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11
4부 295화(1911화)
10.
배상제회가 처음 깃대를 세운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4년 전에 2만 명이던 신도 숫자는 이제 10만 명이 되었다. 착취당하는 빈민들 사이에서는 무척 큰 인기였다. 강남 각지에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돕기 위해 만든 온갖 방회나 단체가 이미 많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신흥주자인 배상제회가 사람들에게 주목받아 급속하게 세력을 늘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교주인 천왕(天王) 홍수전의 수완 덕분이었다. 홍수전은 타고난 유세객이었다.
변설하는 재주가 얼마나 뛰어난지, 작정하고 마주 앉으면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홍수전이 덕성도 교단의 이름을 더럽혔다며 응징하겠다고 달려온 이웃 지역 덕성도 접주를 세 치 혀로 설복해서 자기 산하로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홍수전의 말주변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가 상대와 맞서서 설복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신도들이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저렇게 젊으신데 아무도 이기는 사람이 없다니…! 저 학식과 재주로 과거에 응시했으면 장원급제도 너끈히 하셨을 텐데. 아깝네, 아까워.”
“아니야! 저런 분이 고작 과거 준비 따위에 세월을 낭비해서야 쓰나. 천왕께서는 공맹의 도 같은 허무맹랑한 말이 아니라 상제께서 직접 명하신 도를 전파하러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라고!”
홍수전이 보인 능력은 변설만이 아니었다. 주문과 기도로 병을 치유하는 재주도 있었다. 실은 덕성도에서 살짝 배운 의술 덕분이지만, 의원을 부를 돈이 없어 그저 하늘만 바라보던 빈민들로서는 홍수전의 재주가 그야말로 신이 강림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교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홍수전의 위상도 올라갔다. 예전부터 자신이 상제의 둘째 아들이자 예수불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던 홍수전은 아주 당당하게 신도들 앞에서 설교했다. 가장 자주 다루는 주제는 자신의 정체에 관한 설교였다.
“나는 전생에 수많은 공덕을 쌓았기에 이번 생에서 상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다음 생에는 상제의 둘째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는 삶을 살 것이다. 너희가 진실로 상제의 가르침을 잘 지키고 신실한 삶을 산다면 다음 생에서 너희가 내 동생이 될 것이다!”
배상제회는 모든 신도가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여기 더해서 누구든 열심히만 살면 상제의 아들이, 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후송 사회의 밑바닥에 사는 빈민들로서는 욕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는 교리 아닌가. 여기에 더해서 홍수전은 부의 재분배에 관해서도 아주 강경한 태도를 견지했다. 재물은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고, 그 이상 독점하는 건 도적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배상제회의 기본 교리였다.
“상제께서 내 천형(天兄)이신 예수불을 통해서 말씀하셨듯이, 재물을 이웃과 나누지 않고 홀로 차지하는 자는 신벌(神罰)을 받아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모든 재물은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만큼 주어야 한다!”
이처럼 배상제회의 교리는 중국에서 원래 믿는 전통적인 상제 관념과 덕성도의 예수불에 관한 교리를 뒤섞은 것이다. 홍수전 본인이 본래 덕성도 접주 출신이라 배상제회의 교리도 덕성도 교리에 기반을 두는 부분이 많았다. 부의 재분배는 덕성도에서도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다만 덕성도 교리에서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재물을 나누어야 한다고 보는 데 반해 배상제회는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도적놈들!”
‘부당하게 재물을 독점한’ 자들로서 ‘신벌’의 대상이 된 부유한 향신들은 배상제회를 평비(平匪)라고 부르며 치를 떨었다. 이들이 평비라고 불리게 된 건 배상제회의 별칭이 ‘태평도(太平道)’라서다. 사실 태평도는 옛날 황건적의 난 때 활동했던 도교의 일파다. 하지만 아예 엉뚱하다고 할 수도 없는 게, 홍수전 본인이 ‘상제의 가르침이 진정 실천되는 나라’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태평도에서 따온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홍수전은 연말을 맞아 배상제회의 주요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홍수전의 최측근으로서 교세 확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들 앞에서 홍수전은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는 신벌을 우리가 행하지 말고 최대한 자비를 보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여기 모인 지도자 태반은 홍수전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였다. 하지만 홍수전은 그들에게 어떤 존대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상제의 아들로서 상제의 계시를 독점적으로 받는 존재고, 이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벌을 행하지 않는다고요?”
지도자들이 웅성거렸다. 향신과 거상들을 약탈해서 얻은 재물을 분배하는 건 배상제회의 규모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빈민들은 배상제회가 나눠주는 재물에 혹해 입교, 이마에 성스러운 기름을 발라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약탈을 중단한다니.
“지금처럼 계속 신벌을 행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도적 떼 취급을 받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산골짜기 도적으로 끝날 게 아니라 세상을 뒤엎어서 진정으로 태평천국을 이루고자 한다면, 어찌 지금 한 발짝 뒤로 물러나지 못하겠는가.”
직접 약탈할 필요도 없다. 배상제회가 이룬 세력권 내에 있는 향신과 거상들에게 적당한 ‘헌금’만 받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헌금을 바치는 자에게는 신도 자격을 인정하고 그 재산을 보호해 주면 순순히 따르는 자도 늘어날 것이다. 약탈을 아예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아편 잠상들에 대한 공격은 계속한다. 배상제회는 앞서 언급했듯이 덕성도에 뿌리를 두고 있고, 덕성도에서 넘어온 신도도 많아 아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그래서 수시로 아편 잠상들과 분쟁을 벌여 전리품을 얻는다.
“그러면 신벌 없이도 꽤 많은 재물이 안정적으로 확보될 것이고, 신도들에게 내줄 재물도 부족하지 않을 거다. 덤으로 훗날을 위해 무장을 확충할 자금도 생길 것이다.”
언젠가 송나라를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건 배상제회 지도부 전체가 공유하는 목표다. 근본 없는 소금장수 따위가 세운 나라 주제에 끝없는 전쟁과 사치로 백성들을 고난 속에 처박아 놓는다. 이런 나라는 존속할 필요가 없다.
“신도를 빠르게 확충하자면 신벌을 통해 제물을 뿌리는 방법이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만…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천왕.”
수하들은 옛 방식을 버리는 데 망설임이 심했다. 하지만 홍수전은 단호하게 자기 결정을 유지했다.
“신벌을 내리는 과정에서 마귀에 들려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 자꾸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신도를 늘리는 데는 신벌로 얻은 재물을 뿌리기보다 양국 조정이 벌이는 착취가 더 효과가 좋다. 지금 진행되는 봉선 준비가 아주 확연한 사례다!”
청나라에서 먼저 진행된 광경과 판박이다. 봉선을 준비한답시고 관부에서 세금과 노역을 대대적으로 부과하니 백성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드높았다. 산꼭대기에다 제단을 만들겠다고 한겨울에 산을 오르고, 막대한 양식과 석탄이 강가에 쌓였다. 모두가 백성들의 땀과 피다. 봉선 때문에 쥐어짜인 끝에 배상제회에 들어와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수가 양국 모두에서 폭증했다. 이 상황을 면밀히 살핀 홍수전이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린 거다. 행동 방침을 바꿔야겠다고.
“양국 황제들이 서로의 위신을 위해 이런 싸움을 격하게 벌일수록 우리 회를 찾는 이들의 수는 늘어난다. 그러면 그 힘을 바탕으로 일거에 일어나야만 하는데, 어찌 우리 배상제회가 도적 떼라는 오명을 쓴 채로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홍수전의 뛰어난 언변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만약 그동안 거둔 재물을 홍수전이 자기 사치에 썼다면 반발이 좀 있었겠지만, 거둬들인 재물은 전부 신도들을 위해, 그리고 교단 규모를 키우는 데 썼음을 여기 있는 이들이야말로 잘 알았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당장의 신벌이 아니라 머리 좋고 유능한 형제들을 사방으로 내보내 상제의 말씀을 전하고 태평한 세상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생겨나는 이 파도가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배상제회는 가르침을 전하는 대상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홍수전 본인은 광서로 이주한 객가 출신이나 그 외에 강남에서 일반 한족이나 광서 일대의 숱한 소수민족, 청나라 치하에 있는 화북의 한인들한테도 배상제회의 가르침을 전했다. 외국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서양인, 한국인, 일본인, 그 외에 내가 지금 이름을 모르는 열방의 숱한 족속들도 모두가 상제께서 창조하신 존재이니 상제를 받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도 상제께서 내리신 가르침을 전하여 우리 형제로 들이고자 노력한 지 수년이니, 곧 열매가 맺을 것이다.”
외국에도 배상제회가 퍼지면 홍수전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진다. 해당국 내에서 봉기하여 세력을 이룸으로써 잘하면 나라를 통째로 배상제회의 깃발 아래 들일 수 있고, 안 되더라도 해당국의 내정을 혼란스럽게 해서 태평천국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외국에 보내는 형제들의 수를 더 늘려야겠다. 그래야 외국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로 힘들게 살아가는 가엾은 중생들을 더 구제할 수 있을 테니.”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수한 형제들을 더 많이 선발하겠습니다.”
물론 나라 밖에서 지회를 조직한 놈들이 엉뚱한 마음을 품고 배반할 수도 있다. 감시하는 천왕 홍수전도 없겠다, 아예 자기가 수하들을 이끌고 독립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홍수전은 외국에 나갈 자들은 충성심이 강한 이들로 골랐다. 그리고 여러 명이 한 무리로 나가도록 하여 서로 견제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 혹시 욕심을 품는 놈이 있어도 쉽게 배반하지 못할 테니까.
“신벌로 들어오는 재물이 없어지면, 당장은 형제들이 회를 이끌기가 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회가 장차 더 번창하기 위해서, 우리 생전에 태평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행동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니 다들 상제께서 정하신 내 뜻을 따라주기를 바란다.”
“…알겠습니다, 천왕.”
논전으로 홍수전을 이길 수 있는 자는 교단 내에 아무도 없었다. 가끔은 홍수전 본인도 생각하곤 했다. 만약 내가 이 재주로 관로(官路)에 나섰으면 어땠을까? 정말 신도들이 몰래 수군대듯이 젊은 나이에 장원급제하고 황궁에 들어가 명신으로 이름을 떨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찌감치 덕성도에 빠지면서 교단의 힘으로 세상을 뒤엎기로 한 그에게, 고작해야 관리밖에 안 됐을 그 삶은 생각하기에 그다지 즐거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홍수전은 그 삶에 대한 상상은 빠르게 접었다. 지금 살아가는 세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11.
홍콩은 중국 남부에서 가장 거래가 활발한 항구다. 중국 본토에 위치한 개항장인 광주와 복주도 무척 큰 항구지만 홍콩만큼 교역이 활발하지는 않다. 홍콩이 이런 위치에 오른 건 다른 개항장처럼 중국 영토가 아니라 영국령이기 때문이다. 대략 백사십여 년 전, 이 지역을 다스리던 서나라 황실에서는 해군 건설을 도와주는 대가로 영국 동인도회사에 이 섬을 팔아버렸다.
서나라가 이 섬을 선뜻 팔아치웠던 건 이 섬이 본래 해적들의 본거지였고, 서나라 황실이 내륙인 사천 출신이라 바다에 무지했던 탓이 컸다. 영국인들에게 넘겨주면 광주로 들어오는 수로에서 해적이 날뛰지 못하게 단속도 해줄 테니 손해가 될 게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고. 그 결과 지금 이 섬은 완전한 영국령으로서 영국 법률이 통용되며 아시아 최대의 교역항 중 하나가 되어있다. 그리고 이 항구를 통해 활발히 거래되는 상품 중 하나가 쿨리다.
“조홀국에 보낼 쿨리 3백 명. 엿새 안에 조달할 수 있나?”
“이틀이면 조달할 수 있지. 대가는?”
“아편으로. 이번에 벵골에서 배로 실어 왔지. 요즘 아편 시세가 어때?”
“지난번보다는 비싸졌어. 어디, 쿨리 3백 명 값이면 아편 얼마에 해당하나 한번 볼까.”
아편 가격이 오른 건 덕성도와 태평도, 두 종교단체 탓이 크다. 송나라 정부로부터 아편 단속을 위탁받은 덕성도는 황제 직할지 내에서 대놓고 아편 거래상을 공격했다. 태평도도 그 흉내를 내고 싶은지 귀주, 운남 등지에서 막 나온 아편 수송 행렬을 중간에 습격했다. 덕성도가 아편 유통망의 말단을 자른다면 이처럼 태평도는 유통망을 중간에 끊었다. 뺏은 아편은 남들의 눈을 피해 홍콩으로 가져와서 비싸게 팔았다. 중간상 노릇인 공행을 거쳐서 이 아편을 사들인 동인도회사는 더 비싼 값으로 시중에 다시 풀었다.
덕성도와 태평도 때문에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서 아편 가격이 올라 동인도회사는 순전히 장물아비 노릇으로 아편을 풀면서 상당한 이득을 올렸다. 이를 통해 얻은 자본으로 쿨리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거래하고 있다. 두 상인은 잠시 논의하고 쿨리 3백 명을 데려가는 대신 치를 아편의 양을 정했다. 아편에 팔린 쿨리들은 이제 더 많은 아편을 생산하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밭을 갈아야 할 터였다.
?
“자네들이 지금 겪는 이 괴로운 삶은 상제께서 끝내주실 거야. 우리의 지도자인 천왕께서 바로 상제의 아드님이시거든. 그분께서는 이 더럽고 힘겨운 세상에서 태평천국을 이루고자 밤낮으로 고생하고 계신다네.”
이웃 마을과의 계투에 져서 포로로 잡힌 뒤에 팔려 온 쿨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갇힌 통나무 창살 안에서는 다른 지역 출신인 젊은이 한 사람이 동료들에게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다.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다행히 어색하게라도 말이 통해서 뜻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구원을 못 받을 게 아닌가? 그 대단하신 분께서 사시는 건 광서에 사신다며. 그러면 바다를 건너간 우리는 그분을 뵙지 못해 구원도 못 받겠지.”
“아니, 아닐세. 상제께서 베푸시는 힘은 천하에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자네들이 머무는 곳이 곧 태평천국이 될 땅일세. 우리는 마땅히 상제께서 베푸신 뜻을 따라 그곳에도 새로운 태평천국을 완성해야지.”
동포들과 함께 외국에 나간다. 덕성도 지회를 세워 본국에서 쫓겨나고 어떤 연계도 없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장소를 준다. 그리하면 신도들은 배상제회를 위해 목숨을 걸게 될 테고, 교단은 유사시에 교세를 키울 확실한 수단을 얻는다. 이 모든 안배가 천왕의 뜻이라고 생각한 젊은이는 뿌듯하기만 했다. 부여받은 임무를 잘 수행하고 돌아오면 분명히 천왕에게 크게 치하받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혹시 실패해도 천국에는 갈 만한 공을 세웠으니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