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66
4부 250화(1866화)
13.
원자가 탄생했으니 늘 하는 행사가 있다. 전국에 내리는 특사령, 그리고 채무 탕감이다.
“전국의 옥에 있는 죄수 중 가벼운 죄를 지어 용서할 여지가 있는 자들을 골라 사면하며, 백성들이 올해 갚아야 할 환곡의 기한을 내년으로 미루고 그 이자를 면제한다. 이로써 짐이 느낀 기쁨을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모가 조급해하기는 했지만, 내 나이는 이제 겨우 만 스물이다. 즉위한 지도 3년밖에 안 됐다. 후계자 문제로 크게 유난을 떨 것까지는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특사다 채무 탕감이다 하면서 요란을 떠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자 탄생이라는 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사건이어서기도 하지만, 시선을 끌 필요가 생겨서이기도 하다. 올해 농사, 흉년이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예상치 못한 늦가뭄이 들었다. 늦가뭄도 농사에 해를 끼치기는 마찬가지라, 본국 전역으로 따지면 대략 2할 정도 수확량이 감소하리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차라리 봄에 가뭄이 들었으면 외방에서 곡물을 미리 사들였을 것입니다만……”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다행히 유구와 대남과 누손의 농사는 나쁘지 않았으니, 그쪽에서 쌀을 좀 더 들여오도록 하시오.”
무종 시절에 이런 흉년이 들었으면 나라가 뒤집힐 난리가 났겠지. 아니, 장조 시기까지만 해도 마찬가지다. 필리핀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이 정도 흉년은 견디기 힘든 고난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 영토가 남북으로 원체 길게 뻗고 보니 국토 전체가 한꺼번에 흉년이 드는 사태는 사실상 없다. 그러니까 식량이 넉넉한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으로 ‘국내 운송’만 잘 이루어져도 지금 일본처럼 기근을 겪지는 않는다고 봐도 좋다.
“그런데 송나라 측에서 먼저 쌀을 팔겠다는 제안이 왔다고?”
“예, 폐하.”
승선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돌리니 후송 공사, 조귀염(趙貴閻)이 간사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작년에 부임한 새 공사다. 그의 전임자인 송위호는 선황 시절에 유구를 속국으로 들였음을 축하하고자 연 연회에서 우리와 일본 사이를 이간질 하려고 시도했던 바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번 우리 속을 긁었다. 하지만 선황은 의외로 대범한 모습을 보여 별 트집을 잡지 않고 내버려 두었었다.
그런데 조문 사절로 건너온 임칙서가 그를 데리고 가벼렸다. 아편 단속에서 우리 협력을 얻으려면, 수시로 우리 비위를 거스른 전과가 있는 송위호를 본국으로 빼내는 게 좋겠다고 뒤늦게나마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 후임으로 새로 건너온 조귀염은 살살 우리 속을 긁곤하던 송위호와 달리 우리 조정에 매우 협력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번 곡식 제공 제안도 마찬가지였다.
“본국에 계신 천자께서 칙서를 내려서 알리시기를, 임금께서 받아들이시기만 한다면 백만 석의 양곡을 선사할 의사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운반은 한선(韓船)들도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리다. 황제께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내가 냉큼 받겠다고 하자 순간적으로 조귀염의 얼굴이 흔들렸다. 이놈, 내가 안 받겠다고 할 줄 알았나 보지? 자존심 세우느라? 이 자리에 앉는 것도 네 번째쯤 되고 보니 그딴 거 챙겨서 뭐 하나 싶다. 그래서 준다고 할 때 냉큼 받겠다고 했다. 어디, 1984년에 허세로 남쪽에 수해 구호물자 모낸다고 했다가 낭패를 본 김일성 같은 심정이 한번 돼 봐라.
“뭐, 귀국 측에서 보여주신 성의는 감사하나 대가는 적절히 치르도록 하겠소. 귀국에서도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다고 아는데, 큰 부담을 안기고 싶지는 않구려.”
하지만 남에게 빚을 지면 기분이 개운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 그것도 우리 대한의 최대 가상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후송이 상대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중에 그 쌀 백만 석 때문에 무슨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지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적당한 가격을 쳐주고 사 오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얼마라도 쥐여주면 그건 정당한 거래고 빚이 아니니까.
빚을 따져 보자면, 현재로서는 후송이 우리한테 한 번 신세를 진 상태다. 지난번 국상 때 임칙서가 찾아와서 부탁한 덕성도 건이 있지 않은가. 임칙서는 아편을 유통하는 잠상들을 토벌하는 데 덕성도 조직을 활용하고 싶으니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었다. 나는 그 부탁을 받아들여서 구월산에 있는 덕성도 본산에 서한을 한 통 보냈었다. 덕성도 교단은 기꺼이 그 요청에 화답하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대천사 명의의 서한을 보내 후송에 있는 신도들에게 후송 조정의 뜻을 따라 아편 잠상들과 싸우도록 권하겠다고 말이다.
나는 후송에 있는 덕성도 신도들이 죄다 지하로 숨어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중에서 일부는 구월산과 연락이 되고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교단으로서는 그 사실을 굳이 내게 밝힐 필요 같은 건 없었으리라. 어쨌든 구월산에서 보낸 서한을 받은 후송의 덕성도 신도들은 후송 조정의 지시에 따라서 향보단을 결성하고 아편 잠상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덕성도 교단을 공인해주겠다는 약속이 걸려 있으니 정말 열성적이었다. 덕성도 측에서도 이들의 활약에 관해 내게 이렇게 전했다.
『…..송나라에 있는 우리 신도 40만이 대천사의 부름을 받고 떨쳐 일어나니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흔들렸습니다…..우리 교도들이 짓쳐들면 잠상들은 개미 떼처럼 흩어져 달아나고, 그 뒤에는 놈들이 흘리고 간 다대한 재물과 아편이 남았습니다…..』
덕성도 교단의 주장에 따르면 덕성도 향보단은 1년 동안 아편 잠상 10만 명을 베었으며 30만 명을 사로잡았다. 또한 이들로부터 백만 냥에 달하는 재물과 십만 짝에 달하는 아편을 빼앗았다고 한다. 뺏은 재물과 아편은 모두 후송 관헌에게 넘겼다고 했고.
정말 중화의 기상이 드러나는 수치다. 분명히 시조대천사 광진이 창시한 덕성도는 저따위 허언과는 거리가 멀었건만, 중원으로 넘어가더니 그놈들도 중원식 허풍선이가 되어버렸다. 아니, 애초에 중원 쪽 교단은 구성원이 죄다 중국인이니 당연한 일이려나. 다만 조귀염은 그 소식이 마땅치 않은 듯했다. 난처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저희 조정에서 덕성도로부터 받은 노획품의 양은 그만큼은 아닙니다만……”
“짐이 그 진상을 어찌 알겠소. 수납한 관리가 적당히 횡령하고 올렸겠지. 그 정도야 흔한 일 아니오?”
일선에서 관리들이 세금이나 전리품을 떼어먹는 건 하도 흔한 일인지라 조귀염은 차마 내 지적에 반박하지도 못하고 진땀만 흘렸다. 그런데 이름이 ‘귀염’이라 그런가. 왜 쩔쩔내는 꼴이 저리 귀여워 보이지. 정말 덕성도에서 향보단 40만을 동원했는지 4천 명을 동원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쨌든 그놈들이 아편 잠상들을 토벌하고 있기는 하는 모양이고, 성과도 내긴 해는 모양이니 내가 양자를 중개한 보상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겠나.
하나 걱정되는 건 아편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던 덕성도 조직이 변질하는 거다. 그놈들이 돈맛을 보고 피맛을 알게 되면 동네마다 터를 잡고 자기들이 새로운 카르텔 노릇을 하는 게 아닐까. 원래 세계 멕시코에서 그랬던 것처럼. 후송에서도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 수습은 그놈들을 불러달라고 한 후송 조정이 책임질 일이다. 만약 그놈들이 타락해서 카르텔로 전락하고 덕성도 조직망을 통해 본국으로 아편을 수출하기 시작한다면 심각한 문제겠지만, 그럴 조짐이 보이기 전에는 일단 놓아두자. 더 급한 다른 일이 많다.
14.
한참 예전, 무종 때부터 벼르던 일이 하나 있다. 체계적인 장교 양성을 위해 사관학교를 육해군에 별도로 설치하고 운영하는 거다. 하지만 무종 때는 계획한 일들을 뭐 하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내가 칼을 맞는 바람에 몽땅 좌절되고 말았다. 장조 때 강무관을 설치하면서 육군사관학교는 생겼다. 하지만 해군사관학교는 따로 만들 틈이 없었다. 해군 군관을 아예 별도로 모집하지 않는다. 육해군을 따로 누누지 않고 일단 강무관에 입교부터 하고, 기초교육을 받은 뒤에 해군을 지망하는 자들을 골라내는 식이다.
현재 강무관에서는 1년 동안 기초교육을 한 뒤에 육해군 중에 선택할 기회를 준다. 육군 지망자는 강무관에 남아서, 해군 지망자는 배를 타고 2년 동안 추가 교육을 받는다. 해군에 지원한 생도들이 후보생 시기를 배에서 보내는 건 유럽 해군으로부터 배운 전통이다. 영국 해군만 해도 후보생들은 여전히 배를 타고 바다를 돈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영국과 미국은 19세기 중반이면 정식으로 사관학교를 세워 해군 장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프랑스와 러시아는 이미 해군사관학교를 설립했다더라.
그래서인지 선황도 사관학교 개편 분제를 거론한 적은 있다. 하지만 중신들이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자 바로 철회하고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중신들과 싸워 가면서까지 추진하려는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사관학교 설치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그다지 돈이 많이 들 것도 아니고, 나라에 가뭄이 들었다고 해서 처리하기 곤란한 사안도 아니다. 올해 전반기에는 여학교 설립 문제로 왕창 시끄러웠으니 후반기는 사관학교 설립 문제로 시끄러워 보자.
‘이거, 올해는 아예 학교의 해로구먼.’
물론 손대기로 하면 손댈 학교가 한둘이 아니지만 그것들은 일단 나중으로. 지금은 먼저 사관학교 설치 문제부터 처리할 생각이다.
“해군은 육군과 그 역할이 크게 다르므로, 학교를 별도로 두어 군관을 양성함이 가하다고 하겠습니다.”
해군 제조 이한제 – 이순신의 6세손이다 – 가 해군사관학교의 필요성에 관해 중신들 앞에 서서 설명했다. 해군에서 익혀야 하는 항해ㆍ포술ㆍ기관과 같은 전무개술은 육군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고, 별도의 학교에서 시간을 들여 따로 가르쳐야 한다고.
“지금처럼 배를 타며 직접 배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는 학문을 처음 익히는 아이에게 대뜸 사서삼경을 건네주고 그냥 읽으면 된다고 다그치는 말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영국이야 수많은 전쟁을 겪었으므로 후보생들이 배를 타고 나가 실전과 실습을 뱅행하는 게 당연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영국도 조만간 사관학교를 세워 해군 장교 양성을 시작한다. 즉, 사관학교 개설은 확실하게 시대적으로 필요한 조치다.
“폐하. 비록 육군과 해군이 갈라진 지 수백 년이 되었어도 서로 반목하지 않음은 무과에 합격한 뒤 강무관에서 1년이나마 함께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과 합격 후에 곧바로 갈라져 따로 군무를 익힌다면 서로를 남으로 보고 적대하게 되지 않을지 걱정되옵니다.”
우참정대신 한승롱이 완곡하게 반대를 표했다. 실제로 한승룡이 말한 건 통합사관학교의 순기능 중 하나다. 그리고 각 군 사이의 반목은 과거 여러 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 가장 심했지만 다른 나라들도 갈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육군이건 해군이건 모든 장졸은 폐하의 군병으로서 최선을 다해 각자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맡은 일만 처리하기에도 힘이 부족한데 어찌 쓸데없는 싸움 따위로 성총을 흐릴 궁리를 하겠습니까.”
육군 제조와 해군 제조, 두 사람이 입을 모아 항변했다. 현역 무관 출신인 이들과는 달리 둘 다 문관 출신인 육군대신과 해군대신은 발언은 삼가되 심각한 표정인 채 서로 귀엣말을 나누었다. 이들 역시 해군사관학교의 필요성 자체는 공감하고 있어서다. 다른 중신들도 한 사람씩 일어서서 이 문제에 관한 자기 견해를 밝혔다.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다가 보면 기가 막힌 해결책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기에, 다소 혼란스럽더라도 이렇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는 꼭 필요하다.
“신들이 보기에는 필요한 사업이라고 판단됩니다. 폐하의 듯대로 하시옵소서.”
임금이 새롭게 뭘 하겠다고 하면 해도 될 이유보다 하면 안 될 이유를 더 빨리 찾아내는 집단, 사간원의 후신이 바로 도찰원이다. 그런데 그 도찰원에서도 이 사관학교 신설에 관한 문제를 두고서는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참으로 고맙게도 말이다. 도찰원만이 아니다. 사헌부의 후신인 어사대도, 홍문관의 후신인 한림원도 해군사관학교 신설에 관해 찬성했다. 그러자 여태껏 눈치를 보던 다른 신하들도 슬금슬금 손을 들었다.
“신들도 찬성하옵니다.”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해군에도 강무관이 다로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되옵니다.”
“육군과 해군은 싸우는 장소와 방법이 모두 다르니, 당연히 필요한 전기(戰技)도 별도의 학교에서 따로 배우는 편이 좋으리라고 생각되옵니다.”
“지금도 강무관 한 해 입학생 400명 중에서 100명 정도가 해군을 선택합니다. 그러니 두 학교의 입학 정원을 3백 명과 백 명으로 나누고, 내년 입학생부터 다르게 나누어 배속함이 어떻겠습니까.”
찬성해주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던 덕분에 해군사관학교 신설에 관한 안건은 아주 간단히 통과되었다. 여기에서 강무관은 생도들에게 1년간 기초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으로 존속하고, 육해군의 심화교육을 3년간 실시하는 사관학교를 별도로 설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되면 강무관은 사실상 사관학교 예과가 된다. 여기에 별도로 설립한 사관학교에서 육해군의 특성에 맞춘 제대로 된 교육을 하니, 사관학교는 예과 1년, 본과 3년인 셈이다. 입학 정원도 따로 잡기로 되었으니, 남은 과제는 하나뿐이다. 사관학교를 무슨 이름으로 어디에다 지을지가 남았다.
“바닷가에 있는 요지면서 도성과도 가까운 강화도가 역시 좋을 듯합니다.”
“강화도에는 해군과 등선군으로 구성한 심영(沈營)이 있으니 방비도 든든하고, 통제영이 있는 교동도에 가까우니 관리하기도 편합니다.”
그렇게 해군사관학교의 위치는 강화도로 금방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명칭을 두고 벌어진 논의는 선뜻 결정이 나지 않았다.
“명칭은 ‘통제영학당(統制營學堂)’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옵니다.”
“그보다는 그냥 지명을 따서 ‘강도학당(江都學堂)’이라고 부르지요.”
“그건 아니 되오! 강도를 강도(强盜)로 읽고 도둑놈들을 양성하는 학당이냐고 비웃을 게 분명하지 않소.”
논의는 한참을 더 이어졌다. 하지만 어째 영 신속하게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15.
항구가 가까워진다. 영국 해군 소속 탐사선 비글호는 잔뜩 펼쳐진 돛을 능숙하게 조절해 가면서 부 두를 향해 움직였다. 곧 육지에 도착할 전망이었다. 뱃전에 기대선 청년, 찰스 다윈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눈앞에 펼쳐진 해안선을 살폈다. 처음 보는 한국 해안의 모습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랐다. 신기한 마음에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니 새로운 풍경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곧 제물포에 도착하오, 다윈 씨.”
“네, 선장님.”
“한국은 나도 두 번째 오지만…..주의할 게 많은 나라요. 당신이 젊은 남자라서 조금 경고해 두자면, 절대 여자들한테 추근거리지 마시오. 자칫 몰매를 맞을 수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으니 염려 마십시오. 제게 여자라고 하면 단 한 사람뿐이니까요.”
다윈이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피츠로이 함장이 알겠다면서 물러갔다. 마침 선원 한 사람이 항해에 필요한 지시 때문에 데리러 온 참이라 가야 하기도 했다. 귀찮게 굴던 사람이 사라지자 다윈은 다시금 해안선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처음 와부는 나라, 레스터 백작의 여행기에서 읽었던 그 나라가 여기 있었다. 이제 저녁나절이 되면 그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