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27
4부 311화(1927화)
3.
만약 조승복이 저승에서 이 꼬락서니를 본다면 대체 뭐라고 할까. 저따위 놈은 내 후손이 아니라고 펄펄 뛰면서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난리를 칠까. 후송 황실에는 호적에서 파버릴 만한 놈들이 이미 즐비하니 상관없으려나.
“생각해 보니 소무제가 이 꼴을 봐도 통탄하겠구먼.”
아무래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후송에서 우리 대한으로 망명객이, 그것도 친왕 작위를 가진 황제의 친아들이 망명해 오다니.
내 청각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어나리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고 하니,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다시 한번 말해보아라. 누가 어디로 건너왔다고?”
“송나라 선제 영강제의 4자 한왕 조심원이 처자와 수하를 거느리고 주산진으로 밀항하여 폐하께 보호와 자비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믿어지지를 않아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물었고 매번 같은 답을 얻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대답이 곧바로 진실로 인식 되지 않았다.
“송나라 한왕은 연금 중에 화재로 사망하지 않았는가?”
이미 남경에서 며칠 앞서서 소식이 왔다. 한왕부에 발생한 화재로 안에 있던 한왕 일가가 몰사했다고 후송 황실에서 정식으로 공표했다고 말이다. 그 보고를 접한 우리 조정에서는 조심원이 송태후한테 처형당하기 전에 일가족을 동반해서 자살했다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폐하. 집에 난 불은 한왕 일가가 탈출을 위장하고자 지른 것이고, 자기들은 태후의 눈을 피해 밀선(密船)을 타고 탈출했다고 합니다.”
몇 달 전에 영중추부사 이종선이 비슷한 주장을 하긴 했었다. 연금당한 후송 친왕 중 한 명을 빼돌려서 누손주에 박아두고 후송 내정에 개입할 장기 말로 쓰자고 말이다. 집에 불을 질러서 죽음을 위장하고 도주한 것처럼 꾸미면 그만이라고 했었지. 분명 반쯤 농담으로 나눈 대화였다. 설마 그게 진짜로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자가 진짜 한…..아니, 일단 지금부터는 한왕이라 칭하지 말고 글자를 바꾸어서 ‘헌왕(獻王)’이라 칭하라.”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후송 황족들은 중국의 옛 국명을 왕호로 삼는다. 당연히 한(韓)도 옛 국호 중 하나니 그놈들로서는 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 칭호에 우리 대한을 겨냥하는 이중적인 뜻이 없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많고 많은 후송 황족 중에 하필이면 ‘한왕(韓王)’이 건너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짜증이 났다. 어쩌다 한번 언급하고 끝나는 거면 몰라도 그놈이 주된 화제가 되는 상황에서 한왕, 한왕하고 계속 거론하는 거 솔직히 좀 기분 나쁘다.
“그런데 그자가 진짜 헌왕이 맞기는 맞는가? 짐은 그 보고가 무척 의심스럽다. 불한당이 제 신분을 꾸며서 댄 것은 아닌가?”
이미 전례도 있다. 옛날 명나라가 망했을 때, 바다를 건너 온 사람은 대명공이 된 주유교 말고도 많았다. 그중 명나라 황족과 고관대작의 일가를 자처하는 자들이 숱하게 건너왔다. 물론 대부분은 좋은 대우를 얻어내려는 가짜였고, 죄다 들통이 나서 북방으로 귀양을 갔다. 지금 건너온 놈도 그런 가짜일지 모른다. 일단, 송나라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한왕이 불에 타 죽었다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한왕이라고 자처하는 자가 나타났다. 먼저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이제껏 송나라 황실에서 우리 대한으로 귀부한 이가 없었다. 그러니 후대를 받을 욕심에 친왕을 가장하고 넘어온 자가 없으라는 법도 없지 않으냐.”
중신들도 나와 마찬가지 판단을 내렸다. 의심에 찬 시선들이 주산부사 – 주산진은 이제 정식으로 우리 영토가 되었으므로 주산부사가 맡아 다스린다 – 가 보낸 사자를 향했다.
“말해보라. 어찌 주산부사는 이자가 진짜 헌왕이라고 판단 하였는가.”
일반적으로는 중대한 보고가 있다고 해도 표문만 올라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태가 워낙 황당하다 보니 아직 겨울임에도 주산진부 주재 익문사 별좌 한 사람이 특별히 도성으로 직접 올라왔다. 별좌의 이름은 안문중이라고 했다.
“소지하고 있는 모든 문서를 일일이 열람하고 당사자와 그 식솔 및 수하들을 며칠에 걸쳐 심문하여 내린 결과이옵니다. 주산부사와 주산첨사가 신과 함께 심문에 임하여서 엄격하게 조사하였습니다.”
우리 영토로 편입된 주산은 그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종3품 부사가 다스리는 도호부가 되었다. 주산진에 주둔하는 해군을 책임지는 주산진 첨사가 종3품인데 그보다 품계가 낮은 수령을 보임하면 첨사에게 휘둘릴 염려도 있어서 곤란했다. 두 사람이 함께, 익문사 별좌까지 심문에 임했다면 확실히 신뢰도가 올라간다. 익문사는 심문에는 별 경험이 없지만, 대신 한왕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릴 수 있는 정보가 있으니까.
비밀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익문사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산진은 우리 영토다. 당연히 후송 내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요원들을 관리하는 중간책이 있고, 그 인원들은 공식적인 직책을 가지고 주산진에 주재한다. 안문중도 그런 사람이다.
“표문을 이리 다오.”
그만한 검증을 거쳤다고 하니 신뢰가 좀 간다. 주산부사가 보낸 보고서를 받아 읽어보니 조심원이 어떤 경로를 거쳐 주산으로 들어왔는지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산과 가장 가까운 항구인 영파(寧波)에서 넘어왔나 했더니 아예 남경에 서부터 배를 탔다고 했다.
“영파까지 육로로 이동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그렇습니다.”
하기야 태후 송씨가 전권을 잡은 상황이니 장거리 이동이 어렵긴 했겠지. 기왕 도망자가 됐으니 최대한 빨리 배를 타는 편이 차라리 더 안전했을 것도 맞고. 그래도 적어도 1천2 백 리, 5백여 km에 달하는 뱃길을 밀선으로 여행하는 건 절대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 후송이나 잠상이나 수적(水賊)에 대한 취급은 같다. 발견하면 즉석에서 격침해도 상관없다는 게 공식적인 지침이다. 격침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붙잡아 전리품으로 삼는 것도 허용된다는 의미다. 나포한 배와 짐은 물론이고 사람까지도. 물론 밀수선을 통과시켜 주고 통과세를 받아서 지속적인 수입원으로 삼는 자들도 없지는 않지만, 원칙은 그렇다. 즉 조심원 일가는 전 재산을 털리고 왕비와 자녀들이 겁탈당한 뒤 노비로 팔릴 위험을 각오하고 배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귀부한 사유가 여기 적힌 대로가 맞는가?”
“예, 폐하. 태후가 정권을 잡고서 마치 옛 한나라 여후(呂后)가 저지른 바와 같이 선제의 다른 자손들의 씨를 말리려고 하니, 차마 앉아서 죽을 수는 없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바다를 건넜다고 하였습니다.”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음 부분에 기재된 내용에 관해 질문했다.
“데리고 온 수하는 얼마나 되는가?”
“처와 자식 셋, 남녀 시종 다섯 명과 측근에 둔 신하 네 명입니다.”
안문중이 침착하게 고했다. 그 뒤를 보니 수염이 풍성한 노인 한 사람이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꼬장 꼬장해 보이는 저 늙은이가 조심원과 함께 건너온 측신(側臣) 중 우두머리 격인 인물인가 보군. 기색을 살핀 그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한황께 인사드립니다. 소인은 대송국 우림위 상장군 고문휘라고 하옵니다. 한왕 전하께서 잠시 몸을 숨기실 곳을 구하고 계시기에, 폐하께 의탁하고자 전하를 모시고 건너왔습니다. 부디 폐하께서 제왕의 풍모를 보이시어 쉴 곳을 내주신다면 그 은혜를 뼈에 새기겠습니다.”
조정에서는 아직 조심원의 처우를 결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원 일가는 아직 주산진을 떠나지 못하고 부사가 내준 가옥에서 지내고 있다. 수행원인 고문휘 딱 한 사람만 증인겸 대표로 안문중을 따라 내 앞에 출두한 것이고.
“고문휘라 하였는가.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는 어찌 현황(現皇)에게 충성하지 않고서 일개 친왕을 따라 우리 대한에 귀부하였는가.”
“폐하. 한왕께서는 폐하께 귀부하시려는 게 아닙니다. 급박한 위기를 맞아서 임시로 몸을 피하고, 장차 권토중래를 하고자 잠시 거처할 곳을 구하고자 하셨을 뿐입니다.”
적국 군주의 아량에 모든 게 걸려 있는 상황이다. 후송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제물로 남경으로 압송될 수도 있고 가짜로 취급해서 처형당하거나 투옥당할 수도 있다. 그렇건만 고문휘는 시종일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대했다.
“폐하께서 지금 군자로서 은혜를 베푸신다면 한왕 전하께서도 군자로서 마땅히 장래에 그 은혜에 보답하실 겁니다. 대동양을 다스리는 제왕으로서 아량을 베푸신다면 천하가 폐하의 자비를 칭송하리라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다. 정말 노련한 무인다운 풍모였다. 외모만이 아니라 몸가짐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유능하고 충성심 깊은 무장임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첫인상으로 사람을 파악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만큼 살고 보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 파악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내가 작정하고 들여다봤을 때 얘기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 고문휘는 믿어도 좋은 사람 같았다. 적어도 그저 황실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머저리를 위해 충성을 바칠 벽창호는 아니라는 뜻이다. 조심원이 인품이든 능력이든 자기가 주군으로 모실 만한 역량이 있기에 함께 망명했다는 뜻 이겠지.
“그대의 주군과 그 식솔에게 거처할 곳을 마련해주겠다. 다만 그리 안락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감사합니다, 폐하.”
고문휘가 바닥에 엎드려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을 보자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이 실감이 났다. 후송 황실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온 망명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우리가 중종 시기 화친을 맺은 이후로 큰 전쟁 없이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 오기는 했다. 중원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우리가 후송과 전쟁을 벌여서는 곤란했으니 말이다. 물론 적당히 패는 데 그치고 빠져나올 수 있다면 좋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던가. 무슨 명분으로든 우리가 후송과 전쟁을 시작하면 청나라가 개입할 건 분명하고, 전리품을 요구할 것도 분명하다. 그러면 균형은 점점 청나라 쪽으로 기울어질 거고, 청나라가 중원을 일통하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일부러 져줄 수는 없지 않나 말이다.
후송이야 우리를 공격하고 싶어도 할 능력이 없다. 국내적인 분열도 문제지만, 우리한테 손을 대려면 무조건 바다로 나와야 하는데 해군력은 우리가 후송을 압도하지 않는가. 그래서 광동진남 이후로 백여 년 동안 후송과는 큰 충돌을 겪지 않았다. 물론 해적선이나 잠상들을 잡으러 다니는 과정에서 충돌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게 수습하지 못할 만큼 커진 적도 없다. 그러니 정쟁에 패한 황자가 망명할 수도 있기는 하다. 우리 조정이 발칵 뒤집히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지.
“송의 헌왕은 어찌 지내고 있는가.”
“거처에 도착하여 살림을 막 정리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이 사태가 실제로 벌어지기 전, 이종선이 가정했던 방안에 따라서 처리했다. 조심원의 거처로 남중성 근처에 있는 2천석 – 농장의 크기를 재는 단위로는 여전히 ‘석’을 쓰고 있다 – 짜리 농장을 하나 내주고, 그 농장에서 나오는 수입을 생활비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조정 일각에서는 누손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식읍으로 내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잠시 나왔다. 하지만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그 의견을 확실하게 눌러버렸다.
‘대명공처럼 정식으로 귀부한 것도 아니고, 잠시 의탁할 뿐이라고 스스로 공언한 자에게 식읍은 무슨 식읍입니까?’
‘송나라 친왕에게 화인(華人)들을 주어 조세를 받게 하자 니, 이는 우리 땅 안에서 우환을 기르는 행동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으므로 그 제안은 곧바로 각하 했다. 그래서 조심원에게 내주는 재산은 농장 하나로 그쳤다. 이런 논의가 거친 겨울 바다를 뚫고 오가는 사이 후송에서는 미리 공고한 대로 형산에서 성대하게 봉선을 올렸다. 수십 척에 달하는 거대한 증기선이 갈수기라 물이 줄어든 장강을 줄지어 거슬러 올라갔다. 모든 배가 화려하기 그지없게 꾸민 건 물론이다.
우리가 그랬듯이 후송 조정도 우리 공사를 그 배에 태워 형산까지 데려갔으므로 송태후가 이 행사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도 빤히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황은 현장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되어 내 손에 들 어왔고. 송태후는 아들인 함화제를 형산에 보내고 자기는 남경에 남아서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 날짜인 음력 1월 1일 바로 다음 날인 1월 2일, 그동안 각 저택에 연금해 두고 있던 함화제의 이복형제들을 모조리 처형했다.
‘반역을 도모한 죄인들이다! 모조리 죽여라!’
그나마 임칙서를 비롯한 온건파 대신들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설득한 덕분에, 본래 죽일 예정이었던 그 가족들은 황궁의 노비가 되는 형을 받았다. 그리고 태자를 폐위하려고 선황을 ‘속인’ 죄로 처형될 예정이던 대신들도 ‘봉선 기념 특사’라는 명목으로 석방되었다. 분명 송태후로서는 최대한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친왕들의 가족도 살려주었고 반역자였던 대신들도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풀어주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다르다.
“죄 없는 형제들을 죽인 무도한 황제라는 평이 돌고 있다지.”
“예, 폐하.”
송태후 본인이야 본래 계획보다 덜 죽였으니 자기가 자비롭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허나 그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속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송태후는 ‘100명을 죽이려다 고작 10명만 죽인’ 자기를 자비롭다고 여기겠지만 남이 보기에는 그냥 10명 죽인 사람일 뿐이다. 더구나 다른 악재도 겹쳤다. 아직 봉선이 진행되고 있던 1월 5일에 청군이 한양도통부가 관할하는 여러 성을 일제히 공격해 온 거다.
쳐들어온 청군은 녹영병 총 4만으로 그다지 대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봉선 준비 때문에 허덕이던 한양도통부는 큰 타격을 받고 작은 성 두 개를 함락당했다. 다른 성들은 구원군이 구출했으나 이 두 개는 끝내 되찾지 못했다. 나중에 듣자니까 송태후는 ‘건주 오랑캐들이 약속을 어겼다!’라면서 펄펄 뛰었다고 한다. 청나라가 봉선할 때 후송군이 얌전히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 서로 봉선을 방해하지 않는 대신 뭔가 합의가 있었는데, 청이 깨버린 모양이다. 뭐, 이런 약속은 믿는 놈이 바보지.
그 난리판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천천히 한왕을 누손으로 보냈다. 딱히 선전은 크게 하지 않았다. 친왕의 망명을 공표하지는 않았으나 비밀에 부치지도 않았다. 그게 후송 조정과는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 더 효과적으로 소문을 퍼뜨릴 방법이라서다. 역시나, 우리가 별다르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후송 쪽에서 먼저 ‘한국에 있는 자칭 한왕은 가짜다!’라고 소문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 쪽이건 논란이 되는 편이 유리했으니 사양할 것 없이 이를 이용했다. 살아있는 한왕이 주산 진에서 돌아다니며 목격되도록 했다.
후송 조정은 우리에게 항의하지 못했다. 자기들은 분명 한왕이 죽었다고 공표했는데 막상 그 주인공은 멀쩡히 살아서 외국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자기네 입으로 죽었다고 한 사람이 살아있다고 어떻게 고발하겠는가.
이 소문이 역으로 작용한 덕분에 지금은 후송 내에서 대한이 선황의 여러 아들 중에 가장 똑똑한 아들을 데려가서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심지어 우리 특공대가 왕부에 직접 침입해서 빼내 갔다고도 하더라. 과연 이쪽 싸움에서는 어떤 결론이 맞는 걸로 나오려나. 우리로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