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자칫하면 나라를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위험한 요구라서다. 지금 홍씨가 고향인 미주에 가는 건 ‘선황이 죽자마자 황실에서 소박맞았다’라고 천하에 공표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미주 민심이 동요할 게 뻔하다. 그러니 집에 돌아가라고 허락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민심만 추락할까? 황실 체면에 먹칠할 수도 있다. 아직 나이도 제법 젊고, 미모도 여전한 홍씨가 미주에 건너가서 눈맞는 사내라도 생긴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다. 도저히 그 후폭풍에 대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홍씨가 비록 본국에 와서 20년을 살았다지만 그 근본은 미주인이다. 그리고 애초에 미주 풍토가 여자가 몇 번을 혼인하든 꺼리지 않는다. 본국에서야 눈 씻고 찾아도 임금의 후궁을 건드릴 배짱이 있는 사내가 없겠지만, 미주에서는 혹 모를 일이다.
서양이라면야 상관없겠지. 국왕의 정부들은 모두 법적으로는 유부녀이고, 국왕과의 관계를 끝낸 뒤에는 진짜 남편을 따로 얻어서 함께 여생을 보내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대한에서는 그게 안 된다. 임금과 정식으로 ‘혼인’했기 때문이다. 홍씨만이 아니라 헌이도 문제다. 홍씨가 그 아이를 데리고 미주로 건너가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평분자들이 그 애를 꼭두각시 임금으로 내세워 미주 독립 내지는 분봉을 요구하며 소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미주에서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본국 민심은 어떨까. 미주 촌것들이 황실 법도도 모르고 멋대로 군다고, 배은망덕하다고 욕설을 퍼붓기 딱 좋으 상황이다. 그것 때문에라도 홍씨가 친정으로 돌아가겠다는 망발은 더더욱 부릴 수 없게 해야 한다. 일단 못을 박았다.
“황비께서는 혹시 석왕에게 보관(寶冠)을 씌워주고 싶은 것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신첩은 그저 주상께 제가 겪는 고난을 호소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홍씨는 계속 훌쩍이면서 말을 이었다. 헌데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표정이 보이지 않아 이게 진심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홍씨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후회스러웠다. 평소에 관찰했다면 연기인지 아닌지 금방 알아봤을 텐데.
“황태후께서 하신 일을 폐하께 아뢰는 것이 예에 어긋나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참고 견디기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아뢰니, 부디 헤아려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 상황을 상식대로 해결하자면 ‘사정은 알겠는데, 태후께서 맡으신 일이니까 태후께 가서 다시 한 번 잘 아뢰어 보라’라고 좋게 답하고 끝내면 된다. 윽박질러 쫓아낼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홍씨가 ‘미주인들의 인심’이라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어서다. 그리고 홍씨가 데려온 두 혹도 문제였다. 이 혹들이 홍씨를 위해서 아주 간곡하게 선처를 요구하고 나섰다.
“폐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바다를 건너가 혼인한 이 누이를 가엾게 여겨서라도 황지께 조금만 좋은 처소를 내려주소서. 창경궁을 통째로 주십사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작은 전각 하나면 족합니다.”
“폐하. 제 낯을 보아서라도 황비께 좋은 처소를 좀 내어주소서. 그리 힘든 일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야 이자식아. 아무리 여편네가 마음에 들어도 그렇지, 벌써 이렇게 아내한테 휘둘리면서 공처가 노릇을 하면 어쩔 셈이냐? 내가 이런 부탁이나 들어주려고 네 녀석이랑 친하게 지낸 게 아닌데……!
“태후께 아뢰어 보겠으니 그만 물러가도록 하라.”
정말이지 하잘것없는 일인데다 요구조건도 그리 크지 않아서, 하진교의 얼굴을 보아 일단 좋은 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홍씨에게 경고하는 건 잊지 않았다.
“그대는 선황의 승은을 입은 몸이니 함부로 도성을 벗어나서는 아니 되오, 만약 조정이나 중추원에서 오늘 그대의 발언에 관해 알게 된다면 중신들이 그대의 출신을 거론하면서 이건 분명 석왕을 옹립하려는 반역이라고, 당장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들고 일어날 거요.”
빈말이 아니다. 나니까 좋은 말로 달래서 주저앉혔지, 조정 중신들이 들었으면 하진교가 번왕이건 뭐건 그냥 넘어가지 않았으리라.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선황 폐하의 은총을 입은 몸으로 어찌 삿된 마음을 품고 흉계를 꾸미겠습니까? 저는 그저 선황께서 하사하신 물품들을 고이 지키면서 석왕과 옹주가 편안히 지내도록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홍씨가 허겁지겁 변명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약간 후련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적어도 당장 미주 친정에 편지를 보내서 자기가 구박받고 사느니 어쩌느니 하고 호소할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7.
나는 별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관심을 가지고 홍씨의 행동 방식을 잘 살핀 사람이 내 옆에 하나 있었다. 중전 권씨는 이불 속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단호하게 판단을 내렸다.
“그건 순전히 폐하 앞에서 꾸민 태도일 뿐이옵니다. 정말로 미주로 돌아갈 생각 같은 건 먼지만큼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중전의 설명은 간단했다. 홍씨가 20년 동안 선황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게 순전히 미모만 가지고 가능했겠냐며, 먼저 자리를 잡은 선임들을 쳐내고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후임들을 짓밟으면서 이뤄낸 견제와 정치질의 성과라고 말이다.
“황빈이 처음 입궁했을 때야 후궁에서 인맥이 부족하고 영향력도 약했지요. 하지만 선황 폐하의 총애를 받으면서 점점 위세가 강해졌다고 합니다.”
미주 출신으로서 갖는 여러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홍씨는 승승장구했다. 선황이 원체 심한 호색한이다 보니 후궁 숫자를 계속 늘리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지만, 자기를 그중 맨 위에 두도록 조정하는 데는 선공했다.
“오늘 낮에 폐하를 뵈러 온 행동만 해도 그렇사옵니다. 폐하께서 하와국왕과 친분이 무척 깊으심을 알고 일부러 대동한 게 분명합니다. 자기가 법도를 어긴 데 대해 폐하께서 아무리 화가 나셔도 하와국왕 앞에서 자기를 험하게 대하지 못하리라고 계산했겠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중전은 이번 일에서 황태후가 조금 심했던 면은 있지만 그렇다고 홍씨가 오늘 한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홍씨의 요청을 들어주되 황태후의 체면도 살리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태후께 아뢰어 석왕의 혼사를 서두르시옵소서. 석왕의 나이 올해 열둘이니, 바로 혼사를 추진하면 올해 안에 보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지금 처소가 혼인을 준비하기에 너무 좁다는 명분을 내세워 태후마마의 명으로 처소를 옮겨줄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흠…..그러면 확실히 어마마마께서 체면을 상해 가며 일구이언하실 필요는 없게 되겠구려. 좋은 생각이오.”
확실히 중전은 처조모에게 조기교육을 받은 덕분으로 후궁에서의 심리전에 정통했다. 이 능력도 쉽게 얻기 힘든 거다, 정말. 홍씨의 처소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화제가 하진교로 옮겨갔다. 웬만큼 재미있는 일이 아니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놈이 절대 재미있는 일이 아닌 장모의 민원 제기에 따라온 걸 보면 이건 분명히 왕비가, 아내인 현순공주가 나서서 끌고 온 거라고.
“정말 하와국왕 부부간에 의가 좋은 모양이옵니다. 아내와 의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한다는데, 감히 폐하께 청을 올리는 자리까지 함께하지 않았사옵니까. 폐하께서 작정하고 역정을 내시면 얼마나 무서우신지 누구보다 잘 알 사람인데도요.”
내가 중전 앞에서 딱히 크게 화를 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중전이 이런 말을 하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누구 남한테 화를 내는 장면이라도 본 건가. 중전은 내가 마음속으로 당황하는 기색은 깨닫지 못한 듯 했다. 대신에 내 가슴에 푹 안긴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폐하. 신첩은 하와왕비인 현순공주가 부럽사옵니다. 지금 논란이 된 황빈의 처소 문제와 별개로 말이옵니다.”
“무엇이 그리 부러우시오?”
“혼인하자마자 후사를 얻어 왕실의 기틀을 단단히 하지 않았사옵니까. 신첩은 무려 9년째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옵니다.”
그 문제라면 내가 되레 미안해해야 할 일이지….중전은 늘 준비되어 있는데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남편 구실을 제대로 못 한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긴 세월이 그냥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리라. 국상을 마무리하고 임금으로써 완전히 조정에서 자리를 잡고 보니, 마음가짐이 확 달라졌다. 대리청정 시절과 달리 정신적 피로가 격감했다.
물론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양 자체는 태황이 살아있을 때보다 늘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전 장조, 중종 때도 다 하던 거다. 그보다는 지위에 따른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되어 내 자리가 확고해진 데서 오는 안정감 쪽이 더 큰 것 같다. 마음이 안정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다른 데 정신을 쏟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용히 중전을 끌어안으며 옷고름을 풀었다.
“폐하…….?”
“선황 폐하의 탈상을 한 지도 석 달이 넘었으니, 이제 슬슬 부부의 정을 나누어도 되지 않겠소. 내년에는 선황 폐하의 영전에 손자를 보여드리도록 해봅시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중전의 얼굴에 홍조가 올라온 게 느껴졌다. 여름밤은 너무 짧으니,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려면 서둘러야 할 듯했다.
어제 연재분에서 실수가 있는데, 창경궁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할 이복동생의 수는 24명이 아니라 19명입니다. 친동생인 운이와 황태후 소생 4명은 적자니까 경희궁이나 경복궁에서 계속 지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