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4
1부 194화
– 14 –
“당장 곳간을 열어라!”
마포, 종로 일대는 물론 도성 전역에 위치한 상인들 소유의 미곡 창고가 한꺼번에 열렸다. 한성부와 포도청 관원들이 일시에 들이닥쳐 보관중인 곡식 상태를 조사하고, 썩거나 상하는 등 변질된 곡식은 발견하는 대로 창고 밖으로 끌어냈다.
“아이고, 나리! 쌀을 보관하다 보면 못 먹게 되는 쌀이 생기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창고 하나가 통째로 썩은 쌀로 채워져 있는 게 가능한 일이란 말이냐!”
대부분 창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썩었거나 쥐가 먹은 곡식이 상당수 나오기는 했으나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창고 주인인 객주들이 변명했듯, 곡식을 보관하다가 보면 상한 물량이 어느 정도는 나오게 마련이었다.
문제는 그 비율이 유독 높은 몇몇 창고들이었다. 절반 이상, 심지어는 8할 가까이까지 상한 쌀만 채워둔 창고들이 몇 군데 나왔다. 소유주는 죄다 도성 바깥, 마포 일대에 창고를 가진 대규모 객주들이었다.
“지방에서 쌀이 올라오면, 질이 나쁜 쌀은 싼값에 풀립니다. 그런 것만 따로 모아서….”
썩은 쌀로 찬 창고를 가진 객주들 중 누구도 그 상세한 사연을 토설하려고 하지 않았다. 타 객주들 역시 남의 일은 모르겠다고 할 뿐이었다. 형장(刑杖)을 들이대며 얼렀지만, 얼굴에서 진땀을 흘리면서도 뒤를 봐주는 세력가들을 믿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어명이 있긴 했지만 뒤가 든든한 객주들을 불문곡직하고 패기는 좀 망설여졌다. 포도대장 정은부는 심문이 막히자 객주들은 일단 젖혀 두고, 그 밑에서 일을 맡아서 하던 자들을 죄다 붙잡아다가 형틀에 묶었다. 이들은 너희가 죄를 덮어쓰겠냐는 위협을 받자 술술 불어댔다.
“호조에서도 정기적으로 질 나쁜 쌀을 내놓습니다. 그러면 그 처분하는 쌀을 받아서 창고에 넣습니다. 호조 창고지기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뒷돈을 찔러주면 몽땅 내주었습니다.”
“이런 고얀 놈들!”
흉년이 연속될 때는 썩은 쌀도 함부로 처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 근래 풍년이 이어지면서 상태가 나쁜 쌀은 정기적으로 처분하라는 어명이 내려왔다. 다만 함부로 민간에 팔아서는 안 되며, 사복시와 오위에서 거느린 우마의 사료로만 써야 한다는 제한이 있었다.
“따로 모은 쌀은, 어찌 처분하였느냐?”
“객주에서 일하는 삯꾼들에게 품삯으로 주거나, 양식이 떨어진 도성 내외 백성들에게 대곡(貸穀)을 합니다. 그리고 가을에 이자를 쳐서 받았습니다.”
“이자는 얼마나 받았느냐? 그리고 무엇으로 받았느냐?”
“이자는 시중에서 받는 대로 받았습니다. 상환은 당연히 알곡으로 받았습니다.”
“이 도적놈들아!”
기가 차다 못해 격분한 정은부가 호통을 치자 묶여 있던 장사꾼들은 벌벌 떨며 빌었다.
“살려주십시오, 나리! 저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상인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그들을 모두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장은부가 호통을 쳤다.
“저놈들을 몽땅 하옥하라! 그리고 저놈들에게 향응을 받고 버릴 쌀을 내준 창고지기 놈들도 모조리 잡아오너라!”
“예, 영감!”
포도청이 쌀 문제를 파고드는 사이, 같이 단속에 나선 한성부에서는 품꾼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문제를 파헤치고 있었다. 여러 객주와 시전 상인들에게 고용된 품꾼들을 모조리 데려다 세워 놓고 약속한 날에 품삯을 받았는지, 약속한 만큼 제대로 받았는지를 따져 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약속한 날에 약속한 만큼 받았다는 이들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약속한 날보다 늦게 받은 자들이 많았고, 장사 형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액수를 줄여서 받은 이들도 있었다. 임금이 언급한 사례처럼 썩은 쌀 같은 불량한 보수를 받은 이들도 있었다.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한성판윤 구수영이 명을 내렸다.
“썩은 쌀을 주었다고 하는 자들의 명단과, 형조에서 받은 창고에 썩은 쌀을 쟁여놓고 있던 자들의 명단을 비교해 보라.”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많았다. 후자의 범위에 속한 자들 중에서 전자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없을 정도였다. 명단을 훑어보던 구수영이 탄식을 토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썩은 쌀을 따로 쌓아둔 자들이야 따로 팔아먹기 위해 둔 것이나, 그 못된 심보를 따르지 않는 자들도 자기 창고에서 소량으로 나오는 저질미를 그대로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니. 마땅히 가려 처벌해야 하리라.”
“예, 나리.”
– 15 –
세 사람은 또 임금 앞에 서게 되었다. 데리러 오는 승지를 기다리는 사이 정은부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시선 끝에는 정호찬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정 참의, 그대가 점찍어 둔 곳간들이 역시 문제가 있었더군. 단 하나도 예외가 없이 썩은 쌀이 가득 들어 있었네.”
“소관이 알려드린 미미한 탐보가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옵니다.”
임금 앞에서 불호령을 맞고 난 후, 정호찬은 두 상급자들에게 문서 한 통씩을 주었다. 자기 곳간에 질 나쁜 곡식을 쌓아두고 있는 도성 일대 상인들의 명단과 창고의 위치였다.
저질 곡식 현황이 접수한 문서대로라면 그 창고들만 덮치면 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묘한 오기가 작동했다. 혹시 정호찬이 제공한 정보가 일부 틀릴 수도 있다. 정호찬이 놓친 창고를 하나라도 찾아낸다면 이들로서도 위신이 올라갈 것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도성 일대에 있는 모든 창고를 털었다. 그리고 가능한 세심히 뒤졌지만 정호찬이 알려준 이상으로는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 않아도 되었던 헛수고만 하고 말았다.
허탈함은 쉽게 분노로 바뀌었다. 정은부가 거칠게 내쏘았다.
“장사꾼들이 사람이 먹지도 못할 쌀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대는 그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우리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는가?”
“소관의 책무는 역적을 찾는 일입니다. 그 쌀이 반적들의 군량미로 쓰일 예정이 아니라면, 누가 어떤 쌀을 얼마나 가지고 있든 소관으로서는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정호찬이 천천히 대답했다. 그 얼굴에는 어떤 표정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누가 쌀을 모으는지, 그 현황은 파악합니다. 그 흐름을 쫓다 보면 좋은 쌀을 쌓는지, 썩은 쌀을 모으는지 정도는 절로 알게 됩니다만, 미리 말씀드렸듯이 역모를 위해 모으는 군량미가 아니라면 금위사로서는 손대지 않습니다.”
애초에 금위사를 설치한 명분이 역모 방지다. 그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고, 이번 임금이 즉위한 뒤로 줄이어 벌어진 역모 사건이 금위사 설치에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금위사가 명나라 황제가 직할하는 동창처럼 만민을 염탐하는 기관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자들은 없었다. 비록 금위사장 정호찬이 자신이 손에 쥔 힘으로 사복을 채우거나 다른 이들을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두려움이 사라질 수는 없었다.
칼은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두려움을 준다. 굳이 칼집에서 뽑아 휘두르지 않더라도, 손이 그 손잡이에 가 있으며 언제든 뽑아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정호찬과 금위사는 그런 존재였다.
“아니, 그런 쌀을 모으는 자가 옳은 심보를 품고 있을 리는 없지 않나! 썩은 쌀을 가지고 무슨 제대로 된 일을 한단 말인가? 떡을 치는가, 술을 빚는가?”
구수영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번 사건은 차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인 정호찬을 공박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어떤 이유에서 입을 다물었건, 이번 일은 분명 정호찬의 불찰로 시작되었으니까 말이다.
상한 쌀을 의도적으로 모으는 자들이 있다고 귀띔만 있었다면, 분명 수상해서라도 뒤져내서 벌을 주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상감 귀에 들어가기 전에 처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추후에 도성 일대에서 비슷한 일이 생기면 탐문한 바를 바로 두 분께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정호찬은 별로 맞서지 않고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뜻밖의 반응에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두 사람은 다소 후련한 기분을 느꼈다.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멈추는데 내관이 나타났다.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이쪽으로 드시지요.”
“썩은 쌀을 빈민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고, 자기들이 거느린 품꾼, 이 품꾼들도 가난한 백성들이렸다? 그 품꾼들에게 치르는 품삯도 그 썩은 쌀로 주었단 말이지.”
“예, 전하. 겨는 미리 섞어 두지는 않고, 셈을 치르는 현장에서 적당히 섞었다 하옵니다.”
기가 막히다. 이게 다 현물로 거래하니까 일어나는 문제점이다. 도성에서 상거래를 할 때 저화를 쓰는 경우가 많이 늘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저화 대신 쌀이나 베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당연히 노동에 대한 보수로도 이런 현물화폐가 많이 지급된다.
지폐는 신용가치가 충분하지 않고, 구리나 철은 무기 생산이 더 급하고, 귀금속 태환화폐를 만들자니 준비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이었다. 제기랄, 더 빨리 지폐를 확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헌데, 왜 그 썩은 쌀을 그리 높은 이자로 빌린단 말이냐? 의창이나, 내수사에서 빌릴 수도 있는데 왜 하필 그런 자들에게 쌀을 빌리느냐? 하다못해 사창보다 못하지 않으냐.”
이건 좀 의문이다. 그따위 썩은 쌀이 왜 그리 이율이 높아?
의창은 식량과 종자를 빌려주는데 이자가 없다. 물론 물량은 한정되어 있고, 당연히 경쟁이 세서 신청에서 탈락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내수사는 전에도 언급한 걸로 기억하지만 시중보다 반쯤 싼 이자로 빌려준다. 이쪽 역시 경쟁이 세긴 하지만, 의창보다는 낫다.
굶주린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길이 사창(私倉), 곧 사채다. 하지만 이쪽은 적어도 도성 근교에서는 제대로 된 쌀을 준다. 이율도 높은데 질 나쁜 쌀을 내주면 아무도 빌려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이 적은 지방으로 내려가면 다르겠지만.
“의창도, 내수사도, 사창도 토지가 있는 이들에게만 곡식을 빌려줍니다. 아예 경작할 땅이 없고 호구(戶口)도 없는 가난한 품꾼과 유랑민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상인들이 빌려주는 이런 곡식을 제하면 양식을 빌릴 곳이 없습니다. 이것조차도 앞을 다투어 빌려갔다 합니다.”
젠장, 제도가 가진 맹점이군. 기본적으로 의창은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제도다. 그렇다 보니 아예 부쳐 먹을 땅도 없으면 기본적으로 지원대상이 아니다.
내수사나 사창은 더하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대출’이므로, 상환 가능성이 없는 상대에게는 곡식을 빌려주지 않는다. 여기서 상환 가능성이란 다음해에 거둘 수확을 뜻하고, 최악의 경우 곡식 대신 담보로 잡은 농토를 회수한다. 즉, 정말 밑바닥 백성들에게는 대출이 안 된다.
흉년이 든다거나 했을 때는 노상에서 죽을 배급하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 백성들도 구휼곡을 받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계속 풍년이 드니 흉년처럼 곳간을 풀지 않는 게 당연하게 된 거다. 극빈층은 역으로 생계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모두 과인의 불찰이로다. 비록 지금은 농토 없이 떠도는 자들이라 해도 먹고살 길은 마련해 주어야 할 터, 묘당에서 대책을 논의토록 하겠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하나다. 그들을 고용하는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사람이 귀해져 봐야 사람값이 비싼 줄 알지?
저들에게 교훈을 주는 데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생계가 어려운 이들에게 땅을 주어 농사를 짓게 하는 게 지금 이 시대에는 실업대책으로 최고다. 도성 일대의 빈민들 중 건장한 자들을 모아 부여주에 사민하고 둔전을 주어 일구게 한다. 범법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부여주에 둔전을 설치하면 이점이 많다. 북방개척에 도움이 될뿐더러 도성 일대에 남아도는 빈곤인구도 감소시켜 유효한 생산인력으로 바꿀 수도 있다. 물론 강제이주를 당한 백성들이야 불만을 품을 수 있겠지만, 국가적으로는 확실한 시책 아닌가.
다만 결정을 내린 뒤에 보니 어째 요상하다. 부당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와 그 피해자가 같은 처벌(?)을 받게 된 셈…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이건 좀 논의해 보고 결정하자.
“썩은 곡식을 팔고, 약속한 보수를 주지 않으면서 도의에 어긋나는 짓을 행한 자들은 모두 벌한다. 지금 여기 적어올린 자 열여섯 명은 모두 남대문 앞에서 참하고, 가산을 몰수하라! 단, 처형 집행은 한꺼번에 하지 않고 사흘마다 한 명씩 하는 것으로 한다.”
그날 밤 만난 아낙을 괴롭혔던 홍가 객주는 명단 맨 위에 올라 있었다. 마땅한 응징을 받게 된 셈이다. 불쌍한 생각은 전혀 없다.
“추후로도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용서하지 않겠다. 먹지 못할 물건을 팔거나, 약속한 보수를 주지 않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성부에 고변하여 마땅히 처벌을 받도록 하라!”
“예, 전하.”
– 16 –
편전에 홀로 앉은 채 한숨을 쉬었다. 젠장, 내가 정말 타락했구나.
이번 사건은 애초에 악덕 객주 하나를 응징해야겠다는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다. 정의감이 발동하면서 관계자들을 잡아들였지만, 상황이 전개되면서 목전에 닥친 전쟁으로부터 민심을 돌리기 위한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일이 어째 정치적으로 흘러가면서 나도 당황스러웠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이번 전쟁은 지나간 두 번 싸움만큼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신유년 동정은 약탈을 일삼는 왜구들을 응징하는 의미에서 열광적인 성화가 있었고, 니마차 원정은 야인들의 노략질을 근절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다들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일본 땅 안에서 일본인들끼리 벌이는 싸움에 왜 우리가 군사를 보내야 하느냐는 의문이었다. 중전이 나를 붙들고 한 말들이 그대로 백성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원정군 중 다수는 삼남지방에서 동원한다. 이쪽 지역에서는 대마도를 침범한 왜적들이 곧 조선을 향해 밀려오리라는 흑색선전이 잘 먹혀들었다. 하지만 도성 백성들 대다수에게는 그런 예측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여겨질 뿐이었다.
대부분 도성 출신인 경군 5천이 도성을 떠나 남으로 내려갔다. 도성 백성들은 그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고, 민심은 뒤숭숭해지고 있었다. 출병 명분부터가 공감을 못 사고 있으니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참에 이 썩은 쌀 사건이 터지면서 도성 백성들이 시선을 돌리기에 딱 좋게 되었다.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하는 대상인들을 후려쳐 정의의 사자 노릇을 좀 하고, 원정군이 개선할 때까지 도성 백성들이 화젯거리로 삼을 소재를 제공해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오래오래 화제로 삼게 하려면 악당들을 한 번에 싹 죽여 버려서는 안 된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처형해야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갖는다. 평소라면 시원하게 삭 쓸어버리는 편이 훨씬 더 쾌감을 주겠지만, 지금은 전쟁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돌린다는 목적이 더 크니까 말이다.
사형 인원을 사흘에 한 명이라는 소수로 정한 가장 큰 이유가 그거다. 당연히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은 1차 수사가 끝난 상태다. 시간을 끌면서 조사를 계속하다 보면 처형할 죄수 숫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미처 몰랐던 놈들의 죄상이 밝혀질 수도 있고,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고위급 후원자들, 객주들의 뒷배를 봐주던 놈들이 나올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호조에서 처분하는 쌀을 빼돌리는 일을 주도한 놈들이다. 호조 내에 놈들 뒷배를 봐주는 세력이 있는지. 그저 창고 관리를 맡은 서리놈들이 개인적으로 주도했을 뿐인지만 파악하자. 어느 쪽이든 싹 다 뿌리를 뽑아버려야지.
다만 걱정되는 건 부정행위로 붙들려 처형되는 상인들 수가 너무 많아져서 도성 일대 상업 자체가 마비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설마 스무 명 남짓 죽인다고 그런 사태가 벌어질까 싶기는 하지만, 조선 상업계가 아직 웬만큼 작아야 말이지.
“전하, 부산진에서 급히 올린 장계이옵니다.”
그렇게 처형이 시작된 지 겨우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이미 원정군을 끌고 경상도로 내려간 구주원정군 사령관, 도체찰사 유순정에게 연락이 왔다. 펼쳐 보니 고대하고 고대하던 바로 그 소식이었다.
“음? 대마도로 보낸 정보원들이 이제야 돌아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