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60
4부 244화(1860화)
22.
우리 대한에는 ‘카레’가 없다. 강황을 비롯한 다양한 혼합 향신료를 사용하는 인도 요리가 포르투갈과 영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뒤 한국으로 들어오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이 시절에 골가타 상관을 거쳐 인도에서 직접 들어왔다. 대한에 들어온 인도 요리는 벵골 요리가 기본이다. 옛날에 무굴 황실에서 요리사를 보낸 적도 있기는 하지만, 그 수가 적어서 대중적으로 큰 영향은 끼치지 못했다. 그래서 골가타 상관을 통해 들어온 벵골 요리 쪽이 우리 사회에서 더 널리 퍼져 자리를 잡았다.
당연하겠지만 처음에는 대한인들 입에는 잘 안 맞았다. 다만 여기 들어가는 향신료들이 죄다 약재료도 쓰이는 것들이다 보니 정력제이자 보양식으로 선전됐다. 낯선 음식도 몸에 좋다고 하면 괜히 호기심이 가는 현상을 활용한 홍보였다. 그런데 벵골에서는 혼합 향신료인 마샬라(madala)로 조리한 요리, 즉 카레를 ‘떡까리(?)’라고 한다. 그래서 대한에서는 이 요리를 벵골어 명칭에서 따온 이름인 ‘까리’라고 부른다. 즉 ‘카레’는 없고 ‘까리’가 있다, 그 말이다.
여기서 ‘떡’은 왜 빠졌냐고? 그거야 요리에 떡이 안 들어가는데 이름에만 ‘떡’이 들어가면 이상하니 그랬겠지. 자칫 떡을 넣은 떡국 비슷한 요리로 착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점잖은 자리에서 쓰는 한자 이름도 있다. ‘천축에서 가져온 향료로 끓이는 탕’이라고 해서 ‘천향탕(天香湯)’이라고 한다.
내가 중종으로 즉위했을 때쯤에는 이미 사람들이 이 맛에 익숙해져서 ‘까리’의 공급량이 꽤 늘었다. 나도 원래 세계에서 먹던 것과 거의 흡사한 카레밥을 맛볼 수 있었다. 벵골식 카레는 본래 닭이나 생선, 채소를 쓴다지만, 한국에서는 역시 소고기와 돼지고기다. 물론 내가 먹은 까리에는 비싼 향료를 잔뜩 넣었다. 약이라고 인상이나 대추 따위 약재도 잔뜩 때려 넣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까리 가루를 마치 고춧가루 쓰듯이 솔솔 넣고서 끓인 국도 있다. 까리 값이 비싸니까 적게 사용하면서 맛을 내려고 나온 시도다.
사냥으로 잡은 들짐승을 요리할 때도 까리 가루가 애용된다. 들짐승은 새건 네발짐승이건 누린내가 심한 편인데, 그 냄새를 잡는 데 까리가 유용해서다. 솥에 끓일 때나 불에다 구울 때나, 언제든지 유용한 향신료다. 군대에서도 특히 혹서기에 자주 먹인다. 좀 비싸기는 해도 원기 보충에 좋고, 가루라서 된장이나 고추장보다 운반하기 더 쉬운 탓이다. 무거운 항아리가 필요 없이 간단히 자루에 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루는 구멍은 날지 몰라도 깨지지는 않는다.
고기와 채소, 도라지 따위를 넣고 끓인 국에 소금과 까리 가루를 퍼 넣으면 다른 반찬은 더 필요 없다. 밥에다 끼얹어 주면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기만 하면 된다. 간장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은 음식이건만, 생긴 모양 때문에 군사들은 이 까리를 가리켜 별로 좋지 않은 이름으로 부른다. ‘분탕(糞湯)’, 즉 ‘똥국’이라고 말이다(……).
내가 태황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3품 참장으로 승진, 친위대 보병 1대대장을 맡고 있는 디에고가 숟가락을 든 채 느긋하게 군사들의 시각을 대변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폐하. 누가 보더라도 이건 그것처럼 보이니까요. 당장 색깔부터 그것과 똑같은 갈색 아닙니까.”
하기야 인도에서 직통으로 들어온 탓에 이쪽 세계의 까리는 갈색이다. 노란색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군사들과 똑같이 까리를 밥에 부어서 먹고 있어도 이 지저분한 별명이 없어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상감도 똥밥을 드신다’라는 말이 덧붙었을 뿐.
“술루에서는 어떤가. 까리를 많이 먹는가?”
“꽤 자주 먹습니다. 술루는 벵골보다 더 더운 곳이니까요. 더운 곳에서 원기를 보충하려면 이런 강한 음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본국에서 먹는 까리보다 훨씬 진한 맛으로 먹지요.”
옆에 있는 하진교를 보니 내가 말을 걸 필요도 없을 정도로 급하게 밥을 입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전에 들으니 원래 세자 시절부터 좋아한다고 했다. 하와국에서도 고기, 생선, 새우, 바나나 등 온갖 부재료를 솥에 넣어 끓이고 까리를 충분히 넣어 휘저어 먹기를 즐긴다. 까리법 한 사발을 게 눈 감추듯 비운 하진교가 그릇을 내려놓으며 한 그릇 더 가져오라고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그리고 내게 승리를 장담했다.
“저희 군사들에게도 점심을 아주 든든히 먹으라고 일러 놓았습니다. 시합이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대결, 대결에는 언제든 이겨야 하니까요!”
“좋을 대로 하게나. 다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 군사들이 유리할 것 같지 않네만.”
하진교가 벼르고 벼르던 눈싸움은 자꾸 일정이 연기됐다. 눈이 오지 않아서 하늘만 계속 쳐다보다가 겨우 눈이 내리나 했더니 조모가 대궐 안에서 무슨 점잖지 못한 짓을 벌이냐고 해서 또 밀렸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와서 하게 되었다. 이번 강무는 친위대ㆍ시위대ㆍ금위대를 망라하는 금군청과 오군영 예하 전 군영에서 차출한 정예병 1만 5천이 동원된 대규모 기동훈련이다. 그리고 갖가지 상황을 부여하여 대처하도록 지시하고 대항군을 편성해서 쌍방훈련까지 진행했다.
이만한 규모와 강도로 진행하는 강무는 근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삼군부에서 훈련 계획을 짜느라 애 좀 먹었고 실행 과정에서 자잘한 실수도 여럿 나왔지만, 이만하면 그래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실전이든 훈련이든, 전부 계획대로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자, 식사도 다 마쳤으니 배도 꺼트릴 겸 어디 자네가 그토록 벼르던 눈싸움을 해보세.”
“예, 폐하!”
하진교는 기세등등하게 자기 호위병 50명을 거느리고 들판 한쪽에 포진했다. 나는 반대편 진영에 디에고 휘하 친위대원 50명을 거느리고 섰다. 디에고는 부관 노릇을 했다. 잠시 후 벌어진 눈싸움 대결은 예상대로 우리가 이겼다 무서운 완력을 지닌 하와병들은 우리 군사들을 거세게 밀어 붙였지만, 원래 지구력이 좀 부족한 편인데다 추위에 약해 옷을 두껍게 입은 탓에 금방 지쳐버렸다. 그 뒤에는 뭐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역시 폐하께서는 군사들을 지휘하시는 솜씨가 저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 하지만 지금이 여름이었으면 그래도 저희가 이겼을 겁니다! 하필 겨울이라……”
“그러면 여름에 한 번 더 붙어 보세나. 만약 그때 눈이 온다면 말이지.”
옆에 있던 다른 장수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놀림 받은 당사자인 하진교도 함께 웃었다. 아, 정말이지 이 녀석이랑 같이 있으면 하루하루가 즐겁다니까. 그나저나 하와국에 별일은 없을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터지든 수습하는 거야 뭐 어렵지 않겠지만, 기왕이면 수습할 필요도 없게 아무 일 없는 편이 가장 좋지 않은가.
23.
거북섬은 하와국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속령 중 하나다. 형식상으로는 대한 태황의 영토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하와국 땅이나 마찬가지라서다.
“빛의 임금께서 우리 하와국에 관리하라고 명하셨으니, 이는 곧 그곳이 우리에게 내리신 땅이라는 것이 아닌가!”
국사 윤호원의 지시를 받아 거북섬으로 원정을 나가게 된 하진교의 이복동생, 리홀리호가 우렁찬 목소리로 호령했다. 그러자 원정대에 참여한 전사들이 열광적으로 대답했다.
“옳소!”
하와인들의 창세 신화에 따르면 신은 하와이 땅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을 올려 살게 했다. 같은 관점에서 ‘빛의 임금’이 새로운 섬의 존재를 알려주면서 하와인들에게 그 섬에 가라고 한 것은 그 섬을 소유하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였다.
“더구나 빛의 임금께서는 빛의 신 카네의 환생이 아니신가!”
지금도 많은 하와국 토인들이 하와국의 문을 처음 연 대한의 황제, 중종 건흥제를 빛의 신 카네의 환생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머나먼 바다를 건너 배를 타고 이 하와국까지 찾아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신게서 거북섬을 하와국에서 맡아 관리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니 거북섬은 하와국이 소유한 땅이 된 것이다. 대한 본국에서는 거북섬이 대한의 영토라고 하지만, 하와국 전체가 대한의 신하로서 대한 임금의 땅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두 주장은 전혀 모;순되지 않았다.
“그럼 가자! 거북이 잡으러!”
“예, 왕자 저하!”
리홀리호, 하성교도 예전에는 여섯 살 위인 이복형 하진교, 카나이나를 무 척 무시했었다. 세자 자격도 없는, 종잇장이나 붙들고 있는 돼지 새끼라고 말이다. 태자를 따라 한양에 간 뒤로 5년 동안 얼굴 한번 내밀지 않자 혐오감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그 깊은 혐오와 멸시는 카나이나 본인이 나타나자마자 햇볕을 쬔 안개처럼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리홀리호는 작년에 카나이나가 대국에서 귀환했을 때 마침 왕궁에 있었다. 그것도 왕궁 수비대 군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황홀한 광경을 모조리 직접 보았다.
그 용기, 그 용력, 그 무용. 정말로 뛰어났다. 5년 사이에 카나이나는 정말 엄청난 용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형제 중 가장 뛰어난 전사라는 평을 듣던 쿠아이와와 정면으로 맞붙어 쓰러트림으로써 자신이 누구보다 더 뛰어난 용사임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가 충성하지 않겠는가. 리홀리호는 가장 먼저 칼을 버리고 이복형에게 무릎을 꿇었다. 카나이나는 동생을 환영했고 어떤 죄도 묻지 않았다.
지금 리홀리호는 카나이나가 한양에 가 있어도 하나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형은 한양에서 정말로 대단해져서 돌아오지 않았는가. 더 대단한 인물이 될 수 있다면야 거기에서 한참 더 머물러도 상관없었다. 카나이나가 한층 더 대단한 존재가 되어 돌아올 때까지, 리홀리호는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킬 셈이었다. 정해진 규정에 따라 매년 거북섬에서 거북이를 수확해 오는 것도 그 실천의 한 수단이었다.
“저놈들 뭐야? 당장 쫓아내.”
그런데 바다를 건너 거북섬에 도착하니 웬 서양 범선이 한척 정박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포경선은 아니고, 상선도 아닌 듯했다. 혹 해적선이 아닌가 하고 인상을 찌푸린 리홀리호가 갑판에 설치해둔 대포로 위협사격을 가하라고 명령하려는 참에 한인 고문관이 소리쳤다.
“잉글국 배입니다, 저하! 잉글국 군함입니다!”
“잉글국 군함이 여기는 왜 와?”
하와이에 종종 들르기 때문에 잉글국 국기나 군함기는 잘 안다. 하지만 저들이 왕래하는 주된 목적지는 신홀란도였다. 이런 바라 한가운데 외딴섬에 정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놈들의 쌍판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여기서 쫓아내더라도 대뜸 대포를 쏠 개 아니라 쌍판대기에다 대고 말로 통보부터 해야겠지.”
함께 타고 있던 한인 고문관이 안도하는 한숨을 쉬었다. 혹시 리홀리호가 잉글국 군함에 포격을 가해 포탄을 맞히기라도 한다면 본국과 잉글국 사이에 어떤 외교적인 충돌이 터질지 생각만 해도 막막했기 때문이리라. 리홀리호가 지휘하는 하와국 범선 ‘마노 위키위키(재빠른 상어)’가 상대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가자 상대편에서도 이쪽의 존재를 발견하고 신호기를 올렸다. 양측은 깃발 신호를 통해 서로의 소속을 확인했고, 배를 가까이 대고 좀 더 자세한 대화를 나눠보기로 합의했다.
마침내 마노 위키위키가 상대의 옆에 닻을 내렸다. 리홀리호가 잽싸게 선두에서 단정으로 뛰어내리자 다른 선원들이 허겁지겁 따라 내려왔다. 조심스럽게 노를 저어 상대방이 선측에 다가서자 갑판 위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왔다. 리홀리호가 잽싸게 줄사다리를 잡고 갑판에 올라가니 잉글국 수병들이 도열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멋진 제복을 차려입은 장교 한 사람이 서서 경례를 올렸다.
“소관은 연합왕국 국왕 폐하의 함선인 비글호 함장 피츠로이입니다. 왕자 저하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24.
후금의 겨울은 춥다. 상도도 추워서 황실은 열하에 있는 겨울 별궁으로 옮겨가곤 한다. 남조인 청나라는 이 별궁을 여름 피서지로 쓴다는 게 참 웃긴 일이지만 말이다.
“남조 황실이 따뜻한 땅을 다스리는 건 부럽지 않소. 황위 계승에서 피를 보지 않는다는 게 정말 부러운 일이지.”
죽은 이패륵 아바타이의 장남, 얀신이 한탄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부친이 독살당하고 벌써 2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복수하지 못한 데서 오는 슬픔과 분노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우리 풍속은 남조와 다르니 어쩔 수가 없지. 친혈육이라 해도 서슴지 않고 칼을 뽑고 활을 겨누어야 할 판인데, 저들은 모두 남이니 상관없소.”
얀신은 일부러 백부인 대칸을 따라 영하로 가지 않고 상도에 남았다. 대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도를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킨다거나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혼자 뒤에 남아서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범인은 분명 두 군와 중 하나요. 어떻게 틈을 봐서 한꺼번에 죽여버려야 하는데.”
사건 직후에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엉뚱한 한다이를 죽여 버렸다. 그때는 분노에 눈이 멀어 미처 깨닫지 못했다.
“진국공 저하. 그보다는 저, 대칸위 승계 쪽에 관심을 좀 더 두시는 것이…..”
아바타이가 죽으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계승 우선권은 숙부인 두도에게 넘어갔다. 대칸을 계승하는 후금의 법에 따르면, 대칸에게 적자가 없을 때 계승 순위는 동생들에게 순서대로 주어진다. 조카들에게는 그 뒤에 차례가 돌아온다. 그래서 얀신의 계승 순위는 두도 다음이다. 하지만 일단 두도가 대칸으로 즉위하면 다음 대칸은 두도의 자식들이 된다. 얀신에게는 기회가 없다.
그래서 아파태를 모시던 신하들은 지난 2년 동안 걱정이 많았다. 법도대로 하면 대칸의 자리는 이제 두도의 몫이다 보니, 그쪽으로 편을 바꾸자는 유혹이 자꾸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국 대다수가 그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얀신은 수하들이 줄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대칸으로 즉위하고 싶은 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을 뿐이었고, 그러자면 대군보다는 충성심 강한 소규모 정예를 밑에 두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산길에 사수를 숨겨두었다가, 대칸이 자식들을 데리고 상도로 돌아올 때 말에 타고 있는 두 군왕을 한꺼번에 저격하면…..”
“저하, 조금만 더 천천히 행각해 주십시오.”
얀신 옆에 남은 아바타이의 신하들은 복수에 미친 것만큼이나 얀신을 보위에 올리고 싶은 욕망에 미쳐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목적을 달성하자면 차분해져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 냉정한 인간들은 얀신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두도가 뭔가 보장이라도 해줄 때까지.
“그런 건 필요 없소. 그 형제 놈들을 죽여버릴 수만 있다면야 대칸위 따위야 삼백 개라도 팔아치울 수 있으니까. 게다가 숙부가 지금은 아들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 얼마든지 낳을 수 있는데 그런 약속을 왜 하겠소?”
얀신은 모두들 되지도 않은 생각은 하지도 말라며 윽박지르고, 다시 사촌들을 처치하려는 암살 계획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진행도 얼마 가지 않아 끊어졌다. 열하에서 급히 달려온 파발이 전한 황당한 소식 때문이었다.
“무엇이라? 다라순승군왕이 폐하의 애첩과 정을 통하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만리장성을 넘어 남쪽으로 줄행랑을 쳤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저하.”
아니, 그 단순한 멍청이가 그런 재주를 부릴 줄 알았단 말인가. 잠시 멍하니 있던 얀신이 쓴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분명 모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굴까 어느 쪽에서 이 추문을 공작했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방식의 위협이 꽤 성공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멍청한 럭더훈이 자기 뜻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을 리 없으니, 그놈을 배후에서 조종했을 범인은 숙부인 삼패륵 두도와 사촌인 다라극근군왕 굴마훈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아니면 대복진이거나 말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자가 아바타이도 제거했으리라. 얀신이 이를 갈며 책상 위에 놓인 곰 쓸개를 핥았다. 얀신은 그 쓴맛을 되새기며 부친의 복수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