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47
4부 330화(1946화)
커피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천천히 탁자를 두드렸다. 몇 번이나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역시 결론은 같았다.
“그놈이 누벨 프랑스 황제로 즉위해서 원래 역사에서 저지른 온갖 대외정책에서의 삽질을 저지른다면, 과연 누벨 프랑스가 그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
프랑스는 샤를마뉴 시대부터 천년 동안 유럽 제일의 강대국이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 스페인 같은 주변국들이 끊임없이 프랑스를 견제한 것도 프랑스가 강하니까 그랬던 거다. 지도를 보면 안다. 유럽에서 가장 비옥하고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프랑스 아닌가. 그 넓은 땅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인구와 생산력이 프랑스를 강대국으로 만들었고, 어느 정도 실패를 겪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폴레옹이 어떻게 20년 동안 유럽을 휩쓸었겠는가. 그가 자리를 잡은 나라가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만약 나폴레옹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다스렸다면 절대로 유럽을 제패할 수는 없었으리라. 나폴레옹 이후의 원래 역사도 마찬가지다. 보불전쟁에서 패해서 한동안 체면을 구겼지만 그것뿐이었다. 프랑스는 여전히 유럽 제일의 강대국 중 하나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큰 타격을 입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 초강대국에게 밀려 났지만, 그래도 최상위 강대국이었다.
그런 나라니까 나폴레옹 3세가 황제 자리에 있으면서 저지른 몇 가지 실패에도 불구하고 강대국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누벨 프랑스에 그런 힘이 있을까? 있을 리가 없잖아?
?
앞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스 본국은 유럽 전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에 속한다. 지금 프랑스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아마 러시아 하나뿐일 거다. 나머지 중에서는 오스트리아가 그나마 프랑스와 견주어 볼 만한 수준일 것 같고. 하지만 누벨 프랑스 인구는 우리 미주보다도 적다. 미국 인구와 비교하면 10분의 1이나 될지 모르겠다. 설사 10분의 1보다는 많다고 해도, 그런 나라가 나삼이 벌일지 모르는 단 한 번의 삽질인들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뭉쳐져 있으니까 괜찮다. 하지만 그 체제가 아주 단단히 굳어진 뒤, 한 4대나 5대도 아니고 겨우 2대 통치자로 나삼 같은 놈이 앉아도 과연 괜찮을까. 2대야말로 나라 기반을 단단히 다져야 하는 중요한 순서인데. 이건 나폴레옹 2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뒤로 몇 번이나 고민한 문제였었다. 나폴레옹이 유일하게 자격 있는 혈연인 나삼을 후계자로 택할 가능성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폴레옹이 거부해도 누벨 프랑스 국민들이 나삼을 추대 할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위험부담을 무릅쓸 수는 없었다. 나삼이 원래 역사에서처럼 식민지 정복이나 주변국과의 전쟁과 같은 미친 짓을 시도하다가 실패한다면, 누벨 프랑스의 현재 국력으로는 그 실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도박에 이기기만 한다면야 딴 판돈으로 들인 비용을 다 갚으면 되겠지. 하지만 원조 나폴레옹도 아니고 나삼이 그게 될까. 따서 갚기는커녕 있는 판돈도 다 잃을 것 같구먼. 나삼이 실패하면 그 개인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나라 자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다가 망한다. 그리고 누벨 프랑스가 휘청거리면 그 나라를 장악하기 가장 유리한 조건에 있는 나라는 당연히 미국이다.
“인종, 언어, 문화, 교통….”
어느 하나 우리 미주가 미국보다 앞설 게 없다. 누벨 프랑스 토착 프랑스계 주민과 새로 유럽에서 직접 이주한 인구말고 미국에서 들어온 백인만 해도 수십만 단위 아닌가. 합치면 한국계 인구하고는 규모가 비교도 안 된다. 게다가 누벨 프랑스의 인구가 가장 밀집한 지역은 미국과 인접한 미시시피강 유역이다. 유사시에 미국으로 넘어가기 훨씬 쉽다는 말이다.
즉, 나삼이 누벨 프랑스의 제위에 앉아 뻘짓을 저지른다면 최악의 경우 미국이 서진해서 누벨 프랑스를 합병하고 북아 메리카대륙의 2/3를 차지하는 초강대국이 되어 우리 미주까지 위협할 우려가 있다. 최악의 가능성이라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내가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겠지. 북아메리카의 패권을 두고 미국과 일전을 벌이면 되니까. 본국에서 30만 정예부대를 파견하고, 현지 병력을 길잡 이로 삼아 누벨 프랑스로 진격하면….
“젠장, 그 짓은 죽어도 안 한다.”
경인왜란, 을미동정, 계미남변, 광동진남…그렇게 전쟁 한 번 치를 때마다 얼마나 할 일이 많았던가. 드러나 보이는 건 화려한 전투뿐이지만 그 뒤에는 징병, 편성, 보급, 이동과 같은 산 같은 행정사무가 있다. 그리고 끝이 없다. 중간 책임자들이 수많은 업무를 처리하지만, 최종 결재는 결국 내가 한다. 쌓이는 서류가 끝이 없다. 예전에 어느 만화?에 나온 등장인물이 그랬더라? ‘서류는 관리직의 천적’이라고?
30만 대군을 편성해서 대동양 건너까지 보내고, 물자를 보급하고, 전황 보고를 받으면서 필요한 지시를 내리는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심지어 그것만 할 수도 없고 임금으로서 해야 하는 국정 사무는 사무대로 보면서 전쟁 지도도 해야 한다. 물론 삼군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삼군부 전체보다 내가 전쟁을 지도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은가. 과거의 가장 대규모 원정인 을미동정은 벌써 240년 전 일이고, 대동양과 비교하면 솔직히 대한해협은 개천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순전히 미주에서 군대를 편성할 수도 없다. 미주에서 편성한 군대만으로 미국과 전쟁을 치른다면 설사 승리 하더라도 내 손으로 미주 독립군을 만들어 주는 셈이 될 테 니까. 역사가 증명하지 않나?
미국 독립에는 프렌치-인디언 전쟁에 참여한 미국인들이 크게 한몫했다. 조지 워싱턴도 그 전쟁에 영국군 장교로 참전해서 군사 경력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식민지의 위상이 크게 올라간다. 영국 본국을 위해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좋은 사례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 독립했다.
고로 본국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자면 식민지, 속령에 속하는 군사력은 현지 치안 유지에 필요한 수준으로 국한하고 싸울 일을 없애는 편이 좋다. 내가 미주대전을 치르고 싶지 않은 두 번째 이유다.
“역시, 2세 황제 자리는 안 되겠어.”
?
누벨 프랑스 국민을 위해서도, 우리 대한 백성들을 위해서도 저 말만 앞서는 인간이 그 제관(冠)을 쓰게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냈다. 자, 그러면 과연 저놈을 어떤 용도로 써먹 느냐는 문제가 남는데……
“역시 그 수밖에 없겠군.”
그 수란, 프랑스 본국으로 돌려보내서 대통령이든 황제든 되어 권력을 잡도록 도와주자는 거다. 제2공화정을 수립할지 제2제정을 수립할지는 본인 역량에 따라 진행하도록 놓 아두고. 왜 지금처럼 오를레앙 공작의 문객 – 요즘 프랑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들어보니, 문객이 아주 딱 맞는 표현이다 노릇이나 하라고 놓아두지 않느냐고? 그거야 저놈이 집권하는 게 우리한테 훨씬 이익이 되니까 그렇지.
만약 나삼이 정권을 잡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해서 어떻게 프랑스를 다스릴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완전히 미지의 영역인데. 하지만 원래 역사대로 나삼이 권력을 쥔다면 나는 나삼의 행보를 예측하기 꽤 쉬울 거다. 고로 그에 맞춰서 우리 대한의 외교 정책을 조정할 수 있고, 그로서 우리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길을 고를 수 있다.
“명분도 나쁘지 않고.”
나삼은 나폴레옹이 인정한 그의 조카 아닌가. 오르탕스가 불륜을 통해서 낳은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는 모양이지만, 아칸소 대공 루이가 아들이라고 하고 나폴레옹도 조카와의 혈연을 부정하지 않은 이상 그 문제는 큰 의미가 없다. 나폴레옹이 자기 조카라면 조카지.
하여간 나삼이 나폴레옹의 조카인 이상, 내가 용돈 조로 몇 푼씩 쥐여주는 정도는 그다지 흠이 될 게 없다. 그러면 그 돈으로 어떤 성과를 이뤄낼지는 나삼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부르봉 왕가와의 관계를 당장 깨버릴 게 아닌 이상, 노골적으로 나삼을 부추겨 쿠데타나 혁명을 시도하게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계획을 잡아 나삼이 프랑스 정계에서 거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천천히 도와주는 거다. 그래야……
‘천천히 두고두고 털어먹을 테니까.’
타산적으로 생각해 봐도 같은 결론이다. 나삼이 누벨 프랑스 황제가 되기보다는 프랑스 본국 황제가 되는 편이 훨씬 우리가 털어먹을 게 많다. 물론 나삼이 집권한 뒤에 배은망덕을 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까지 생각해도 나삼을 지원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아는 놈을 상대로 싸우는 게 모르는 놈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마련이니까.
그런 장래의 이익을 생각하면 나삼에게 정치자금 몇 푼 쥐여주고, 한양에 머무르는 동안 체류비를 지원하는 정도는 감수할 만한 지출이다. 선물도 받았으니, 그쯤이야 해 줄만 하지. 혹시 따라가겠다고 하면 내년에 나폴레옹 만나러 갈 때 데려갈까. 아니, 그건 하지 말자. 숙질간에 해후 한번 시켜주는 정도로만 끝난다면 모를까, 괜히 자기를 황태자로 책봉하라고 부탁해달라는 청이라도 받으면 곤란해진다.
“조카를 잘 대해준다고 말이나 전하고 말지. 아차, 대명관에 방을 구해주기로 했지.”
?
지금쯤이면 한창 흥이 나서 짐을 싸고 있겠지. 대명관이 도성에서, 아니 이 대한 전체를 통틀어서 제일가는 호화 호텔이라는 이야기는 공사관에서 들었을 테니까. 본래 대명공의 도성 별저였던 대명관이 객주로 바뀐 건 사실 의외로 최근이다. 올해 초에 조모의 국상이 끝나고부터다. 계기는 대명공부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데 있었다. 10대 대명공 주계신은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들 주성진을 자기 대신 보내고 자기는 대명동에서 꼼짝도 안 했다. 하도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어디 아픈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이었는지 갑자기 지병이 악화되어 국상 중에 죽고 말았다. 향년 45세였다.
11대 대명공이 된 주성진은 무척 실용적인 조치를 명했다. 부친인 주계신이 가서 자지도 않으면서 체면 때문에 유지비만 막대하게 들이던 대명관을 객주로 바꿔버리라고 한 거다. 일종의 유휴건물을 활용한 수익사업이다.
‘부친께서는 대명공부의 위신을 중시하셨습니다만, 소인은 그 큰 건물을 빈집으로 남겨둘 여유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선대의 뜻을 어겼습니다.’
애초에 서나라에서 공사관으로 쓰려고 국력을 과시하며 지은 건물인지라 호텔로 쓰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식당과 연회장으로 쓸 수 있는 커다란 대청이 여섯 개에다 호화로운 침실도 수십 개다. 도성 안팎에서 가장 호화로운 건물로 이미 인지도도 높다. 물론 호텔로 개조하면서는 하인들이나 시종들을 위한 작은 침실도 다수 추가되었다. 이런 작은 침실도 하루에 은 2 냥 – 평범한 상민들 한 달 벌이보다 많은 – 은 줘야 하고, 침실과 객실, 목욕실에다 러시아식 한증탕까지 포함된 가장 비싼 방은 무려 하루 숙박비가 은화 백 냥이다. 은화 백 냥이면 서민 가구 10가구의 1년 소득에 필적하는 액수다.
이토록 호화로운 건물이다 보니, 세간에서는 그사이 명빈관(明賓館)이라는 별명을 만들어 붙였다. 외국인들이 많이 머무는 호화로운 객주를 흔히 빈관(賓館)이라고 부르는 데서 나온 호칭이다.
‘나삼이 프랑스인이니 프랑으로 환산하면 대충 천 프랑인가.’
우리 냥은 여전히 37.5g이다. 혁명 이후에 새로 주조한 프랑 은화는 은이 4.5g이니까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대략 그 정도 수치다. 하루 백 냥이면 크게 부담이 갈 액수는 아니지만, 나삼이 도성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 모르는 일이다. 한 달에 최소 3천 냥은 들어가야 하지만 별 고민은 되지 않았다.
“송 내관, 내직사에 일러 대명관에 보낼 서신을 준비하게 하라.”
“예, 폐하.”
대명관 관리는 여전히 대명관 소속 봉사 오문욱이 맡고 있다. 사실상 지배인인 셈이다. 나삼의 숙박비 정도는 그자한테 편지 한 장만 보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대명공부가 우리 대한에서 받는 특혜를 생각하면 그 정도쯤은 협력해야 지?
22.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로 나온 배지만, 분명히 부풀었다. 중전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국상 때문에 한동안 멈췄던 동침을 재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중전의 복중에 태가 들어선 거다.
“고맙소, 중전. 부디 건강한 아이를 낳아주시오.”
“물론입니다, 폐하. 소중한 용종을 받았으니 어찌 주의하지 않겠습니까.”
중전의 회임은 기쁜 소식이었다. 국상으로 가라앉았던 궁궐 분위기가 단박에 흥겨워졌다. 종친들, 중신들 모두 웃는 얼굴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고맙소. 다 하늘의 뜻이오.”
이번에도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중전이 원자를 안을 때마다 약간 불안한 기색을 띠는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중전도 어머니니까, 하나뿐인 아들한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적어도 넷은 되어야지요. 옛날 인현황후께서 그러셨듯이요.”
중전은 앞으로 아들 셋을 더 낳을 꿈에 부풀어 있었다. 부용정에 앉아 부용지를 바라보며 이렇게 담소를 나누는데 중궁전 상궁 한 사람이 급히 뛰어왔다.
“마마, 마마! 정릉동에서 급한 연락이옵니다.”
정릉동에는 중전의 친정인 권씨 저택이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닌 대답이 돌아왔다.
“옹주께서???옹주께서 방금 숨을 거두셨답니다.”
처조모 신혜옹주는 자리보전하고 누운 지 이미 여러 달이 었다. 조만간 세상을 떠나리라고 예상하던 참이었으니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옹주의 손녀사위인 나와 친손녀인 중전은 이 비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자기를 그리 아끼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중전이 바로 혼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전은 그렇게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만 할머님을 뵈러 가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이 대한의 천하에서 중전이 가고 싶은데도 가지 못할 곳은 없으니, 바로 출궁 준비를 시키도록 합시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흐를지언정 중전은 통곡하지는 않았다. 중전이 겨우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한 건 나와 함께 마차에 올라타 문을 닫은 뒤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중전을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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