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30
4부 314화(1930화)
8.
훔볼트가 2년 전부터 신불랑에 와 있다는 건 나폴레옹의 편지로 알고 있었다. 석유 자원 탐사를 위해서 초빙해 왔다고 했었다. 이것도 근원을 따지면 내가 유발한 변화였다. 내가 나폴레옹에게 알리기를, ‘기름이 있는 곳에는 소금물도 같이 매장 되어 있는 사례가 많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암염 탐사에 일가견이 있는 훔볼트를 데려왔다는 언급이 있었다.
훔볼트 본인은 땅에서 나오는 기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이던 1799년에서 1804년에 걸쳐 남아메리카와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보지 못한 누벨 프랑스를 방문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나폴레옹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텍사스의 대평원에 관해서는 남들이 하는 말을 전해 듣기만 했습니다. 그 넓은 들판에서 질주하는 들소의 무리라거나 유럽에 서식하는 것보다 큰 갈색곰, 인디언들의 생활상과 같은 흥미진진한 연구 거리들을 안 보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지요.”
훔볼트를 환영하는 연회는 특별히 경회루에서 열렸다. 경희궁에 있는 유럽식 연회장 같은 건 훔볼트에게는 하나도 신기할 게 없을 테니, 경회루 쪽이 더 참신한 인상을 줄 듯했다.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보고 싶었다는 걸 보니, 옳은 선택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누벨 프랑스 제국에 머무는 동안 만족스러운 연구를 했는가?”
“예, 폐하. 나폴레옹 황제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으로 누벨 프랑스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석유 탐사와 병행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지만요.”
훔볼트는 9년 전에 다녀온 중앙아시아 여행기 원고도 아직 정리를 다 마치지 못했는데 북아메리카 여행기 원고가 또 쌓였다면서 웃었다.
“중앙아시아보다는 기후도 좋고, 여행하기에도 편했습니다. 주민들과 통역 없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지요.”
훔볼트는 러시아어는 못하지만, 프랑스어는 유창했다. 지금 나와 하는 대화도 프랑스어다. 누벨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만 할 수 있으면 어디에 가든 말이 통하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수밖에. 다만 러시아령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다. 그 지역 원주민들이 아직 러시아어를 못하기 때문이다. 통역이 필수다.
“그러면 혹시 우리 대한을 찾은 이유도…?”
“예. 동아시아의 생물상을 연구하고 싶어서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황제께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선뜻 허락하시면서, 가는 길에 폐하께 드릴 고무나무 묘목과 그 종자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시더군요. 그래서 맡아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훔볼트는 나폴레옹의 ‘사신’이 아니었다. 가지고 온 나폴레옹의 친서도 아시아에 오는 김에 가져왔을 뿐이었고, 우리 관원들이 훔볼트의 신분에 관해서 좀 속단한 셈이다. 하지만 뭐,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훔볼트가 나폴레옹에게 고용된 상태가 아닌 편이 나한테는 더 좋기도 하고. 내가 고용하기 쉽잖아.
“어떤가. 우리 대한에서 머무르는 데 필요한 체재비를 제공하고 연구도 도와줄 테니 우리 서학당에서 초빙교수로 한 동안 지내보는 건.”
“좋습니다.”
서학당이 이공계 분야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국립 대학이라는 건 따로 설명할 필요 없었다. 서학당에서는 유럽 학술지에 종종 논문을 게재하고 있고, 훔볼트도 그런 논문들을 이미 꽤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의적인 답을 받아내니 마음이 풀어졌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대륙횡단철도 개통식을 보지 못해서 유감이군. 장관이었을 텐데.”
“그렇지요. 참으로 장려한 개통식이었습니다.”
훔볼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3월 7일, 양력으로는 4월 1일에 누벨 오를레앙에서 열린 대륙횡단철도 개통식에 관해 묘사했다. 도시 전체가 흥분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로써 우리 누벨 프랑스는 두 대양에 발을 뻗치게 되었다! 오늘은 우리 누벨 프랑스가 위대한 제국으로서 발돋움하는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일흔이 넘은 황제가 열두 페이지나 되는 연설문을 직접 낭독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서 전령관이 황제의 축사를 대독했다. 전령관이 읽기를 다 마치자, 축하 행사장에 모인 수천 명이나 되는 군중이 일제히 환호했다.
“나폴레옹 황제 만세!”
“누벨 프랑스 만세!”
“두 아메리카의 수호자이시며 두 대양의 지배자이신 황제 만세!”
백발이 된 황제가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었다. 충성스러운 누벨 오를레앙 시민들은 천둥과 같은 함성으로 황제의 손짓에 응했다. 그 함성 속에서 처음으로 대륙을 횡단할 기차가 짐을 가득 싣고 서쪽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그 기차에 제가 타고 있었지요.”
훔볼트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대륙횡단철도라는 역사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 토목사업의 현장을 직접 보았고, 그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대륙을 횡단한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뿌듯한 모양이다.
“부럽소. 사실 짐도 그 기차를 타고 싶었다오.”
물론 우리 쪽도 천사동1)에서 개통식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참석할 고위인사가 고작해야 미주대총관이니 황제가 직접 친림(親臨)한 누벨 프랑스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미주대총관 주제에 황제의 격에 어울릴 만한 개통식을 열다니, 말이 될 일인가. 공식적인 첫 대륙횡단열차를 천사동발 동행편이 아니라 누벨 오를레앙발 서행편으로 한 것도 그것과 비슷한 양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폴레옹이 직접 개통식에 참여했는데, 그 정도쯤이야 아주 기꺼이 양보해야지. 더구나 싣고 오는 화물도 나를 위한 건데.
“아니, 조홀국왕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정윤진이 아주 자랑스럽게 써서 보낸 표문을 펼쳐 들었을 때, 내 머리를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황당함이었다. 아니, 나폴레옹한테 편지 한 장만 보내면 고무나무쯤은 간단히 구할 수 있는데 이걸 구하러 직접 아마존까지 찾아갔다고??!! 아 물론 중종 때 친초목을 구해온 디에고의 전례도 있었으니, 정윤진이 직접 고무나무를 구하려고 한 태도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을 통해서 편안하게 고무를 얻을 생각이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폐하. 조홀국에서 자체적으로 고마목을 구해 심는다 하니 이는 참으로 대견한 일입니다. 폐하께서도 장차 고마의 쓸모가 많으리라고 생각하셔서 신불랑에 고마목과 종자를 요청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하오.”
“조홀국왕은 폐하의 뜻을 알아채고 자기가 먼저 나서서 고마목을 구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칭찬할 일입니다. 치하하는 글을 내리시고 잘 키우도록 격려하심이 옳겠습니다.”
국상 한승룡은 내 속도 모르고 정윤진을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속이 쓰렸다. 물론 내가 생각한 고무나무 재배 적지도 조홀국이었지만, 내 계획으로는 필요한 묘목과 종자를 모조리 내가 조달해서 보내고 정명진에게는 땅이나 내놓게 할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고무농장의 소유권은 내수사 및 본국 상단이 갖는다. 조홀국에는 농장 임대료 정도만 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정윤진이 직접 고무나무를 구해 농장을 세운다니, 이래서야 내가 세운 농장과 정윤진이 세운 농장이 경쟁하는 셈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고 정윤진이 기껏 힘들여 구해온 종자를 내가 몰수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왕지사 벌어진 일이니, 한승룡이 한 말처럼 수고했다고, 너희도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하는 답장 을 써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임금께서는 그 고무나무가 대체 왜 필요하다고 하신 겁니까? 나폴레옹 황제께서도 일단 부탁받았으니 구해준다고 하시기는 하셨지만, 어디다 쓰시려는지는 잘 이해를 못 하신 것 같더군요.”
“귀공도 남아메리카 여행 때 아마존 원주민들이 고무나무에서 얻은 찐득한 진액을 사용해 일용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지 않았소? 우리도 그러고자 하오. 우리 제국의 남방 영역에…그 나무를 재배하기에 아주 좋은 기후인 지역도 있소.”
고무를 튼튼하게 만드는 가황법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도용을 막기 위해 서둘러 유럽 각국과 미국에 특허를 출원하기는 했지만, 화학은 훔볼트가 별로 관심 없는 분야기도 해서 말이다. 훔볼트는 생물학과 지리학, 지질학, 기후학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귀공은 우리 대한의 어떤 부분을 연구하고 싶으시오?”
“동아시아는 연구해 본 적이 없으니, 여기저기 다니면서 골고루 조사하고 싶습니다. 임금 폐하께서 허락하신다면 말이지만요.”
“군사시설이 아닌 이상 공이 들어가지 못할 곳은 없을 거요. 약속하리다.”
훔볼트의 말에 따르면 9년 전의 중앙아시아 여행은 제약이 좀 심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2세가 훔볼트를 프로이센 간첩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서, 여행 허가는 내주면서도 감시원을 붙여서 철저하게 감시했다나.
“프로이센 국왕께서 중앙아시아를 침공할 일도 없을 텐데 무슨 기우였는지 모르겠군.”
“제가 남아메리카 여행 때 스페인인들의 원주민 탄압에 관해 세상에 알린 전적이 있어서, 그때와 같이 러시아인들의 중앙아시아 원주민 탄압에 관해 퍼뜨리면 큰일이라고 걱정 하셨던 듯합니다. 덕분에 여행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제대로 연구도 하지 못했지요.”
훔볼트는 한국 속담으로 치면 ‘달리는 말 위에서 풍경을 구경하는 격이었다면서 웃었다. 음, 그런데 주마간산(走馬看山)은 우리 속담 아닌데. 당나라 때 시인인 맹교(孟郊)가 지은 《등과후(登科後)》라는 시에서 유래한 거지. 하여간 뭐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훔볼트와 학문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즐겁지. 으흠, 훔볼트가 온 김에 독일어도 한번 공부해 볼까?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언어라 좀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만, 익혀 두면 앞으로도 써먹을 데는 많을 거니까.
그나저나 이쪽 세계 러시아도 자기네가 정복한 원주민들을 그다지 온정적으로 대우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훔볼트가 그 진상을 목격하고 세상에 폭로할까 봐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겠지. 궁금한 게 하나 또 있다. 왜 나폴레옹은 하필이면 4월 1일에 개통식을 했을까? 프랑스도 만우절 관습이 없는 게 아닌 데. 혹시 그것까지 고려한 장난인가?
9.
훔볼트가 가져온 고무나무 묘목과 종자는 막대한 양이었다. 내 원래 계획에 따르면 이건 그대로 조홀국으로 보내야 했지만, 조정 일각에서 다른 데로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주 타당한 논리적 근거와 함께였다.
“폐하. 조홀국은 이미 스스로 고마목을 들여와 농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친히 구하신 고마목 종자는 다른 곳으로 보내 농장을 만들게 하소서.”
이 주장을 제기한 이는 좌참정대신 권세직이었다. 내 장인 어른 말이다.
“고마목 농장을 조홀국에만 만들었다가 변고가 생기면 우리 본국에서는 고마를 구할 길이 끊어질 게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 속령이 있는 각지에 고마목 묘목과 종자를 나눠주고 모두 함께 재배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어딘가에서는 계속 고마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본국 자본 소유 농장과 조홀국 향토자본 소유 농장이 경쟁한다고 해 봐야 같은 조홀국에 있는 이상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는 같다. 그게 전쟁이든, 지진·화산·홍수·해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든, 고무나무 농장에 병충해가 닥치든 말이다. 그게 권세직의 논리였다.
“안정적인 고마 공급을 위해서는 공급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니 조홀국만큼 덥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더 운 지역인 술루, 안남, 누손 등지에 고마목 묘목과 종자를 나 눠 보내 가꾸도록 하소서.”
외교나 군사 분야에는 별 재주가 없는 권세직이다. 하지만 경제 관련 업무에서는 역시나 역량을 제대로 발휘했다. 논리에 허점이 전혀 없었다. 딱 하나, 그 지역에서 고무나무가 잘 자라느냐의 여부만 빼고 말이다.
“좌상 대감의 말이 옳습니다.”
“조홀국은 이미 스스로 고마목을 구했으니 굳이 종자를 줄 필요가 없습니다. 본래 계획을 바꾸어 다른 곳에서 고마목을 재배하소서.”
중신들은 죄다 권세직의 의견에 찬동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확실히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다. 원래 세계에서, 권세직이 언급한 나라들이 고무나무 재배를 했던가..? 베트남에는 확실하게 있었다. 프랑스 식민당국이 베트남인들을 데려다 강제노동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보르네오는 고무농장이 꽤 있기는 했는데 남부 지방에만 있었다고 기억 한다. 근데 필리핀에는 있었던가? 위도로 따지면 베트남과 비슷하니 재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필리핀에서 고무나무를 키울 수 있다면 거기보다 더 남쪽 인 보르네오 북동부에서도 키울 수 있겠지.’
곰곰이 생각했다. 확실히, 위험을 분산한다는 점에서 고무 나무 재배지를 여러 곳 만드는 건 좋은 일이기도 했다. 권세직이 지적했듯이, 어느 한 곳이 낭패한 결과를 맞더라도 다른 곳에서 거둔 고무를 공급받을 수 있으니까.
“조정의 중론이 일치하니, 짐으로서도 그에 따르도록 하겠다. 내무부는 누손주에서 고마목 재배에 적합한 곳을 물색하고, 외무부는 안남국과 교섭하여 적당한 땅을 빌리고, 예무부는 술루국에 서한을 보내 고마목을 심을 의사가 있는지 묻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 세 나라 모두 우리 조정에서 나서야 하는 교섭 주체가 다르다는 점도 귀찮은 점이군. 일단 지금은 세 부서가 나눠서 교섭을 맡게 하지만, 일단 농장을 설치하게 되면 후속 관리 업무는 재무부에 전담시킬 테다. 그나저나 우리가 그렇게 고무 재배지를 흩어 놓으면 독점적으로 시장에 고무를 공급해서 혼자서 잘 먹고 잘살겠다고 계획했을 정윤진의 꿈은 어그러지게 되겠구나. 뭐, 원래 세계의 말레이시아를 생각하면 고무와 주석 모두 굳이 독점 안 해도 충분히 벌 테지만.
1) 천사동 : 로스앤젤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