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6
1부 186화
– 18 –
집어던져진 두루마리가 마룻바닥 위를 굴렀다. 도승지 권균이 움찔하고 목을 움츠렸다.
“이 따위 상소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가?”
“죄, 죄송하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삼사의 대간들을 포함한 조정 신료들이 올리는 상소가 아니라, 삼남의 유생들이 올리는 상소라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난데없이 상소 폭탄이 터진 이유는 무묘 건립 때문이다. 여러 달 전에 병조판서 임사홍을 시켜 무묘를 건립하게 한 바, 훈련원 일대에 토지를 매입해서 공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수용하는 지역 주민이나 지주에게는 시가에 따라 보상금을 주게 했다. 난 연산군이 아니니까.
연산군은 무묘도 아니고 자기가 놀아날 놀이터를 지으면서 집과 토지를 강제수용하고 일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나마 자기랑 친한 제안대군 집 같은 경우에는 집값을 치러준 듯한데, 강제로 집을 뺏어놓고 그 뒤에 집값을 좀 쳐준들 상대가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하여튼 무묘 건립은 무관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고 군사로 동원되는 일반 백성들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사업이다. 그래서 조정 대신들도 별 말이 없는데, 한갓 지방 유생들 따위가 반대하고 나서다니.
“전하께서는 무묘에 무성왕 태공망을 모시기로 정하셨사옵니다. 허나, 선왕 때 무묘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논란이 있었듯 무성왕의 병법은 권모술수이니 옳지 않다는 말을 하는 유생들이 적지 않사옵니다.”
“권모술수라! 그럼 인의를 내세우던 소열이 한 황실의 위업을 회복하는 대업을 이루었느냐? 삼국으로 나뉜 혼란을 정리한 이는 결국 권모술수를 쓰는 데 망설이지 않던 위나라 무제였다. 비록 무제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 후예들이 뜻을 이루지 않았느냐!”
뭐, 굳이 따지자면 조씨가 아니라 사마씨로 정권이 넘어간 다음에야 삼국을 통일하긴 했지. 하지만 조씨나 사마씨나, 그 본질은 똑같은 인간들 아닌가? 그러니까 조조가 자기 생전에는 사마의를 중용하지 않았던 거고.
내가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이 조조다. 천하통일을 목표로 삼국지 게임을 할 때도 내가 고르는 캐릭터는 언제나 조조였다. 이런 내 성향을 패도(?道)를 지향하는 성향으로 취급해서 신하들이 꺼리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물론 내가 조조에게 학살당한 적군이나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이라면 세상에 그런 개새끼가 또 없겠지. 하지만 소설을 읽은 독자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주역 입장에서 판단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내 입장도 조조와 같은 군주로서의 입장이지 백성으로서의 입장은 아니다.
“등과도 하지 않은 한갓 지방 유생들이 임금이 결정한 일을 이렇게 무시하니, 어찌 나라에 영이 바로 서겠는가? 엄히 다스려야 할 일이다!”
내가 호통을 치자 잠시 몸을 움츠리던 권균이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조심스럽게 진언했다.
“전하, 선비들이 스스로 옳다 여겨 상소를 올리는데, 그 언로를 아주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도 나름 충심을 품고 하는 행동이니 넓으신 마음으로 아량을 베푸소서.”
아무래도 내가 또 피바람을 일으킬까봐 두려운 모양이다. 그동안 몇 차례나 있었던 역모 중 첫 번째 역모였던 무오사화가 이런 식으로 시작했었으니 그 기억이 떠올랐겠지. 그때도 사림 출신 사관들이 적은 사초가 문제가 되었으니까.
지방 유생들은 대부분 사림이다. 굳이 김종직에게 배운 직계 제자들만 사림이라고 한정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훈구파라고 할 만한 사람은 사실상 조정을 채우고 있는 권신들뿐이다.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내 지지파라고 할 만한 신하들은 조정 중신들, 그리고 이제 막 체제를 개편한 성균관과 집현전에서 교육을 받는 관학생 일부뿐이다. 개중에도 또 반골들이 있겠지.
“알겠다. 따로 벌하지는 않겠으나, 앞으로 무묘 건으로 올라오는 상소는 내게 올리지 말고 모조리 군기시로 보내버려라. 지갑 만드는 데나 쓰도록 보태라.”
쓴소리 듣기 싫어하면 좋은 통치자가 될 수 없다는 정도야 나도 안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하는 쓴소리’라는 허울 때문에 중언부언하는 헛소리를, 그것도 비슷한 이야기를 수천 번이나 계속해서 보고 싶지는 않다.
“알겠사옵니다. 허나 전하, 이 문제는 문과 무를 놓고 공자를 격하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라 쉽게 끝나지가 않으리라 보이옵니다. 무묘가 완성되고 제를 올리게 되면 상소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사옵니다.”
“상소 정도로 끝나지 않으면? 모반이라도 일으킬 거란 말인가?”
“아닙니다, 명색이 선비인데 어찌 그런 망극한 일들을 저지르겠습니까? 그보다는 도성으로 몰려와 궐문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리거나, 연줄이 있는 관리나 종친을 통해 계속 전하께서 생각을 바꾸시라 청하지 않겠습니까.”
중종 때 많이 있었던 일들이라지, 아마? 현량과를 실시하라, 아니 없애라인가? 소격서를 없애라, 위훈을 삭제하라, 조광조를 살려라 혹은 죽여라….
그 뒤로도 보면 뭔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삼사에 속한 대간을 필두로 해서 쏟아지는 상소가 아주 조선 임금들의 숨을 턱턱 틀어막았다. 물론 독재정치를 막는 데는 효과적인 장치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종친이 정사에 대해 발언하는 일은 경국대전에서 금지하지 않았느냐? 누구든 법을 어기면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또한 무묘 설치는 조정에서 논의하여 결정한 일로, 이제 와서 이를 뒤집고자 함은 임금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로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나도 진력이 났지만 권균도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을 기색이었다. 자연스레 다른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무묘에 배향할 이들로는 무성왕, 수정후 외에는 양성지가 추천했던 이들을 그대로 받드는 편이 좋겠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었느냐?”
사실 강태공이 비판받는 이유는 전장에서 권모술수를 썼기 때문만이 아니다. 도가적 성향을 크게 가진 데다, 형벌을 엄하게 했던 것도 덕을 중시하는 유자들에게 비판받았다.
관우를 함께 모시기로 한 건 관우가 유가에서도 칭송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태공망을 빼버리고 관우를 메인으로 놓으면 반대가 좀 줄어들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다만 전에 토론할 때도 나온 문제지만, 격이 낮았다. 작위에 ‘무’도 안 들어가고.
게다가 후대에 ‘X종 때 관우신앙이 조선에 들어왔다’고 남는 것도 싫다. ‘연개소문이 불교를 믿는 귀족들을 억제하려고 도교를 들여왔다’고 국사책에서 적듯이, ‘X종이 유학자들을 억제하려고 관우신앙을 들여왔다’고 적히기라도 하면 개망신이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라고!
“계백의 충정이 높으니 계백을 모시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계백은 황산벌 싸움에서 결국 패하지 않았느냐. 무묘에 배향하려면 충정 뿐 아니라 전공도 드높아야 하는데, 계백은 황산벌 이전에는 무슨 공을 세웠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충정을 굳이 기리고 싶다면 부여현에서 따로 사당을 세워 받들도록 하라.”
계백보다는 차라리 남이가 나을 것 같다. 젊었지만 불패의 명장이지 않았나? 하지만 예종이 역적으로 처형한 뒤로 아직 복권이 안 됐다. 내가 복권시키기는 아직 부담스럽고. 먼 후대에 누군가 정치적 부담이 덜한 내 후손이 복권시키면 혹시 배향될지도 모르지.
계백을 모신다 하니 말인데 계백을 모시는 사당이나 서원은 지금 없다. 아니, 서원 자체가 아직 없다. 조선 최초의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중종 때 세운 소수서원’이니까 말이다. 국사 시간에 죽도록 외웠지, 으으.
아직은 없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분명히 생기겠지. 어쩌면 역사보다 빠를지도 모른다. 내가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사림은 정권을 잡을 수 없을 거고, 그렇다면 중앙정계에 도전하는 대신 지방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훗날을 기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뭐, 그렇다 해도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거다. 내 뜻에 따르는 이들이 조정을 운영해 나가고, 지방에서 세금과 병사만 잘 올라온다면 별로 문제될 건 없으니까. 설사 시골 양반들이 토호로 전락해서 반항해 봐야 임금을 능가할 수는 없다.
상소가 쏟아져 봐야 군기시에 지갑 재료만 공급하는 거고, 행여 힘으로 뭔가 꾸미려고 하면 바로 때려잡으면 그만이다. 여차하면 향교에 힘을 실어서 눌러버려도 되니까, 아직 생기지도 않은 서원 가지고 고민하는 일은 관두고 다른 데나 신경 쓰자.
– 19 –
연말이 다가오면 늘 바빠지는 이가 있다. 물론 연중에도 가끔 날 만나기는 하지만 연말에는 꼭 만나는 사람이다. 다만 올해는 그 의례적인 만남이 좀 빨리 오게 되었다.
“결산 보고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나, 그대와 의논할 바가 있다.”
“분부를 내리소서.”
박이재가 내 앞에 납작 엎드렸다. 박이재는 내수사, 즉 내 개인적인 돈줄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중요한 내관이다.
“장차 왜국과 교역하는 경로를 하나 더 만들려 한다. 연해주 해안에 항구를 만들고, 여기서 배를 타고 왜국 북방으로 가는 것이다. 유귀국을 찾으러 보낸 유담년이 돌아오면 현지 사정을 물어보고, 가능한 빨리 진행하려고 한다. 내수사에서 맡아 진행하라.”
“대마도를 통하지 않고 말이십니까?”
“그러하다. 대마도인들은 간교하고 구주에는 해적이 많으니 어찌 안정된 교역 상대라 할 수 있겠느냐? 허나 북방에는 해적도 없고, 훨씬 안정된 교역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동북 지방 일본인들이 정말로 규슈 쪽 일본인들보다 ‘덜 간교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쪽 일본인들이 왜구로 나서지 않은 건 분명하다. 아마 산적질은 만만찮게 했을 것 같지만.
굳이 북쪽에 새 무역로를 개설하려는 건 다 필요가 있어서다. 일본 동북부가 서부보다 훨씬 가난한 동네이긴 하지만, 나름 곡창지대다. 여기서 곡식을 사다가 연해주까지 배로 운반하면 흉년을 대비하는 식량 공급원이 하나 확보된다.
또한 대마도 놈들이 무역을 독점적으로 중개하면서 먹는 이윤을 깎아내리는 효과도 있다. 일단 대마도가 내 부하로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처럼 반은 조선에 반은 일본에 속한 상태로 계속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당장 공언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대마도를 진짜 조선 영토로 흡수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마도가 가진 경제력을 천천히 깎아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마도가 내 ‘폐번치현’에 대해 무력으로든, 경제력으로든 맞서지 못할 테니까.
“전하. 이런 말씀을 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는 이제까지 대마도를 통해서만 왜국과 거래를 해왔습니다. 왜국 북부에는 전혀 연계가 없는데, 어찌 교역을 할 수 있을는지요? 또한 저들이 제공할 적당한 토산품이 있을지도 확실치 않사옵니다.”
당연한 걱정이다. 조선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물건 중에서 은이나 구리, 유황과 같은 광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거의 남방에서 들어온 물건들이다. 향료, 설탕, 물소뿔 따위 물건들은 모두 중계무역으로 조선에 들어온다.
이런 물건은 대마도에서 구입하는 게 낫다. 북방으로 우회하면 운반비가 많이 붙어 가격이 비싸질뿐더러, 운반 자체가 제대로 될지도 확실하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 일본은 난세, 말 그대로 전국시대니까 말이다.
“왜국 동북지방은 지형이 험준하고 날씨가 서늘하나, 땅이 넓고 곡식이 풍부하도다. 또한 왜국에는 구리가 풍부한데, 동북에도 구리가 있다. 대마도를 통해 들어오는 서쪽 땅의 구리와 경쟁이 될 테니 한층 값이 낮아지지 않겠느냐.”
벌써 한 20년 지나니 가물가물한데, 고등학교 지리부도에서 본 기억으로는 일본 동북지방에 분명히 구리광산이 여럿 있었다. 다만 그게 언제부터 개발된 광산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설마 16세기 이후에 채굴하기 시작한 건 아니기를 바라야지.
“연해주에 많은 백성을 보내려면 곡식을 들여올 다른 원천을 가능한 확보할 필요가 있다. 북방에는 모피와 산삼이 풍부하니, 이를 팔아서 곡식과 구리를 들여옴은 충분히 수익이 남는 거래가 되리라. 값비싼 남방 물건은 없다 해도 이 정도면 충분히 교역할만하지 않겠느냐.”
어쩌면 연해도산 모피는 북해도산 모피와 경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쓰마에 번이었던가? 걔네들이 북해도랑 혼슈 사이 교역을 독점하고 재미를 톡톡히 봤다고 들었는데 그 교역품이 대개 생선하고 모피였지, 아마? 해삼도 있고.
어쩌면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북해도에서는 사냥으로 획득한 모피가 주된 수출품이 될 텐데, 연해주에서는 소를 키워서 소가죽을 수출하면 겹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연해주에서 농사가 본궤도에 오르면 역으로 일본에 식량을 수출할 수도 있고.
이렇게 교통로를 확보해 놓으면, 90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일본군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 조선군이 연해주를 통해서 동북지방을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히데요시도 전력을 기울여 경상도로 침공하지는 못할 테니까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보내신 탐해사 유담년이 돌아오면 북쪽에서 일본으로 교역하러 갈 수 있는 뱃길을 알아보겠습니다. 연해주에서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만, 함경도에서 얻은 모피나 산삼 등속을 우선 팔 수 있을 듯합니다.”
“좋다. 그만 물러가라.”
등불을 켠 채 생각에 잠겼다. 사실 비싼 물건을 들여와 재미를 보려면 일본 동북지방보다는 사할린이나 쿠릴 열도가 더 낫다. 세계 최고의 모피, 조선에서 가장 인기 좋은 담비 모피보다 비싼 해달 모피가 있다. 북으로 가는 길이 춥고 험난해서 그렇지.
아니면 아예 남쪽으로 가는 것도 좋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일본에서 공물로 바친 남방산 후추가 한 덩어리 놓여 있는데, 이런 물건은 유통단계 몇 단계를 거쳐 조선까지 오면서 값이 몇 배는 오르니까 말이다.
직접 동남아시아에 가면 이런 물건들을 훨씬 싸게 구매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쪽에서 오는 유럽인들도 훨씬 일찍 맞이할 수 있다. 그러면 유럽 기술도 조기에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정확한 지도도, 항해술도 없다는 것. 규슈 연안을 따라 내려가는 게 유일한 길인데, 그러자니 왜구에게 털릴 수 있다. 그러니 규슈부터 먼저 한번 제대로 두드려 패서 우리 배를 건드릴 엄두를 아예 못 내게 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 뒤에는 유구의 반발도 무마해야 한다. 중계무역으로 번영하는 유구로서는 우리가 동남아 국가들과 직거래를 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가만 내버려둘 리가 없다. 우리 배를 습격한 다음, 왜구들이 저질렀다고 덮어씌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자칫 유구와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조선 항해술로는 쳐부수든 구슬리든 유구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면 거기서부터는 대만 ? 필리핀 ? 인도네시아로 육지를 따라 비교적 쉽게 전진할 수 있다. 기존 무역망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으니 끼어들면 된다. 문제는 그 바다에 해적도 우글거릴 게 빤하다는 거지.
결국 동남아 무역을 위해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분명하다. 원거리를 갈 수 있으면서 충돌에 대비해 잘 무장된 배, 그리고 숙련된 선원과 원양항해술이다. 대항해시대를 시작할 때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바로 그 조건 말이다.
지금 조선 배를 가지고 동남아에 가는 건 자살하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 가능하면 중국제 정크선이라도 우선 들여와야 할 것 같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중국과 일본을 왕복하며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동남아까지도 넉넉히 가겠지. 일본 배는 짐을 많이 싣기에는 좀 작을 것 같고.
정크선에 소구경 함포를 실으면 해적 정도는 충분히 쫓을 수 있을 거다. 요새를 공격하거나 할 것도 아니니까 거포는 필요하지 않겠지.
자, 방향은 잡았다고 치고…어떻게 중국에서 조선 기술자를 들여온다? 목화씨도 아니고 산 사람을 어떻게 데려와야 할지 모르겠다. 사행선이 중국에 갈 때 선창에 숨겨올까? 아예 배를 한 척 사서 몰고 온 다음 뜯어서 역설계를 할까? 대놓고 기술자를 보내달라고 부탁해볼까?
한참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내관이 소리쳐 알렸다.
“전하, 도승지 권균 입시이옵니다!”
“무슨 일이냐? 들라!”
이런 늦은 시간에 갑자기 들어오다니 무슨 일이지? 무묘 건설에 반대하는 유생들이 마침내 폭동이라도 일으켰나?
내 의구심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권균이 먼저 들어와서 허겁지겁 엎드렸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고 묻기도 전에 비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하, 급보입니다! 대마도가 소이전에게 실함되었다 하옵니다! 닷새 전에 기습을 당해 섬 전체가 일거에 적에게 넘어갔고, 도주 종재성은 적에게 붙잡혀서 처형되었다는 장계가 부산진 첨사로부터 올라왔사옵니다!”
“무엇이라!”
아니, 쇼니 씨가 대마도를 공격했다고? 오우치, 이 빌어먹을 놈의 자식들! 그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쇼니 씨가 그만한 병력을 빼돌릴 여유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