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16
4부 300화(1916화)
19.
“돈, 돈이 필요한데….”
수에즈 운하 건설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페르디 낭 마리 레셉스는 지금은 외무부 대신 수에즈 운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제안을 채택한 국왕 루이 19세가 그로 인해 시작된 운하 사업을 직접 진행해 보라면서 발탁한 까닭이다. 다만 지금 레셉스에게 주어진 자리는 수에즈 운하 회사의 총괄 담당 이사에 불과하다. 이 획기적인 대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를 창안한 사람이 앉기엔 적절하지 않은 자리였지만, 그는 너무 젊었고 배경도 없었다. 그나마 국왕의 배려 덕분에 이 자리라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내심 탐내던 총재 자리는 국왕의 숙부 앙굴렘 공작 샤를 필리프에게 돌아갔다. 물론 공작이 유능해서 차지한 자 리가 아니다. 왕위 계승 서열 2위, 국왕과 가장 가까운 왕족 이라 받은 자리다. 이런 사람이 총재 자리에 앉았는데 제대로 일할 리가 없다. 당연히 일은 죄 아랫사람들의 몫이다. 레셉스는 공작 대신 카이로와 콘스탄티노플, 그 외 전 유럽의 수도를 돌아다 니며 운하 건설에 필요한 정치적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막에서 운하가 지날 최적의 경로를 선정하는 것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는 기술위원회가 따로 설립되어 그쪽에서 담당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직접 수로로 연결하는 대사업에 참여할 영광을 얻고 싶어 하는 전문가가 전 유럽에서 몰려왔으므로 일손은 넉넉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돈이다. 루이 19세가 내준 1차분 투자금인 4천만 프랑이 무섭게 소진되고 있었다. 레셉스는 몇 번이나 진땀을 흘리며 공작을 찾아갔었다.
“저??? 공작 각하, 돈이 부족합니다. 재무 담당 이사회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조만간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바닥날 것 같습니다.”
“구해 오게. 그게 자네 역할 아닌가?”
“각하께서 국왕 폐하께 2차 투자분을 서둘러 내달라고 말씀 좀 해주시면….”
“국왕께서는 바쁘시네. 이런 하잘것없는 일로 폐를 끼칠 수는 없어. 자네가 해결하게.”
레셉스 자신이 전문가들과 함께 추산한 공사비가 2억 프랑이었다. 여기서 프랑스 정부가 부담할 액수가 60%, 1억 2 천만 프랑이다. 루이 19세는 투자금 중 1차분으로 4천만 프랑을, 나머지는 매년 1천만 프랑씩 8년 동안 출자하기로 약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정에 없었던 알제 원정이 문제였다. 막대한 전비를 소모한 국왕은 운하 회사에 주기로 한 투자금 지급을 미뤘다. 도리어 본래는 정부 지출로 예정되어 있던 이집트 정부에 제공할 산업 및 군사원조에 필요한 비용을 운하 회사 쪽으로 떠넘겼다.
아니, 그렇게 돈이 필요하면 베르사유궁전 복구를 중단하고 그 비용을 이쪽으로 돌려도 될 게 아닌가. 어차피 지금 왕실은 파리 시내에 있는 튈르리와 루브르, 두 궁전을 사용하고 교외에 있는 베르사유는 쓰지도 않는데, 그게 그리 급한
가. 하지만 앙굴렘 공작은 별 고민도 없이 국왕의 요구를 받아 들였고 순식간에 청구서가 회사 우편함으로 마구 날아들었다. 콘스탄티노플에 나가 있던 레셉스가 사태를 알았을 때는 이미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어서 수습할 수 없었다.
이집트 정부도 돈을 내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기네 투자분인 40%는 애초에 인력으로 제공하게 되어있 었다고 주장하며 버텼다. 콘스탄티노플의 오스만 제국 중앙 정부는 한술 더 떠서 돈이 없다면 이참에 위약금을 물고 운 하 건설을 포기하라고 반응했다.
이 난리를 접한 레셉스가 허겁지겁 파리로 돌아와 공작에게 국왕의 지시를 거부해달라고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하다못해 주기로 한 2차 투자금이라도 서둘러 받아달라는 부탁도 거절당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국왕을 직접 찾아갈 수도 없었다.
「수에즈 운하 회사와 관련된 모든 요청은 앙굴렘 공작을 통해서만 받겠다.」
국왕은 대놓고 공언했다. 숙부의 체면을 살리려는 그 명 때문에 레셉스 같은 이들로서는 속이 답답해도 어쩔 수가 없 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앙굴렘 공작은 수에즈 운하 회사의 이름으로 갖가지 사교 모임을 열어서 돈을 마구 뿌렸다. 자기 주머니에도 실컷 챙겨 넣었다. 그 금액도 고스란히 회사의 채무로 쌓이고 있었다.
“차라리 주식회사였다면…”
운하 회사가 주식회사였다면 국왕이 자기 마음대로 숙부를 총재로 앉히지도 못했을 테고 회사의 본래 업무가 아닌 이집트 정부 원조자금 따위를 지출할 일도 없었을 거다.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면 투자를 받기도 쉬웠겠지. 하지만 수에즈 운하 회사는 왕립이다. 국왕 루이 19세의 이름으로 세웠고 왕명에 따라서 국고의 자금이 투자된다. 그 러니 레셉스는 물론 그 누구도 국왕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국왕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이 회사에 돈을 넣겠다는 투자자는 아무도 없었다. 완공 후에 벌어들일 통행료 수입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해주겠다는 제안은 있었지만, 요구하는 이자가 어마어마했다. 연리 15%라니, 그런 고리대금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복리로!
심지어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가 가문인 로스차일드는 대출도 거절했다. 대출을 중개할 수는 있는데 그 중개료로만 5%를 일시불로 내라는 요구를 받고 레셉스는 기가 차서 회답하지 않았다. 런던에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영국에서는 연리 5% 이내로 자금을 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영국 정부는 갖은 수단을 다해서 공사에 훼방을 놓고 있다. 그러니 그 방법은 아예 논외다. 영국 정부의 방해는 투자가 없는 데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수에즈 운하를 건설할 충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레셉스는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이 문제의 근원인 루이 19세가 수에즈에 운하를 건설하자는 자기 아이디어를 채택해 주었으니, 국왕을 원망만 하기도 어려웠다.
20.
수에즈 운하는 루이 19세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업이다. 알제 원정도 근원을 따져 보면 이 운하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닌가.
“어떻소, 공작.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소?”
“물론입니다, 국왕 폐하. 일전에 보고드렸듯이 노선은 이미 다 결정되었고 자재와 인력을 수송할 철도도 부설했습니다. 인부들이 열심히 파낸 모래와 흙이 운하 연변의 사막에 쌓여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앙굴렘 공작의 나이는 이제 52세, 조카인 국왕보다 15세 연상이다. 하지만 숙부라고 해도 국왕에게는 신하에 불과한 만큼 예의는 철저하게 지켰다.
“운하 공사는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완성 해 보이겠습니다.”
“잘 부탁하겠소.”
형제가 단 하나도 없는 국왕에게, 앙굴렘 공작은 사실상 유일한 근친이다. 그래서 최대한 우대하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영지와 작위를 여럿 내려주고 관직도 내려주었겠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그래서 수에즈 운하 회사 총재 자리를 주었다. 운하 회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세운 회사가 아니다. 부르봉 왕실의 백기가 지중해를 제패하고 인도양에 진출할 수 있게 할 기반이다. 그런 중요한 사업의 책임자 자리를 왕실의 피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일반인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가까운 왕실 혈통이라고 하면 앙굴렘 공작가 말고 오를레 앙 가문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왕은 오를레앙 가문에 중 책을 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놈들은 배신자들의 가문이었다. 과거 혁명 시기에 오를레앙 가문은 혁명파 편에 섰다. 혁 명당시 공작 루이 필리프 2세는 샤를 10세를 밀어내고 자기 가 국왕이 될 생각이었는데, 붙잡힌 샤를 10세가 처형되면서 그 꿈이 거의 이루어진 순간 복수심에 불타는 왕당파 자객의 총에 맞고 말았다. 아직 어린 루이 필리프 3세가 그 뒤를 이었는데, 문제는 부친이 즉위 방법으로 쿠데타를 생각했다는 점에 있었다. 선 대 공작의 쿠데타 기도가 폭로되자 혁명정부는 곧바로 오를 레앙 가문을 혁명의 적으로 선포했고, 20세밖에 안 된 공작은 외국으로 도망쳐야 했다.
이후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질 때까지, 오를레앙 가문도 부르봉 본가와 마찬가지로 외국을 떠돌면서 지냈다. 간신히 귀국한 루이 필리프 3세는 그 고초를 겪고서도 여전히 입헌주의자들과 가깝게 지낸다. 심지어 공화 주의자들과도. 그 속셈이야 뭐, 뻔하지 않은가.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현 왕실을 몰아낸 뒤, 이 튈르리 궁전을 장악하고 왕좌에 앉고 싶은 거겠지.
“그 배신자 놈들.”
루이 19세는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리프 3세를 만날 때마다 대놓고 노려보았다. 부친의 음모가 들통나서 해외로 망명하기 전에는 혁명군 지휘관 노릇까지 했던 인간이다. 조부인 샤를 10세를 죽이는 데 한몫한 그 인간을 어떻게 좋게 볼 수 있겠는가. 남은 왕족의 숫자가 원체 적은 데다, 의회의 정도를 차지하는 입헌파의 압력 탓에 그 배신자를 처치하거나 추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행하는 국민교육으로 다음 세대 신민들의 충성심이 강화되면 그놈들을 몰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폐하, 전비를 조달하기 위한 추가 재원 문제입니다만…”
국왕이 오를레앙 가문에 대한 분노를 곱씹는 동안, 신하들 은 당면한 현안을 두고 심각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들어오는 배에 입국세와 관세를 추가로 물리면 어떨까요.”
“그러면 영국 놈들도 똑같이 대응할 겁니다. 결코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국내에서 관세와 토지세를 인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국내에서 상품이 이동할 때 관세를 내야만 한다. 당연히 폐지하라는 여론이 높지만, 루이 19세는 철저하게 막고 있다. 국내 관세가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주요 세원 중 하나라서다.
“동방에서 투자금을 모집하면 어떻겠습니까? 한국이나 일본, 시니카 같은 나라들은 장차 양측의 교역에 큰 보탬이 된 다고 하면 선뜻 돈을 낼 겁니다.”
당연히 이들에게도 주식은 주지 않는다. 차입한 자금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지급할 뿐, 소유권과 경영권은 전적으로 국왕 루이 19세와 그가 임명한 이사회가 독점한다. 유럽에서는 이 조건에 응하는 나라가 없었지만, 아시아에서는 혹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시아인들에게 돈을 꿀 만큼 짐은 영락(零落)하지 않았다. 세원을 더 발굴하고 증세를 감수해서라도 국내에서 해 결하도록 하라.”
“예, 폐하.”
신하들이 약간 주저하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의회는 왕당파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증세 법안 자체는 쉽게 통과 되리라. 투표권을 가지는 유권자라야 20만 명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시민들은 분명히 반발할 게 뻔하다. 계속 불만이 누적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21.
팔레루아얄은 오를레앙 가문의 저택이다. 한때는 혁명파의 본부 비슷한 곳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왕정이 복고되고 왕족들이 귀환하면서 이곳의 집주인인 오를레앙 가문도 돌아왔다. 하지만 이 저택에 정통 왕가가 아닌 오를레앙을 지지하는 입헌파, 요즘 말로 오를레앙파 정치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건 여전했다.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리프 3세가 이들에게 자금과 배경을 제공해 주며 돕는 탓이다. 오늘 찾아든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자네가 귀국하겠다면서 후원을 요청했을 때는 깜짝 놀랐네.”
와인잔을 손에 든 공작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앞에 앉은 청년이 겸연쩍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제 조국은 프랑스니까 말입니다. 아메리카에서는 편히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자네 백부는 후계자가 없지 않나. 자네가 좀 더 버텼으면 자네를 제국의 황태자로 책봉하고 자기 뒤를 물려주었을 거라고 보는데.”
“아닙니다, 각하. 백부께서는 이미 사망한 라이히슈타트 공작만을 본인의 후계자로 여기고 계시지요. 저 같은 것은 아무리 그분 곁에 있어도 아예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누벨 프랑스 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조카, 샤를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아들을 잃은 백부의 후계자가 되고 자 했던 자기 전력을 떠올렸다. 참으로 암담한 고난의 나날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폐하. 이 아이도 폐하의 조카입니다. 그러니 백작 작위 하나쯤은….”
“닥치고 물러가라. 그러지 않으면 네 아칸소 대공 작위부터 뺏어버릴 테다.”
나폴레옹은 동생 부자를 가까이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형제자매들 때문에 황제 자리를 잃었고 자식도 잃었다고 생각 하고 있어서, 그 원한이 워낙에 컸던 덕분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동생을 ‘영지’인 아칸소로 쫓아냈으면서도 조카인 샤를 루이는 당분간 수도인 누벨 오를레앙에서 지내게 해주었다. 그래서 백부가 자기에 대한 호감이 있기는 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샤를 루이는 전보다 더 열심히 나폴레옹을 쫓아다니며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동생과 함께 있을 때도 조카를 싫어하던 황제가 조카만 있다고 좋아할 리 없다. 게다가 황제는 벌써 70이 다 된나이에도 왕좌에 앉아서 국정을 돌보는 데 무리가 없었다. 대체 언제 늙어 죽을지 알 수가 없다. 샤를 루이는 황제와 만날 때마다 욕설이나 듣는 자기 신세 가 진력이 났다. 그래서 결국 백부의 후계자가 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차라리 유럽으로 돌아가서 만사를 새로 시작하는 편이 백부에게 기대기보다는 전망이 좋을 듯했다.
“어쨌든 반갑네. 우리 왕국은 언제든 돌아온 탕아들을 환영하지.”
과거에 공화주의자, 또는 나폴레옹 지지파였다고 해도 상관없다. 지금 깃대 위에 묶여서 휘날리는 황실 깃발에 무릎을 꿇고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된다. 지금 오를레앙파에는 이런식으로 찾아온 이들이 수천 명이나 된다.
“자네가 날 찾아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만큼 수하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 없어. 그대 역시 충분한 대가를 받을 걸세.”
공작은 나폴레옹의 조카인 샤를 루이를 내세워서 국내에 남아있는 나폴레옹 지지파들을 양지로 끌어낼 심산이었다. 샤를 루이를 붙들고 있으면 그들은 당연히 자신을 돕게 될 테니 무리하게 움직일 필요도 없으리라.
“감사합니다, 공작 각하.”
샤를 루이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짧게 줄였다. 그 역시 자기 궁리가 따로 있었으니까 말이다. 모두를 속이고 그 자신이 왕좌에 앉는 것, 그게 샤를 루이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 오를레앙 공작에게 내놓을 당근도 있었다.
“누벨 프랑스는 마땅히 프랑스로 돌아와야 할 땅입니다만, 당장 되찾기는 좀 어렵겠지요. 하지만 공작께서 이렇게 하신 다면 아이티를 먼저 국왕 폐하의 깃발 아래 되돌림으로써 누벨 프랑스 탈환을 위한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노예들의 섬? 황열병 때문에 그대의 백부도 포기하지 않았나?”
“직접 상륙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해군으로 압력만 넣으면 질병은 염려 없지요. 게다가 아이티는 아메리카 국가회의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티 흑인들은 불과 10여 년 전에 나폴레옹의 군대가 저지른 학살을 잊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나폴레옹이 아메리카로 건너와 누벨 프랑스 제국 건국을 선언하자마자 당장 전쟁을 선포하고 어떤 교류도 하지 않았다. 나폴레옹도 아이티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 역시 과거 아이티에서 하도 쓴맛을 본 기억이 선명하다 보니 아예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각하께서 국왕 폐하께 아이티를 복속하자는 제안을 올려 성공하시면 정치적 입지 확보에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요즘 아이티가 얼마나 부유한지는 제가 아메리카에서 직접 보고 와서 잘 압니다.”
“음, 알겠네. 내 폐하께 그 말씀을 드려 보지. 그러면 아마 자네가 본국에 머무르는 것도 정식으로 허용될 수 있을 걸 세. 이런 좋은 방안을 제시해 줬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감사합니다, 각하.”
사실 샤를 루이는 아이티에 발도 들여본 적 없다. 하지만 뭐 어떤가? 예전에 아이티에서 막대한 부가 생산되던 건 사실 아닌가. 그 농장들이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닌데 설탕과 담배, 목화가 안 나올 리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