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07
4부 291화(1907화)
1.
효왕 이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기가 태산이로구나.”
태어나서 도성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혼인하여 출궁하기 전에는 피접 때 말고는 대궐 담장 밖에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누가 데리고 나가 주지도 않았고,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모친인 선시 김씨 ? 지금은 금상 덕분에 선빈(先嬪)으로 승작되었다 ? 는 늘 자기를 보며 미안해했었다. 총애받지 못하는 어미의 몸에서 태어난 탓에 큰아들인데도 아버지의 눈길을 거의 받지 못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정은 모친에게 원망을 품지는 않았다. 부황이 무정한 사람인 건 부친의 타고난 성정이 그래서 그런 것이지 모친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한때는 부황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애타게 바랐었다. 하지만 부황은 처량한 처지에 몰리는 큰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게 계속되니 나중에는 자기는 그렇게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은 당연히 외면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출궁한 이후에도 부황이 자기 집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아도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꼭 출석해야 하는 제례가 있으면 연락을 받고 잠깐 참석했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외에는 바깥출입을 아예 하지 않았다. 다행히 왕비 심씨가 이런 그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 7년 동안 조용히 살았다. 그러다가 금상이 보위에 오르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금상은 태손 시절, 태자 시절에도 종종 효왕저에 찾아왔다. 시중에 미행을 나왔다가 잠깐 들렀다면서 담화를 나누거나 밥을 얻어먹고 가곤 했다. 그러더니 보위에 오른 뒤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효왕저를 찾아오거나 효왕 부처를 대궐로 초대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못난 서형을 정말로 친근하게 여겨 주는 그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왕비 심씨는 중전에게 환영받다가 그만 왈칵 울음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그동안 겉으로 표현은 안 했어도 아쉽고 서러운 감정이 쌓이고 쌓이다가 터져 나온 거였다. 금상의 배려 덕분에 마음속에 쌓여 있던 울혈이 풀렸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습관은 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두문불출하며 조용히 살았다. 서형인 자기가 공연히 설치면 금상에게 폐가 될 거라는 걱정도 있었다. 너무 집에만 머물지 말라는 핀잔을 금상에게 몇 번인가 받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된 일이라 그냥 예전처럼 지냈다. 그런데 그만 이번에 어명이라면서 청나라가 봉선을 하니 태황 대신 그 자리에 가서 제사를 지켜보고 오라는 명이 내려왔다.
‘옛사람들은 천하의 중심이자 중원 제일의 절경 중 하나가 태산이라고들 했지요. 아무 말 마시고 조용히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여행길을 나섰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처자식과 헤어져 지내야 하는 건 힘들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대한의 역사에서 외국에 나가는 사신이 처를 동반한 사례는 중종의 부마였던 고령위 박문수 딱 한 사람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도 방문국이 풍속이 다른 유주 국가인 루스였고, 당시 루스 황후 역시 중종의 딸인 수빈공주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때 이후에는 루스에 가는 사신이라고 해도 처를 동반한 사례가 없다.
늘 함께 있던 왕비와 떨어져서 아쉬운 마음으로 청나라에 도착했다. 산동에 도착하니 옛 명나라 시절에 세웠다는 항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은 주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거상인 오씨 일족이 지었다는 항구였다. 지금은 퇴락하여 허름한 건물 몇 채만 남아있었다. 오씨네 항구가 퇴락한 건, 개항장을 제한하던 명나라 시대와 달리 지금은 교역선이 바로 즉묵이나 천진과 같은 큰 항구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동반도 끝자락에 있는 오씨네 항구 같은 곳에 짐을 내려 일부러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는 거다. 이정이 배에서 내린 곳도 즉묵이었다.
산동에 도착한 뒤 하루하고도 반나절 정도 남쪽을 향해 움직이자 커다란 만이 나타났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니 각국에서 온 상선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었다. 항구에 들어가서 대한의 군왕이 봉선에 참례하러 왔다고 알리니 소동이 벌어졌다. 당장에 고을 관리들이 줄줄이 뛰어나와서 허리를 숙였고, 곧 고을을 다스리는 책임자인 지부까지 달려왔다. 부사를 맡아 함께 온 전 외무대신 조만영이 그 대우에 놀랄 정도였다.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귀한 손님을 대하는 데 있어서 소홀함이 있더라도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막상 제공된 숙소와 식사, 교통편 등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호화로웠다. 청도에서 태산까지 오는 길에는 화려한 전용열차가 제공되었다.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누리게 해준 금상에 대한 고마움이 정말 뼈에 사무쳤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태산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책에서 읽은 대로 주변 풍경이 장엄하기 짝이 없었다. 의식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명조에서 장조 시기 활동한 학자였던 양사언이 쓴 태산가(泰山歌)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태산수고시역산(泰山雖高是亦山)하니 등등불이유하난(登登不已有何難)이라. 세인불긍노신력(世人不肯勞身力)인데 지도산고불가반(只道山高不可攀)이더라.”
양사언은 태산이 아무리 높은 산이라 하여도 사람이 노력하면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의 이 시를 본래 공부를 게을리하는 선비들에게 학문을 열심히 닦으라고 설득하려는 의도로 썼다. 하지만 이 시의 의미는 정확히 백 년 뒤에 아주 엉뚱하게 바뀌어버렸다.
「우리 대한은 새로운 하늘을 열어 중원의 천자를 섬기지 않게 되었으니, 이는 곧 ‘태산(천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닌가!」
그런 해석이 대세가 되면서 졸지에 양사언은 ‘장차 중원과 맞서 우리의 하늘을 세우고자 하는 대한의 기상’을 북돋우면서 미래를 내다본 사람이 되었다. 이정은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남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광경을 보아도 굳이 나서서 고쳐주지는 않았다.
“황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고맙소.”
청나라 관리들이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숙이면서 황제가 있는 막사로 이정을 안내했다. 이정은 입고 있는 단령에 혹시 얼룩이라도 묻지 않았나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 가마에 몸을 실었다. 가마꾼들이 황제의 막사를 향해 위풍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2.
한국이 봉선할 때 청나라에서는 특사를 따로 보내지 않고 한성 주재 공사가 참례하도록 했다. 그랬으니 당연히 한국에서도 특사를 보내지 않고 개봉 주재 공사가 참례하도록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개봉에 있는 주변국 공사들 ? 이라고 해 봐야 한국, 후금, 일본 세 나라뿐이다 ? 과 주요 황족들,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몽골 왕공들을 모아 태산에 도착하고 후금 특사와도 만나 제사 준비를 하는 중인데 생각지도 않은 손님이 왔다는 게 아닌가.
“무엇이라? 한국 효왕, 지금 한황의 형이 봉선에 참례할 특사로 건너왔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도광제 면녕은 너무도 기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지경이었다. 한황이 과대하게 배려한 덕분으로 이번 봉선의 권위는 생각보다 더 높아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한황이 특별히 파견한 사신이 자기 형이라니! 후금이 사실상 건주 형제국이라 한식구나 다름없고, 몽골 왕공들은 결국 청나라 내부에서 존재하는 호족들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청나라로서는 외부에서 찾아와 이번 봉선을 띄워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그 ‘외부의 나라’가 별로 없었다.
일본은 애초에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외교에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특사 따위는 한국에나 보내지 정말 긴급한 상황이 없으면 청나라나 후송에는 보내지 않는다. 서양이나 남만 열국은 논외다. 서양에서는 아직 청나라에 공사를 둔 나라가 없다. 남만도 후송과 서나라에 가로막혀 청의 영향력이 별로 미치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유구국에서 사자를 보내 청나라의 허영심을 충족시켜 줬으리라.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유구가 정식으로 대한의 번국이 되어버리면서 독자적인 외교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나라는 한국 하나뿐이다. 하지만 지난번 한국이 봉선할 때 특사를 보내지 않은 원죄가 있었으니, 한국에서도 당연히 안 보낼 게 뻔했다. 그래서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특사가 왔다는 거다. 그것도 한황의 형이.
“당장에 융숭하게 대접하라! 그리고 태산까지 아주 정중하고 편안하게 모시도록 하여라!”
“예, 황상!”
일단 즉묵 현지에서 호화롭게 접대하도록 지시하고, 이쪽에서 숙소로 쓸 커다랗고 화려한 천막을 준비했다. 열차가 도착할 때쯤에는 귀한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다 끝나 있었다.
“어서 오시오, 효왕.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이 충분했는지 모르겠소.”
“과분할 정도였습니다. 후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광제는 자기 천막 입구에서 손님을 맞았다. 그리고 효왕의 손을 직접 잡고 천막 안으로 안내해서는 자기 옆자리에 앉혔다. 곧 청나라 황족들과 몽골 왕공들, 황제를 따라 개봉에서 온 공사들, 상도에서 직접 태산으로 온 후금 특사 등이 줄줄이 자리에 앉았다.
이들이 착석을 마치자 곧 술과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제사를 지내러 태산을 오르기 전, 효왕을 환영하는 임시 연회가 열리려는 참이었다.
3.
한국에서 임금의 형을 특사로 보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태산 아래 있는 진영에서 분개한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후금에서 온 특사, 현 대칸 보로의 사촌 형제인 쇼토(碩託, 석탁)였다.
“아니, 그놈들은 남조에서도 안 보낸 특사를 왜 보낸 거야?!”
보로는 같은 건주 일족이라는 명분으로 특사를 파견함으로써 이번 봉선에 임하는 청나라 황실의 위신을 높여 주고, 이를 청나라 황실이 마음을 돌리는 기회로 삼아 후계자 분쟁에서 럭더훈 대신 굴마훈이 유리한 위치에 서도록 할 생각이었다.
“한국 놈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쇼토가 이를 갈았다. 한국에서 특사가 온다는 소식이 들어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도광제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긍정적이었던 까닭이다.
후금 내에서는 후계자 문제로 빚어진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제 단 둘밖에 남지 않은 후보들은 서로를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 수시로 공격을 퍼부었다. 대개는 정책 결정 문제를 둔 정치적 갈등이었지만, 잊을만하면 꼭 살수가 나타나 진짜 암살을 시도했다. 다만 남은 두 사람 모두 그런 소규모 암살자들의 공격 따위는 두렵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본인이 일신에 쌓은 무위(武威)도 상당했으며, 경호도 철저했다. 그래서 그런 식의 습격은 언제나 격퇴되고 살수들의 정체는 불명으로 처리되곤 했다. 대칸 보로는 동생 도도를 처형하고 굴마훈을 유일한 후계자로 남기는 방안을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도도를 지지하는 편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혹시 일을 꾸미다가 잘못된다면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날 게 분명할 만큼은.
지금 도도는 죽은 형 아바타이를 따르던 세력을 거의 자기 손에 넣었다. 아바타이의 장남 얀신조차 도도 편에 섰다. 숱한 몽골 왕공들이 또 도도 편으로 결집했다. 이자들이 무력을 사용해 봉기한다면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보로는 어떻게든 도광제를 설득해서 대칸 자리를 굴마훈이 차지할 수 있게 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도광제가 데리고 있는 럭더훈이 얼마나 비열한 짓을 저질렀는지 과장해서 설명하고, 굴마훈이 얼마나 진실한 천주교도인지 알리며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청나라 황실은 럭더훈을 보호했고, 굴마훈의 칸위 계승에 관해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다. 보로로서는 갈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고, 아직도 굴마훈을 입양하기를 거부하는 대복진을 설득하려고 시도하는 한편으로 부지런히 청조 황실에 성의를 보였다.
“그런데 그자들이 여기 나타나서 훼방을 놓다니…!”
현 한황의 이복형이라면, 황실에서 여는 제사에 참례하러 외출하는 것 말고는 지난 10년 동안 두문불출하던 작자가 아닌가. 그런 자가 이토록 대우받으며 으쓱거리는 모습을 보니 밉살맞기 그지없었다. 젠장, 그렇게 으스대고 싶으면 자기 나라 제위나 노려볼 것이지.
‘그럴 배짱은 없는 소인배 주제에. 젠장, 예수님이시여! 어리석은 자를 어리석다고 곧이 말한 제 죄를 용서하소서.’
초조해진 쇼토가 천막 안을 돌면서 대처할 방안을 생각했다. 생각 같아서야 한사(韓使)를 함정에라도 빠트려 골탕을 먹이고 싶지만, 그런 음모를 잘못 시도했다가는 한국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엄청난 참사가 빚어진다. 게다가 청나라도 질색할 게 분명하다.
“역시 다라순승군왕을 암살하는 게 최선인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인지, 도광제는 럭더훈을 개봉에 남겨두었다. 후금 측에서도 살짝 청나라 궁정 내의 정보를 조금 빼내는 정도라면 몰라도 아예 그 안에서 암살까지 시도하는 건 너무 부담이 컸다. 요즘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인원도 많지 않다. 잠시 고민하던 쇼토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을 저지르건, 일단 그 실행은 봉선 의식이 다 끝난 뒤에 시작되어야 했다. 아무리 이교도의 의식이라지만 봉선은 태조 누르하치가 새 나라를 세운 기념일이다. 그러니 후금으로서도 그날은 중요했다. 아주 매우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