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83
4부 267화(1883화)
1.
전생, 전전생, 전전전생, 현생. 무종 때, 장조 때, 중종 때, 지금. 임금이 되고 네 번째 인생이 되니, 가끔은 지나간 인생들이 연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지나간 전생들을 연극처럼 1부, 2부, 3부라고 지칭할 때도 있다. 이 기준으로 하면 이번 생은 4부가 된다. 가끔은 이렇게 진행되는 내 삶이 사람으로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역사를 진행하는 캐릭터 정도로 전락하지나 않을지 하는 불안감도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자위하곤 한다. 나, 이재석은 사람이라고. 원래 인생도,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멀쩡한 영혼이라고.
이런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지금 생에서 하는 일에도, 특히나 사람들과의 연결에 한동안 집중하곤 한다. 지금 하듯이 밤늦게 편지를 쓰는 것도 내가 사람이라고 입증하는 과정이다.
『…그대가 보낸 편지는 잘 받았소. 그대도 내가 누이 편으로 보낸 편지를 받았으리라고 생각하오. 나는 지금 북평성에 와 있소. 이곳도 무자호란 시기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옛 전장이건만, 이제는 그 자취는 찾을 수도 없구려….
…내가 그대와 떨어진 지는 이미 한 달을 꽉 채웠고, 봉선을 마친 지도 어느덧 열흘이 다 되었구려. 반년 동안 준비한 행사를 단 사흘 만에 마무리하고, 산에서 내려오니 그간 들인 크나큰 노력이 마치 꿈이었던 듯하오….
…2만에 달하는 관원과 군사, 백성들이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큰 사고가 생기지 않았으니 참으로 다행이오. 빈기증(貧氣症, 고산병)에 걸린 이들이 천여 명 정도 되었으나 안정하며 쉬도록 하니 다 나았고, 낙상하여 구른 이 중에도 죽은 자는 없소. 참으로 하늘이 도왔소….
…장소가 장소다 보니 혹시 호환을 당하는 자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소. 하지만 사람이 원체 많이 모이니 겁을 먹었는지 호랑이도 안 나타나더이다. 다행이었소….
…봉선을 마치고 나니 참으로 뿌듯하오. 지난 4천 년 동안 한 번도 행해지지 않은 행사라 부족하고 모자라는 점이 많았지만, 미리 올라 연습하고 준비한 덕분에 실수 없이 진행할 수 있었소. 이를 기록하여 의궤로 만들게 하였으니, 다음번에는 더 쉽게 할 수 있을 거요….
…다음 봉선이 언제일지는 나도 알 수 없소. 봉선을 행하는 데 워낙 막대한 비용이 들고 많은 사람이 움직여야 하다 보니 적어도 몇 년 안에는 어렵소. 재무부에서 올린 예산안을 보니 대략 20만 냥이 들었는데, 그만한 돈을 매년 백두산에 쏟아부을 수는 없지 않겠소….
…대궐에서는 잘들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오. 그대를 지켜주시는 두 분 태후께서 건강하신 게 가장 반가운 소식이고, 우리 원자도 건강하다니 역시 한시름 놓았소. 아직 아비를 찾을 나이는 아닐 테니, 그대가 잘 돌보아 주시오. 원자는 국본이라, 세심히 돌보기를 부탁하오….
…나는 잘 지내오. 최 귀비가 정성껏 신변을 살피고 있소. 함께 데려온 궁인들을 다스리는 솜씨가 나쁘지 않아 내가 불편한 것 없이 지낼 수 있소. 하지만 그대가 동행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구려. 애초에 어려웠음은 알지만, 그렇다고 아쉽지 않은 건 아니오….
…하와국왕은 여전히 내 곁에 있소. 순행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고서 귀국할 셈이라 하오. 혹시 그전에 하와국에서 재촉이 오거든 그리 전해주시오. 올해 안에는 귀국하리라고….
…귀비는 지난 한 달 동안 무척 즐거워하고 있소. 이해는 하오. 나를 홀로 독차지한 셈이 되었으니 어찌 아니 즐겁겠소. 대궐에 있을 때라고 해서 내가 그를 크게 소홀하게 대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여정에서는 오로지 그가 홀로 나와 함께 있으니 말이오….
…그나저나 큰일이오. 귀비만 데려간다고 서운해하는 동빈을 달래느라고 언젠가 미주에도 갈 테고, 그때는 꼭 동빈을 데려가겠다고 말해버렸으니 말이오. 여기 북한 땅이야 도성에서 급보가 오면 며칠 안에 달려갈 수 있으니 괜찮지만, 미주에서는 그럴 수가 없잖소….
…미주 순행을 가려면 서학당에서 연구하는 전신(電信)이라도 실용화가 되어야 할 거요. 하지만 그놈의 전신기는 지금도 옆방에나 간신히 신호를 보내는 수준이니 언제쯤에나 대양 건너에 소식을 전할 능력이 될지 모르겠소….
…마음 가는 대로 쓰다 보니 편지가 영 중언부언이 됐구려. 다시 깔끔히 정서하여 보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으나, 요즘 내가 어찌 생각하며 지내는지 보여주는 데는 이게 더 나을 듯하여 그대로 보내오. 다음 편지는 삼성부에서 쓸 테니, 건강히 지내기를 바라오.』
먼젓번 편지를 들려 보낸 누이란 내 누나인 화원공주, 아니 화원장공주를 말한다. 임금의 친누이이니 장공주(長公主)라고 부르는 게 옳은 법도이기는 한데, 습관이 안 된지라 아직도 종종 속으로는 그냥 공주라고 부르곤 한다. 남들 앞에서 실수한 적은 별로 없지만. 동빈(桐嬪)은 미주 출신 후궁 김씨의 작호다. 내가 봉선에 이어 북방으로 순행을 간다, 그것도 최씨만 데리고 간다고 하자 얼마나 울어대는지 도리가 없었다. 일단 달래야 했다.
물론 나도 미주에 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중전에게 쓴 이번 편지에 적었듯이, 미주에 한번 가려면 본국 조정으로부터 너무 오래 떨어져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동안에는 아예 몇 달간 소식이 끊긴다. 하지만 북한 지방은 다르다. 이미 동북선 철도는 이곳 북평을 경유해서 삼성부까지 닿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편지도 그 노선을 역으로 내려가 회령을 거쳐서 경성부로 갈 것이고, 거기서 길주, 함흥, 원산 등을 거쳐 도성으로 들어간다. 한양까지 엿새면 간다.
“오자(誤字)는 없는 듯하고….”
늘 그렇듯, 사신(私信)이니만큼 형식보다는 내용에 중점을 두고 편하게 썼다. 혹시 틀린 글씨가 없는지 다시 한번 훑어본 뒤 봉투에 넣고 봉했다.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는 송현승을 불렀다.
“송 내관, 중전에게 보낼 편지를 부탁하네.”
“예, 폐하.”
송현승이 봉투를 받아 들고 나갔다. 유리창 밖에 뜬 보름달을 잠시 바라보다가 펼쳐 놓은 보료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도착도 꽤 늦었는데, 내일부터 이틀 동안 북평부 안팎을 둘러보려면 일찍 자두어야 했다.
2.
백두산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산을 오를 때는 사흘이 걸렸지만, 내려올 때는 아무래도 홀가분해서 그런지 북쪽 비탈에 놓인 길이 남쪽 비탈보다 내려오기 편해서인지 하루를 줄일 수 있었다. 나를 직접 수행하는 인원은 1천 명으로 줄였다. 이중 보병 7백 명은 한양에서 나를 따라 내려온 금군 군사들이고 기병 3백은 현지에서 동원한 오도리다. 도성에서 기병은 따로 오지 않은 이유는 말 운반이 힘들어서다.
이들 외에도 동원한 군사들을 풀어 엄중히 지키게 한 덕분에 열흘 남짓 천지에 머무르는 동안에 호환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우는 호랑이 울음소리는 여러 차례 들었다. 등산할 때도, 하산할 때도 호랑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번 여행이 순전한 유람이었다면 떠나기 전에 군사들을 데리고 사냥을 벌여 호랑이 한 마리쯤은 잡았으리라. 백두산에서 잡은 진짜 백두산 호랑이,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나는 바로 하산하여 북상하는 길을 택했다. 당연히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폐하, 이러지 마시고 망을 펼쳐서 한 서너 마리 잡으시지요? 잡은 호피는 일단 귀비께 한 장 드리시고, 가장 크고 좋은 놈을 따로 골라내서 도성에 계시는 중전마마께 선물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하진교는 내게 호랑이 사냥을 하자고 꼬드겼다. 필시 씨름과 술 대결에서 잇달아 패배한 치욕을 씻고 자기 아내에게도 호피 한 장 주겠다는 심산일 터, 다 들여다보였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그깟 호피 한 장이 아까운 게 아니고 정말로 사냥이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천제께 제사를 드리러 기껏 천산(天山)으로 올라와 놓고 여기서 산군(山君)을 죽이자면 대체 어떻게 하자는 소리냐. 부정이라도 타면 어쩌려고? 마땅치 않은 일이다.”
이대로 북쪽으로 올라가 삼성부까지 방문하고 다시 남으로 내려와 해삼위에서 배를 타는 순행 일정만 해도 빡빡하다. 그런데 순전히 재미로 할 사냥에 하루를 온전히 소비할 여유는 없다. 얼른 일을 마치고 도성으로 돌아가야 할 게 아닌가. 그게 더 중요하다. 백두산에서 내려오니 송화강의 상류인 오도백하(五道白河)가 나타났다. 원래 역사에서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울 때 청나라 측 책임자 목극등이 ‘저게 두만강의 상류인 모양이다’하고 착각하게 했던 그 강물이다.
이쪽 세계에서는 그런 거 없다. 여기서 토문강은 두만강의 이명(異名)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오도백하는 송화강의 상류로서 중요한 지형지물 중 하나다. 지도가 없더라도 흐름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바로 송화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배로 송화강을 내려가는 게 우리 예정이었지만 그러려면 하류로 더 내려가야 한다. 보병 7백, 기병 3백의 호위를 받는 우리 일행은 강의 흐름을 따라서 하류 방향으로 꼬박 사흘을 걸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선단이 나타났고 도보 여행은 끝을 맺었다.
배를 타고 북평까지 닷새나 걸린 건 움직여야 하는 거리가 정말 그만큼 멀었기 때문이다. 아직 장마가 오지 않은지라 수량이 줄어서 여울도 많았고, 배가 어디 걸리거나 얹히지 않게 주의하면서 움직이려니 같은 거리를 움직여도 시간이 더 걸렸다. 여기에 한 가지 일거리가 더 있다. 강변에 있는 고을을 지날 때마다 잠시 상륙해서 그곳 백성들이 용안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간단한 선물이라도 몇 개씩 쥐여주어야 했다. 내가 임금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의무다. 그렇게 민심을 다독이면서 북평에 닿았다.
그래도 북평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괜히 이쪽 방면 철도 부설이 서쪽이나 남쪽보다 늦어진 게 아니다. 여러 개나 되는 강이 수로망을 이루어 물자와 사람을 나르고 있으니, 철도가 급할 이유가 덜하지 않은가.
물론 강이 사통팔달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겨울에는 모든 강이 얼어붙어 어떤 배도 다닐 수 없게 되는지라 조금 늦게라도 철로가 부설되기는 했다. 저기 북쪽, 삼성부까지 올라가는 동북선 본선 외에 여기서 갈라져 나가는 숱한 지선도 있다. 해삼위 주변에도 여럿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회령으로 오는 철도가 지선이고 동해안을 따라서 나진으로 가는 노선이 본선이었다고 알고 있다. 이쪽이 더 길기도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와 연결되는 국제노선이 여기를 지나는 탓이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회령으로 오는 노선이 본선이고 해삼위로 가는 노선이 지선이다. 회령 너머, 두만강 이북에는 광대한 북한 지방이 펼쳐져 있지만 해삼위를 넘어가면 딱히 갈 곳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본선으로 할지, 따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경성에서 해안선을 경유해 해삼위로 가는 지선은 동북선과 별도로 경해선(鏡海線)이라고 부른다. 해삼위가 모든 철도의 종점은 아니고 주변 산업지대를 연결하는 짧은 산업철도가 몇 가닥 더 있기는 하지만, 이쪽은 철도국에서 관리하지 않는 사철(私鐵)이 대부분이다. 물론 회령에서 분기하는 지선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노선이 무산군에서 최근에 발견된 대규모 철광을 개발하기 위해 새로 부설한 사철 노선인 무산선이다. 함경도 상인들인 북상(北商)들이 대대적으로 투자해서 광산국과 함께 운영한다.
북상들은 이 철광을 기반으로 제철업을 벌일 심산이다. 무산에서 채굴한 철광석은 철도를 통해 용원부(龍原府), 즉 원래 세계 지명으로 훈춘으로 옮길 예정이다. 여기가 발해의 옛 ‘동경 용원부’라서 용원부로 불리게 되었다. 주제와 무관한 이야기지만, 연이 시절 용원부를 용원부라고 하기로 했을 때 북평도 발해 때 지명인 용천부로 되돌리자는 제안이 조정 일각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무종 때 정한 북평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졌고 널리 쓰이고 있는데 바꿀 필요가 없다고 기각되었다. 다만 하나는 바뀌었다. 본래 무종 시절에 북평은 ‘베이징의 옛 이름’을 피휘해야만 한다고 해서 북평(?平)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는데, 이걸 제대로 ‘북(北)’으로 쓰도록 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북평(北平)이라고 그대로 쓰고 있다.
하여튼 이곳 용원부에는 풍부한 삼림과 탄광이 있다. 그래서 재목 가공 및 숯 생산, 석탄 채굴 등이 무척 발달했고 연해주 일대에서 캔 철과 주석 등 각종 광석을 제련하는 용광로도 다수 들어섰다. 이를 잘 이용하면 목돈을 들여 새 제련 설비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이 용광로들이 중요한 건, 이것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코크스가 아니라 용원부에서 채굴한 무연탄을 연료로 쓴다는 거다. 이런 기법이 가능한 건 이 용광로들이 노 속에 직접 열풍을 불어넣는 방법을 쓰는 신형이라서 그렇다. 자세한 원리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하면 노 속의 온도가 더 올라가고 효율이 높아져서 무연탄으로도 철을 제련할 수 있다. 참으로 우리 제철 기술의 혁신이며 진보라, 정말 멋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나도 옛날부터 알고 있다시피 무산에서 나는 철광석은 품위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원체 대규모 광산인 데다, 우리 영토인 한반도와 만주에서 채굴하는 철광석 태반이 그 정도 품위인지라 특별히 불리할 일도 없다. 중국산도 마찬가지고. 정 이정도 품질로는 작업이 곤란하겠다 싶으면 나중에 전자석을 사용해서 자석선광법으로 품위를 올리면 된다. 지금이야 전력 공급 문제 때문에 그다지 센 자석을 만들 수가 없지만, 기술이 더 발달하면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곳 북평은 용원부처럼 일찍부터 산업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여진족을 상대하는 군사 거점이라고 생각하고 구축한 요새였지 산업도시가 아니었잖은가.
하지만 여기도 광대한 삼림 및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고을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쥐고 있는 점에서는 용원부와 비슷하다. 그래서 개발이 진행되면서 차츰 도시가 커지고 번영하는 모습에 기대가 크다. 내 앞에서 자기 고을에 관한 브리핑을 진행하는 부여도 ? 옛 부여주에서 갈라진 세 개의 도, 발해도?부여도?삼강도 중 가운데 있는 도 ? 관찰사의 태도에서도 그런 자부심이 은근히 엿보였다. 이제 부여도도 본국에 속하는 지방이니, 양강 이남에 꿀릴 게 없다는 태도였다.
“잘 들었다. 그대가 선정을 베풀었기에 부여도가 이토록 번영하고 있을 터. 아주 훌륭한 목민관의 태도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인구도 제법 증가했고, 행정은 원활하며, 산업은 발달하고, 학교도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이만하면 어디서 흠잡을 데가 없는 수준이다. 그것도 온난하고 풍요로운 남쪽 지방 읍이나 군도 아니고 ‘춥고 척박한’ 만주 한복판에서 말이다. 관찰사 박홍선은 내 칭찬을 듣더니 감격했는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거참, 사람 민망하게 왜 이러나. 적당히 좀 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