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34
4부 318화(1934화)
18.
덕성도 지부들이 변질하는 문제는 후송 조정으로서도 골치가 아픈 문제다. 구악(舊惡)을 신악(新惡)으로 대체해 봐야 문제가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하지만 아편 소탕에 나선 모든 덕성도 지부가 그렇게 타락한 건 또 아니다. 교단 본원에 충성을 바치면서 건전하게 아편 잠상을 때려잡는 지부들이 아직 더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보니 후송 조정도 덕성도 교단과의 연계 자체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흠차대신이 고생이 많겠구먼.”
돈맛을 본 덕성도 교단이 아편상으로 변질되면 곤란해지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후송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까지 아편을 퍼뜨리는 창구가 될 수도 있으니까. 원래 세계에서도 그런 사례가 많지 않았던가. 덕성도 신도 숫자는 국내에만 백만 명은 된다고 알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그만한 집단이 이 나라 안에서 아편을 퍼뜨린다면, 정말 끔찍한 재앙이 되리라. 물론 덕성도 본원은 그따위로 타락한 자들을 동도(同徒)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 성현들도 말하지 않았나,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그런 놈들과 자꾸 접하다 보면 혹시 모르는 일이다.
“아직은 덕성도를 통해 아편이 퍼질 기미는 없사옵니다. 폐하.”
지의금부사 이언신이 침착하게 보고했다. 이언신은 소왕… 아니 남응중의 역모 사건 당시 금위사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새 승진하여 지의금부사가 되었다. 그때 내 앞에 모인 네 사람 중 지의금부사 자리에 있던 박헌수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좌포도대장이던 홍명규는 법무대신으로 올라갔고, 군기총관이었던 민홍석은 올해부터 육군대신이 되었다.
내가 군대를 정치적으로 휘어잡겠다거나 하는 그런 의도로 군기총관 출신을 육군대신으로 앉힌 건 아니다. 애초에 군내 보직은 전부 순환보직이고, 민홍석도 지휘관, 참모, 육군부 내 문관직 등 다양하게 경력을 쌓은 사람이다. 군기총관 이후에도 다른 보직 몇 군데 더했다.
“현재 국내에 들어오는 아편은 외수사가 조달해 의무부에 납품하는 벵골산 아편뿐입니다. 그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엄밀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편 생산을 허용하면 분명히 그걸로 돈을 벌겠다는 놈들이 생기기 때문에 대한 땅 안에서는 아편 생산을 금지한 지 오래다. 꽃을 감상하겠다고 뜰에 몇 포기 정도 심는 건 넘어가 주지만, 진액을 채취해서 아편을 제조하려다가 걸리면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본래 의금부는 반역과 강상(綱常)에 관한 죄만 맡았다. 하지만 백성을 병들게 해 나라를 뒤흔드는 역모나 마찬가지라고 해서 아편과 같은 마약에 관한 범죄도 의금부 소관이 되었고 무리를 지어 나라를 소란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종교도 의금부 소관이 되었다.
유언(言)을 퍼뜨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언론 관리 역시 의금부에서 맡고 있으니, 현대라면 중요 부문 수사를 전담하는 국가보안수사본부 정도 위치인 셈이다. 이를 위한 비밀경찰인 금위사까지 예하에 거느리고서 말이다. 다만 금위사도 만능은 아니다. 장조 시절에는 세기의 천재 이항복이 금위사장이라 그만큼 금위사가 세상을 휘어잡았던 모양이다. 그보다 못한 사람들이 수장 자리에 오르게 된 뒤의 금위사는 이항복 시절만큼 철저하게 만사를 들여다보지는 못하니까.
남응중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이항복 시절 같았으면야 화약이 폭발할 때까지 내버려뒀을 리가 있는가. 이미 그보다 한참 전에 소왕이 화약 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서 당장 보고가 올라왔겠지. 그리고 곧바로 의금부가 소왕저에 들이닥쳤을 테고. 그러고 보니 중종 때도 비슷했다. 예왕에게 뇌물을 처먹은 금위사 중간 간부놈들이 자기 밑에 있는 끄나풀들을 예왕에게 먹이로 던져주며 덤으로 정보를 흘리다가 난이 터진 뒤에 야 적발되어 싹 털린 전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미 금위사에 는 꽤 구멍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금위사는 지금도 꽤 괜찮은 비밀경찰 노릇은 하고 있다. 이항복 시절보다 능력이 좀 부족하고 가끔은 예왕 때 처럼 과오를 범하기도 하지만.
“아편이 퍼지면 우리 대한도 강남과 같은 난장판이 되리 라. 그러니 아예 싹이 돋지 못할 지경으로 철저히 지키라.”
“명심하겠사옵니다.”
이언신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19.
뻔한 이야기지만, 세상에 마약이 아편만 있는 건 아니다. 코카인도 있고 대마초도 있다. 중종 시절 디에고와 함께 남미에 다녀온 안돈이가 처음의 학계에 보고한 이래 코카잎은 강장제로 상당한 이목을 끌었다. 안돈이는 직접 재배하겠다고 종자까지 구해왔고, 코카인이 국내에 퍼질까 봐 내가 걱정하니까 상희가 달래줬었다.
‘원래 세계에서 19세기 화학 수준이 될 때까지는 그거 분리 못 해. 그러니까 안심해.’
게다가 안돈이가 코카 재배에 실패하기까지 했으니, 그때는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19세기가 됐고, 우리 화학이 세계에서도 상위권 수준인데 다, 코카나무가 이미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기는 무척 간단했다. 선이가 재위한 시절에 양병현이라는 의원이 대남도에서 대량으로 재배하는 친초목이 본래 남미산이라는 걸 떠올렸다. 같은 남미산인 코카나무도 대남도에서 재배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 이자가 종자를 구해다 심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성공했다.
아직 코카인을 유효성분으로 분리해 낸 화학자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 관심을 둘 사람이 조만간 나타날 건 분명하니, 그 문제에 관해 생각할 때마다 내 심장이 졸아드는 느낌이다. 이거, 늦기 전에 대남도에 있는 코카나무밭을 몽땅 사들여서 국유화라도 해야 하나 싶다. 아, 코카나무는 보통 한글로 이름을 적지만… 별명은 곡가 목(木)이다. 잎을 달여 차로 마시는 게 일반적인 복용법 이고 요즘은 가배에도 섞는데, 마시면 노래를 부르고 싶을만큼 기분이 흥겨워진다고 붙은 이름이다. 장래가 참으로 걱 정되는 이름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나마 대마는 사정이 낫다. 대마는 오랜 옛날부터 대한에서 재배해 왔지만, 마약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대마를 수확하는 농부들이 작업 중에 담배가 떨어지면 잎을 조금 따서 담배 대신 피우는 정도다. 원래 세계에서 기억하는 바로는 한반도 토종 대마는 애초에 마약 성분이 적게 함유되어서 그렇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꽃에 마약 성분이 몰리는데 꽃이 피면 줄기가 약해져서 실로 뽑을 섬유의 질이 떨어지니까 꽃대를 일찌감치 잘라버리는 탓도 있을 거고.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마약 성분이 강한 대마를 재배하고, 그 꽃과 잎을 피워서 연기를 흡입하기도 한다. 특히 필리핀 남부에 있는 모로족들이 대마를 피우는 관습이 있는데, 그게 지금 우리한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모비들은 덤불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덮치는 전법을 주로 쓴다. 화약을 잘 구하지 못해서 총은 거의 쓰지 않고 창과 칼을 많이 쓰며 쇄자갑을 즐겨 입는다. 적군이 이런 놈들인지라 전투는 대부분 서로의 매복과 기습으로 전개됐다. 모비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내더라도 대개는 이미 비어있기 일쑤라서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별로 없었다.
“모비다!”
하지만 안심했을 때면 꼭 적이 급습해 왔다. 십여 보밖에 떨어지지 않은 덤불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모비를 본 병사가 황급히 총구를 돌려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하지만 코앞에서 총구가 불을 토했는데도 적은 쓰러지지 않았다.
“으아아악!”
내리친 칼날이 목덜미를 내리찍었다. 피보라가 사방으로 튀는 순간 앞뒤에 서 있던 다른 군사들이 황급히 총을 겨누었다. 십여 발이나 되는 총성이 울리면서 주변이 뿌연 초연으로 뒤덮였다.
“대마를 피운 모비들이 쇄자갑을 입고 약기운에 취해 덤비는데, 분명히 총에 맞았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덤벼들어 창칼을 휘두르는 사례가 빈발한다고 하옵니다.”
지금 누손 남부에서 진행되는 모로족 토벌전 문제다. 적이 하도 거세게 덤벼서 제압하기 어렵다는 보고가 몇 번이나 올라왔다. 혀를 차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겨냥해 쏘지 못해 그런 것이다. 정확히 겨눠서 명중시킨다면 쇄자갑 따위로 어찌 총알을 막겠느냐?”
미국이 미서전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을 뺏은 뒤에 이슬람 반군을 상대하면서 같은 경험을 했던가. 기존 권총탄이 저지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새로 개발한 총탄이 45구경 탄환, 그리고 그걸 쓰는 권총탄이 세계적으로 백 년 넘게 사용한 ‘콜트 45’, M1911이었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소총으로는 확실하게 제압이 되지만, 기존에 쓰던 단발총이든 새로 개발한 육혈포든 권총으로는 달려드는 모비들을 제압하는 게 좀 어려웠다.
그동안은 놈들과의 전투에 익숙한 노련한 고병들이나 술루군이 주로 싸웠으니 그 문제가 잘 부각이 안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로족과의 전투 경험이 없는 속오군이나 본국 출신 병사들이 다수 포함되면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와 같이 긴급한 상황에서 초탄부터 명중시킨다는 건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니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지. 군사들에게 총알이 빗나갔을 때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백병전 훈련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총창술과 격술을 군사들에게 더 가르쳐 익히게 하라.”
격술(擊術)은 장조 시절에 전통 무예인 택견과 일본식 격투술인 조타술(組打術)을 조합해 만들어낸 백병전 무술이다. 갑옷을 입은 상대에게 타격을 주기 힘든 주먹질 같은 건 모조리 빼고 관절기나 발차기 중심으로 구성한 무술인데, 최근에는 좀 소홀했었다.
“예, 폐하.”
생각보다 저항이 강하기는 하지만, 모로족 대토벌은 비교적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약 40개에 달하는 섬을 제압했고 2천 명에 달하는 적을 사살했으며 항복한 주민의 숫자는 3만 명에 달한다. 물론 최종 목표인 갈로도, 민다나오 제압은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지만 괜찮다. 그거야 순차적으로 해나가면 되니까.
“폐하. 술루국 병사들이 더 용감히 싸우도록 더 큰 동기를 부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떤 동기를 말하는가?”
육군대신 민홍석이 제안했다. 중신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우리 군사들은 공적에 따라 농토와 포로를 분배받습니다. 술루국 장병들에게도 공적에 따라서 갈로도에 토지를 나눠주겠다고 선포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저들이 한층 더 힘을 내서 싸울 겁니다. 갈로도는 큰 섬이니 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전에도 술루국 병사들이 획득한 포로나 전리품은 저들의 소유로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땅은 주지 않았다. 갈로도는 본국의 속령인 누손주에 포함된 땅이고, 술루국은 번국이므로 갈로도의 땅을 술루국 군사들에게 내줄 수는 없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괜찮을 것 같군.”
술루국은 요즘 보르네오 쪽으로 확장을 계속하는 중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면 아예 보르네오 쪽으로 천도까지 해서 국가적 중심을 옮겨버릴지도 모른다. 섬으로 이루어진 술루 본국보다 보르네오가 장래성이 큰 건 당연하니까. 술루국이 확장하는 건 술루국으로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술루국이 자력으로 강성해질수록 우리와의 연계가 약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한 감이 든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저들이 우리와의 번속관계를 끊고 독립을 선언 할지도 모르니까.
‘초대 국왕이 중종의 사생아였다’라는 정도 고리로는 지금 같은 관계를 영구히 유지할 수 없다. 친아들이라고 해도 여차하면 칼을 겨누게 만드는 게 권력이다. 물론 술루국이 반기를 들면 제압하면 그만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충돌할 일 자체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최선 아니겠는가. 그것도 서로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방법을 써서 말이다.
“육군의 의견이 옳다. 그렇게 약속하면 저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내가 솔깃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재무대신 최승조가 질색했다.
“폐하. 갈로도는 엄연히 본국에 속할 땅입니다. 그 큰 섬을 술루국에 내주실 참입니까?”
“아니다. 영지를 내리는 게 아니라 전공을 세운 본국 군사들과 마찬가지로 농장만 내리는 것이니 세금도 마찬가지로 납부할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갈로도에 땅을 받으면 그 황은을 누대에 걸쳐 잊지 않을 테니 앞으로도 임금에게 바치는 충성이 굳게 유지될 게 아닌가.”
결국 사람이란 실익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민다나오에 농장을 소유하게 되면 그들은 술루국에서 반한파가 대두 되더라도 절대 동조하지 않을 거다. 술루국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면 민다나오에 있는 자기네 재산이 당장에 몰수될 테니까. 또한 술루국에서 보르네오와 민다나오, 양쪽에 세력을 유 지하게 되면 수도 역시 지금처럼 술루 본국에 계속 두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유사시에 우리가 해군으로 술루국 수도를 제압하게 됐을 때 훨씬 쉬워진다. 왕실이 내륙으로 도망갈 수가 없으니까.
“저들이 술루국 신하로서 우리 영토인 갈로도 내에 농장을 갖는다고 해도 우리에게 딱히 손해가 될 부분은 없다. 이에 반해 이득은 많으니 육군대신의 의견대로 진행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무종 시절, 겨우 몇천 명밖에 안 되는 병력을 동원해서 압록강 건너의 반항적인 여진족을 토벌할 때도 온갖 반대를 뚫어야 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우리 영토 내부에서 날뛰는 ‘야만족’을 토벌하는 일이라지만, 수만 단위 병력이 아무렇지 않게 동원되는 게. 우리 내부라고 말하기에는 좀 곤란한 다른 쪽에서도 그럭 저럭 순조롭게 싸움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최근에 도착한 소식에 따르면, 벵골군은 국경에서 벌어진 초전에서 아라칸군을 대파하고 아라칸 영내로 수십 리나 진격했다. 돌파구를 연 셈이다.
벵골에서는 지금도 중장기병대를 유지하고 있다. 강한 적군과 정면으로 싸우게 되면 땅에 내려서 소총을 들지만 약하거나 도주하는 적을 만나면 그대로 질주해서 짓밟아 버리는 인도 최강의 기병군단이다. 과연 이번에는 그놈들이 아라칸 내륙으로 질주할 수 있으려나. 우리로서야 벵골이 실패해도 딱히 문제가 될 건 없다. 도리어 너무 성공하면 그게 도리어 문제다. 아라칸 왕국 너머, 미얀마 쪽에 영국이 침을 바르기 시작한 상태라 말이다.
벵골과 영국이 미얀마를 두고 싸우게 되면 그것도 곤란하다. 나는 그런 골치 아픈 상황에 끌려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으니까. 그러니 적당히 전과를 거두고 멈춰 주는 편이 좋다. 이렇게 군사 관련 사안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유럽에서 또 생각지 못한 사람이 찾아왔다. 훔볼트와 같은 나라 사람인데 하는 일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세상에, 몰트케가 여기까지 올 줄이야! 이 사람이 이렇게나 한가한 사람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