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899
4부 283화(1899화)
14.
“소인이 계속 머물면서 폐하의 옆을 든든하게 받쳐드려야 하는데.”
내가 따라준 술 한 잔을 앞에 둔 하진교가 얄밉게 이죽거렸다.
“조만간 미주에서 태원백이 건너올 게 아닙니까. 세상 이치를 제대로 모르는 그 양반에게 폐하께서 참교육을 행하시는 모습을 꼭 보고 필요한 응원도 해드려야 하는데, 왜 이리 저를 하와국으로 쫓아 보내려 하십니까.”
“그 일은 내가 할 터이니 너는 이만 돌아가거라. 네가 왕으로 즉위한 뒤 마가궁에서 지낸 기간보다 경희궁에서 보낸 기간이 더 길다는 건 생각해 봤느냐? 이러다가 네 백성들이 네 얼굴을 잊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하아, 그건 그렇군요. 지금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 다만 왕비가 아무래도 또 뱃속에 애를 가진 것 같으니 당분간 좀 기다려 주시면….”
“배도 별로 안 나왔던데 애는 무슨 애냐. 하나 데리고 온 아들을 둘로 만들어서 돌아가면 됐지, 몇이나 더 낳아서 갈 생각이냐.”
국상에 참여한다고 달려와서 봉선에 참례하고 북순까지 동행했으니 이제 할 건 다 했다. 그래서 하진교에게 이제는 좀 돌아가라고 했더니, 생기지도 않은 애를 핑계로 징징거렸다. 시간을 끌다가 겨울이 닥치면 뱃길이 끊겼다는 핑계로 눌러앉으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겨울 동안 정말로 셋째를 만들고, 그 애가 태어날 때까지 버티고, 그러고 나면 또 백일까지는 배를 못 탄다고 버티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핑계를 만들어서 계속 한양에 눌러앉을 속셈이 아니냐?”
“허허, 제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허허.”
내가 따라준 술잔을 앞에 둔 하진교가 눈도 깜짝하지 않고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이 자식 또 거짓말이구먼. 실은 이번에도 내 말대로 할 속셈이었으면서. 하여튼 이제는 좀 가라.
하진교가 내 가장 친한 친구고,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즐거운 놈인 건 맞다. 사내들만이 아니라 아내들까지 부부 동반으로 같이 어울리기도 참 좋고. 하지만 이놈에게는 다스려야 할 자기 나라가 있다. 그걸 팽개치고 여기 와서 죽치고 있는 건 많은 면에서 손해다. 왕사 윤호원이 인제 그만 돌아와 달라는 편지를 한두 번 보낸 게 아니다. 반란이야 우리 주둔군이 막고 있다지만, 한양에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국왕의 권위가 슬슬 흔들린다. 하진교에게만 부담이 되는 게 아니다. 나도 부담이 크다. 다른 것보다 정치적인 부담이.
『하와국왕이 자기 봉지를 다스리지 않고 황도에만 머무르니, 이는 번왕으로서의 책무를 소홀히 함입니다. 주상께서는 마땅히 그 왕위를 회수하여 어진 이에게 다시 내리소서.』
『하와국왕이 등극함에 있어 폐하께서 베푸신 은혜가 실로 컸는데, 그 은혜를 갚으려면 전력을 다해 자기 백성을 태평성대로 이끌어야 함에도 하와국왕은 도성에서 놀이만 즐기고 있습니다. 이 어찌 성군의 행동이라 하겠습니까?』
『현 하와국왕은 무용이 뛰어날 뿐 아니라, 하와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유자(儒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학식을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데 쓰지 않고 그저 즐기는 데나 쓰고 있으니 어찌 제대로 된 임금의 도리를 지킨다고 하겠습니까?』
길어지기만 하는 하진교의 한양 체류를 비판하는 상소가 작년 말부터 이런 식으로 줄줄이 들어왔다. 따지고 보면 하진교가 어디 가서 지내든 그건 하와국의 내정에 해당하는 사안인 셈이건만, 하와국이 우리 번국이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진교가 봉선에 참여하는 동안은 이 상소 세례도 멈췄다. 하지만 봉선이 끝났는데도 안 돌아가고 북순에도 동행하며, 도성에 돌아와서도 돌아갈 기색이 없으니 또 상소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보에서 씹어대기 시작한 지도 오래고 말이다. 물론 상소가 들어오든 말든 시보에서 떠들든 말든 내가 그냥 다 무시하면 그만이긴 하다. 하지만 하진교의 한양 체류가 조금만 더 있으면 만으로 3년을 채울 판이니, 지나치게 오래 머물렀음은 명백했다. 아무래도 보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요. 폐하께서 이토록 저를 미워하시니 떠날 수밖에요.”
제물포 항구에서 배에 오를 때까지도 하진교는 키득거리며 이런 소리를 했다.
“태은이 놈을 어서 키워서 대리청정을 맡긴 뒤에 다시 건너와야겠습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 대리청정이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 나다.”
피식거리며 대답했더니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하진교가 박장대소를 했다.
“하긴, 폐하께서는 선황 폐하께서 일을 떠…흠흠, 하여튼 대리청정을 맡아서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여기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대로 꽂히는 부두다. 그래서인지 하진교도 말을 삼갔다. 이 정도 눈치는 살필 수 있는 녀석이니까. 우리가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옆에서는 현순공주가 자기 친모인 황비 홍씨와 이별 이사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서는 중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고.
“잘 지내셔야 합니다, 왕비. 하와국의 국모로서 하와국 만백성을 보듬어 안아야 함을 절대 잊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황비 자가. 도착하자마자 소식 전하겠습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도 어른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현순공주는 생모 홍씨를 마트카라고 부르는 대신에 꼬박꼬박 황비 자가라고 불렀다. 마트카는 혼사를 치르지 않아서 아직 궐내에서 지내는 어린애들이나 쓰는 호칭이다, 이거겠지. 그쪽에서 인사가 길어지고 있었지만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번 김재정 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같은 미주 출신인 홍씨가 제법 수고를 보탰기 때문이다.
‘폐하. 태원백과 같은 미주인으로서 이번 일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한참 논의가 진행되는 중에 홍씨가 나를 찾아왔었다. 자기 처소인 창경궁을 떠나서 직접 경희궁으로 방문하면서까지. 그리고 미주 백성들이 본국에 대해서 품는 인식과 이를 어찌 대처하면 좋은지에 관해 자기가 아는 바를 상세히 전했다.
‘제 고향 사람들입니다. 어찌 제가 그 속을 모르겠습니까.’
그저 미모로 선황을 현혹했다고 여겼고, 부귀영화에만 관심이 있는 줄로 알았다. 당연히 나한테 도움 따위는 전혀 안 될 존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창경궁에 보내면서 처소도 아무 데나 처박았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또 나서서 일할 줄은.
‘주상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보잘것없는 몸이나마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서 황은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과연 순수한 선의일까. 그보다는 내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정확하게 짚어서 자기가 줄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민활함으로 보이는데. 속주 출신이면서 20년이나 선황의 총애를 독점한 게 그저 얼굴만 예뻐서가 아니었구나 싶고. 그래서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다. 뭐 대단한 건 아니었다. 남은 자녀들의 혼사도 걱정하지 말라는 언질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야 이복형이자 오빠로서 책임져 줄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번 일에서 홍씨의 공을 생각하는 동안 드디어 모녀간의 인사가 끝났다. 중전이 몇 마디 하자 홍씨가 딸과 함께 중전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중전이 자기보다 윗사람이니 저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폐하, 이만 떠나겠사옵니다. 부디 다시 뵙는 날까지 건강하시옵소서.”
겨우 부부가 나란히 내 앞에 서서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하진교가 또 초를 쳤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폐하.”
“다녀오기는 뭘 다녀오느냐. 네 집은 여기가 아니고 마가궁인데.”
키득거리며 웃는 것이 일부러 한 말이 분명하다. 이런, 괘씸한 놈 같으니. 하여간 옆에 두면 참 즐거운 녀석이기는 하다. 거룻배를 타고서 출항 준비를 완료한 자기 배를 향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벌써 허전하고 아쉽다. 당분간은 사는 데 재미가 좀 없을 것 같다.
15.
봉선과 북순으로 도성을 비운 동안 들어온 소식이 여럿 있었지만, 유럽에서 들어온 소식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역시 루이 19세가 오스만의 속령인 알제리 ? 아직은 이런 이름의 나라가 있는 건 아니다 ? 를 침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그 양반 주력군이 외국에 나가면 국내에서 혁명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원정 같은 거 포기한 거 아니었나? 하지만 그쪽 사정을 알고 보니 루이 19세가 원정을 결행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내가 루이 19세 입장이었다고 해도 그 상황이라면 빡쳤을 것 같아서다.
“우리 국왕 폐하께서는 귀측의 함선들이 여전히 지중해상에서 해상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불법행위를 종종 저지르는 상황에 관해 무척 분노하고 계십니다.”
루이 19세가 파견한 외교관은 알제 태수, 후세인 데이 ? 데이(Dey)는 알제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호칭 ? 를 만나 여전히 유럽 선박이나 해안 주민들을 노략질하는 바르바리 해적의 활동을 중단시키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존재가 수에즈 운하의 활성화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이 요구가 전적으로 전면 침공을 준비하기 위한 명분 쌓기는 아니었다. 돈과 인력을 쓰지 않고도 알제 측을 후퇴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왕의 권위가 상승한다. 그러므로 이건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원정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프랑스 측이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하나 있었다. 후세인 데이가 무려 38년 전의 이집트 원정 때 프랑스 측이 알제에 진 빚부터 먼저 갚으라고 요구한 거다.
“너희는 이집트에 있는 프랑스군을 먹이겠다면서 우리에게 막대한 양의 밀을 구입해 놓고 그 대금을 치르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제넘은 요구를 하기 전에 그 빚부터 갚아라!”
프랑스 측이 순순히 그 요구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나폴레옹이 진 빚이잖은가!
“그 돈은 대서양 건너에 가서 받으시오! 그 늙은 도적놈이 자칭 황제입네 하고 앉아 있는 신대륙에 가서 청구하시오. 우리와는 관련 없는 일이오.”
“이런 무엄한 자가 다 있나! 그자가 프랑스 황제 자리에 있으면서 이집트를 원정했던가! 너희 나라의 일개 장군 자리에 있을 때 아니었느냐. 그러면 그 채무는 당연히 장군 개인이 진 것이 아니고 프랑스 정부가 진 것이지! 지금 그대의 국왕이 이끄는 그 정부가!”
그러니 빚을 진 곡물 대금 원금과 38년 동안 쌓인 연체이자를 지불하라는 게 데이 측의 요구였다. 하지만 그런 지시 따위 받지 않은 프랑스 측은 절대로 못 낸다고 버텼다.
“안 되오. 대서양 건너편에 청구하시오.”
“이 돼지 등에 붙은 파리만도 못한 자식들이!”
격분한 데이는 마침 손에 들고 있던 파리채로 프랑스 특사의 따귀를 후려쳤다. 의도적인 모욕이 아니라 순간적인 분노 때문에 벌어진 즉흥적인 사건이었지만 이에 관해서 보고받은 루이 19세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는 데이가 짐을 모욕한 행동이다! 용서할 수 없다. 전쟁이다!”
당장에 대규모 함대가 준비되었다. 상대방이 프랑스 외교관을 모욕한 건 사실인 데다가, 그 적이 중세 이래로 적이었던 바르바리 해적들이니 국민적인 지지도 충분했다. 프랑스 해군은 아직도 목조 갤리선을 쓰고 있던 알제 해군을 단박에 박살냈다. 6백 척에 달하는 수송선은 유유히 바다를 지나 4만 명에 달하는 원정군을 알제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섬에 내려놓았다. 프랑스군 전군이 여기 건너오는 데 보름이 걸렸다. 이들은 집결이 완료되자 다시 바다를 건너 알제리 본토에 거점을 구축했고, 여기서 알제리군과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때 후세인 데이는 프랑스에 대한 지하드를 선포하고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자기 휘하 정규병과 지배하의 각 부족으로부터 제공받은 병력을 합쳐 5만 명을 손에 쥐었지만, 이들은 프랑스군에게 패배를 거듭했다. 장비도, 전술도, 사기도 프랑스군이 우세했다. 왕실의 백합기를 들고 진군한 프랑스군은 전투가 시작되고 한 달 만에 알제 외곽의 물리 하산 요새를 함락했다. 알제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진 셈이었고, 알제 측은 충분한 배상금을 낼 테니 평화협정을 맺자고 간청했으나 프랑스 측은 거절했다.
“데이가 항복하고 도시를 떠난다면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한다. 다른 조건은 없다.”
협상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후세인 데이는 프랑스군에게 항복하고 자기가 지배하던 도시를 떠났다. 망명지는 일단 같은 오스만 제국의 속령인 트리폴리였지만, 너무 분통이 터졌던 탓인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 위에서 죽고 말았다. 향년 72세였다. 다만 알제 함락으로 전쟁이 끝나지는 않았다.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는 무어인, 베르베르인 부족들은 프랑스인들의 침공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연히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원정을 개시한 이유는 이해가 가지만, 불랑국 군부는 골치 아픈 벌통을 껴안은 셈이군.”
원래 역사에서 프랑스가 알제리를 제압하는 데 얼마나 걸렸더라. 적어도 몇십 년은 족히 걸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겨우 제압했다가 백 년도 안 돼서 피바다를 만들며 도로 놔주고. 프랑스에게 있어서 알제리란 우리한테 있어서는 규슈 같은 땅이라고 생각한다. 해적들이 근거지로 삼았고 사람이 살 만한 바다 건너 땅이라는 데서 더더욱. 그리고 몽땅 차지하려고 들면 지겨운 전쟁을 겪어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 내가 루이 19세라면 원정을 벌여 직접 지배하기보다는 현지 정권을 유지하면서 간접적인 지배를 시도했을 거다. 그러는 편이 비용도 수고도 절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불랑국왕이 지도를 새 색깔로 칠하고 싶은 재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어리석은 욕심이옵니다, 폐하.”
북대동양 주위를 몽땅 같은 색으로 칠한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 필리핀이나 북한 지역 제패에 들인 세월을 생각하면 알제리 정벌에 들이는 수고가 크지 않을 수도 있고. 다만 우리 대한은 대외 원정 도중에 국내에서 뭔가 일이 터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나라 아닌가. 프랑스처럼 혁명이 터질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된다. 루이 19세도 그 점을 고려해서 보통교육을 시작했다지만, 아직 그게 효과를 보려면 멀었잖은가.
단기적으로는 수에즈 운하 공사에 써야 할 자본을 전비로 쓰게 되어 운하 공사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싶다. 알제리 원주민들이 당장 항복할 것도 아닌데, 전쟁을 치르면서 운하 공사를 계속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약간 소란이 벌어졌다고는 해도 일본 쪽 사정이 훨씬 낫지. 그쪽은 막부가 아주 확실하게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후세인 데이도 생각보다는 배짱이 두둑한 양반이기는 했구먼. ‘그 빚을 졌을 때 나폴레옹은 너희 나라의 일개 장군에 불과했다!’라고 외치다니, 의외로 패기가 넘치는 발언 아닌가. 그 패기가 승리로 이어지지 못한 건 안타깝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