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02
4부 286화(1902화)
17.
보안 문제 때문에 군기시는 여전히 북한산성에 있다. 그래서 웬만한 폭발 정도는 도성에 알려지지도 않는다. 폭음이 산봉우리 사이에 갇혀 사라지기 때문이다. 강삭철도를 타고 산을 오르니 걷거나 말을 탔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 단풍이 든 가을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한참 전에 지나간 추억이 하나 생각났다. 소음이 없는 강삭철도라 잡념에 빠지기가 더 쉬웠다.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인데 꼬박 1년을 얼굴 한번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냐?’
여기서 자기가 ‘근신’하는 동안 찾아오지도 않고 팽개쳐 뒀다고 투덜거리던 선황이 죽은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거참, 그 양반도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 아니, 영어식 표현으로 스펙터클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리려나. 날 에미 없는 자식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서 나까지 죽일 뻔했던 양반이다. 그런 까닭에 참 미워하고 싫어했었다. 그런데 죽고 나니 그 양반이 자기 나름대로는 나한테 잘해주려고 했던 부분들이 계속 생각나니, 참 묘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긴 했지….”
“폐하. 누구를 거론하심이온지…?”
“혼잣말이다.”
선황을 두고 본성이 악하니 어쩌니 품평하는 현장을 들켰다가는 불효자라고 당장에 비난 상소가 빗발칠 거다. 디에고 앞이라고 해도 적당히 입조심은 해야 한다.
열차가 꼭대기, 성문 앞에 닿았다. 내리면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열차를 묶은 쇠사슬을 끌어올리는 녹로실(??室) 앞을 봉쇄한 금군 군사들이 보였다. 나보다 먼저 여기 올라와서 미리 안전을 확보하는 게 저들의 일이다. 그 앞을 지나치니 미리 통보를 받고 대기하던 군기시 제조 김귀훈이 온몸을 떨면서 나를 맞이했다. 폭발 사고 때문에 추궁받을 게 두려운 듯했다.
“어, 어서 오십시오, 폐하.”
“다친 이들은 의원에 있는가?”
“그, 그렇습니다.”
다행히 사지가 잘릴 만큰 큰 상처를 입은 이들은 없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산성 내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북한산 꼭대기다. 중상자가 발생했을 때 광혜원으로 데리고 내려가고 어쩌고 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산성 내부에 병원을 지었다. 규모도 제법 큰데, 그건 전시에 부상병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북한산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는 상황을 상정해야 하니까. 평소에는 산성 내에 거주하는 군사들이나 군기시 관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주로 이용하는 무료 진료소 노릇을 한다. 물론 지금처럼 사고가 나면 사고 관련자들을 치료하는 응급의료시설 역할을 한다.
“폐, 폐하!”
“상감께서 어찌 이런 곳까지….”
병실로 들어가자 누워있던 환자들이 깜짝 놀라 침상에서 일어났다. 여섯 명 중 세 명은 벌떡 일어나는 걸 보니 경상이고, 한 명은 누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니 상태가 조금 중하긴 해도 치명상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두 명은 아예 눈을 뜨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상처가 깊은가?”
“한 사람은 폭풍에 날리면서 벽에 세게 부딪혀서 정신을 잃었사옵고, 한 사람은 파편이 복부를 파고드는 바람에 출혈이 심하였습니다. 지금은 지혈을 마친 상태니 쉬고 있으면 곧 정신이 들 겁니다.”
예전 무종 때, 증기기관 개발 때 생각이 난다. 박성근이 한참 증기기관을 개발하던 평양 시험장 ? 평양에서 제작한 이유는 탄광이 있어서였다 ? 에서 기관이 터지는 장면을 목격한 그때 말이다. 선박용 기관을 제작한다고 무게를 줄이다가 강도가 약해져서 실험용 기관들이 줄줄이 터져나갔었지.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시간도, 자금도 넉넉하다. 그래서 군기시에도 별 독촉은 안 하고 있지만 이들이 알아서 일을 벌이고 있다. 공명심도 있고, 경쟁심리도 있는 듯하다.
이제는 서학당만 군기시의 경쟁 상대도 아니다. 이들 둘에 비하면 거둔 성과가 미미해서 그동안 언급이 별로 안 되기는 했지만, 지방의 각 사학당에서도 학생들에게 공학과 화학을 가르치면서 자체적인 연구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이 둘이 과학기술 연구의 주도권을 쥐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방 사학당들과 거기에서 배운 개인 연구자들도 뭔가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에디슨도 자기 집 창고에서 첫 실험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래, 오늘 사고는 어쩌다 난 사고요?”
“저, 그것이….”
김귀훈의 집무실에 들어가서 사고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김귀훈을 질책하려는 게 아니라 사고의 원인이 알고 싶을 뿐이었지만, 김귀훈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기구 세척용으로 사용하는 왕수를 실험대 위에 쏟는 바람에 낡은 걸레로 닦아서 치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험용 주정 화로의 불을 끄려는데 화로 뚜껑이 곧바로 눈에 안 띄어서 대신 그 젖은 걸레를 덮었더니 갑자기 폭발했다고….”
“걸레가 폭발했다고?!”
황당했다. 왕수가 무슨 휘발유도 아니고 그거 좀 묻었다고 걸레가 폭발해? 차라리 주정(酒精) 화로, 그러니까 알코올램프가 폭발했다고 하는 게 말이 되겠다. 혹시 알코올램프가 터졌는데 착각한 게 아닌가? 하지만 김귀훈은 내가 화를 내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계속 내 눈치를 살피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예, 분명히 걸레가 폭발했습니다. 질산으로 처리한 물질이 초석화되어 ? 현대 화학 개념으로 말하면 질화(窒化, Nitriding)가 맞겠지만, 여기서는 화약의 원료인 초석처럼 폭발성을 띠게 된다고 해서 초석화(硝石化)라고 한다 ? 잘 터지는 성질이 생기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낡은 면포로 된 걸레가 폭발할 줄은 몰랐습니다.”
잠깐. 면포? 질산? 황산? 폭발? 어, 어, 어? 이 양반들 이거 면화약 만드는 데 성공한 거 아니야?! 흑색화약보다 폭발력이 몇 배 뛰어난, 화약계의 혁명?! 예전 태자 시절에 서학당에 갔을 때 몇몇 학자들에게 면섬유를 황산과 질산으로 처리하면 폭발성이 강한 화약이 된다고 지나가듯이 말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놈들이 내가 말할 때는 아 그렇군요 하더니, 나중에 보니까 정작 실제 연구는 진행을 안 했더라.
‘전하께서는 화학자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비전문가가 지껄이는 아무말에 자기네 연구 방향이 좌지우지될 수는 없다고 아주 당당한 태도로 대답하는데, 내가 참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알았다고, 알아서 하라고 그냥 놔뒀지.
‘그래서 면화약 볼 날은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게 또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될 줄이야. 내가 혼란스러운 기분을 정리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김귀훈은 열심히 새로운 발견을 홍보했다. 어느새 내 눈치를 보던 기색은 사라지고 목소리에서 패기와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분명 이번 일은 사고였습니다만, 그 폭발력을 보니 기존 화약을 대체할 새 화약을 만든 듯하여 가슴이 벅차기가 그지없습니다. 폐하께서 윤허만 내려 주신다면, 실용적인 화약으로 쓸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발견하자마자 그대로 쓸 수 있는 물질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는 흑색화약도 발명 초기에는 숱한 사고를 일으켰다. 그 많은 시행착오가 쌓인 끝에 지금처럼 편하게 쓸 수 있게 된 거니, 면화약 역시 마찬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알겠소. 잘 진행해 보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김귀훈은 김지와 달리 자기가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들지 않고 주문받은 물건을 완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기계 쪽 일을 할 때고, 화학 쪽 일은 아닌가 보다. 새 화약 개발에 저렇게 영혼을 불태우는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말이다.
18.
기껏 올라온 북한산성이다. 요즘은 바쁘다 보니 전처럼 자주 오지도 못하는데 환자들만 위문하고 갈 게 아니다. 군기시 내 다른 사업부도 둘러보고 가야 할 게 아닌가. 그중에 꼭 살펴봐야 할 곳을 서둘러 찾았다.
“그래, 이제는 떠서 움직일 수 있소?”
“예, 폐하. 날짜를 정해 주시면 조만간 공개 시험에 나서겠습니다.”
김귀훈을 앞세워 도착한 비행선제작부에는 큼지막한 기낭 하나가 땅에 고정되어 있었다. 길이는 대략 48m, 직경은 12m의 방추형에 기낭 하부에는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 매달았다. 승무원 3명은 바구니에 타고, 무게가 백 관(375kg) 정도 되는 증기기관을 달았다.
“출력은 2우력입니다. 그 이상 무거운 기관은 얹을 수 없었습니다.”
“허공에서는 비행선을 붙잡는 것이 없으니, 그만한 힘만 내도 능히 움직일 수 있을 거요. 그만하면 훌륭하오.”
선황과 같이 여기 와서 비행선 연구 상황을 점검한 게 벌써 4년 전이다. 그때 스크루를 추진기관으로 쓰면 된다고 내가 일러줬었고, 김귀훈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내 말에 따라 진짜 스크루로 추진 실험을 해보았다. 내 말을 무시한 서학당 교수들과 다르게 말이다.
“폐하께서 그때 당부하신 바에 따라 나선장을 만들어 기관에 연결해서 돌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의외로 센 바람이 나왔고, 그 바람이 연못에 띄운 돛배를 너끈히 밀어내지 않았겠습니까. 폐하께 보고드리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나도 그 보고를 받았을 때가 기억나는군. 내 조언이 쓸모가 있었음이 입증되어서 참으로 뿌듯하였소.”
서학당 화학부 교수 놈들이 면화약 제조법에 관한 내 조언을 몇 년 동안 씹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직후라서 더 기분이 좋았다. 윗사람 말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건 아마도 학자와 공무원의 입장상 차이인가 보다.
“그 뒤로도 완품을 만드는 데 4년이나 걸렸으니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괜찮소.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건,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잖소. 괜히 서두르려 하다가 인명을 상하느니 신중하게 진행하여 안전하게 결과를 보는 편이 낫소.”
중간중간에 보고를 계속 받았지만, 비행선 개발 과정도 상당한 혼란을 거쳤다. 개인적인 발명이었으면 차라리 기술은 부족해도 혼란은 없었겠지만, 우수한 기술진 여럿이 달라붙어 일을 하니 배 한 척에 사공이 여럿 달라붙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난 탓이다.물론 이런 방식의 장점도 있다. 상호 점검과 확인 덕에 실패나 사고는 확실히 줄어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끝없는 논쟁으로 진도가 하염없이 미뤄질 수 있다는 큰 단점도 있다.기체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기관 성능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등을 놓고 상당히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었다. 일단 띄우는 게 중요하니까 작은 것부터 만들어 보자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기왕 만드는 거 처음부터 대물을 만들어 보자는 자들도 있었다.
“욕심도 컸지. 쌀 3백 석을 싣고 날아갈 수 있는 비행선을 만들자고 했으니 말이오.”
“의욕이 넘치다 보니 그런 게 아니겠사옵니까.”
표준형 조운선 1척이 운반하는 쌀이 1천 석이다. 3백 석을 운반하는 비행선이라…화물만 23톤을 운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비행선이 얼마나 커야 할까.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운용하던 체펠린 비행선 정도로도 어려울 것 같은데.기관 자체도 무거운 데다 무거운 석탄과 물을 실어야 하는 증기기관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성능이다. 석유도 발견했으니 어서 내연기관을 만들어야 하는데.사실 만들고 싶은 걸로는 옛날 김지가 고안했던 장갑차…귀차도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덩치와는 달리, 지금 만들어 봐야 딱히 실용적인 물건은 못 된다. 요즘 전쟁터가 딱히 그런 게 필요한 환경이 아니니 말이다.
원래 역사에서 전차가 나온 건 철조망과 기관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는 아직 둘 다 없다. 그러니 우리가 굳이 중장갑을 갖춘 전차를 개발할 동기도 없는 셈이다. 기동전 수행 능력으로 따지려고 해도 아직 기병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증기자동차 자체가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중종 시절에 열기창 대구지소에 속한 기술자가 증기자동차를 발명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전국에 수천 대가 넘는 증기차가 도로를 활보하고 있다. 당연히 군용으로 쓰는 차도 있고, 개중에는 장갑차도 있다.
“싸우러 나갈 때 앞세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전장이란 장소가 자유롭게 수레를 끌고 다니기에는 그다지 좋은 곳이 못 되어서 말입니다.”
“알고 있소.”
현재 사용되는 증기자동차는 거의 버스나 트럭의 형태다. 승용차로는 안 쓰는 게, 전에도 언급했듯이 먼지와 연기?소음 때문이다. 아직은 마차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차량은 노면 상태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야지(野地)에 마구 풀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안전한 지역에서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수송용으로만 쓰는데, 이때 혹시 모를 적의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장갑트럭, 장갑버스를 만든 거다.
“서로 다른 성질의 방판(防板)을 적층 구조로 붙여 두면 가벼우면서도 방호 성능은 훨씬 뛰어나게 됩니다, 폐하.”
“일전에 설명을 들었소.”
일종의 19세기식 복합장갑이라고나 할까. 겉은 철판, 속은 참나무 목판이므로 화살이나 총알 정도로는 절대 뚫지 못한다. 이것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장조 시절이다. 거북선에 장갑판을 만들어 붙이면서 나온 지식과 경험이 여기까지 내려온 거다. 이런 장갑을 필요에 따라 두 겹, 세 겹으로 붙인다. 이건 진짜 대포 아니면 못 부순다.
“앞으로도 놀라운 성과를 많이 내주기를 바라오. 오늘은 짐을 응대하느라 제대로 일도 못 하였을 테니, 기왕 늦어진 것 술과 고기로 실컷 호궤하고 푹 쉬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미리 준비해 온 소와 돼지, 술독이 차례로 날라져 들어왔다. 푸짐하게 쌓인 술과 고기를 본 군기시 장인들의 눈이 커지고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높으신 분이 다녀가면 금일봉 주고 술 한 잔씩 주고 가는 게 최고지. 그 재미에 일하는 거 아닌가. 그나저나, 조만간 적당한 장소를 골라서 군기시를 이전해야겠다. 보안에야 좀 유리하긴 해도 오르내리기 너무 힘들지 않은가. 사람이야 강삭열차를 이용하면 된다고 쳐도, 갈수록 대형화될 게 분명한 중장비들을 운반하기가 너무 버겁다. 아무래도 평지로 옮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