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79
4부 263화(1879화)
12.
대한 황실의 본향은 전주다. ‘전주 이씨’니까. 그래서 전주성 내에 경기전을 지어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은 여기 외에도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하나씩 더 있으나 본향인 전주의 의미가 가장 크다. 하지만 전주는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본향일 뿐이다. 실제로 이성계의 근거지는 동북면이 아니었나 말이다. 그곳의 땅과 사람을 기반으로 삼았기에 이성계가 보위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가 이성계의 부친인 환조 이자춘의 저택이자 이성계가 태어난 집인 영흥본궁이고 이성계 본인의 잠저였던 함흥본궁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왕실에서는 이 두 본궁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한 증 더 중요하다. 보위에 오르기 전, 이성계는 문자 그대로 북방의 패자였다. 조선인과 여진인을 불문하고 모든 북방 거주민이 그 위명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한에서는 그 이름을 북방 경략에 하주 효과적으로 써먹었고, 당연히 함흥 본궁도 그 상징으로서 대대적으로 중건되었다.
태조 시절의 원본 건물을 철거하거나 개축한 건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주변에는 십여 채는 족히 되는 전각이 새로 들어섰다. 분명 장조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건물들이 늘어선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건물만 늘어난 게 아니다. 마치 자금성 안마당처럼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았다. 길주에서 생산한 고급 대리석이 본궁 전체의 바닥을 덮었다. 경복궁이나 경희궁에도 안 하는 사치다.
여기에 다른 어느 궁전에도 없는 장식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이지란을 비롯한 개국공신 수십 명의 대리석 입상(立像)이 경내에 줄지어 섰고, 이성계가 거느렸던 가별초 병사들을 묘사한 대리석상이 본궁 안팎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확장한 결과 이 함흥본궁은 도성 밖에 있는 사당중에서 가장 큰 시설이 되었다. 도성에 있는 종묘를 제외하면 함흥본궁이 전국에서 가장 큰 사당이다.
“주상 폐하! 온 동북면이 폐하의 왕림을 기뻐하옵니다!”
본궁 앞에는 동북면의 유력자들이 집결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부가 한번 다녀간 뒤로 40년 만에 임금이 함흥에 온 거라고 하니, 감격할 만도 하겠지. 마차에서 내리니 수백 명이나 되는 군중이 통로 양편에 무릎 꿇고 엎드려 나를 맞이하는 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놀라우면서도 감격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뿌듯했다. 젊은 임금이니 얕볼 법도 하건만, 그런 기색도 전혀 없었다.
“폐하, 신들이 죽기 전에 폐하의 용안을 뵈었으니, 지금 죽어도 원이 없사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흐뭇한 마음을 품고 마차 위로 올라갔다. 승선과 선전관들이 당황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마차 지붕이 뭐 그렇게 위험한 장소도 아니고.
“짐도 그대들의 환영이 기쁘구나. 이곳 함흥은 태조께서 기업(基業)을 이루신 곳이라, 이 나라가 존속하는 한 그 이름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대들의 충성이 이 대한이라는 나라를 세울 수 있게 했으니, 그대들의 공적도 함께 남으리라.”
“주상 폐하 만세! 만세!”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함경도의 유력자들은 벌떡 일어나서 두 팔을 들고 연달아 만세를 연호했다. 나도 한 손을 마주 흔들어 답례를 보낸 뒤 흐뭇한 마음으로 지붕에서 내려왔다. 밑에 와서 기다리던 함흥부윤 조학순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사 준비는 다 갖춰두었습니다, 폐하.”
“수고가 많았다.”
경기전이나 함흥본궁 같은 황실 시설을 관리하고 제사를 올리는 건 기본적으로 내수사가 맡은 역할이다. 하지만 해당지역 지방관에게도 당연히 관리 책임이 있다. 더구나 이번에는 임금이 직접 올리는 친제(親祭)니, 그만큼 더 중요하다.
조학순은 전력을 다해 제사 준비를 갖춰놓았다. 내가 미리 보낸 해우고기와 거북이에다, 좋은 말과 소를 잡아서 제물을 마련했다. 곧이어 이어진 제사 의식도 무난하게 끝났다. 내 제사 경력도 백 년이 넘는데 나한테 어려운 제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대들도 고생이 많았다. 전부 마음껏 먹고 마셔도 좋으나, 태조께서 이 동북면에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경건한 태도를 지키도록 하라.”
제사가 끝났으니 다음 순서는 당연히 음복(飮福)이다. 진귀한 재물인 해우고기를 포함해 갖가지 음식과 술이 상에 놓였다. 제사에 참석한 참배개개들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경건한 분위기를 지키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성계가 죽은지도 어느덧 4백 년이 넘었다. 이쯤 되면 무조건 얌전히 있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제사도 어느 정도 축제 비슷한 게 될 수밖에 없다. 감격한 참배객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외쳤다.
“풍패지향(?沛之鄕), 국본지지(國本之地)인 우리 동북면은 앞으로도 황실에 깊은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주상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왕조의 발상이였으면서도 조사의의 난, 이징옥의 난, 이시애의 난 등으로 인해서 반역향(反逆鄕)으로 취급된 원래 세계 함경도였다면 이런 분위기는 기대하기 힘들었겠지.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일찌감치 함경도에 대한 차별이 사라졌다. 북방 통치에 꼭 필요해서다.
무종 시기에 북방 영토를 추가로 얻게 되면서 함경도의 가치가 올라갔다. 북방을 제대로 통제하려면 그 배후지인 함경도의 역할이 중요했다. 세조 때 생긴 함경도 출신에 대한 무과 응시 금지가 철폐되고, 북방으로 올라가는 물자가 함경도를 거치면서 경제도 발전했다. 함경도의 자체적인 경제력도 올라갔다. 기존의 농업과 어업 외에 광산 다수가 개발되고, 무종 시기에 시작된 담비 사육업과 포경업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 농토가 많은 남부지방 못지않은 부유함을 누리게 되었다. 원산에서는 조선업도 발전했다.
이는 내수사의 번영으로도 증명된다. 내수사가 소유한 농장과 어장, 광산, 삼림 대부분이 함경도에 있으니 말이다. 함경도 백성들은 가난한데 내수사만 부유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부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상인 세력도 나타났다. 함경도를 자기네 기반으로 하는 이 상인들을 북상(北商)이라고 부르며, 평안도의 만상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함경도 군사들이 장조 시절의 전란에서 대활약을 펼치면서, 정치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여전히 문과 합격자는 별로 없어서 조정에서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군대에서는 함경도 출신도 한 세력 한다. 해군은 말고 육군에서.
“폐하께서 부르시면 우리 동북면 백성들은 언제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곧바로 말을 몰아 달려가겠습니다. 주상 폐하 만세! 만세!”
환호가 계속 이어졌다. 점잖게 진해되어야 할 음복이 주연으로 이어져 버린 셈이라 뭔가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13.
‘음복’을 빙자한 연회는 내 예상을 벗어나서 무려 네 시간을 끌었다. 설마 이성계가 자기 집에서 멋대로 술판을 벌였다고 내게 저주를 내리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다만 정작 주최자라고 할 수 있는 나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임금의 왕림에 감격한 함경도 유지들이 줄줄이 찾아와 술잔을 올리는가 하면 얼굴도장 한 번이라도 찍으려고 기를 썼기 때문이다. 이들을 응대하느라 술만 잔뜩 마시고 정작 음식에는 제대로 손을 못 댔다.
“물 좀 다오.”
웃는 얼굴로 마지막 손님까지 다 보내고 나니 어느새 10시였다. 송현승이 가져온 꿀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니 겨우 정신이 들면서 좀 살 것 같다. 내가 꿀물을 마시는 모습을 살피던 송현승이 조용히 내 의향을 물었다.
“야참을 들이리이까, 폐하.”
이 시간이 본래 대궐에서도 야참 먹는 시간이기는 하다. 6시에 저녁밥 먹고, 석강(夕講)하고, 두 분 태후께 저녁 문안 올리고, 면이나 약밥타락죽 따위로 간단히 야참을 먹고, 그뒤에는 책이나 상소문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어디 보자, 여기는 함흥이니까 야식으로……
“출타를 해야겠다.”
“예? 뭐라 하셨습니까, 폐하?”
“본궁 밖에 나가서 야참을 먹고 오겠다 하였다.”
한양에서도 가끔 하던 일이고 보니 별 거리낌은 없었다. 더구나 여기서는 도성과는 달리 나도, 내 일행도 알아볼 사람이 없으니 더 편하게 나갔다 올 수 있지 않겠는가.
“밤에 보니 더 번화하군.”
호위군관의 복장을 걸치고 말을 느긋하게 몰며 중얼거렸다. 밤이 제법 늦었는데도 함흥성 성벽 밖에 펼쳐진 시가지는 사람들로 붐볐다. 함흥부에도 옛날에는 성벽 안에만 거주지가 있었다. 하지만 야인들이 쳐들어올 위험성이 사라지고, 인구가 늘면서 성벽 밖에도 거주지가 생겨났다. 한양에서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 가려는 냉면집도 성벽 밖에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통금 시간이 되면 성문이 닫히니, 밤새도록 장사를 하려면 성벽 밖에 있는 편이 유리하겠지.
“폐하. 여기 면가(麵家)에서 냉면 뽑는 솜씨가 대궐 숙수들보다 더 좋은가요?”
하진교가 탄 안장 앞에 걸터앉은 효순공주가 약간 투덜거리는 태도로 질문했다. 잠자리에 막 들려던 참인데 하진교가 자기까지 끌고 나를 따라나서니 불만이 상당했다.
“어허, 어련히 맛이 없겠소? 폐하께서 모처럼 나온 나들이에 즐거워하시는데, 공연히 산통 깨지 마시오.”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하진교가 먼저 자기 아내를 나무랐다. 그러자 효순공주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하진교의 품을 파고들었다.
“알겠어요, 낭군님.”
아, 정말 닭살 돋네. 누나인 화원공주가 쟤들하고 같이 외출 안 하려고 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웬만큼 눈꼴이 시어야 말이지. 매형인 창녕위 조선창이 애정 표현 같은 걸 겉으로 잘 안하는 성품이다 보니 화원공주가 저런 모습을 더 거슬려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음, 내 품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가…..아닌가?
“폐하와 이런 밤나들이는 처음이라 가슴이 떨리옵니다.”
내 품에 안긴 귀비 최씨의 얼굴이 긴장 때문에 붉게 물들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게 내 몸으로 느껴졌다.
“중전마마와 가끔 궁문을 나서시는 건 신첩도 알고 있었사옵니다. 늘 속으로만 부러움을 삭였사온데 이렇게 폐하와 함께 야행을 나가는 기회가 생기다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것 같사옵니다.”
“…..내가 그동안 귀비를 소홀히 대하여 미안하구려.”
“소홀이 대하시다니요. 소중하게 대해 주신 것을 신첩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중전께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것은 당연한 일이니, 신첩은 그다음 자리로도 충분히 만족하나이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목적지인 냉면집에 도착했다. 길 안내를 맡은 함흥부 아전이 조심스럽게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기다리니 아전이 밖으로 나와 굽실거렸다. 8명이 식사할 수 있는 방을 마련했으니,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폐…..나리.”
“오냐. 고맙다.”
함흥 토박이인 아전이 자기가 아는 가장 맛있는 국숫집 ? 이쪽에서는 냉면을 냉면이라고 안 부르고 국수라고 부른다 ? 이라고 했다. 냉면과 만두가 전문이라니, 어디 맛 좀 볼까.
“국수 나왔습니다!”
냉면이 나왔다. 중노미가 알아듣기 힘든 함경도 사투리로 떠들면서 나무쟁반에 담아 들고 온 냉면을 사람들 앞에 하나씩 놓았다. 각자 입맛에 따라 시킨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하나씩 앞에 놓이고, 가운데는 김이 피어오르는 만두가 담긴 접시가 놓였다.
함경도 쪽 냉면은 감자 전분으로 반죽해서 뽑는다. 생감자는 장기 보존이 안 되다 보니 요즘은 장기 보존을 위해 대부분 전분으로 바꿔서 저장하는데, 이걸로 국수를 만들게 됐다. 삼남 쪽에서는 밀과 메밀로 면을 많이 뽑고 고구마 전분으로도 뽑는다. 하지만 함경도는 감자가 흔해서 밀이나 메밀외에도 감자 전분을 주고 국수 뽑는 데 쓰는 거다.
남쪽에서는 고구마 전분으로 당면도 뽑는다. 다만 이쪽에서는 당면을 당면이 아니라 호면(胡?)이라고 부른다. 산동에서 한공으로 건너온 청나라 노동자들이 전수한 음식이라 저런 이름이 붙었다.
“아주 쫄깃한 게 맛이 괜찮구먼. 한양에서 먹던 냉면과는 또 맛이 다른걸.”
맛을 비교하려고 일부러 두 그릇을 시켰다. 얼음이 동동 뜬 꿩고기 육수에 담근 물냉면, 매운 양념을 대구식해를 얹은 비빔냉면이 모두 맛있었다.
“잠깐. 맹가야, 네놈은 뭘 먹는 게냐?”
호위로 따라온 맹두동 ? 하진교와 함께 귀향해서 갑오정사에서 공을 세운 덕분에 지금은 내 부하가 아니라 하진교의 호위장이다 ? 놈이 아주 태연하게 자기 앞에 수육 접시를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지금 내가 냉면을 먹고 있는데 제놈은 접시째로 수육을 먹어? 다시 보니 고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접시 위에는 큼직한 순대도 잔뜩 놓여 있었다. 아까 본 식단툐에 고래고기 순대가 있었는데, 저게 그거인 모양이다.
“저는 딱히 면이 안 먹고 싶어서 고기를 달라고 했습지요. 나리도 고기를 드시겠습니까? 그러시면 새로 주문하지요.”
내가 먹겠다고 안 했으니까 고기를 안 시켰다는 당당한 해명을 들으니, 머리가 띵해졌다. 내가 냉면을 먹고 싶어서 오기는 했는데 저놈이 저러는 게 예의가 맞나? 아, 예전에 저놈이 억지로 치통 참으려다 발작해서 결국 황산으로 치료받았던 전과가 갑자기 확 떠오르네.
내가 어처구니 없어하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하진교가 슬쩍 끼어들어 수습했다.
“음, 고기 더 달라고 하죠, 형님, 그 김에 반주도 한 잔 어떻습니까?”
“자네는 오후 내내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서도 부족한가.”
잠시 빈정거리기는 했으나 곧 고개를 끄덕이고 중노미를 불렀다. 우리를 한양에서 임금을 모시고 내려온 수행 군관과 궁인들로만 아는 중노미는 신이 나서 술과 음식을 날랐다. 필시 아주 통 큰 손님이 제대로 들어왔다고, 봉 잡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