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23
4부 307화(1923화)
32.
우리 속에 든 발리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노려보았다. 술루국왕 가스파르 1세는 놀라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살짝 손짓했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던 안남인 시종이 얼른 들고 있던 고깃덩어리를 우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호랑이가 시선을 돌렸다.
“잘도 먹는구나. 우리 땅에 너희 같은 놈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술루 본섬에서 발리호랑이가 서식하는 발리섬까지는 1천 해리가 넘는다. 단순히 거리로만 따지면 안남이 더 가깝지만, 안남국은 일단 남의 나라다. 제대로 호랑이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발리에서 호랑이를 얻었다. 물론 가스파르 1세는 술루국의 산야에 호랑이를 풀겠다거나 하는 정신 나간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자기가 취미로 기를 한 마리였고, 그 정도라면 어려울 게 전혀 없었다.
“전하. 국무회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음, 가지.”
가스파르 1세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올해 거둔 성과가 제법 두둑했으니 1837년은 아주 보람있게 마무리할 수 있을 듯했다.
술루국왕의 가장 큰 의무는 갈로도를 비롯한 누손주 남부 지방 평정이다. 중종 시절부터 이어진 누손주 정벌은 술루국이 나라를 유지하는 가장 큰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양에 있는 제국 중앙정부는 ‘반군’을 토벌하는 대가로 전비를 지원하는데 이는 사실상 용병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싸워 붙잡은 포로나 노획한 전리품은 모두 술루국의 소유로 인정된다. 이 수입이 교역이나 농업으로 국고에 들어오는 수입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수입은 보르네오 방면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데 쓰인다. 수도가 있는 홀로도 – 수도는 라 이사벨 라(La Isabella), 이사변(伊思邊)으로 이름을 바꾸었어도 이 섬의 이름은 여전히 홀로도다 – 의 넓이는 하와이 본섬과 비교하면 고작 1/12, 제주도와 비교를 해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국세를 드높이려면 외부로 확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예 수도를 옮기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현재 술루국 영토는 대부분이 보르네오섬에 속한다. 수도가 위치하는 술루군도 쪽 영토의 넓이보다 보르네오 쪽 영토가 스무 배쯤 넓다. 보르네오 쪽에 농장을 소유한 귀족들도 많다. 평소 머무는 저택은 수도인 라 이사벨라에 두지만, 전공을 세운 데 대한 포상으로 받은 농장은 보르네오에 있는 거다. 술루 본국에도 농장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 농장들은 대개 왕국 성립 초기에 들어온 이주민들의 소유다.
귀족들이 본국 정부의 명에 따라 나가는 갈로도 토벌보다 보르네오 정벌에 열정을 쏟는 이유도 여기 있다. 기왕이면 은화 자루보다는 농장을 가지고 싶은 게 인간이라면 다들 갖 는 욕심 아닌가. 그러다 보니 아예 수도를 보르네오로 옮기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의외로 지지자가 상당수였다. 대체로 보르네오 에 재정적인 기반을 둔 신진 세력이다.
“장차 우리 왕국은 보르네오 방면으로 계속 확장할 텐데, 수도가 여전히 홀로도에 있으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병력 절반을 늘 수도에 놔두니 보르네오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에도 한계가 있고….”
“안 됩니다. 디에고 1세 전하께서 세우신 이 수도를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본국인 홀로섬을 비롯한 술루 제도 각 섬에 농장을 보유한, 왕국 건립 이래 세도를 누린 명문가들은 천도를 반대했다. 이들로서야 천도는 왕이 자기들의 근거지를 떠난다는 뜻 이니 환영할 수가 없다.
“보르네오는 아직 사방이 회교도들로 둘러싸인 적지입니다. 안전한 이곳 이사벨라를 두고 그런 위험한 곳으로 수도를 옮긴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술루국에서는 회교도라고 해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디에고 1세 시절, 회교도 포로나 귀순자들이 국왕에게 충성을 서약하기만 하면 풀어주고 병사로 받아주던 시절의 유산이다. 지금도 술루군 내에는 회교도 병사들이 일부 편제되어 있다. 하지만 회교도 부대는 중대 규모로 제한되며 연대로는 편성되지 않는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조치다.
“더구나 우리는 본국에서 내려오는 명에 따라 수시로 필리핀에 출병해서 싸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력부대가 홀로에 있는 편이 유리합니다. 사실, 당장 내년 원정을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한양에 있는 황제로부터도 이미 지시가 내려와 있다. 내년에 갈로도를 대대적으로 공격할 테니까 병력 1만 명을 준비 하라고. 필리핀 총독부와 본국 중앙군을 합쳐서 4만 명이 별도로 출동할 예정이라는 통보도 있었다.
“저희는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내년 출병을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수도를 지금 바로 옮기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술루국의 장래를 위해 천천히 준비해서 옮기자는 거지요.”
수도 이전파도 주군인 대한제국 황제에게 지는 술루국의 의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수도를 보르네오로 옮겨도 출정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보르네오 북서부에서 홀로도까지는 겨우 뱃길로 하루밖에 안 됩니다. 그 정도 거리라면 출동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의 수도인 라 이사벨라라면 수비대를 많이 남기지 않아도 되지만, 수도를 보르네오로 옮긴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비대를 남겨서 지켜야 합니다.”
보르네오에는 아직 군소 이슬람 토후국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술루국이 다스리는 회교도 원주민들도 다수다. 모든 주민이 천주교도인 술루 군도에서는 반란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보르네오에서는 신경을 써야 한다. 분명 충성스러운 회교도 귀족들도 있다. 하지만 불안한 상대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양측이 서로 자기편 주장을 내세워 치열하게 다투는 동안 국왕은 끼어들지 않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수도 이전이란 중대한 일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니, 양쪽의 의견을 다 들은 뒤에 천천히 결정할 생각이었다.
33.
내년으로 예정된 모로족 대토벌은 누손주의 군무를 맡은 병마절도사 이희영이 주관한다. 하지만 남중(南仲)에 자리잡은 도독부에서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도독 대감, 병마절도사 영감이 내년에 필요한 병력 규모를 정리해서 보내왔습니다.”
“줘 보게.”
누손주 도독 김원태가 한숨을 쉬었다. 지방관 경력은 기본이었고 재무부, 법무부, 내무부 등을 두루 경험한 인재로 자부했으나 군무는 서툴렀다. 대과에 일찌감치 붙어서 군대에는 향도로도 다녀오지 않았다. 육군부나 해군부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 문관 출신 지방관들이 군권을 내놓은 지 이미 수백 년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이 거느린 여러 속주 중에 사실상 유일하게 전쟁을 치르는 중인 누손주 도독 자리에 앉고 보니 익혀두지 않았던 재주가 아쉬워졌다.
“그러니까…속오군 2만 명을 내달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대감.”
형식상으로야 정2품인 도독이 종2품인 병마절도사보다 상급자다. 하지만 군무에 능숙하지 않은 도독은 아무래도 병 마절도사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희영은 좋은 장수다. 허울만 상관인 도독을 우롱 하지도 않고 예를 갖춰 대한다. 하지만 이순신의 후손 아니랄까 봐 육군에 있으면서도 군무에서는 참 까탈스럽기 그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이가 2만 명이 필요하다고 했으면 정말
로 필요한 거다.
“본국에서 대붕영 4천이 오고, 자기 쪽에서는 고병 6천, 징병 1만을 투입할 거라고…”
이런 토벌전에서 주력은 아무래도 정규 관군이 맡게 마련 이다. 특히 고병이 많이 포함된 부대가 주력을 맡아 적을 쫓고, 징병이 많은 부대는 예비전력으로 그 뒤를 따른다. 속오군은 전투보다는 보급 거점이 되는 후방 지역의 경비나 물자 수송 등을 주로 맡는다. 전장에서는 이런 역할을 맡을 병력도 필요하게 마련이다.
다만 김원태는 속오군을 모으는 게 영 마땅치 않았다. 속오군을 동원하려면 자기 생업을 영위하던 양민들을 소집해 서전장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속오군은 거의 처자식이 딸린 자들이니 소집되면 그 가족의 생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소집됐다가 무사히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전사나 병사로 불귀의 객이 되면 가족들은 꼼짝없이 가장을 잃는다. 조정에서 내주는 보상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몇 푼을 가장의 목숨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죽기 싫은 이들을 끌어내기보다는 죽어도 상관없으니 싸우고 싶다는 이들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은가?”
“민보군을 모으자는 말씀이시옵니까?”
도독부 내에서 군무 – 그래봐야 속오군 소집 임무뿐이다 – 를 담당하는 병부판관 송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원태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원해서 싸우러 가겠다는 이들을 보내는 편이 훨씬 좋지. 저들이 자초한 일이니 행여나 죽거나 다치더라도 미안해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민보군으로 싸우다 죽어도 보상금 액수는 속오군과 같다. 하지만 전리품을 노리고 스스로 뛰어들었으니, 죽더라도 관을 원망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덤으로 행정사무도 더 간단해 진다. 오는 사람만 받으면 되니, 군적부를 살펴 적당한 사람을 고르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김태원은 이 두 가지를 강조하면서 이번 출병에 속오군 말고 민보군을 내보내자고 했다. 하지만 송원이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도독 대감.”
“왜 안되는가, 송판관?”
“소인이 벌써 병마사 쪽에 문의했습니다. 민보군은 약탈에 혈안이 된 도적놈들이고, 재물 때문에 군율을 어기기를 밥 먹듯 하니 절대 안 된답니다. 속오군으로만 정예 2만을 선별 해 달라고 아주 못을 박았습니다.”
그 까다로운 인간이 안 된다고 했으니, 인제 와서 송원이 아니라 김원태가 가서 속오군이 아니라 민보군을 쓰면 어떻겠냐고 해도 된다고 할 리가 없다. 김원태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꼼짝없이 속오군 2만 명을 골라내야 했다. 120만 명 중에서 말이다.
34.
내년에 대대적인 모로족 토벌이 있으리라는 이야기는 남 중 일대에서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도독부와 병마사, 두 곳 중 어디서든 말이 새지 않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원칙대로 하자면 이런 군사기밀을 흘린 자는 찾아내서 참 형에 처해야 한다. 하지만 누손 각지에 흩어져 있던 관병 – 상비군 -들을 재편성하고 물자를 보충하며 속오군을 소집 하는 그런 과정을 주의 깊게 본다면 누구든 알 수밖에 없다. 내년에 대규모 출정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이 기회에 돈을 긁어모아야지.”
송현상단 도방 왕중선은 책상 위에 서류를 산처럼 쌓아두고 열심히 주판을 튕겼다. 이제 병마사에서 대규모 물자 발주가 있을 터, 상단이 한몫 잡을 기회였다. 본국에서 주도하는 원정이라면 모든 물자를 육군부에서 직접 조달하므로 여기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누손주는 군비를 현지에서 직접 집행한다. 그게 본국에서 조달한 물자를 일부러 누손주까지 운반하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구하는 게 더 싼 물건들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쌀. 쌀은 누손주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런데 왜 본국에서 일부러 배로 실어 가져오겠는가. 여기서 모으는 게 훨씬 쉽지. 쌀을 제외하고도 포목과 공구, 화약에 목재, 심지어 차와 가배까지 군대에 들어갈 물자는 얼마든지 있다. 5만 대군이 쓸 물량이니 아주 큰 돈이 되리라.
“도방 어른, 일은 잘되고 계십니까?”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서른 남짓한 청년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말끔한 비단옷에 구슬 장식을 드리운 비싼 갓, 진주를 박은 귀걸이에 옥관자를 박은 차림이 세도가 자제임을 확실하게 드러내 보였다.
“남중성에 나온 김에 잠시 들렀습니다. 지난번에 도방께서 우리 농장에서 쌀과 파초삼을 사고 싶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서 말이지요.”
청년의 이름은 민재홍이라고 했다. 여흥 민씨 가문의 서자로, 학문을 잘 익혔다면 과거를 보고 출사했겠으나 딱히 뛰어난 문재를 드러내지 못한 탓에 일찌감치 누손에 있는 농장을 관리하는 쪽에 보내졌다. 그리고 여기서 뜻밖의 재능을 보여 제법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여유자금이 생기자 구리 광산과 금광, 진주 채취에도 손을 댔다. 이쪽은 민재홍이 임의로 벌인 사업이라 집안 어른들에 게 질책을 좀 받았지만, 투자한 금액의 서른 배나 되는 대박이 터지자 혼내던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이제 민재홍은 가문의 든든한 돈줄이 되어 여섯 개의 농장과 여기 딸린 5백 명에 달하는 작인들, 광산 세 곳과 진주 채취선 네 척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았다. 신분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움직이는 막대한 돈 때문에라도 왕중선이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건으로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좀 갑작스럽습니다만, 현미 8천 섬과 파초삼 4천 근을 다음 달까지 내주실 수 있을지요?”
인사를 나누는 동안 사환 아이가 가배를 가져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민재홍이 찻잔에 능숙하게 설탕을 퍼넣으면서 태연하게 답했다.
“올해 수확이 괜찮았으니 그 정도는 댈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가격은 지난번에 논의한 액수보다 5푼쯤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정도는 해주시겠지요.”
곧 시작될 모로족 토벌 때문에 관에서 막대한 물자를 사들일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한몫 잡으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릿속에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합의한 가격이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올려달라고 하시면 너무하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의논했을 때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었잖습니까? 그러니 제 요구가 딱히 부당한 건 아니지요.”
민재홍이 느긋한 태도로 뜨거운 가배를 홀짝였다. 대남도 산 원두에 익숙해서인지 안남산 원두 맛이 좀 씁쓸했다.
“도방께서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양을 바로 대령할 수 있는 농장이 어디 흔할까요. 괜히 망설이시다가 조달이 늦어져서 입는 손해가 더 크실 겁니다. 5푼이면 그렇게 큰돈도 아닌데 수락하시지요.”
민재홍은 자기 집안 소유 광산에서 나오는 금과 구리, 진주까지 은근슬쩍 들먹였다. 혹시 그쪽 거래에 지장이 가는 사태가 생기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면서. 왕중선은 이번 거래 에서는 양보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좋습니다. 5푼 더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거래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왕중선이 서기에게 계약서를 정서해 오라고 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잡담을 나눴다.
“자제분이 글을 꽤 잘 익히셨다고 들었는데 역시 본국으로 보내실 건가요?”
“저는 그러고 싶은데, 내자(內子)가 반대합니다.”
과거 준비를 제대로 하려면 열 살이 되기 전에 본국으로 가서 서원에서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외지 출신자라고 해도 그 정도 나이로 본국에 들어가면 소학당부터 다녀야 하므로, 서원에 들어갈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누손주에는 제대로 된 학교도 없고 스승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민재홍처럼 누손주에 와 머무르는 양반가 자제들은 싹수가 있어 보이는 아들은 죄다 본국에 보낸다. 헌데 민재홍의 처는 아직 어린 아들을 곁에서 떼어놓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몇 년 있다가 보내자고 하고 있었다. 아예 나이를 먹고 본국에 가면 소학당 취학이 면제되는 건 장점이긴 하다.
“그런데 시간을 끌다가 괜히 봄바람이 불어 토인 계집애라도 건드려서 골칫거리를 만들면 큰일이니 말입니다.”
“종종 있는 일이지요.”
토인 계집애를 향처(鄕妻)로 삼거나 첩으로 들이는 사내들은 흔하다. 그리고 본가의 귀환 지시를 받고 돌아가면서 그 소생 자녀와 함께 버리고 가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다.
“생기면 거두기야 하겠지만, 그런 게 생기는 것만 해도 골치아닙니까.”
민재홍은 옛날 같았으면 그렇게 생긴 서얼은 아예 노비 취급을 받았을 거라고 탄식했다. 왕중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파초삼: 마닐라삼
*남중(南仲): 마닐라
*이희영은 하와첨사로 나온 이희권의 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