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42
4부 326화(1942화)
11.
개통식이 작년 만우절이었으니, 대륙횡단철도가 국제선 영업을 시작한 지도 1년하고 ※이 지났다. 그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교역량이 무려 서른 배나 늘었습니다, 폐하.”
“당연하지. 이미 익히 본 바가 아닌가.”
우리 국내에서도 철도가 깔린 지역은 물류의 혁신을 불러왔다. 전통적으로 수운의 비중이 큰 우리 대한이지만, 철도는 수량과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면에서 수운보다 뛰어난 운송수단이다. 게다가 철로는 강이나 운하보다 훨씬 자유롭게 노선을 정할 수 있다.
“짐도 미주에 갔을 때 경험했지만, 미주대령을 넘는 고갯길은 무척이나 험했다. 그 고개를 노새에 짐을 싣고 삐걱거리는 수레를 몰며 넘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대들도 아주 잘 알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기차를 타는 건 선녀가 밀어주는 것 같은 일이지.”
상품을 나르는 수량도, 속도도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구나 기차역에 세관을 설치하면 물품을 검수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일도 훨씬 편하다. 수십 마리나 되는 노새들이 진 짐을 일일이 수색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샛길로 빠져나가기도 용이하고. 하지만 이제는 정식으로 운송하는 상품 대부분이 철도를 이용해서 움직인다. 수입품이건 수출품이건 법대로 관세를 매기기가 훨씬 쉬워졌다. 기차에 실린 화물은 도중에 빼돌리 기가 어려우니까.
더구나 선로를 따라 놓인 전신선은 문자 그대로 혁명을 가져왔다. 누벨 프랑스에서 보낸 편지가 단 하루 안에 미주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거다. 천지가 뒤집힐 사건 아닌가.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로키산맥을 넘어가는 예전 교역로는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고갯길을 이용해 오가는 사람과 짐의 양은 격감했다. 이제 얼마 뒤면 사냥꾼이나 밀수꾼이 아니면 아무도 안 다니는 버려진 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뭐, 두 번째 대륙횡단철도가 부설되면 다시 번성하겠지만.’
아직은 태평양에서 누벨 프랑스까지만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안에는 미국 쪽 동쪽 구간, 뉴욕까지 가는 노선도 공사가 완료된다고 들었다. 그러면 정말로 명실상부한 대륙횡단철도가 된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같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특급열 차를 운행할 수도 있겠지.’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철도야말로 가장 빠르고 쾌적하게 대륙을 횡단할 수단이다. 지선성부터 뉴욕까지 운행하는 초장거리 특급열차.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기관 차는 물론 중간에 몇 번쯤 교체해야겠지만, 객차에 탄 승객들은 그대로 쭉 가는 거다. 다만 현재 노선은 북아메리카를 빠르게 횡단하는 데는 조금 비효율적인 노선이기는 하다. 빨리 움직이려면 중부를 직선으로 가로질러야 하는데, 누벨 프랑스 수도인 누벨 오를레앙을 통과하느라 남쪽으로 크게 우회했으니 말이다. 참, 새 수도 누벨 아작시오도 지나간다.
그러니까 조속한 시일 내에 대륙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원래 역사에서의 대륙횡단철도와 같은 길을 지나는 제2횡단철도도 공사를 시작해야겠다. 누벨 프랑스와의 교역에서야 남부로 가는 노선이 좋겠지만, 미국과 직접 교역하려면 두 번째 철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지 못한 파생 효과로, 미터법으로 단위를 맞춘 궤간 때문에 미국에서 미터법을 일부 사용하게 됐다. 궤간 말고 레일 규격이라거나 기차 부품 규격까지. 오호라.
‘그나저나 나폴레옹을 잘 설득해야 하는데.’
나폴레옹은 새 철도가 자기 수도를 지나기를 원했다. 만약 철도가 중부로 갔으면 생 루이(세인트루이스)쯤을 지났을 텐데, 생 루이는 바다에서 너무 멀다면서 거부했었다. 첫 노선으로 원하는 바를 이뤘으니, 잘 설득하면 나폴레옹도 두 번째 노선은 중부 지방을 지나가도록 허락하리라. 그 설득은 어려울 것 같지 않다. 하여간 이 철도가 만들어 낸 막대한 경제적 효과는 나만이 아니라 나폴레옹에게도 상당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작년 가을에 남몰래 보낸 제안에 나폴레옹이 긍정적 인 회답을 보내온 거기도 하다.
“정말이오? 나폴레옹 황제께서 내 초청에 응해 태평양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그렇습니다, 임금 폐하.”
이번 조모의 국상에서, 나폴레옹은 별도로 본국에서 조문 사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다른 서양 열강과 마찬가지로 누벨 프랑스 측 조문 대표는 한성 주재 공사 마르슬랭 자작 – 작년 가을에 전임자인 비뇽 남작과 교대했다 – 이었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으니까. 다만 작년 가을에 내가 귀국하는 비뇽 남작 편으로 나폴레옹에게 보냈던 ‘폐하, 태평양 한번 구경하지 않으시렵니까?”라는 편지에 대한 답장이 참 시기적절하게 도착했을 뿐이다. 마르슬랭 자작은 그 편지를 들고 급히 창덕궁으로 달려왔다.
마르슬랭 자작은 나폴레옹이 나와의 재회를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옛날에 만났던 그 작은 소년이 장성하여 황제로서 자신의 제국을 통치하는 모습을 무척 보고 싶어 한다고. 나만 상대를 보고 싶어 한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뿌듯했다. 절로 흥이 올랐다.
“태평양을 보여드리자면…역시 지선성으로 모셔야겠지. 누벨 프랑스에서는 천사동이 조금 더 가깝지만, 미주의 중심지는 역시 지선성이니까.”
의외라면 의외지만 나폴레옹은 태평양을 본 적이 없다. 15년 전 멕시코 원정 때 하려고만 했으면 태평양 연안까지 진격할 수 있었겠지만, 태평양 일대를 차지한 군벌들이 나폴레옹의 방문을 거부했다. 방문을 빌미로 자기네 영토를 빼앗길까 봐 경계한 까닭이다. 한창 날리던 때 같았으면 그냥 군대를 거느리고 밀고 갔으리라. 하지만 그저 태평양 한번 보고 오겠다는 이유로 아까운 병사들을 소모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꼭 필요한 대서양 연안과 멕시코시티까지만 직접 제압 하고 나머지 지역은 방치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안전이 확보되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우호국의 영토를 여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도 태평양 바닷물에 두 발을 담그러 오는 여행을 꺼릴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헌데, 황제께서 우리 땅에 행차하시면 나라가 비지 않소. 그동안 그분께서 하시던 책무는 누가 대행하게 되오?”
“마타모로스 공작께서 잠시 섭정을 맡아 국정을 대행하실 예정입니다.”
역시 그렇게 되나. 외젠 드 보아르네, 마타모로스 공작이 나폴레옹의 후계자인가. 전부터 예상한 대로로군. 그동안 나폴레옹은 외젠을 입적하지도 황태자로 책봉하지도 않았다. 대신 중요한 자리는 여럿 맡겼다. 멕시코 주둔군 사령관 자리에도 잠시 앉았는가 하면 미국에 대사로 가기도 했고, 지방에 총독으로 가서 민사행정을 담당하기도 했다. 제국군 부사령관 – 물론 총사령관은 나폴레옹 본인이다 – 자리에도 한동안 있었다.
외젠은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임무도 출중한 능력과 인품으로 능숙하게 처리했다. 워싱턴 사교계에서는 몸에 밴 예절과 겸손한 태도로 누벨 프랑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을 극도로 끌어올렸고, 총독직을 수행할 때는 뛰어난 행정 능력으 로 민심을 모았다. 다만 후계자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이미 환갑에 가까운 게 문제다. 외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몰라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공산이 큰데, 후계자로 삼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역시 유럽에 있는 조카 루이 샤를, 그 나폴레옹 3세가 후계자가 되는 게 아닐까.
“알겠소. 그러면 황제께서 방문하실 날을 기쁘게 기다리겠소.”
“감사합니다, 폐하. 신하들과 논의하시어 황제께서 방문하시기 좋은 시기를 정해주십시오. 황제께서는 되도록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마르슬랭 자작이 얼버무린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외젠만 늙었나, 나폴레옹도 늙었지. 나폴레옹은 만으로 올해 일흔이다. 아직은 건강하다지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알겠소. 내 신하들과 잘 이야기해 보리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니 됩니다. 폐하! 태손 시절에 이미 한번 다녀오셨으면 되었지, 어찌 또 미주에 가려고 하십니까?”
“옥체를 보존하셔야 하옵니다! 태황태후께서 지금 계셨다면 이런 위험한 시도를 범하시는 폐하를 보시며, 얼마나 애달파 하시겠습니까!”
국상이 다 끝난 뒤, 한동안 여유를 뒀다가 이야기를 꺼냈더니 예상대로 큰 난리가 났다. 역시나 나폴레옹을 만나러 미주에 다녀오겠다는 내 앞을 가로막는 가장 큰 난관은 조정의 중신들이었다. 아주 큰 난관이다.
12.
“폐하께서 미주에 가시면 안 되는 데는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뱃길이 너무 멀어 위험합니다.”
한동안 영중추부사를 지내다가 국상으로 조정에 복귀한 이종선이 강경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국상을 마치면서 빈전으로의 용도를 끝내고 다시 편전으로 돌아온 선정전 안에 이종선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둘째, 아직 국상을 치르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멀리 떠나심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셋째, 누손에서 우리 군사들이 싸우고 있는데 폐하께서는 자리를 비우신다면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 넷째, 본국의 5천만 백성이 폐하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 자리를 비우십니까.”
이것도 사불가론인가. 다 나도 예상한 반론이기는 하다. 그래서 대답도 준비해 두었다.
첫째, 나 이미 한번 다녀왔다. 아무 사고도 없었다. 그리고 요즘 대동양을 횡단하는 배가 난파할 확률은 1% 이하 아니던가. 그만하면 안전하다고 봐야지. 둘째, 셋째, 넷째는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가 없는 명분이 있지 않은가.
“신불랑의 나폴레옹 황제가 우리 땅에 직접 찾아온다고 하지 않소. 불패자, 유주무쌍의 그 군주가 짐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오겠다고 하는데 영접하는 게 그리 큰 잘못이오? 더구나 그 노인은 이제 일흔이 넘었소. 마땅히 맞이해서 극진히 대접함이 예의가 아니오?”
노인을 공경하는 건 우리 대한의 예법으로도 아주 기본적인 예의다. 그것도 나폴레옹이 아닌가. 임금을 배반한 반도라고 그를 혐오하던 조부조차도 나폴레옹이 걸물임은 인정했다. 그런 사람이 나를 만나고 싶어서 ‘우리 땅으로’ 오겠다 는데 맞이하지도 말라고??
“짐이 지금 당장 미주에 가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소. 맞이 할 수 있는 날짜를 우리 쪽에서 일단 정하고, 신불랑 공사관을 통해 이를 조율한 뒤에나 건너갈 날이 정해질 텐데 지금부터 절대 안 된다고 그렇게들 우겨야겠소?”
내가 오라고 한 날짜가 나폴레옹의 마음에 바로 든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지금은 벌써 7월, 양력으로는 8월이다. 서신이 오가며 날짜를 조율하려면 나폴레옹을 미주로 초청할 수 있는 시기는 빨라야 내년 봄이다.
“그때쯤이면 국상을 치른 지 한참 뒤니 그 문제는 걱정할 게 없을 테고.”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제는 시기와 상관 없이 계속될 문제다. 하지만 이쪽이라고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누손에서 고생하는 군사들을 위해서는, 짐이 신불랑 황제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누손에 들러 친히 군사들을 위로하면 되지 않을까 하오. 그러면 군사들도 기뻐할 테니 좋지 않겠소.”
지난번에 미주에 다녀올 때 본래 계획이 누손에 술루까지 방문하고 본국에 오는 거였다. 그런데 조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바람에 여정을 하와이에서 중단하고 본국으로 직행했고, 그 뒤로 다시 가지 못했다. 차라리 지금 가는 편이 그때 간 것보다 나은 점도 있다. 만약 그때 갔으면 그저 관아에서 접대나 받고 관광이나 하다가 돌아왔겠지만, 지금 가면 군사들이 싸우는 상황을 보고 직접 위문할 수 있지 않은가.
“폐하. 그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궐을 비워놓고 그리 멀리까지 순행을 나가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라의 중심이자 사직 자체이신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시다니요. 이는 실로 경천동지할 사안입니다. 폐하께서 안 계신 동안 불상사가 생기면 어떡하시렵니까!”
예무대신 유현동 – 그동안 대신 여럿이 갈렸지만, 이 양반은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은 절대 내가 미주에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본국에 남는 공백이 너무 크다고 말이다.
“원자께서 장성하시어 대리청정을 맡으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제는 태황태후께서 뒤에 계시면서 중심을 잡아 주시지도 못하는데 어찌 폐하께서 몇 달이나 자리를 비우신단 말입니까?”
조모의 자리에는 이제 태후 박씨가 있다. 하지만 박씨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태자비 시절부터 너무 만사를 참고 조용히 지낸 탓에 존재감이 좀 없다. 유현동이 언급하지 않은 건 그런 이유다. 게다가 유력한 황위 계승권자인 두 친왕이 태후의 친아들이다. 이제까지는 태후가 대놓고 욕심을 드러낸 적은 없다지 만, 내가 밖에 나가 있으면 기회라고 생각해서 무슨 일을 꾸 밀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도 없다. 유현동도 의심하는 사람 중 하나일지 모르지.
나? 나는 걱정 안 한다. 태후의 친오라비인 박규원부터가 내 편인데 태후가 무슨 수로 내 자리를 가로챈다는 말인가. 내가 미주에 갔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선비들을 동원하여 ‘임금 자격이 없다’라고 여론전을 시도해 봐야 내 외가인 안동 김문의 세력이 더 강한 걸 뭐. 게다가 내가 미주에 가더라도 중전은 뒤에 남을 게 아닌가. 중전은 원자를 보위에 올리기 위해서라면야 무슨 일이든 지 할 거다. 의붓시어머니와 정면으로 맞붙게 되더라도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거다. 그건 내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과거 선황들께서도 종종 한두 달씩 지방에 순행을 나가시지 않았소. 이번엔 단지 바다를 건널 뿐이오. 그리고 본국 백성들에게도 할 말은 있소.”
나폴레옹의 위명은 우리 백성들도 여러 수단을 통해서 익히 듣고 있다. 무려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묘사한 소설이나 연극이 인기를 끌 정도니까 말이다. 아까도 잠시 언급했잖은가? 불패왕, 유주무쌍으로 불리는 그 엄청난 인지도를 말이다.
“그 대단한 군주가 짐을 만나고 싶어 노구(老軀)를 이끌고 찾아와 만남을 청한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할 여론이 얼마나 될 듯하오? 마땅히 나가 맞이함이 예라고 하지 않겠소? 고작 미주대총관을 시켜 신불랑 황제를 맞게 할 수는 없지 않소?”
“………”
유현동은 대답할 말이 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판내직부사 – 이쪽도 자리를 옮겼다 – 김정희는 조심스럽게 내 손을 들었다.
“신불랑으로 오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우리 땅으로 찾아온다고 하니 확실히 폐하의 위신이 오르는 일입니다. 신은 초청해달라는 저들의 요청을 받아들여도 좋으리 라고 생각하옵니다.”
계산해 보면 한 넉 달 정도 도성을 비우게 되지만, 따지고 보면 재작년 봉선에 북순을 할 때도 그만큼은 도성을 비웠다. 물론 그때는 필요한 연락은 다 받고 있었지만 말이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옵니다, 폐하.”
“그렇사옵니다. 좀 더 심사숙고하소서.”
하지만 신하들은 여전히 망설였다. 좀 더 논의해야 이 문제의 결론이 나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