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20
4부 304화(1920화)
26.
신불랑에서 생산하는 특산물 중 하나가 미주우(美洲牛)의 가죽이다. 미주우 가죽은 매우 튼튼하고 질겨서 미주우 가죽으로 만든 피혁제품은 시장에서 수요가 많다. 특히나 공장에서 동력을 전달할 때 쓰는 피댓줄 제작에는 미주우 가죽이 최고다.
“당신들, 그래도 오래전부터 우리랑 거래한 양반들이니까 먼저 주는 거다.”
“고맙소이다.”
모처럼 직접 국경까지 가죽을 거래하러 나온 원재현이라 코타족 상인인 ‘머리 위에 앉은 개’와 맞절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의 부족은 원씨 집안과 대대로 거래해 온 사이였다.
“요즘 가죽 상인 중에도 합중국 사람 많다. 그 사람들은 가죽 구하면 합중국에 먼저 판다. 우리랑 다르다.”
본래 미주우는 북미주 전역에 서식했다. 서쪽으로는 동변 중심부에서 동쪽으로는 대서양 연안까지도 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는 물론 서식하는 범위도 예전보다 줄었다. 미주대하 동쪽. 합중국 영토에서는 이제 더 이상 미주우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고기와 가죽을 노린 백인들의 과도한 사냥으로 절멸해 버린 탓이다.
미주대령 서쪽, 대한령 미주에는 아직 미주우가 일부 서식 한다. 하지만 원씨의 근거지인 북미주가 있는 북쪽에는 없고, 동변 남동부 일부 지역에만 서식한다. 동변관리사가 황명을 받아 수렵을 제한하고 있어서 그 값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미주우가 대량으로 서식하는 곳은 이제 신불랑뿐이다. 하지만 신불랑이라 해서 옛날처럼 미주우가 풍부하지는 않다. 백인과 한인들이 농지를 개척하고 도시와 마을을 세운 미주 대하 연변에서는 역시 사라졌다. 이제 미주우가 옛날처럼 우글거리는 곳은 중앙부 대평원뿐이다. 고로 북미주에서 미주우의 가죽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숙조 시절에 탐미군이 방문한 이후로 교분을 유지해 온 라코타족으로부터 사들이는 거다. 북대하를 따라 움직이는 배들은 라코타족이 좋아하는 온갖 물품을 싣고 강을 내려갔다가 가죽을 싣고 다시 올라왔다.
백 년이 넘도록 잘 유지되던 이 체제는 신불랑 제국이 성립하고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 세부는 상당히 바뀌었다. 경쟁자가 늘었다.
“잘 알고 있소. 신의를 지켜주는 그대들이 고마울 뿐이오.”
“원씨가 우리한테 공정하게 대했으니, 우리도 같이 대할 뿐.”
황제가 만든 법은 평원과 숲에서의 수렵권을 토인 부족들에게 독점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쪽에서 사는 기존 불랑국계 주민들은 사냥보다는 교역을 선호하니 별문제가 아니었지만, 새롭게 건너온 합중국 출신 이주민들은 그 법에 적응하지 못해 충돌이 심했다. 원주민은 인간 이하의 존재며 그들의 사냥터 따위는 마음껏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온 합중국 이주민들은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원주민들도 합중국에서 온 백인들만큼 총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탄약도 풍족했다. 당연히 전부 대한제다.
황제가 임명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피해를 호소해도 소용 없었다. 되려 합중국 이주민들이 ‘황제가 인정한 인디언 영지’를 침범해서 밀렵을 시도한 죄로 처벌을 받기 일쑤였다. 결국 이들이 짐승 가죽을 구하려면 원주민 마을을 순회하며 가죽을 모으는 교역상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던 게, 이미 백여 년 동안 서쪽에서 온 한인들과 거래를 계속해 온 원주민들은 완전히 닳고 닳아서 이들을 등쳐먹기도 쉽지 않았다. 물론 한인 장사꾼들도 새로운 경쟁자의 영향을 받았다. 토인들의 물건에 제대로 값을 쳐 주면서 거래를 해오던 원씨 집안 같은 이들만 살아남았고, 안 좋은 물건을 속여서 떠넘기며 폭리를 취하던 장사꾼들은 줄줄이 망했다. 인간사의 섭리가 그런 것이다.
“그러면 내년에 또 봅시다.”
“잘 가시오. 바다 건너 큰아버지께도 안부 전해 주시고.”
습관이란 무섭다. 라코타족은 신불랑국 백성이 된 지 오래 건만, 여전히 바다 건너 대한 본국에 있는 임금을 ‘바다 건너 큰아버지’라고 불렀다. 이들이 신불랑 황제를 부를 때는 ‘큰 강 아래 큰아버지’라고 칭하므로, 나름대로 구분은 된다.
숙소로 돌아온 원재현이 잠시 떨어져 있던 일행과 만났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이 힘차게 흔들렸다.
“스폴딩 씨, 용무는 잘 마치셨습니까?”
“네, 미스터 원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헨리 스폴딩은 장로교 선교사로, 북미주에서 병원과 학교를 운영하면서 주민들과 상당한 유대관계를 쌓고 있었다. 북미주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선교사들은 스폴딩 외에도 백여 명은 된다. 이들은 선교회 본부가 있는 미국 동부와 주기적으로 연락해야 하는데, 대개는 편지를 쓸 뿐이지만 종종 직접 오가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이번처럼 중간까지만 와서 사람과 소식을 주고받기도 한다. 선교 자금도 이런 식으로 건너온다. 이번 여행은 원씨 소유의 교역선에 편승해서 움직였다. 원재현 덕분에 무척 편하게 일을 끝냈다면서 감사를 표하던 스폴딩이 가방에서 편지를 한 통 꺼냈다.
“참, 동생분의 편지가 왔습니다. 잘 지내신답니다.”
“허허, 잘 지낸다니 다행이군요. 길이 먼 건 알지만, 편지만 보내지 말고 한 번쯤은 집에 다니러 오면 좋겠구먼…제수씨랑 조카들이 목이 빠져라, 하고 기다리는데.”
원재현이 편지를 뜯으며 아쉬움을 표했다. 동생 원재신은 자기 소망대로 황사영 공사를 따라 워싱턴 주재 공사관의 서기로 갔다. 스폴딩이 써준 추천서 덕분에 무난히 대학교에도 입학했다. ‘예일’이라는 곳이라며, 박사 과정까지 밟을 예정이라고 했다. 상사이면서도 친하게 지낸 황사영은 5년에 걸친 워싱턴 근무를 올해로 마치고 본국으로 귀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원재신은 황사영이 같이 돌아가자고 권했는데 거절하고 워싱턴에 남았다고 했다. 신학 말고 의학까지 배우려니 아직 공부할 게 더 많이 남았다나.
“외교관 업무를 병행하면서 공부하자니 시간이 부족했다…는 군요. 거참, 핑계도 좋군요. 주경야독 정도야 선비의 기본이거늘.”
원재신이 편지를 읽으며 투덜거렸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괜한 의심이 들었다.
“설마 그쪽에서 새살림이라도 차린 건 아니겠지요?”
“아이고, 큰일 날 소리 하십니다. 그런 건 정말로 아닙니다.”
그래야 할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놓고 말 테니까. 예수를 믿는 자라면 당연히 생활을 올바르게 해야 하는 법이다. 첩을 들이는 것도 다 구습 아닌가.
27.
5년 만에 돌아온 미주다. 황사영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리운 풍경을 만끽했다. 이제 곧 본국으로 가는 배에 오르면 다시는 보지 못할 모습들이다.
“감개무량하시겠소, 황 공사.”
“물론입니다, 대총관 영감.”
황사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앞에 있는 미주대총관 김용관은 종2품이라서 황사영과 품계가 같다. 하지만 자신은 본래 정3품 보직인 주재공사인데 특례로 1품이 오른 사람이다. 그러니 본래 종2품 벼슬인 김용관에게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이는 게 당연했다.
“대미주(美洲, 북아메리카)에 참 오래 계셨지요? 몇 해 째십니까?”
“소인이 여기 부임한 해가 원평 44년이었으니, 정말이지 꽤 오래 있었지요.”
황사영이 미주로 건너온 해는 병술년(1826)이었으니까 올해로 딱 12년이다. 와싱톤에서 합중국 주재 공사로 근무한 기간은 겨우 5년이나, 그전에 덕진성에 머무른 기간이 7년이다. 그동안 임금이 두 번 바뀌었다. 외지 근무는 기본이 5년이니, 관례대로 하자면 7년 전인 광덕 1년 경인년(1829)에 이미 귀국했으리라. 하지만 황사 영이 받아 든 건 선황이 쓴 ‘좀 더 일하라’라는 간단한 지시 였다. 그를 합중국에 공사로 보내기로 내정했다면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국에 왔다가 다시 나가기는 번거로울 테니, 일이 끝날 때까지 더 머무르도록 하라.」
졸지에 기약 없는 연장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때 한숨을 깊게 들이쉰 황사영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중종 시절의 전례였다.
“혹시 태자께..아니, 금상께 무슨 죄라도 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요. 문정공 대감처럼 되는 줄 알았지 뭡니까.”
문정공(公)은 ‘미주 20년’으로 유명한 중종 때 명재상 태원백 김성권이 받은 시호다. 다만 그가 미주에서 20년이나 지내게 만든 처음 계기가 성친왕 시절의 중종에게 방자하게 굴다가 찍혔기 때문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금상께서 오셨을 때 실례될 만한 짓을 저지른 건 없었기에…다시 마음을 편하게 먹었지요. 그리고 2년을 기다리니 발령장이 도착하였고, 다시 와싱톤에 가서 5년을 보내니 후임자가 도착하여 무사히 귀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날까지도 좀 불안하긴 했다. 5년 더 있으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 다행히 금상은 그런 심술은 부리지 않았고, 예정대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신올랑을 거쳐 남쪽 길로 오셨지요? 북쪽 길로 오셔도 되었을 텐데.”
‘북쪽 길’은 북미주에서 북대하를 거쳐서 미주대하 본류를 타고 합중국으로 가는 길이다. 교역상과 선교사들이 주로 이동하는 길이지만 외교관이라고 오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 지금도 신불랑을 거치지 않고 빨리 오가려는 양국 외교관 들은 그 길을 애용한다.
“귀임하는 김에 신불랑 쪽 정세도 보고 올 겸 해서 들렀지요. 두 나라가 워낙 가까워야지 말입니다.”
합중국과 신불랑은 대한과 일본이 가까운 만큼 가깝다고 해도 좋을 만한 사이다. 한일이 기유진남 – 또는 광동진남 – 시절 힘을 합쳐 후송을 토벌하고 천하의 패권을 지켰듯이, 이 두 나라도 대미주와 대삼주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고 있지 않은가. 대한과 청나라 같은 관계라기에는 조금 다르다. 대한은 청 나라를 가장 중요한 우방이라고 여기면서도 견제하고 있어서, 공동으로 군사를 내기까지는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대총관께서도 아시겠지만, 아무래도 같은 양인들이라 그런지 두 나라는 무척 가깝습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단독으로는 대미주와 대삼주, 저들식으로 표현하면 아메리카 땅을 다 평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합중국은 역사가 얕은 신생국인지라 다른 나라 위에 올라 설 권위가 없다. 서반아인들에게 식민지로 지배를 받았던 대 삼주의 신생국들조차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식민지 였던’ 합중국을 전혀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이에 반해 신불랑에는 나폴레옹 황제라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권위가 있다. 유럽 본국의 굴레에서는 벗어나 독립했지만, 여전히 옛 주인들과 동격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대삼 주의 신생국들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권위가 말이다.
게다가 나폴레옹은 일거에 메히꼬를 제압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이 허언이 아니라고 천하에 입증했다. 그러니 나머지 국가들도 그의 앞에 존숭을 바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누벨 프랑스는 돈과 인력이 부족하다. 그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존재가 합중국이고 둘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이루어 협력하고 있다.
“와싱톤의 합중국 정부는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철도를 연결해서 지금보다 교역을 더 늘리려는 것도 그 이유지요. 합중국 언론도 무척 호의적입니다.”
지금도 신불랑 신민 중 나폴레옹을 흠모해서 신불랑으로 건너간 합중국 시민이 숱하다. 적어도 수천 명은 넘는 사람 이 신불랑으로 건너가 관료나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다. 인력 이 부족한 신불랑에서는 기꺼이 이들을 받아들이고 있고 말 이다.
이런 이들은 그저 살길을 얻으려고 새 땅을 찾아서 이주해 오는 농민이나 사냥꾼들과는 다르다. 정국을 살피는 시야가 넓고 어떻게 해야 명분과 실익에서 모두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다.
“더 넓은 땅을 얻을 욕심에 신불랑 땅을 넘보는 이들도 있 다고 들었소만.”
“그런 자들은 시야가 좁은 소인배들이지요. 합중국에서도 정녕 세상을 볼 줄 아는 선비라 하면 다들 신불랑과의 우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5년 동안 와싱톤에 머물면서 수많은 합중국 인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구대륙인 아시아와 유럽의 강대국들이 아메리카에 손을 대려고 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고, 그런 사태가 오지 않게 막으려면 신불랑과 합중국이 굳건하게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이런 시각은 신불랑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요.”
“들어서 알고는 있소.”
지금 신불랑과 대한이 가까운 건, 군주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개인적으로 호감을 품고 있는 탓이 크다. 그 외에 일반 백성들은 서로에게 대체로 데면데면한 편이다. 일단 일부 교역상이 오가는 것을 제외하면 서로를 볼 일이 없다. 대한령 미주와 신불랑 사이에는 동변의 광대한 황야와 미주대령이 가로놓여 있다. 지금이야 동변의 황야는 기차로 가로지르면 된다지만 미주대령은 아직 철도가 넘지 못한다. 게다가 대한과 신불랑은 인종이 다르다. 신불랑에 한인이 많이 거주한다고는 하지만 가장 많은 수는 역시 유주 백인들 이다. 기본이 되는 문화도 유주 문화이니, 역시 유주 백인들이 주류이고 유주 문화가 기본인 합중국과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옳은 말이오. 우리도 잉글인이나 불랑인을 대할 때보다는 청인이나 일본인을 더 가깝게 여기니까.”
“본래 사람의 본성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요.”
황사영은 대미주의 두 유주계 국가가 태생적으로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잘 풀어서 설명했다. 그리고 저들이 서로 싸운다면 직면할 위험을 언급했다.
“저들이 서로 싸운다면 이는 곧바로 유주와 우리가 미주에 손을 뻗칠 빌미가 될 테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신불랑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겠다는 게 와싱톤의 정계 인사들이 품은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대총통인 클레이 공과 그 측근들이야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반대당이 선거에 이겨 정권을 잡으면 기조가 바뀔 수도 있지 않소?”
“어려울 겁니다. 국가 간에도 신의라는 게 있는 법인데, 고작 총통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표변한다면 어찌 주변국이 그 나라를 믿고 대하겠습니까.”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인 대한에서도 임금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동안 해오던 모든 정책을 뒤집지는 않는다. 그게 다 국가의 신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이 집권해서 대외정책에 변화를 주려고 시도 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땅 욕심이 크다고 해도, 신불랑과의 동맹이 갖는 가치를 인정하는 학계나 언론계가 내는 여론까지 다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동맹도 신불랑의 황제 개인이 보유한 위용 덕분 아니오. 황제도 벌써 나이가 일흔인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소. 후계자도 없는 판인데 혹시 이번에 신올랑에 들러서 황제를 알현했을 때 그 문제에 관해서 뭐 들은 건 없으시오?”
“어찌 본국의 훈령도 없이 그런 질문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무례하게요.”
“그건 그렇구려.”
“신올랑 시내에 이런 풍문이 은밀히 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선례를 따르려는 게 아니냐고들 한다는 소리가 있더군요.”
옛날 마케도니아의 패왕 알렉산드로스. 그는 죽을 때 ‘가장 강한 자에게 제국을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곧바로 휘하 장군들이 내전을 벌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연 나폴레옹도 그런 선택으로 신불랑을 불구덩이 에 처넣고 말 것인가.
“그보다는 의자(義) 마타모로스 공작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소?”
“서양에서도 의자는 가문을 이을 수 없습니다, 대총관 영감. 정식으로 양자가 되어 황실의 보나파르트 성을 받았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데 어찌 제위를 잇겠습니까.”
나폴레옹이 유럽에 있는 사생아들을 불러오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사생아들은 어차피 제위를 물려받을 수 없으므로 한 번도 부르지 않은 거다. 혹시 불러들인다면 공연히 나라만 시끄러워진다.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계승 문제 하니 이곳 미주에서 근래 재미있는 일이 하나 터졌소.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든 장본인은 요즘 통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하오.”
“허, 무슨 일이기에 그러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잠시 점잔을 빼던 김용관이 황사영에게 올해 초에 시작된 그 연판장 사건에 관한 언급을 꺼냈다. 당연히 황사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의미를 잘 아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