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58
4부 342화(1958화)
7.
미주에서는 본국보다 먼저 전신이 보급되었다. 애초에 미주에서 시험 가동을 마친 이후에 본국에서 공사를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러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상대에게 전신으로 편지를 발송할 수 있다는 말을 너무 곧이 듣고 전신주에 편지를 매달아 놓는가 하면 아예 그 위까지 올라가서 전선에 편지를 걸어놓기도 했다. 이거, 원래 역사에서도 이랬던가?
개중에는 소포를 보내겠다며 쌀가마니나 송아지 따위를 매달려고 하다가 전선을 끊어먹는 사고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무슨 소리가 오가는지 들어보겠다고 전신주에 하루 종일 귀를 대고 서 있는 자들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해도 될 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한인과 원주민을 가리지 않았다. 전기가 뭔지, 전신이 뭔지 전혀 모르는 건 양자 모두 마찬가지 인데 행동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나마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가 약해서 감전으로 인한 사고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전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본국에서도 마찬가지 사태가 줄지어 벌어지리라. 의도적으로 전선을 훔쳐 가는 절도범들이야 역적죄로 처벌하기로 했지만, 무지 때문에 벌어지는 실수에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하게 취급하기는 해야 할 거다.
“그전에 조보를 통해 백성들에게 전신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칠 필요도 있을 듯하옵니다.”
“그야 당연한 절차 아니겠는가. 전보를 보내고 싶으면 전신주에 편지를 걸어둘 게 아니라 보통 편지를 보낼 때처럼 우정국에 가서 접수해야 한다고 고지를 제대로 해야지.”
박규수는 이번에도 서장관으로 나를 따라왔다. 이제 서른 줄을 넘어선 덕분인지 지난번의 북경 방문 때보다 훨씬 원숙하면서 넓은 시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박규수에게도 적당한 직책을 맡겨 지방관 경험을 쌓게 해줄 때가 되었다. 그래야 고위직에 올라가니까. 아, 하나 더 있다. 해결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회적 의무.
“그대는 군역을 어떻게 수행하였더라?”
“초시에 붙기 전에, 무위영에서 1년 동안 복무하였습니다.”
아, 그랬었지. 생각해 보니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선황이 새장가를 든 직후에 입영했다고 했던가. ‘태자비의 친동생이었으면’ 빼줬을 텐데 사촌동생이라 그냥 놔뒀다고 하는 이야기를 선황에게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군역은 치렀으면 된 거고, 지금껏 박규수는 경관직으로 내 주변에서만 맴돌았다. 이제 나이도 꽤 들었으니, 제대로 경력을 쌓아야지. 그래야 더 위로 올라가지. 그 경력을 미주에서 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박규수를 수행원으로 데려온 데는 내 보좌만 맡길 게 아니라 적당한 자리를 함께 직접 물색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헌데 대총관, 그동안 동미주에서 긴급한 연락이 혹시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폐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거나 전염병이 발생했다거나 하면 지선성으로 연락이 왔을 거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연락은 없었다고 했다.
“전신으로 바로 연락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안핵사는 치소(治所)인 축손1)에 상주하지 않고 동미주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탓에 전신으로 연락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에 동미주에는 주도 역할을 하는 도시가 없었다. 규모 있는 마을이라고 해 봐야 죄다 멕시코인들이 모인 곳이니 근거지로 삼기 난감했다. 저들이 확실히 복속되었다면 모르지만 이제 막 편입된 판에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도읍을 정하게 된 게 대륙횡단철도 노선이 결정되면서 다. 역이 들어설 자리에다 도시를 세우고 토인들이 부르는 현지 지명에 따라 ‘축손(逐損)’이라는 이름을 붙여 동미주 지역을 다스리는 치소로 삼았다. 여기는 전신도 통한다.
현재까지 미주에 가설된 전신선로는 전부 철로를 따라 깔렸다. 대륙횡단철도는 천사동을 출발해서 산대고(샌디에이고)를 지난 뒤 동 미주 권역을 통과해서 누벨 프랑스로 들어간다. 지선성에서는 천사동에 가는 철도가 따로 있어서 여기서 누벨 프랑스까지 전신이 연결 된다.
“문제는 안핵사가 전신이 닿는 축손을 떠나 있을 때가 많다는 건데….”
이용갑이 안핵사로 부임한 해가 임진년(1832)이었으니 벌써 9년째다. 사무실에서 서류나 넘기는 자리도 아니고 황야를 직접 돌아다녀야 하는 격무를 맡았다. 그런데도 그만두겠다는 말도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벌써 환갑이 훌쩍 넘었는데 말이다. 5년 차가 되었을 때 교체할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누벨 프랑스와 철도와 석유를 두고 조약이 체결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일을 놓을 수 없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유임되었다.
‘어사대에서는 상당히 의구심을 품은 보고서를 올리긴 했지.’
나도 어느 정도 파악하는 부분이지만, 이용갑은 안핵사라는 지위를 활용해서 녹봉 외에도 상당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현지 토호들에게 뇌물을 받거나 사포대를 운용해서 전리품을 얻거나 등등. 알면서도 놔두는 건 전에도 언급했듯이 새 영토를 제압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활용할 수 있는 병력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보상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북방의 벽지에 가는 수령들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용갑은 선을 지킬 줄 안다. 국고에 들어가야 할 공식 세금이나 조정에서 나가는 지원금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가외로 생기는 돈만 적당히 챙겨 넣는다. 그가 조직한 사포대만 해도 누손주 민보군이 모로족 약탈하러 다니는 것과 차이가 없지 않은가.
이용갑의 사포대를 처벌한다면 누손주 민보군도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므로 이용갑의 사포대도 묵인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 이용갑은 현재 미주 출신 중 최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다. 다소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니 아주 확고한 혐의 없이는 처벌할 수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용갑은 내가 모가지를 치러 나설 만큼 내 눈밖에 나는 짓은 안하고 있다.
“천사동까지 가면 사정을 알 수 있겠지. 일단 내려가 보겠다.”
“예, 폐하.”
8.
덕진성과 달리, 지선성에서는 엿새 정도 머물렀다. 바다를 건너며 쌓인 피로를 풀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이쪽에서 보낸 연락에 따라 출발할 나폴레옹을 기다릴 겸 해서다. 앞에서 말했듯이 누벨 프랑스에 전신을 보낼 수 있으니, 만날 날짜를 합의해서 정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먼저 천사동에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야 편하겠지. 하지만 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도 나폴레옹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가 먼저 미주에 도착하면 전문을 보내겠다고 해두었다. 서로 편하도록. 그래서 내가 지선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신으로 알린 뒤에 나폴레옹의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예전에 들렀던 곳들과 안 들렀던 곳들을 방문하며 민심도 챙기고. 그런데 이 민심을 챙기러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엉뚱한 상황이 자꾸 터졌다. 난감하거나 힘든 건 아닌데 당황스러운 사태였다.
“폐하께서 12년 전에 즐겨 드셨던 바로 그 요리입니다!”
“12년 전에 저희 가게에 들르셔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참으로 볼만하다고 칭찬하셨지요!”
“폐하께서 곰 사냥을 나가실 때 소인이 길 안내를 맡았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나와의 인연을 팔아먹는 놈들이 많아. 정작 나는 저렇게 붙들고 늘어진 놈들하고 어울렸던 기억도 없는데. 이놈들, 내가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이니까 우기면 그대로 통할 것 같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민심을 챙기러 나온 처지에 네놈들을 기군망상의 죄로 처 벌하겠다고 호통칠 수도 없는 일이다. 좋은 게 좋다고, 아 그러냐고 허허 웃고 넘어갔더니 지선성에 늘어선 점포 셋 중 하나는 나와의 인연을 간판에 적어 넣을 지경이었다.
“아니, 미주에 다녀가신 선대황들 시절에는 안 하던 짓을 왜 짐에 게는 하는가?”
“두 번이나 오셨잖습니까. 다른 분들은 한 번도 오기 힘드셨던 미주를 폐하께서 처음으로 두 번이나 찾으셨으니 다들 환호하며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려고 들 만하지요.”
동비 김씨는 매일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자기를 만나려는 손님이 마치 범람한 냇물처럼 쉴 새 없이 밀려들고 있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있나. 모이는 사람도 다양했다. 김씨 일가 친척들, 김씨와 어울리던 옛날 친구들, 황실과 인연을 맺어보려는 상인들 등등.
당연히 산더미 같은 선물도 들어왔다. 12년 전에 미주에 왔던 중전이 받은 선물보다 더 많은 선물이 단 며칠 사이에 들어와 방에 쌓였다. 김씨는 한껏 기뻐하면서 그 선물들을 다 받았다.
“고향 사람들의 정성입니다. 그 성의가 있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알겠소.”
창경궁에 있는 황비 홍씨도 물욕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오죽하면 선황이 자기 품계를 올려주려고 하면 그 대신 재물을 더 달라고 했을까. 그걸 또 들어줘서 정말 품계는 안 올려주고 재물만 안겨준 선황도 참 특이한 사람이었지만.
내시들이 대체로 물욕이 강한 편인데, 원인이 남성성을 상실하면 서 생기는 허전함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데 있다고들 하더라. 어쩌면 홍씨와 김씨는 고향과 가족한테서 멀리 떨어진 탓으로 느끼는 허전함을 물욕으로 채우려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적당히 받으시오. 언젠가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할 텐데, 받은 게 너무 많으면 그 부담이 클 거요.”
선물을 빌미로 이권이나 벼슬 같은 청탁이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내가 그런 부탁 들어줄 사람이 아닌 건 자기도 알 텐데.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은이의 가묘도 한 번 더 찾았다. 본국에는 은이의 시신이 묻힌 본 무덤이 있기는 하지만, 진짜 은이의 혼이 잠들어 있는 곳은 여기라고 생각했다. 그 김에 12년 전에는 가보지 않은, 은이의 가묘보다 좀 더 위쪽에 있는 오추마의 무덤도 가봤다. 이쪽은 은이의 묘처럼 누가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저 평범한 산비탈이 되어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너도 은이랑 잘 지내고 있느냐. 가까이 있으니 좀 태워주고 하면서 잘 지내려무나.”
나와 함께 튀르크군에게 돌격했던 말. 내가 타던 여러 말 중에 가장 위험한 순간을 함께 한 말이었다. 그놈이 늙어 죽었을 때는 헤어지는 게 너무나도 아쉬워서 가죽을 벗겨 승마용 장갑과 장화를 만들었었다. 유럽에 머무는 동안 배운 관습이었지. 그 장갑과 장화는 한동안 승마할 때마다 썼다. 그러다가 낡아서 쓰지 않게 되었지만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계속 가지고만 있다가 눈을 감았다. 지금은 어디 갔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누가 쓰레기라고 불태우지 않았을까. 아니면 썩어 없어졌거나.
“폐하, 신불랑 황제로부터 답신이 왔습니다.”
드디어 나폴레옹의 답장이 왔다. 무사히 태평양을 건넌 것을 축하한다며, 바로 서쪽으로 출발하겠다는 답신 내용을 보자 절로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이제 우리도 남쪽으로 출발할 때가 왔구나.
9.
“폐하, 천사동까지 이용하실 기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비록 본국에 있는 어용열차만은 못한 물건이겠사오나….”
“필요 없다. 배로 가겠다.”
남흠덕의 성의를 거절한 건 미주에서 내 전용열차 수준으로 호화로운 열차를 마련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배를 끌고 가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제대로 된 해군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누벨 프랑스 해군은 12년 전 내가 보고 온 것보다 딱히 규모가 커지지 않았다. 인구와 산업이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력에 비해 육군이 워낙 대규모인 탓이다. 철도 건설과 석유 개발에도 비용이 들었고.
하지만 앞으로는 대륙횡단철도와 텍사스의 유전이 내는 수익으로 누벨 프랑스도 지금보다 더 부유해질 거다. 그러면 해군도 증강하고 싶어질 터, 우리한테 군함을 주문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선순위를 육군에 두기는 하지만, 나폴레옹도 해군의 중요성은 잘 아니까. 물론 자기네 맹방인 미국이나 해군 선진국 영국에서 배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한테 꼭 군함을 사지 않더라도 괜찮다. 우리 해군 함대의 위용을 나폴레옹에게 살짝 보여줄 수만 있어도 괜찮은 성과다.
동진을 둘러싼 12척이나 되는 호위함들과 함께 남쪽을 향해서 내려가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번 생에서 이 항로를 따라 함께 배를 타던 이들의 추억이 떠올랐다. 모두 다 저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치솟는 옛 추억을 가라앉히려고 나폴레옹에게서 온 전문을 다시 꺼내 펼쳤다. 나를 다시 만나게 된 데서 오는 반가움이 절절하게 드러났다.
“나이도 들었는데 이제 좀 유해지셨으려나.”
나폴레옹도 칠순을 넘겼다. 이제는 좀 유해질 때도 되기는 했다. 후계자 문제라든가 하는 여러 문제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차마 백부를 만나볼 체면이 없으니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해서 나삼이를 한양에 놓고 오긴 했지만, 이제 정말 물려줄 만한 사람이 나삼이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면 나삼이를 후계자로 삼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가능한 일 아닌가.
나폴레옹의 후계자 하니 괜히 쓸데없는 생각도 하나 들었다. 만약 미주에 온 나폴레옹이 우리 대한 황실에 국혼을 청했다면, 과연 조부나 선황은 받아들였을까? 선황의 이복누이인 옹주 중에는 그럭저럭 시집갈 나이가 된 이들도 있었다. 물론 조부는 나폴레옹을 정말 싫어하긴 했지만, 큰 인물임은 인정했으니까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만약 그렇게 해서 나폴레옹이 늦둥이라도 낳았다면…. 참 볼만 한 일이었겠군. 나한테는 고종사촌이 될 그 애를 위해서 무슨 짓을 해야 했을지. 아예 전면 개입 수준으로 들어가야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정말로 누벨 프랑스를 두고 미국과 전쟁을 벌여야 했을 수도 있겠다. 나폴레옹이 내 고모들과 재혼할 결심을 안 한 덕분에 그런 사태를 피할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겠구나.
지선성에서 천사동까지의 항해는 연안을 따라 고요히 움직이는 만큼 이틀이면 충분했다. 항구에서 배를 내린 뒤 객사에서 하루를 기다리니 특별열차가 기적을 울리면서 기차역으로 들어왔다. 나폴레옹이 타고 온 기차였다.
1) 원래 세계에서는 애리조나의 투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