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95
4부 279화(1895화)
7.
필리핀에 우리 이주민이 들어간 건 대략 1600년대 후반기부터였다. 해적과 잠상과 불법 중개업자들이 얽힌 그 혼잡한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어지럽다. 대남도로 들어간 이주민들은 땅을 받는 대신 국유지를 개간하고 경작하는 의무가 있었다. 7년 동안 계약노동자로 일해야만 땅을 받을 수 있었지만, 어디에 어떤 땅을 받을지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게 싫은 자들이 잠상을 겸하는 중개업자들을 통해 루손섬으로 넘어갔다. 내가 즉위했을 때 그 숫자는 이미 수십만이었고, 대한과 스페인 양국은 이들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지만, 양쪽 다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묵인했다. 그 어중간한 상태가 그만 안 좋은 방향으로 터지면서 계미남변으로 이어졌다.
계미남변이 끝나고 스페인령 필리핀이 대한령 누손주가 된 해가 건흥 8년(1707)이었으니 그것도 벌써 올해로 딱 130년이 되었다. 1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으면 그 정도는 완전히 평정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필리핀에는 수천 개나 되는 섬이 있다. 우리 해군 순해국에서 조사한 섬 숫자만 해도 약 6천 개를 넘는다. 조사에서 누락된 섬도 적어도 수백 개는 되리라고들 보고 있다.
섬과 섬 사이의 바다까지 포함한 전체 면적은 흑룡강 이남 북한 땅에 버금간다. 이 넓은 지역을, 그것도 땅과 바다가 뒤섞인 지역을 제대로 제어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육지로 맞닿은 북한 지역을 조정에서 완전히 통제하는 데도 대략 2백 년 이상이 걸렸는데, 수천 개의 섬을 일일이 뒤져야 하는 먼 남쪽 섬나라가 한순간에 제압될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막대한 병력과 자원을 소모하면서 필리핀 제압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느냐 하면 여기서 또 부정적인 대답이 나온다.
“누손 본도(本島, 루손섬) 하나만 해도 대남도 전체보다 넓습니다. 그 섬 하나부터 제대로 개간하기도 벅찬데 서두를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6년에 걸쳐 재무대신 자리를 지키다가 이제 우참정대신으로 오른 우리 장인어른, 복주후 권세직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태도로 발언했다. 그의 말은 지난 백여 년간 필리핀을 보는 우리 대한 조정의 태도를 정확히 대변했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종께서 처음 대명천자께 그 땅을 하사받으신 뒤, 요충을 골라 성을 쌓고 천천히 주변을 정돈해 나갔습니다. 누손에서도 이를 똑같이 하였으니, 어찌 이어지는 양상에서 차이가 나겠습니까.”
하기야 나도 그랬다. 최우선 제압 대상은 스페인군 주력이 집결한 루손섬이었고, 그보다 남쪽에 있는 목표물은 팔라완과 민도로 등 루손을 직접 위협할 수 있거나 마닐라에 식량을 대는 섬이었다. 세부는 루손 정복 이전에 스페인이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었고. 이런 섬들부터 제압하고 개척하는 데도 바빴다. 그래서 나머지 섬들은 원주민들이 밖으로 기어나와 멋대로 설치지 못하도록 봉쇄하면서 주기적으로 토벌대를 파견해서 휩쓸고 나오는 식으로 상대했다. 토벌의 일익은 누손주 관군, 일익은 술루군, 일익은 누손주 민보군이었다. 관군과 술루군이야 당연히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역도 아닌 민보군, 즉 민병대가 스스로 싸움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리품 때문이다.
모로족 ? 조정의 통제를 받지 않는 원주민의 통칭 ? 과 싸워 얻는 물품은 그게 뭐든 얻은 자가 갖는다. 모비(謀匪)로 칭하는 모로족 포로는 노비로 삼고 재물을 챙긴다. 아, 노비제 폐지 조치로 이 부분은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포로를 일단 노비로 삼은 뒤 속량하고 몸값을 갚게 했는데, 지금은 반역을 도모한 죄로 노역형에 처하고 노역수 신세인 이 포로들의 관리권을 행사하게 한다. 이들도 묘노와 마찬가지로 처지가 더 나빠진 셈이다. 물론 모든 전리품은 태황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리품을 일단 회수했다가 전공에 대한 포상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돌려주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처분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민보군으로 나선 이들이 노리는 게 바로 이 포상이다. 그리고 광산이다. 누손에는 황금을 캘 수 있는 광산이 곳곳에 있고, 아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새 광산을 찾으러 다니는 사채꾼도 수천 명은 족히 된다. 물론 모든 광산은 태황의 소유다. 하지만 잠채(潛採)가 목적인 사채꾼들에게 그런 규제는 별 의미가 없다. 잠채꾼들의 목적은 금맥을 캐서 한몫 단단히 챙기고 튀는 거니까. 그래서 조정에 반항적이지 않은 토인부락도 습격하곤 한다. 몰아내고 금을 얻으려고 말이다. 이들은 아직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섬에도 금을 캐러 숨어든다. 그리고 토벌을 빙자해서 토인 마을을 습격하고 다닌다. 그리고 죽인 토인들을 철저히 발가벗긴다. 토인들이 목걸이, 귀걸이, 코걸이, 팔찌, 반지 등 온갖 금 장신구를 착용하기 때문이다.
“토인들이라고 당하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자기네 세력권에 들어오거나 인근을 지나가는 우리 한인들을 습격해서 잠채꾼이건 아니건 귀를 자르고 상투를 뜯지요. 저들이 먼저 당한 바가 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무도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의 가치는 토인들도 안다. 금을 찾는 스페인인들, 그리고 술루 해적들을 수백 년 동안 접했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저들의 목표가 하필 귀와 상투인 건 한인 남자들이 몸에 두르고 다니는 보석, 금붙이라곤 귀걸이와 관자, 동곳뿐이라서 그렇다. 여자들이야 귀걸이 이외에도 반지나 팔찌 같은 장신구도 즐겨 착용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귀걸이 외에 다른 장신구는 쓰지 않는다. 이런 류의 토인 도적단은 평정되지 않은 남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루손에도 관의 손이 채 미치지 않은 산골짜기나 밀림에 틀어박혀 활동하는 토인 도적단이 몇 개인가는 있고, 그 신출귀몰한 활동으로 우리 관원들이 골치를 앓게 만든다.
“소신이 한때 누손주 도독부에서 근무했을 때 그 도적들이 우리 백성을 잔인하게 살상한 참상을 여러 번 보았는데 끔찍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혹시 꿈에서라도 볼까 무섭습니다.”
권세직이 부들부들 떨었다. 정말이지 자기 어머니나 딸하고는 전혀 다른 태도다. 어떻게 이렇게 성품이 다를 수 있는지 원. 하여간 권세직이 공포에 떠는 것과는 별개로, 필리핀 문제를 해결하기는 해야겠다. 그게 후송보다는 먼저 처리할 문제다. 우리 내부의 안정을 위한 일 아닌가.
“누손주 도독부에서 올라온 최근 보고를 가져오라.”
우리 대한의 군 편제는 중종 말기에 정비한 뒤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금군, 경군, 지방군 셋을 합친 육군은 직업군인인 군관, 군교, 고병이 대략 18만이고 징병이 40만이다. 해군이 등선군을 포함해서 8만 명 선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전체 관군 규모는 대략 66만이다. 물론 이게 우리 군사력의 전부는 아니다. 정규군은 아니지만 준군사조직에 해당하는 병력 6만이 더 있다. 내무군 노릇을 하는 우포청이 3만 명, 몇 년 전에 내가 미주에 다녀오면서 창설한 미주순검대가 3만 명이다.
미주에서는 미주순검대가 유일한 상비전력이다. 예전에 미주 각지에 주둔하던 둔전병들도 이제는 모두 미주순검대로 편입되었다. 미주 각 지역의 치안 유지 및 누벨 프랑스와의 국경 경비, 새로 편입한 동미주 지방의 ‘도적’ 토벌까지 전부 미주순검대의 몫이다.
이 ‘도적’은 당연히 아직도 우리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는 멕시코 반군을 뜻한다. 우리 조정에서는 그런 자들을 가리켜 ‘맥비(麥匪)’라고 지칭한다. ‘맥고국의 비적’이다. 미주와 달리, 누손주에는 관군이 다수 주둔하고 있다. 누손주 병마사 휘하에 있는 병력은 고병이 1만, 징병이 2만이다. 이중 군관들이 포함된 고병은 본국을 비롯한 타지역 출신도 많지만, 징병된 군사는 전부 누손주 출신들이다. 물론 누손주가 실제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은 이것보다 훨씬 많다.
병마사에게는 필요시 도독부를 통해서 속오군을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뿐더러, 앞서 언급한 민보군을 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쪽은 속오군 소집보다 빠르게 모을 수 있다. 여기에 번병(藩兵)인 술루군이 추가된다. 술루군 3만 명 중에서 대략 8천 명은 늘 누손주 남부에 출정해 있으니까 말이다. 고로 누손주에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최대 4만 명에서 5만 명 정도인 셈이지만, 실제 토벌에 종사하는 인원은 보통 그 1할 이하다.
“누손주 병마사에게 일러 모비(謀匪)를 토벌할 병력을 최대한 모으라고 이르시오. 비용과 물자가 모자라면 조정에서 대줄 테고, 병력이 부족하면 일단 대남주에서, 그리고 본국에서 원군을 보낼 것이오. 육군대신, 병력만 넉넉히 준비하면 모비들을 모두 토벌할 수 있겠소?”
대남주 병력을 본국보다 우선한 건, 열대병 때문이다. 본국에 주둔하던 병력은 누손주에 가면 학질을 비롯한 수많은 열대병으로 무더기로 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기후가 비슷하고 질병에 강한 대남도 군사들이 먼저 꼽힌 거다.
“다른 섬들은 몰라도 갈로도는 너무 어렵습니다, 폐하. 워낙 크고 넓은 섬인 데다 울창한 밀림이 우거지고, 덥고 습한 기후 탓에 풍토병도 심합니다. 태풍이 자주 불어 선편을 통한 보급도 곤란합니다.”
육군대신 이원달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도 해군대신과 마찬가지로 문관 출신이긴 하나, 본인이 열심히 배우고 익힌 탓에 군무에는 무척 밝다. 군사를 움직이는 데 관해서도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매우 잘 알고 있고, 대신으로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갈로도 토벌이 어려운 거야 나도 익히 아는 문제다. 21세기에도 필리핀 정부군이 민다나오섬의 이슬람 반군을 상대로 고전을 치르고 있었으니 말이지.
“좋소. 그러면 나서도록 합시다. 4만 병력을 준비해서 대대적인 모비 토벌을 준비하시오. 다른 섬들은 송두리째 제압하고 갈로도는 해안을 완전히 장악하여 모비들이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요. 5년 안에는 모비의 씨를 말린다는 각오로 토벌에 임하라 명하시오.”
그동안 우리 조정이 모로족 토벌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데도 이유는 있다. 앞서 권세직이 언급했듯이 루손을 비롯한 필리핀 북부만 해도 개척할 땅은 넉넉했고, 모로족이 설치는 건 자기네 본거지 인근이고 루손을 비롯한 북쪽으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난 백여 년 동안 조정에서는 엉망진창인 필리핀 남부를 서둘러 평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섬인 갈로도(민다나오)만 술루군을 시켜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다른 섬은 북쪽에 있는 것들부터 순차적으로 제압했다. 그게 아직 덜 끝났을 뿐이다.
“계미남변이 끝나고 바로 놈들을 토벌해야 했지만, 역대 선황들께서 귀부할 시간을 주고 자비를 베푸셔서 그만 늦어진 것이 아니겠소? 백 년을 넘도록 기다렸으니 이만하면 되었소. 오래된 종기와 같은 그자들을 이번 기회에 싹 쓸어내고자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모로족 공격은 외국과 전쟁을 치르는 게 아니라 국내의 반적을 토벌하는 내정과 관련된 활동이니만큼 정치적인 부담이 훨씬 적다. 게다가 이 ‘반적’들은 엄연히 우리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있으니, 당연히 토벌 대상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들 중 다수가 누손에서 농장이나 광산을 경영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모비 토벌, 그리고 이로 인한 치안 안정은 당연히 자기들 자산을 더 안전해지게 해주는 이득이 된다. 그리고 대규모 토벌로 쓸어 없앨 수 있는 게 어디 모비뿐인가. 잠상과 사채꾼들도 쓸어낼 대상이다. 그놈들, 해적을 겸업하는 놈도 허다하다. 그 못된 놈들이 모로족이 장악한 섬들을 피난처로 쓰며 관헌의 단속을 피하고 있으니, 이참에 그놈들도 한번 싹 쓸어내야지.
8.
“폐하, 신첩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약속? 무슨 약속?”
동빈 김씨가 옷고름을 푼 내 품을 파고들면서 속삭였다. 순간적으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약속을 했더라? 금강석 장신구? 새 비단옷? 해달 모피 목도리? 뭐였지? 미주 여행 약속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언젠가 훗날에 가겠다는 막연한 약속이었지 북순에서 돌아오자마자 당장 가자는 게 아니지 않았는가. 동빈이 바보나 어린애도 아닌데 설마 그걸 가지고 떼를 쓰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른 대답하지 않으니 동빈이 땅이 꺼지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일어나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당최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앞섶을 여미지도 않은 채 나도 일어나서 앉았다.
“동빈, 울지만 말고 말을 해보시오. 짐이 무슨 약속을 잊었는지 말이오. 말을 해줘야 다시 상기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겠소.”
한참을 어르고 달래니 겨우 동빈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하소연은 내가 설마 하고 생각했던 그건 아니었다.
“미주에 있는 혈육들이 보고 싶사옵니다. 폐하, 신첩의 가족들이 신첩을 만나보고 싶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고 하셨지요?”
“그야 당연한 말 아니겠소. 미천한 백성이라 해도 뱃삯만 내면 자유로이 바다를 건널 수 있는데 누가 감히 태원백이 도항(渡航)하지 못하게 막겠소. 염려 말고 건너오라 이르시오.”
동빈은 유일하게 삼간택에 들지 못한 후궁이다. 삼간택에 들지 못했음에도 잉첩으로 내 후궁이 될 수 있었던 건 미주 출신에 대한 정치적인 배려가 컸다. 물론 그 미모가 뛰어나서 더 쉽게 통과된 면도 있었지만. 그리고 후궁의 가족들이 대궐에 드나드는 건 본래 금지된 일도 아니다. 후궁이 마음대로 외출하는 건 어렵지만, 부모나 형제가 살짝 입궐해서 잠시 만나고 가는 정도는 관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귀비 최씨나 수빈 송씨도 가족이 종종 찾아온다.
“폐하. 사가에 있는 제 부친이 입궐하면 혹시 알현을 허락하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이오. 태원백도 사사로이 내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찌 만나지 않겠소.”
애초에 중전도 아니고 후궁의 일가가 입궐해서 임금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후궁은 어디까지나 중전보다 격이 낮으면서도 철저히 구분되어야 하는 존재고, 그런 후궁의 일가가 임금을 따로 만난다는 사실부터가 중전의 일가를 깎아내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빈의 부친인 태원백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애초에 미주 출신 후궁을 받아들인 것부터가 정치적인 안배였다. 그러니 미주에서 온 그 부친에게 공식적으로 알현을 받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될 일이 없다는 말이다.
“정말이시지요? 꼭 만나주시는 거예요?”
“아무려면. 약속한다지 않느냐.”
“감사해요, 폐하!”
언제 울었냐는 듯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은 동빈이 덤벼들어 내 목을 끌어안았다. 힘을 주지 않은 상체에 무게가 실리면서 내가 뒤로 쓰러지자, 동빈이 생긋 웃으면서 그대로 내게 입을 맞추었다. 곧 걸치고 있던 옷이 미끄러지듯이 벗겨지고 숨소리가 가빠지기 시작했다.
동빈이 왜 자기 아버지가 오면 꼭 만나달라고 신신당부했는지, 그 수수께끼는 며칠 뒤에 풀렸다. 미주대총관 김용관이 급히 보낸 표문 때문이었다.
“뭣이라? 미주에서 태원백이 유지들에게 연판장을 받으며 돌아다니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