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36
4부 320화(1936화)
23.
프로이센 사절단이 프로이센이 곧 독일 전체인 것처럼 과장한 부분은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그걸 내가 터트린다면 프로이센과 좋은 관계를 맺기 싫다고 내가 나서서 판을 깨는 셈인데,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미래 역사를 아는 사람으로서도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이제 몇십 년 안에 함부르크고 브레멘이고 전부 프로이센 밑에 들어가서 독일제국으로 합쳐질 텐데, 지금 철학자 아무개가 프로이센인이 아니라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정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누군가가 사실을 폭로했을 때 망신을 당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뷜로 남작이다. 그런데 굳이 나서서 저쪽이 나한테 원한을 품게 할 필요 있나. 내가 망신을 당한다면 미리 진압해야겠지만 말이다.
우리와 프로이센 왕국 사이에 체결된 정식 통상수교조약 은 사절단이 도착하고 엿새 뒤에 조인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양국 간에 특별하게 다뤄야 할 쟁점 사항 같은 게 없었던 덕이 컸다. 조인식은 종로에 있는 외무부 청사에서 열렸고, 나는 참석 하지 않았다. 프로이센 대표로 특명전권공사인 하인리히 폰 뷜로 남작이, 이쪽에서는 외무대신인 김정희가 차례로 서류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
“앞으로 우리 두 나라 사이에 영원한 우정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동감입니다.”
동아시아 최강의 국가인 한국과 유럽 최강의 국가인 프로이센 두 나라가 손을 잡고 함께 세계의 패권을 쥐어 봅시다 운운하는 소리는 역시 나오지 않았다. 남작은 무척이나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하기야 그럴 법도 하다. 프로이센은 아직 유럽 전역을 제패하기는커녕 오스트리아도 꺾지 못했다. 오스트리아와 프 랑스를 다 꺾은 뒤에야 자타가 공인하는 유럽 최강의 육군국이 될 텐데, 어떻게 지금부터 유럽 최강을 자처하겠나. 그거야 나중 문제고, 임시로 남평관에서 지내던 뷜로 남작은 이제 공사관을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가까운 남촌에서 적당한 건물을 물색하겠다고 했다.
“임금께서 계시는 경희궁과 조금 떨어져 있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저희와 주로 교섭할 상대인 외무부와 가까운 편이 더 좋겠지요.”
바로 그 이유로 다른 나라들도 사대문 안에 공사관을 둔다. 옛날부터 우리하고 가까웠던 나라들은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에 관계를 맺은 나라들도 대부분 성내에 공사관이 있다. 딱 하나, 영국 공사관만 용산에 있다. 제물포와 쉽게 연락하겠다는 이유다. 지금은 영국 공사관이 경희궁과 가장 가까우니까 나를 찾 아오기 유리한 점이 있다. 허나 내가 경복궁이나 창덕궁으로 이어하면 그때는 좀 괴로워지겠지.
“슬슬 이어할 때가 되기는 했는데….”
선황 재위 4년차였던 임진년(1832)에 경복궁에서 옮겨온 뒤로 움직이지 않았으니, 벌써 이 경희궁에서 6년을 꽉 채웠다. 그전에 경복궁에서도 6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창덕궁에도 좀 가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벌써 12년이나 빈집으로 놓아줬으니. 물론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빈 궁궐을 관리하기 위 한 최소한의 인력은 남아서 각 전각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주인이 없으니 한적하기는 하리라.
“이어는 폐하의 뜻대로 하시는 일입니다. 원하신다면 명만 내리소서.”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어떻게 들었는지 권세직이 허리를 조아렸다. 다른 중신들도 내 눈치를 살피며 뭔가 기대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 양반들, 황실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네 출퇴근이 편해지니까 기대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제 곧 겨울이다. 한겨울에 이어하는 것도 궁인들에게 못 할 짓이 아닌가. 봄이 오거든 그때나 이어하도록 하겠다.”
“그러하시옵소서.”
6년, 아니 7년 만에 출근길이 좀 편해지겠다고 속으로 환 호하는 대신들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나도 살짝 웃음이 나왔다. 나야 뭐 어느 궁에서 지내든 출퇴근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중신들은 다를 테니 말이다. 신하들한테는 경희궁이 일하기 불편한 건 맞지. 예전 중종 때도 거론한 이야기지만, 육조 – 조정 부서가
12개로 늘어났어도 전체를 부를 때 쓰는 말은 여전히 육조다 – 관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건 불편한 점이다. 물론 용산광장 주변에 12부의 분실을 비롯한 많은 관청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태평로 양편에 늘어선 육조관아를 통째로 옮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원래 역사에서의 육조거리는 광화문에서 종각까지였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습관대로 육조거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 길이가 거의 두 배에 달한다. 광화문에서 대략 시청역쯤 되는 위치까지, 대충 1.2km쯤 되는 거리가 모두 태 평로다. 그리고 그 옆이 전부 관청이다. 박석(薄石)으로 포장한 태평로는 코끼리가 열두 마리나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폭이 넓어 12차선 정도는 된다. 다만 끝까지 가면 길이 약간 서쪽으로 휘는데, 여기서 이어지는 남대문로가 서쪽으로 살짝 빗겨나 있기 때문이다.
남대문로는 태평로보다 좁기는 해도 8차선은 된다. 성벽을 터서 만든 출입로도 남대문로 넓이에 맞췄으므로 서울을 드나드는 교통은 중종 시기보다 훨씬 편하니, 경희궁 출퇴근도 그만큼 수월해졌다. 하지만 뭐, 경복궁보다야 다니기 힘들긴 하지. 그나저나 도성 백성들이 새로 생긴 프로이센 공사관에는 뭐라고 별명을 붙일지 궁금하다. 참고로 각국 공사관에는 영국은 황사관(黃獅官), 미국은 휘성관(輝星官), 프랑스는 백합관(百合官), 누벨 프랑스는 색동관 등의 별명이 있다. 러시아 공사관? 그야 그냥 북평관이지.
유래는 다 비슷하다. 황사관은 영국 왕실의 문장인 노란 사자에서, 휘성관은 미국 국기인 성조기의 별이 휘황하게 빛 난다고 해서, 백합관은 부르봉 왕실의 백합 문장에서, 색동관은 삼색기가 색동옷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과연 프로이센 공사관은 별명이 뭐가 될까.
?
24.
겨울이 되면 우리는 언제나 군대를 동원해서 강무를 한다. 흉년이 든 해라고 해도 강무는 거의 거르지 않는다. 근래에 큰 전쟁을 거의 치르지 않는 우리로서는 강무 때만큼 실병력을 대규모로 움직일 일이 없는 까닭이다. 이렇게 매년 시행하다 보니 주재무관으로 와 있는 외국 장교들이 훈련을 참관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초대 영국 공사 였던 웰즐리 후작도 한 번은 따라왔는데, 눈밭에 빠져 고생 한번 하고 나더니 그 뒤로는 다시는 안 따라오더라.
“기동하는 능력이 상당히 우수해 보입니다.”
“당연하지. 이들은 오군영, 우리 대한군에서 최정예 부대인 수도방위군 소속 병사들이오. 움직임이 기민한 게 당연하오.”
몰트케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우리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비록 실전 경험은 부족하다고 해도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은 받은 군사들이오. 훌륭하지 않소?”
“예, 그렇습니다.”
프로이센군에도 없는 육혈포 같은 장비에 관심을 표할 줄 알았더니 몰트케는 연발총에는 도리어 관심이 없었다. 대신 옆으로 지나가는 기병들이 허리에 달고 있는 활집과 동개 쪽에 호기심을 보였다.
“유럽에서 신사들이 펜싱을 즐기듯이 한국에서도 신사들이 궁도를 즐긴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궁기병이 정규 전투부대로까지 존재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마치 러시아군 같군요. 폐하, 저들이 아직도 전술적으로 의미가 있습니까?”
나폴레옹 전쟁 당시, 러시아군에는 중앙아시아 출신 유목민 기병 다수가 종군했다. 이들 중 다수가 활로 무장한 경기병으로, 증기차를 탄 프랑스군에게 화살 세례를 퍼부어 댔다. 지금도 러시아군에는 궁기병이 꽤 남아있다. 유럽 방면에서야 쓰지 않지만, 아시아 방면 주둔군 중에는 많다. 카자흐나 키르기스처럼 중앙아시아에서 징발한 보조부대들이다.
“그렇소. 적진에 대한 정찰이나 습격 등을 맡는 경기병들이지. 활은 장애물 너머로 곡사할 수 있으며 소리가 작은 데다가 총탄과는 또 다른 공포를 줄 수 있소. 물론 숙련된 궁기병은 획득하기 어렵고, 제대로 대형을 갖춘 소총병들의 대열은 뚫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삼군부에서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군관을 골라 붙여주어도 되었지만, 몰트케가 왔는데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가끔은 조금 과장하기도 하면서.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삼군부에서 프랑스어를 하는 군관은 대개 조부가 전에 고용한 나폴레옹군 출신 교관들에게 교육받은 이들이라, 옛날에 나폴레옹의 적이었던 영국·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등을 싫어한다.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고 그냥 배워서 싫은 거다.
지금도 그 프랑스인 고문관들이 몰트케를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몰트케를 저들의 안내에 맡기겠는가? 그래서 내가 직접 안내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했다. 진행하는 강무에 관한 것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것들을.
“사실 그날 남작이 군사동맹 제안을 꺼낼 줄 알았소. 귀국은 프리드리히 대왕께서 재위한 시절부터 강군으로 명성이 높았으니까.”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 프로이센과 한국이 군사동맹을 체결할 동기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동맹이란 지난번 전쟁 때 저희가 나폴레옹을 상대로 체결한 신성동맹처럼 공동의 적이 있을 때 맺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그런 상대가 없지요.”
유일하게 협공할 수 있는 나라인 러시아는 프로이센에도, 우리에게도 우방국이다. 그러니 러시아를 상대로 하는 동맹 같은 건 의미가 없다.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하는 동맹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전혀 의미가 없다. 상대를 도울 수가 없으니 까.
“저희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와 싸울 때 임금 폐하께서 지원군을 보내주실 수가 없듯이, 폐하께서 일본이나 중국과 싸우실 때는 저희가 원군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아메리카에서 누벨 프랑스나 미국과 싸우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군사동맹 따위는 체결해도 아무 의미가 없고, 제안할 필요도 없다는 게 몰트케의 설명이었다. 토론이 재미있어서 반론을 제기해 보았다.
“아니지. 꼭 인접한 지역에서 싸워야만 동맹인 것은 아니 잖소. 지난 세기에 벌어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에 우리는 프랑스와 한편이 되어서 영국 및 네덜란드, 스페인을 상대로 싸운 전적이 있소. 귀국도 그럴 수 있지 않소?”
우리 대한이 영국이나 프랑스, 러시아와 싸우게 되면 프로이센이 유럽에서 이들을 견제해 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저들이 아시아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을 리 없다. 우리 역시도 프로이센을 위해 저들의 식민지를 공격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몰트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의 지원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면서 말이다.
“말이 좋아 동맹이지, 그런 관계는 성립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협력해서 작전을 세울 수도 없고 병력이나 물자를 지원할 수도 없습니다. 고립되어 따로 싸우다가 종막을 맞을 위험이 너무 큽니다. 제가 사령관이라면 지킬 수 없는 그런 동맹은 처음부터 맺지 않겠습니다.”
오, 놀라운데, 마흔 살도 안 된 젊은 장교치고는 상황을 정말 깊게 보는 듯하다. 정말이지 ‘대(大) 몰트케’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구나 싶다. 그 외에도 온갖 주제에 관한 잡담을 나누며 진영 주변을 돌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 막사로 돌아왔다. 식탁에 앉아서 보니까 오늘의 점심은 맛도 좋고 소화도 잘되는 꿩죽이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활을 들고 나가 직접 잡아 온 꿩들이 솥에서 끓고 있었다.
대궐에서처럼 격식을 차린 식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야전용 탁자와 의자 정도는 있다. 이 산자락까지 나를 따라온 수행원들과 측근 군관들이 자리에 앉자 곧 음식이 나왔다. 취사를 맡은 화병들이 취반차(炊飯車)를 끌고 와서 솥에서 죽을 퍼서 각자의 반합에 담아주었다. 몰트케는 그 광경을 무척 흥미 있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내게 또 질문을 던졌다.
“소관이 보니 며칠째 계속 식사를 준비하는 인원이 바뀌지 않는군요. 이 병사들은 취사를 전담하는 겁니까? 전원이 번갈아 가며 식사를 마련하는 게 아니고요?”
?“그렇소. 식사 준비를 전담하는 분대를 취반(炊班)이라고 하오. 여기에 속한 병사는 화병(火兵)이라고 하지.”
몰트케가 신기해하는 걸 보니 프로이센군에는 아직 취사병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프로이센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나라도 대부분 그렇기는 할 거다. 고위 장교쯤 되면 같이 다니는 하인에게 요리시키겠지만, 일반 병사들은 자기가 직접 요리해 먹겠지.
“자아, 다들 듭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에 창숟가락을 들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임금이라고 해도 군사들과 똑같이 놋쇠 반합에 퍼담은 꿩죽을 창숟가락으로 퍼서 먹는다. 다만 내 숟가락은 은이라는 게 놋이나 나무로 된 숟가락을 쓰는 군사들과 다른 점이다.
“지구 반대편에 와서도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몰트케는 웃으면서 자기 몫의 꿩죽을 떠 입에 넣었다. 듣자니 프로이센군도 병사들에게 식기로 창숟가락만 준다고 한다. 이게 있으면 포크를 안 줘도 되니까. 나이프가 필요하면 총검이나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작은 칼을 쓴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전혀 안 그럴 것 같더니 의외인 부분에서 은근히 짠돌이처럼 구는구먼. 식사용 나이프 정도는 지급해 주지, 좀.
엿새에 걸친 강무는 성공적이었다. 경군과 금군 장졸 5천 명이 나서서 호랑이 한 마리를 비롯한 막대한 수의 짐승을 잡았다. 관례에 따라서 벗겨낸 가죽은 국고에, 고기는 짐승을 잡은 자에게 돌아갔다.
“참으로 흥미진진한 활동이었습니다. 2년 일찍 한국에 와서 봉선 행사까지 보지 못한 게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이렇게 유감을 표한 사람은 훔볼트다. 훔볼트는 뜻이 맞았던 서학당 교수 몇 사람과 함께 강무를 따라와서는 주변 환경과 우리 군사들의 사냥 방법, 붙잡은 짐승의 종류와 수량 등을 조사했다. 탐구에 대한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었다.
“자, 이제 도성으로 돌아가면 또 연구하고 정리할 게 많을 거요.”
그렇게 웃으면서 말을 몰아 도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도성에서 지급으로 달려온 파발이 깜짝 놀랄 소식을 가져왔다. 펼쳐보는 순간 눈앞에 어둠이 쏟아져 내렸다
.
“무엇이라? 할마마마께서 쓰러지셔서 일어나지 못하신다고?”
16년 동안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 준 조모가 위독하다는 급보였다. 나는 곧바로 채찍으로 말을 후려쳤다. 누가 따라오든 말든 기다려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