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62
4부 246화(1862화)
3.
일본에서는 여전히 기근 때문에 사정이 영 험악하다. 우리가 지배하는 북구주를 비롯한 서부 일본은 다행히 기근이 비껴갔지만, 기근의 중심지인 도호쿠 지방에서는 각지에서 잇키(一揆), 즉 민란이 일어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안타까울 뿐이다.
“이는 일본의 위정자들이 부덕한 탓입니다. 기근이 들었으면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는 게 우선이어야지, 대군과 영주들이 그저 이를 치부할 기회로 여겨 상인처럼 굴었으니 어찌 굶주린 백성들이 눈이 뒤집히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상황을 접한 우리 조정의 분위기는 지극히 냉소적이었다. 기근이 한 해 만에 끝난 것도 아니고 벌써 4년째다. 그만하면 뭔가 정책 방향을 좀 바꿀 때도 되지 않았는가. 물론 일본 다이묘들이 참근교대다 뭐다 해서 돈 쓸 구석이 많은 거야 나도 안다. 하지만 쥐어짤 농민들도 숨은 붙여 놓아야 할 게 아닌가
그나마 막부 직할지인 어령(御領)에서는 막부가 곡식을 나눠주기 때문에 아사자도 없고 잇키도 없다. 쇼군에게 진 빚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빚이라는 건 사람을 옭아매는 수단이지 죽이려는 원수는 아니니까.
‘곡식을 빌린 백성들이 죽어버리면 빚을 받아낼 수도 없지.’
이에츠구도 그 사실을 잘 아는지라 올해부터 빌려주는 곡식에는 이자 없이 원금만 받기로 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기왕이면 이미 빌려준 곡식의 이자도 면해 주면 좋겠지만.
“우리 북구주에는 기근이 닥치지 않아서 다행이오. 하지만 세상만사는 언제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니, 북구주 현지에 식량을 비축하고 유사시에는 경상도에서 추가로 나를 준비를 갖춰 두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현재 북구주 인구는 대력 140만. 한인이 대력 40만 명이고 나머지 100만은 일본인이다. 명나라가 말할 때 이주한 중국계 인구도 소수 있기는 한데 큰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북구주에는 구주 총관부를 설치하여 별도로 다스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치가 위치다 보니 어느 정도 경상도에 예속된 속주 비슷한 상태다 유사시에 식량 지원도 경상도가 맡고 병력 지원도 경상병영이 맡는다. 북구주 유생들은 경상도에 건너와서 공부한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도 경상도와 밀접한 관계다. 북구주와 경상도를 잇는 항로에서는 배가 왕래하지 않는 날이 없고, 막대한 인원과 물자가 자연스레 오간다. 그래서 부산에는 대규모 왜관도 있고, 일본에서 흉년이 들더라도 북구주는 훨씬 타격이 덜하다. 북구주가 기근으로 인한 피해를 덜 입어서 덕을 보는 이들이 바로 맞닿은 타치바나 령과 사나다 령, 그리고 시모노세키 해협을 사이에 둔 모리 령이다. 북구주에서 이쪽으로 들어간 곡식이 이들의 기근 피해를 크게 완화해주기 때문이다.
을미동정 직후만 해도 이런 서부 영지들은 공공연하게 우리와 직접 교역했고 막부에서도 이를 억제하지 못했다. 이 시기가 사나다, 타치바나 등 우리 지원을 받아서 성립된 친한파 번들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에도 막부의 힘이 강화되면서 이들의 좋았던 시절도 끝났다. 막부가 직접 규슈에 손을 뻗치지 못하게 막아주는 우산 노릇을 하던 진서장군부가 도쿠가와의 압박과 회유탓에 문을 닫았고, 명나라가 무너지는 혼란 속에 조선이 관심을 돌렸다. 도리가 없었다.
그때 이후로 정식 교역은 끊어졌다. 교역은 막부가 관리하는 개항장에서만 했다. 그동안 오가던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단박에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불법적인 밀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 밀수 덕에 우리와 이웃한 세 영지가 한결 수월하게 곤란을 넘겨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막부에서도 이를 알고는 있지만,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한은 묵인해왔다.
이 밀수로 맺어진 친분 덕분에 본래는 친한파는 아니었던 모리 령, 즉 조슈번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는 것도 참 역설적인 결과다. 모리 놈들은 우리한테 당하기도 참 지독하게 당했었는데 말이지.
‘모리 데루모토 그놈 참 불쌍했지. 그놈의 우유부단한 성품 덕분에 참……’
모리 데루모토는 경인왜란 이전부터 우리한테 줄을 대려고 노력했었다. 노부나가를 막게 도와달라는 요청도 보냈고, 을미동정 직전에는 밀사를 보내서 원정이 개시되면 우리 편으로 참전하겠다는 밀약을 맺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전부 무산되고 말기는 했지만. 그렇게 망설인 대가로, 을미동정이 개시되자 우 리가 풀어놓은 여진족 기병대에게 영지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거기에 대응하다가 항복할 때를 놓치는 바람에 히데오시가 붙잡힐 때까지도 항복하지 않아서 졸지에 최후의 히데요시 충성파 다이묘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이에야스에게 제대로 밉보여서 120만 석에 달하던 영지는 13만 석으로 격감했다. 지금도 조슈번의 공식적인 석고는 15만 석에 불과하다. 옛 위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암담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의 실제 경제력은 그보다 높다. 개간을 통해 농지를 늘리고 상업에 열중하면서 국력을 키운 덕분이다. 더구나 지난번 내가 체결한 새 조약 덕분에 이제는 밀수가 아니라 합법적인 정식 교역을 활성화하면서 더욱 부를 키우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키운 경제력으로 존왕파 노릇을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우리한테는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으니 우리도 별 간섭은 안 하고 있지만, 나중에 좀 더 과격한 존왕파인 미토 떨거지 따위들과 힘을 합쳐 소란을 벌이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대군이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에는 일본 내부에서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도록 함이 옳겠소. 북구주총관에게도 명을 내려 언제든지 만사에 주의하라 명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기껏 에도까지 찾아가서 쇼군과 회견하고 새 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우리 황실 피가 섞인 이를 천황 자리에 앉히려고 국혼을 맺는 공작까지 했다. 그렇게 노력해서 판을 깔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불상사로 만사가 뒤집힌다면 참 슬플 터, 그러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
4.
일본이 지금 기근 때문에 고생하고 있기는 해도 체제 자체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이다. 내 주변에서 그 기본적인 체제 안정이라는 조건을 가장 못 맞춘 나라를 뽑으라고 하면 당연히 후금이 되겠다.
“청나라로 도망간 후금 다라순승군왕은 지금 어디 있는가?”
“개봉으로 가서 청나라 황실의 보호를 받고 있사옵니다.”
“개봉이라. 청 황실에서는 다라순승군왕을 포기하지 않을 모양이로구려.”
요즘 후금 황실에서는 몇 년째 겨울마다 대칸위 계승권자가 하나 이상 사라지고 있다. 이 황당하고도 끔찍한 일은 대체 무슨 전통인가. 재작년 겨울에는 칸위 계승 순위 1위였던 대칸의 첫 번째 동생인 아파태가 복어독이라는 참신한 수단으로 독살당했다. 계승권이 가장 뒤진다고 할 수 있는 한대는 화살 세례를 받고 고슴도치가 되어 죽었다.
작년에는 대칸의 막냇동생인 찰니가 러시아로 도망갔다. 지금도 러시아에서 지내고 있다. 옴스크에 있다고 했던가. 그러다가 올해는 륵극덕혼이 부황의 애첩을 건드렸다가 청나라로 튀었다. 뭐라고 평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밖에 안 떠오른다.
“내 다라순승군왕을 보았을 때, 사람이 다소 우직한 면이 있기는 해도 음흉하거나 사악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그런 무도한 일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이오?”
“도망치기 전에 추궁 받고서는 ‘나는 그저 옛 습속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했다는 소문이 상도에 퍼져 있다는 보고가 있기는 합니다.”
외무대신 이중명이 다소 막연하게 대답했다. 뭐야, 이건. 그냥저냥 ‘아 그건 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 그나저나 ‘옛 습속’이라고 했다니, 그거 혹시 유목민들 옛날 습관 이야기하는 건가? 그게 아직도 있었어?
“어차피 대칸이 죽으면 그 첩실들은 궁에서 나가야 할 텐데, 내보내는 대신 주기가 옆에 두고 챙기면 뭐 어떠냐는 생각으로 함부로 했다는 말이 도는 모양입니다.”
옛날에 흉노 시절부터 유명한 이야기지만, 유목민들은 부친이 사망하면 부친의 첩실들을 물려받아 부양하는 사례가 많다. 중앙아시아 방면에서는 지금도 가끔 행해지는 풍습이다.
“옛 습속 운운하기 전에, 그 아비가 아직 살아있지 않소. 더구나 부친의 첩을 취하는 것은 교회에서도 엄금하는 패륜이 아니고? 그런데 다라순군왕은 어찌 그런 짓을 저질렀소?”
“성서에 나오는 다비드왕이 죽었을 때도 그 자리를 물려받은 아들이 만백성이 보는 앞에 나와 부왕의 첩실들과 관계함으로써 그 자리를 이었음을 천하에 알렸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뜻으로 일을 범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구려. 그 음탕한 짓을 한 왕자는 다비드에게 반기를 든 역당이었소.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대의 말뜻은 알겠소.”
이중명은 천주교도가 아니다. 그쪽 신앙에 관심도 없다. 그래서 성서 내용을 잘못 파악한 모양이다. 압살롬이 다윗의 정식 계승자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본인의 해명은? 지금은 안전한 곳에 있으니 얼마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당연히 부정하고 있사옵니다. 자기는 부황이 불렀다고 해서 갔는데 웬 벌거벗은 여자가 침대 위에 네 귀퉁이에 사지를 결박당하고 안대와 재갈로 눈과 입을 속박당한 채 누워있는 광경을 보았을 뿐이라고 하며, 놀라 풀어주었더니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고 하였습니다.”
이래저래 들려온 이야기를 모아 보니 박락의 애첩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해서 궁전 안에서 침대에 묶인 채 겁간 당했고 사건이 벌어진 그 방에 륵극덕혼이 있었던 건 사실인 모양이다.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은 륵극덕혼이 언제 그 방에 들어왔으며 그녀를 범했는지 아닌 지다. 륵극덕혼 본인도 실수를 범했다. 여인을 보 고 직접 풀어줄 것이 아니라 궁인을 찾아다가 시켰어야 했는데 혼자 그 방에 들어감으로써 구설수를 자초했다. 게다가 그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제풀에 놀라 몰려드는 이들을 뚫고 도망가 버렸다. 범행을 자백한 거나 마찬가지다.
보고를 들은 박락은 격분해서 아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부황 앞에 나가서 억울함을 제대로 호소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륵극덕혼은 분노한 부황을 피해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열하에서 바로 아래에 있는 북경으로.
“대칸은 청제에게 아들을 송환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소?”
“당연히 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쪽에서 그런 무도한 사건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군왕이 자기도 모르는 새 억울한 사건에 얽힌 게 분명하니 절대 상도로 돌려보낼 수 없다고 버티는 중입니다.”
이번 일로 얼마나 화가 났는지, 박락은 자기네 여름 수도인 카라코룸으로 떠날 생각도 안 하고 열하에 눌러앉아 있다고 한다. 죄를 지은 륵극덕혼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청나라 황제 면녕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륵극덕혼을 보호하고 있다.
카라코룸에는 하나밖에 안 남은 동생, 두도를 자기를 대신 해 보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두도가 떳떳한 계승권을 가진 유일한 후계자이므로, 적절한 인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륵극덕혼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청나라를 공격할 조짐까지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건 청나라를 가깝게 여겨서가 나이다. 러시아에 있는 찰니가 그 틈을 노려서 러시아군을 데리고 돌아올까 봐 그런 것이지.
“삼패륵은 카라코룸에서 안전하게 지내오?”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옵니다.”
아파태가 독살, 한대가 자객에게 사살당한 뒤로 두도는 극도로 신변에 주의하고 있다. 그 주변을 둘러싼 호위병이 기본 인원만 30명일 정도다. 덕분인지 아직은 무사하다.
“그러면 이제 남은 대칸 후보는 삼패륵과 다라극근군왕, 둘 뿐인가.”
죽은 아파태의 아들 연신도 있다. 하지만 지금 계승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전부 죽어야 그에게도 차례가 돌아올 테니 1순위 후보라고 할 수는 없다. 과연 그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그냥 다 죽여버리고 자기가 대칸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그런 걸 생각할 수는 있어도 절대 실행에 옮기면 안 된다.
이제 남은 사람은 두도와 고이마혼 둘뿐이다. 형제들이 죽어 나가면서 가장 큰 이득을 본 두 사람이 남아 있는 걸 보니 범인이 이 둘 중 하나가 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은 차렸다고 해도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아마도 이들이 범인 아닐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내 눈에는 머리 하나는 기차게 돌아가는 고이마혼이 가장 가능성 큰 용의자로 보인다. 이제까지 쓰러진 이 전부는 아니었다고 해도 적어도 한두 명은 해치웠을 듯하다.
과연 이 끝을 모르는 피바다는 어디로 치달을까. 제발 피를 보더라도 자기들끼리만 보고, 주변국들은 얽혀 들어가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
5.
올해는 내 즉위 3년 차다. 고로 올해부터는 기존에 진행되지 않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새로운 사업이라는 것이 꼭 철도를 부설하고 공장을 건설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자면 사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확한 지도다. 내무부 지도국에서는 그동안 축적한 자료를 정리하여 우리 강역을 철저히 묘사한 지도를 제작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지도 제작은 예전 생에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분야다. 지도국도 내가 중종 시절에 기존 관청 중 지도 제작에 관련된 부서들을 싹 모아 통폐합해서 만든 조직이다. 그리고 지도라는 건 주기적으로 개정판을 내야 하는 법이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철도나 산업시설, 도시 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은 아직 당분간은 조부 시기에 확립해둔 계획을 따라 진행하기만 해도 된다. 고로 당분간 내가 새롭게 진행할 사업은 이처럼 꼭 필요하면서도 선황이 신경을 안 쓴 것들로 한다.
“궁녀 선발 문제도 손을 봐야 할 것 같은데……”
관노비가 폐지된 만큼 이제는 궁녀 선발도 전적으로 양인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예전 법도로는 관노비를 강제로 궁녀를 뽑는 게 기본이었으므로 인원이 모자랄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각 관청에 속한 관비 중 일부를 강제로 뽑으면 되니까. 하지만 노비제도가 폐지되었으니 이제는 양민을 궁녀로 들일 수밖에 없는데, 양민을 마두 잡아들여 궁녀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스스로 지원하도록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 방법이 문제다.
“급료를 대폭 인상하고, 궁녀라 해도 청나라처럼 몇 년 지내다 출궁하여 혼인할 수 있게 해주거나, 일본처럼 궁녀 생활을 하면서도 따로 혼인하도록 허락해주면 어떻겠는가. 지금도 급이 낮은 무수리들은 혼인도 하고 대궐 밖에서 출퇴근 하니 말이다.”
내 제안을 들은 조정 중신들은 당연히 당황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시장에서 우수한 자원을 확보하고 싶으면 이쪽에서도 그만한 조건을 제시해야 할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