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38
4부 322화(1938화)
1.
네 번의 생을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친분이 없는 사람들만이 아닌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수십 번은 겪었다. 가족, 친구, 신하들…… 그런 일을 가장 많이 겪었던 건 역시 세 번째 삶이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너무 오래 살아서 더 많이 겪었다. 올렝카, 상희, 은이, 홍이…그리고 또 많은 이들.
그 많은 죽음을 겪었어도 나와 가까운 사람, 유대를 쌓아오던 사람이 떠나가는 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울었다. 피를 토하거나 혼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 끝내는 목이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폐하.”
조부의 무덤 옆에 조모를 매장하고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빈전으로 사용한 사정전 앞에서 내가 발걸음을 떼지 못하자 중전이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마주 잡은 손이 무척 따스했다.
“태황태후께서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물론이오. 덕이 많고 자애로운 분이시니 당연히 극락에 가셨겠지. 생전에 불공도 정말 열심히 드리셨고.”
지난 5개월 동안 원각사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모의 극락왕생을 비는 불사가 계속 열렸다. 생전에 조모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원각사를 찾았었고, 몸이 불편해서 대궐 밖 출입을 삼가게 된 뒤로도 시주는 꾸준히 보냈었다. 그러고 보면 황실 여자 중에는 불교 신자들이 참 많았다. 남자들은 괴력난신을 거부하는 성리학을 익혀야 하고 성리학이 태생적으로 불교와 사이가 안 좋다 보니 불교에 관심을 안 두지만, 여자들은 다르니까. 다만 중전은 아무 종교도 안 믿는다. 그래도 다른 이들이 믿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후손들과 백성들이 힘들지 않게 해주시려고 봄이 올 때까지 부러 떠나지 않고 기다려 주셨으니, 그것만 해도 할마마마의 자애로우심을 알 수 있지 않소. 참으로 그분만큼 선량 하신 분이 없소. 그분의 빈자리가 참으로 크오.”
조모가 눈을 감은 날은 음력으로는 1월 19일이었지만 양력으로는 3월 4일이었다. 사실상 봄이 시작된 뒤라 추위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겨울에 상례를 치르면 시신을 보존하기에는 편리하지만, 대신 제관들이나 인부들이 고생이 심하다. 시작부터 초상을 치르게 되자 올해, 1839년은 뭔가 힘든 일이 있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엄청나게 내리는 비로 일차 현실이 되었다. 일각에서 기청제를 지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만큼. 오늘은 그나마 비가 멎었다.
“할마마마께서 눈을 감으신 게 오죽 슬프면 하늘까지 이리 울었겠소. 쓸쓸하고 허전한 이 마음을 주체하기가 어렵구려.”
조모의 죽음은 내 개인적으로 큰 상실이면서 궁궐의 질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단박에 궁궐 최고의 어른이 겨우 나보다 7세 연상인, 고작 올해 서른한 살밖에 안 된 황태후로 떨어져 버렸으니까. 아직 젊다고 해도 태후는 태후니까 주변의 존중을 받기는 한다. 하지만 내 생모도 아니고 나이도 비슷한 황태후가 권위를 챙기기는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원래 역사에서도 광해군과 인목대비가 그 비슷한 관계였으니. 아니, 광해군이 계모보다 나이가 한참 더 많았던가.
“그래도 힘을 내시옵소서, 폐하. 계속 슬퍼하시면 태황태후께서도 꺼리실 것이옵니다.”
이제 명실상부하게 내명부를 손에 쥔 중전이 부드럽게 위로를 건넸다. 태후는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해서라도 나와 중전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 중전을 건드릴 수 없다. 물론 우리 도 대놓고 나서서 태후를 박대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우위는 명백하다.
“고생이 많으셨사옵니다, 폐하.”
내가 조모 생각에 발을 떼지 못하는 동안 하진교가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그 역시 나와 함께 국상을 치르고 장지까지 다녀왔다.
“아니다. 너야말로 일이 있을 때마다 한성을 왕래하느라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 하는 길 아니겠습니까? 태황태후께서는 제 처조모이시니, 마땅히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야 옳습니다.”
하진교가 한양에 온 시기는 두 달 전, 조모가 눈을 감은 지 석 달 만이었다. 국상 소식이 하와이에 닿자마자 부부 동반으로 달려온 거다. 빈전으로 달려온 현순공주가 얼마나 슬프고 애달프게 흐느끼고 있던지.
다만 아들 셋 – 하와이로 돌아간 이후에 셋째를 낳았다 – 은 모조리 하와국에 두고 왔다. 듣자니 이동연이 혹시라도 도중에 무슨 사고가 있을지 모르니까 후사를 이을 왕자들은 놓고 가시라고 죽어라 버텼다고 한다. 애초에 이동연은 하진교의 본국행 자체를 막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왕비의 친조모가 눈을 감은 상황이다 보니 결국 아주 막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찍 돌아가 봐야 합니다. 저야 뭐 아들놈들이 좀 기다리면 되지 않나 생각하는데, 공주는 생각이 전혀 달라서요.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하더군요.”
“공주가 옳다. 부모와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면 자식 교육에 좋지 않지.”
첫째 하태은(카니파후)이 고작 만 5세, 둘째 하태성(카헤킬리)이 만 3세다. 막내 하태진(칼레히나)은 아직 돌도 안 되었으니 도저히 떼어놓을 수 있는 나이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 하와국 왕실에는 아이들을 챙겨줄 조부모도, 외조부모도 없다.
숙부들? 숙부들이 조카의 보호를 맡으면 잘 되면 주공 단과 주나라 성왕의 관계가 되지만 잘못되면 조카의 보위를 찬탈한 신라 헌덕왕이나 수양대군이 된다. 게다가 하와국 왕실은 우리 번국 중 가장 극적인 사건이 줄줄이 벌어진 곳 아니던가. 안심하면 안 되지. 이동연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챙긴다고 해도 이동연은 왕사일 뿐이다. 고로 하진교가 지난번처럼 몇 년씩 한양에 와서 지내는 건 이제 꿈도 못 꾸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너도 초상을 치르느라 힘들었으니 숨은 좀 돌리고 가거라. 상이 끝나자마자 바로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도 야박한 일이니. 그리고 내 넉넉히 챙겨줄 테니, 갈 때는 선물이나 챙겨 가거라. 나도 명색이 그놈들 외숙이니.”
“감사합니다, 폐하.”
하진교도 배운 게 있으니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군자답게 굴 수 있다. 지난 두 달 동안에 보인 모습은 물론 지금 내 앞에서 보이는 모습에서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네 후손들이 너를 원망하겠구나. 네가 공연히 전례를 만들어 놓는 바람에 다음 하와국왕들도 일이 있을 때 마다 달려와야하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느냐.”
“허허, 괜찮습니다. 다 올 만한 형편이 되니까 오는 거죠. 여유가 안 되면 못 올 뿐이지 누구를 원망하고 말고 하겠습니까?”
하진교가 넉살 좋게 웃었다. 왕사에게 만사를 떠넘기고 온 것치고는 참 속 편한 태도다. 과연 다음 왕이 될 내 조카 태은이 놈도 저럴지는 모르겠지만.
2.
5개월에 걸친 장례식을 끝까지 보고 혼이 나가다시피 한 사람이 하나 있다. 평소였으면 그저 관아에 설치된 빈소에 가서 절 한 번 하고 말았을 사람이다.
“어떤가. 본국 황실의 상례를 본 소감이.”
“마…… 말씀을 드릴 수 없을 지경이옵니다.”
태원백 김재정은 본국 황실에서 준비한 엄청난 규모의 장례 행렬을 보고서는 문자 그대로 넋이 나갔다. 미주에서는 상상도 못 할 규모였던 까닭이다. 하얀 삼베와 비단으로 장식한 열두 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행렬을 선도했다. 금은보석이나 비단을 사용해서 휘황찬란 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그 크기와 숫자만으로도 연도에 늘어선 구경꾼들을 위압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 뒤에는 역시 코끼리가 끄는 상여차(喪輿車)가 뒤를 따랐다. 상여차가 지나가니까 수천 명이나 되는 문무관과 병사들이 상복을 입고서 그 뒤를 따랐다. 이 장엄한 행렬은 장지까지 계속 이어졌다. 무덤 자체는 크게 화려하지는 않다. 봉분도 크지 않고 석물도 겨우 십여 개밖에 안 된다. 명십일릉에 있는 것처럼 커다란 능은전(?恩殿)이 서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과 짐승이 그 무덤을 짓는 데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장엄한 장례 행렬을 보고 난 뒤라면 그것도 대단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게 사람이다.
“태원백은 지난 1년 동안 도성에 있으면서 깨달은 게 많으리라. 이제 벌을 끝내고 미주로 돌려보낼 터이니, 돌아가서 미주 백성들에게 임금을 섬기는 옳은 도리에 관해 잘 알리도 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 해 동안 박규원에게 1:1 과외를 받은 김재정은 거의 본국 사대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사상이 개조됐다. 그리고 국상을 치르는 과정을 직접 보고 황실에 대한 존경심이 폭발했다. 후자는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는 좋게 됐다. 김재정이 미주에 있었으면 이런 결과는 절대 안 나왔으리라. 미주 백성들은 국상 소식을 들어도, 앞서 말했듯이 관아나 향교에 설치한 빈소에 가서 잠깐 절 한 번 올리면 끝이니
까. 그나마도 신경도 안 쓰는 이들도 꽤 있고. 김재정을 내보내고 나서 생각했다.
‘꼭 오금족 추장들을 처음 데려와서 서울 구경을 시켰을 때 같군.’
장조 때였다. 우리와 처음 접촉한 다섯 부족 대표들을 데려와 융숭하게 대접하고 우리가 가진 힘과 부를 보여주었다. 감동한 토인들은 내게 충성을 맹세했고, 그 관계는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
‘아예 국상 때마다 미주 유지 몇 명씩 본국에 보내라고 할까.’
예전에는 소식을 실은 배가 북대동양을 왕복하면 이미 국상이 끝난 뒤였기 때문에 굳이 직접 와서 조문하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관아나 향교에 설치한 빈소에만 조문하면 되었던 거고. 하지만 이제는 국상이 끝나기 전에 배가 왕복할 수 있으니, 미주 유지들과 토인 추장들을 본국으로 불러들여 조문하게 해도 될 듯하다. 김재정이 그랬듯이 본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반기를 들 생각을 하던 놈이 개중에 있더라도 쑥 들어가 겠지.’
본국에 오면 우리 육해군 주력의 위용도 볼 터이니까. 아무리 미주가 풍요로운 땅이라고 해도 본국이 가진 힘에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게 되면, 반기를 들기 전에 한 번 더 다시 생각할 거다. 그렇게 망설이게만 할 수 있어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
3.
내부에서 온 조문객만 있는 게 아니다. 늘 그랬듯이 외국에서도 조문객이 다수 찾아왔고 이들의 방문은 곧 조문외교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왕가의 결혼식과 즉위식도 외교무대가 되곤 하지만, 동방에서는 아직 왕실 간 혼인이 거의 없으므로 외교무대가 되는 행사는 장례식이 기본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사상이 유교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효를 중시하는 유교에서는 조상을 모시는 장례야말로 가장 중요한 행사다. 그래서 적국이 국상을 치른다고 하면 하던 전쟁도 멈출 정도다. 지금은 전쟁도 안 치르고 있으니 찾아오기 얼마나 좋은가.
“저 북적 놈들!”
“못난 남적 놈들 주제에.”
물론 절대로 같은 자리에 앉지 않는 건주 사신들과 후송 사신 같은 사례도 있기는 했다. 한양에 상주하는 공사들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보니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서로 소 닭 보듯 하는데, 본국에서 온 사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저 도적놈들은 수시로 강을 넘어 우리 땅을 침범하니, 어찌 곱게 보겠습니까?”
“2백 년 전부터 틈만 보이면 싸워온 상대 아닙니까. 자기들도 수시로 북침한 주제에 저런 망언을 지껄이는 게 가소롭지 않습니까.”
그나마 자기네가 여기까지 온 사정을 생각해서인지 빈전이나 내 앞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 내게 바라는 게 있고, 그걸 얻자면 내 앞에서 점잖게 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바라는 게 있다는 건 누가 사자로 왔는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누가 왔느냐고? 먼저 후금. 후금에서 보낸 조문 사절은 바로 고이마혼, 굴마훈이었다. 대칸 박락이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는 둘째 아들 말이다.
“폐하의 존안을 뵈오니 영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예는 그만하면 충분하니 일어나라.”
일어나서 예를 표하는 고이마혼의 얼굴을 보니 간교하고 약삭빠른 성품이 엿보인다. 내 전생에 이런 인상을 한 놈이 누가 있었더라. 음, 히데요시가 이런 인상이었던 것 같은데. 북경에 갔을 때 만난 고이마혼의 이복형 륵극덕훈 생각이 난다. 단순하고 우직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형제간에 어떻게 이렇게 인상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어머니가 다르니 그런가 싶다.
“그대에 관해서는 많이 들었다.”
후금 주재 공사를 통한 공식적인 정보 보고만 있는 게 아니다. 후계자 지위를 놓고 그와 대립하는 대칸의 아우 두도 진영에서도, 청나라에 망명해 있는 륵극덕훈 진영에서도 나한테 투서를 보낸다. 당연히 고이마혼을 깎아내리는 내용들이다.
‘이놈이야말로 진짜 흑막이라고들 주장했지…’
그동안 살해당한 아파태와 한대, 국외로 추방된 륵극덕혼과 찰니. 그 모든 사건은 배후에 고이마혼이 있다는 게 양자의 일치된 주장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들이 보여주는 증거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나 진실인지 알게 뭔가.
하여간 박락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이마혼을 진위사로 파견할 걸 보니 어떻게든 나한테 점수를 따서 후계자 지위를 굳히게 하려는 게 눈에 보였다. 어떻게 해야 고이마혼의 위상을 끌어올릴지 그것만 고민하던 참에 터진 국상이 주님의 선물로 보였겠지 아마.
“임금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이마혼이 진지하게 서두를 꺼냈다. 말해보라고 하자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자고로, 동방의 습속은 아들이 아비의 뒤를 잇는 게 아닙니까? 하지만 제 숙부는 엄연한 정도를 무시하고 자기 것이 아닌 자리를 탐하니, 참으로 무도하다고 하겠습니다. 임금께서 부디 그 욕심을 꾸짖어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하소서.”
아주 노골적인 지지 요청이었다. 자기를 편들어서 대칸위에 앉게 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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