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56
4부 240화(1856화)
13.
고래기름을 대체할 자원으로써 석유 채굴은 꼭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물론 탄소 배출로 지구온난화를 앞당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좀 생기기는 하지만, 고래 자원이 보존됨으로 인해서 고정되는 탄소의 양도 만만찮으므로 적당히 상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래가 탄소를 고정한다는 건 별 게 아니다. 고래 배설물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증식하게 하는 양분이 되고, 이들이 광합성을 하면 대기 중의 탄소가 줄어든다. 그리고 거대한 고래 사체가 해저에 가라앉으면서 탄소를 침전시킨다.
그러니 고래 수십만 마리를 구할 수 있다면 줄잡아 수천만 톤의 탄소를 대기 중에서 없앨 수 있다. 그만하면 석유 좀 미리 개발하면서 나오는 탄소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석탄으로 삼림을 보존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폴레옹에게 석유로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들어가자 석유 사업은 내 생각대로 진행이 안 됐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날아온 독촉장이다. 나폴레옹은 5년 동안 사업에 진전이 없다는 데 매우 큰 유감을 표했다.
첨언해 두지만, 나폴레옹이 이렇게 국정에 집중한다고 해서 아들의 죽음에 관해 슬퍼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낸 아들의 부고가 바다 건너에서 처음 전해졌을 때는 아예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 늙다리가 이제 내 아들을 아예 세상에서 숨겨버릴 생각인가!”
나폴레옹 측의 황태자 구출 시도에 질린 나머지, 그들이 구출할 대상을 아예 숨겨버리려 헛소문을 내는 게 아니냐며 현실을 부정하는 게 나폴레옹의 첫 반응이었다고 한다. 자식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은 부모가 보일 법한 태도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측에서 그렇게까지 일을 부풀릴 이유가 없다는 건 나폴레옹도 알았다. 결국 그로서도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은 세간의 예상과 달랐다.
“짐의 아들 로마왕은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살해당했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2세의 죽음이 사고사도 자살도 아니고 암살이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부친을 찾아 탈출하려는 시도를 반복하자 격분한 외조부 프란츠 2세가 부하들을 시켜 몰래 살해했다는 참신하면서도 황당한 주장이었다. 나폴레옹은 상해당한 황태자를 위해서 누벨 프랑스의 모든 성당에서 성대한 추모 미사를 올리도록 했다. 이때쯤에는 황태자가 실은 자살한 거라는 소문이 바다를 건너 그의 귀에도 흘러들어왔으나 나폴레옹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 자살 따위를 할 만큼 나약할 리가 없어! 그 아이는 오스트리아 궁정에 갇혀서 살해당한 거야!”
신올랑 주재 공사 민상필이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누벨 프랑스 내 일각에서는 황태자가 자살했다고 하면 영혼을 위로할 미사를 드려 줄 수 없으니까 황제가 ‘내 아들은 자살한 게 아니라 살해당한 거’라고 우긴다는 소문도 돈 모양이다.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 하여간 아들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올린 나폴레옹은 이 사건을 겪은 데서 초래된 분노와 원망을 종이에 휘갈겼다. 그리고 수십 통의 사본을 만들어 유럽 전역의 왕실에 뿌렸다.
“짐은 당장이라도 군대를 몰아 빈을 공략하고 그 주인을 붙잡아 내 아들의 영전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누벨 프랑스 제국의 힘이 아직 미흡한 관계로 이를 실행에 옮길 수가 없다. 하지만 천륜을 저버린 오스트리아 황제는 천벌을 받으리라!”
무시무시한 저주의 표현이 가득한 이 협박문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인 이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나폴레옹이 신대륙의 패권을 쥐었을지는 몰라도 구대륙을 위협할 힘까지는 없다는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실제적인 위협이 안 된다고 기분까지 안 나쁜 건 아니다. 특히 당사자인 프란츠 2세는 더더욱 그랬다. 나폴레옹의 협박장을 받은 프란츠 2세는 극대노 했다고 하며, 그로부터 몇 달 안 가서 황제가 사망한 것도 나폴레옹의 편지 탓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마 나폴레옹이 아들의 복수를 위해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하겠다고 나서지 않은 것도 그 탓일지 모란다. ‘복수할 대상’이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그것도 자기 편지를 받고. 제위를 물려받은 큰처남 페르디난트 2세에게 대신 복수할 것도 없다. 페르디난트 2세는 동생보다 나을 게 없는 천치에다 간질 환자이기까지 하니, 나폴레옹으로서는 건드리고 싶은 생각조차 안 드는 편이 당연하다.
하여간 중요한 건 올해로 66세가 된 나폴레옹이 아들의 복수를 위해 미쳐 날뛰기보다는 누벨 프랑스를 더욱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결심했다는 부분이겠다. 통치를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한층 더 열을 올리는 게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겠지. 석유 문제에 관한 관심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나로서는 내가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입이 열 개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고 말이다.
“귀 공사는 이 문제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소?”
“황제께서 매우 조바심을 내고 계신다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나폴레옹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입을 다물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성격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제 곧 텍사스의 황야에서 ‘인디언 기름’이 쏟아져 나올 거라며, 그 기름을 팔면 누벨 프랑스 전체가 돈방석에 앉을 거라고 동네방네 떠들며 투자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을 그냥 석유 사업이 시작될 때까지 잘 보관만 했다면 모르겠지만…..이미 다 써버렸다는 게 문제다. 그것도 석유 사업이 아니라 철도 공사에 썼다. 대륙횡단철도 공사에 쓰려고 준비한 돈이 떨어지자 석유 사업에 쓰겠다고 돈을 모아서는 거기 부은 거다.
“기름이 어서 나오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됩니다. 국내에서 모은 돈도 돈이지만, 미합중국 은행에서 대출한 돈도 있어서……”
누벨 프랑스는 국가 규모에 비해서 군대 규모가 크다 보니 늘 지출이 수입을 초과한다. 현재 누벨 프랑스 정부에서 지고 있는 부채가 군대 유지비를 빼고도 3천에서 4천만 달러쯤 될 거다. 하지만 통치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폴레옹이다 보니 아무도 독촉을 못 할 뿐.
나폴레옹은 유럽에서도 예사로 남의 돈을 떼먹은 전적이 있다. 왕정 때부터 프랑스 정부 채권의 신용이 워낙 낮다 보니 국가 대출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대신 점령지에서의 약탈과 갈취로 전쟁 자금을 조달했었다. 하지만 그 수법은 이제는 쓸 수 없으니 말이다.
유럽 은행들이라면 나폴레옹이 무슨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워도 절대 대출을 안 해줬겠지. 하지만 미국 은행들은 나폴레옹을 잘 몰랐고, 우리와 함께하는 사업이라니까 땅에서 기름을 뽑겠다는 황당한 사업 계획을 보고도 선뜻 대출해준 모양이다. 그리고 나폴레옹도 지금은 예전처럼 배짱을 보릴 수 없는 처지다. 지금 누벨 프랑스에게,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접국이 미국이다. 그러니 미국 은행으로부터 빌려온 막대한 돈을 떼먹어버렸다가는 외교적으로 심각하게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니 저쪽을 안심시키려면 당장 기름을 내놓거나 아니면 곧 기름이 쏟아진다는 명확한 전망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아니면 현금으로 이자를 내놓거나. 문제는 내가 당장 기름을 쏟아낼 수 없다는 데 있다. 나폴레옹에게도 이미 편지를 보내서 몇 차례 설명했건만, 그 조급한 성정이 참지를 못하고 재촉하는 편지를 보낸 거다.
“그것이…..당장은 좀 어렵소. 굴착을 맡아야 할 기술진이 지금 한참 다른 일을 하는 중이라 말이오.”
정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 정말 이건 내 탓이 아니라고!
14.
석유를 파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가 굴착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이다. 이 작업에서는 사천에서 활동하는 염정(鹽井) 파는 기술자들을 능가할 솜씨를 갖춘 이들이 없다. 그리고 사천은 지금 청나라 영토다. 그래서 3년 전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청나라 황태자 덕명에게 부탁했다. 염정을 파는 데 익숙한 기술진을 보내달라고 말이다. 덕명은 흔쾌히 내 부탁을 수락했고, 30명이나 되는 염정 기술자를 보내주었다. 다만 바로는 안 되고 2년이 거렸다.
겨우 기술자 30명을 파송에 2년이나 걸린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청나라 조정에서 내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를 두고서 한참 논의를 벌였고, 사천의 상황이 원체 혼란스럽다보니 통과된 뒤에도 인원을 선발해서 데리고 나오는 작업에 시간을 잡아먹은 탓이다. 하지만 2년 만에 도착한 이 기술진도 곧바로 미주로 보낼 수 없었다. 그해에 터진 사건이 소왕저 방화사건과 그에 이은 ‘남응중의 난’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일본과의 국혼 문제도 연이어 해결해야 했다. 정신없이 어영부영하는 사이 겨울이 되어 뱃길이 끊기고 말았다.
다음 해, 광덕 4년(1833) 봄이 되면서 뱃길이 열리긴 했는데…..이번에는 조정에서 이들의 효용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의견이 나왔다. 정말이지 산 넘어서 산이었다.
“땅 밑에서 기름을 뽑아낸다는 허황한 말을 정녕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땅에서 기름을 얻는 내용이 있고, 후한서(後漢書)에서 땅에서 캔 비즙(肥汁)을 태우면 아주 밝은 빛이 난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진의 영화 연간에 땅에 관을 꽂아 기름을 퍼낸 바가 알려져 있소. 그런데 공은 어찌 허황한 말이라 하시오.”
다만 이것들은 전부 옛 기록이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석유를 따로 채굴하지 않는다. 그런 탓으로 옛 기록을 전거로 삼아 석유 시추 사업을 정당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먼 옛날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록은 아무래도 신빙성을 의심받기 쉬운 탓이다. 그렇다 보니 조정에서는 이들을 텍사스에 보내 기름을 뽑겠다는 내 계획을 선뜻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런 공박이 있었다.
“저들을 테하스에 보냈는데 혹시 기름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위신이 크게 깎일 것입니다. 그러니 보내기 전에 기름을 찾아보라 하여 그 솜씨를 확인한 뒤에 보냄이 옳습니다.”
“그 기름을 어디서 찾는단 말이오?”
“그야 우리 땅에서 찾아야지요. 중원에도 석유가 있고 미주에도 석유가 있다면 우리 땅인 동토(東土)에는 왜 없겠습니까?”
기술자들 솜씨를 따지기 전에, 한반도에는 애초에 석유가 없는데? 그런데 태황이 그 말을 듣고 솔깃한 태도를 보였다. 아니, 겨우내 안 나오다가 나온 편전에서 갑자기 왜 참견하고 나섰는지.
“그렇지. 우리 강토에 석유가 없으란 법도 없지. 양강 이남에는 없는 게 아마 확실하지만, 양강 이북의 북한 땅에는 석유가 있을 수도 있다. 기술자를 불러온 김에 찾아보도록 하자.”
누벨 프랑스에 보낼 기술자를 우리가 먼저 써서 석유를 찾자니, 이거 나폴레옹 열성팬인 태황이 보여도 되는 태도인가. 내가 미주에서 돌아온 뒤에 나폴레옹과의 협약 결과에 관해 보고하면서 석유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한껏 부풀리긴 했지만, 팬이 저래도 되나?
“저…..폐하. 우리 땅에서 석유를 찾으실 거라면 청국에 기술자를 더 보내달라고 청하면 될 일입니다. 신불랑과 약조한 바가 있는데 일을 늦춘다면 저쪽에서 크게 실망할 겁니다.”
“태자야, 청제가 2년이나 걸려서 기껏 보내준 인원이 겨우 서른인데, 또 보내달라고 하면 또 2년이 걸릴 것 아니냐. 그러느니 석유가 있는지 확인하고 우리 기술자들을 가르치게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태황은 양강 이남, 즉 한반도 땅에 석유가 없다는 건 지난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석유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논리로 정당화했다. 그리고 양강 이북, 즉 만주와 연해주는 땅이 넓고 사람은 적어서 아직 제대로 찾아보지 못한 땅이 많으니 조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청인 기술자들로 하여금 북한 땅에서 석유를 철저히 찾아보게 하라. 신불랑에 보내는 건 그들이 석유를 찾아내서 자기네 실력을 입증한 뒤로 하겠다.”
태황이 이렇게 못을 박아 버리니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결국 기껏 사천에서 데려온 염정 기술자 30명은 만주 일대를 돌면서 석유가 묻힌 곳을 찾게 되었다. 물론 기술 습득을 위해 우리 측 인원들이 왕창 따라붙었다. 사천에서 온 기술자들과 말이 잘 통하는 편이 일을 배우기 더 좋을 거라고 해서 일부러 모두 대명동 출신들로 뽑았다.
“제기랄, 그 허송세월을 생각하면……”
선황은 그 기술자들을 만주 한복판으로 보냈다. 내가 기왕 찾을 거라면 거기보다는 요하 하구 쪽에서 찾자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석유가 있다면 분명히 그쪽에 있을 거라면서.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수상하네.’
선황이 절말 현대인이었다면, 석유를 찾겠다고 만주 한복판을 파헤친 것도 설명이 된다. 중국에 있는 유전 중에 현대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유전, 대경유전이 거기 있으니까. 하지만 대경유전은 매장량은 많아도 파내기가 어렵다. 지금 기술로는 파낼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 기름이 있어서다. 원래 역사에서도 196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채굴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선황이 현대인이었다면, 대경유전의 위치는 알아도 깊이는 몰랐다면, 요하유전은 아예 그 존재를 몰랐다면 그런 행동이 다 설명된다. 요하유전은 대경유전과 비교하면 훨씬 인지도가 낮았고, 대경유전이 얼마나 깊이 파고 들어갔는지 같은 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기껏 청나라에서 데려온 염정 채굴 기술자들은 1년이 넘는 시간을 만주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허송세월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폴레옹에게 기술자들의 실력을 검증하느라 시간이 걸린다고 사정을 꾸며서 알리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다.
사천에서 온 기술자들은 만주 한복판의 지형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몇 군데서 시추를 시도하기는 했다. 하지만 당연히 석유는커녕 가치 있는 소금물 한 방울 못 찾았다. 그냥 진짜로 물이 나오는 우물만 몇 개 파고 말았다. 하지만 선황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소득 없는 고생이 끝난 건 선황이 금강산에서 횡사한 뒤였다. 그제야 이들을 만주에서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텍사스에 가서 실패하면 나라 망신이라는 중신들의 주장은 여전했고, 우리 땅 어디에서든 석유를 찾아야만 이들의 실력을 믿겠다는 상황이었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었다. 올해 봄 얼음이 녹자마자 이들을 요하 하구로 보내서 그쪽에서 유전을 찾게 했다. 그러자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사천에서 천연가스를 캐다가 석유를 접한 경험이 있는 이 기술자들은 땅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면서 곧바로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성과가 나오려는 참이다.
“공무대신, 요하에서 기름이 터지면 조정에서도 반대가 수그러들 테니, 바로 신불랑국에 사람과 자재를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시오.”
“예, 폐하.”
파이프로 쓸 굵고 긴 대나무와 그 끝에 굴착용으로 박을 강철 칼날 같은 거. 그런 것들은 텍사스 현지에서 구할 만한 물건이 아니니 본국에서 실어 보낸다. 아직은 대륙 횡단 열차가 개통이 안 됐으니 아카풀코와 베라크루스를 거쳐서 보내는 게 가장 빠르겠지. 채굴이 성공해도 철도가 완성될 때까지는 생산한 석유를 우리 쪽으로 운반할 수 없는 게 유감이다. 당분간은 생산한 전량을 누벨 프랑스 측에 넘기는 수밖에 없다. 뭐, 요하에서 캔 석유만 해도 본국에서 쓸 분량은 충당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