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59
4부 343화(1959화)
10.
“이 미주 역사상 최고의 귀빈이십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대를 다시 만나 반갑소. 이제는 그대도 폐하 소리를 듣는 신분이 되었구려.”
우리는 기차역 승강장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냥 서서 인사를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를 끌어안고 재회를 축하했다. 12년 전보다 더 친근해진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인가. 그런 한편으로 나폴레옹의 백발이 왜 이리 서글퍼 보이는지. 아, 다음 생에서 자랑하면 누구도 믿지 않겠지. 내가 나폴레옹을 끌어안아 본 사람, 볼을 맞대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폐하! 저도 따라왔습니다.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기쁩니다.”
“오, 카리브 후작 아니오. 그대는 아직도 정정하구려.”
홍경래가 나폴레옹을 따라올 거라는 이야기는 사전에 듣고 있었다. 누벨 프랑스에서 가장 고위직에 오른 한국계 아닌가? 양국 간의 더 깊은 친교를 위해서라도 나폴레옹을 수행해서 찾아올 만하다. 여기서 하나 걸리는 게 홍경래가 미주에서 일종의 ‘수배범’이라는 문제였다. 워낙 소소한 사건이었던 탓으로 홍경래의 소재를 파악한 뒤에도 우리 관헌이 굳이 송환을 요구하지 않을 정도였다지만, 40여 년 전에 미주총관부 명의로 내린 수배령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말 간단하게 풀 수 있었다. 내가 홍경래를 사면하면 끝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홍경래의 수배령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사면령을 내렸다. 외교 방문차 온 남의 해군 부사령관을 체포해서 괜 히 외교 분쟁 만들 일있나.
“덕분에 고향을 찾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폐하.”
“나폴레옹 황제께 감사드리게나. 고향에 가거든 고향 사람들에게 술이나 크게 한턱내고.”
홍경래 고향이 어디더라. 남미주에서도 남쪽 어디라고 기억하는데. 흥양현 대산촌이라고 했었던가? 여기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내륙이다. 기차로 여섯 시간 정도? 추억을 되새기며 말을 타고 산맥을 넘어가면 닷새쯤 걸려서 도착할 거다, 아마.
“오, 자네도 왔군.”
“오랜만입니다, 폐하. 훌륭하게 장성하셨군요.”
우리 일행과 누벨 프랑스 측 사이에서 연락장교 노릇을 맡았던 드 뤼옹 대위도 반가웠다. 아니, 이제는 대령이 되어있었다. 그동안 공을 세워서 진급했다고 한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특별히 골라서 데려온 도화서 화원들이 뒤쪽에서 열심히 스케치에 열중하고 있다.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순간이니 절대 놓치지 말고 그려야 한다고 얼러 놨더니, 아주 죽을 각오로들 석묵필을 놀리고 있다.
12년 전에는 이런 게 없었다. 조부는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인원으로 내 수행원들을 선발했기 때문에 자기가 판단하기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화공 같은 이들은 단 한 명도 넣지 않았다. 나폴레옹 따위와의 만남은 전혀 그림으로 남길 일이 아니었으니까, 조부에게는.
‘그따위 놈의 화상을 뭣 하러 그려 온다는 말이냐?’
그래서 그동안의 미주 순행 관례에 따라서 동반한 화원들은 죄다 미주에서의 공식 행사만 그렸고 누벨 프랑스에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초상화 같은 건 하나도 그려 오지 못했다. 나중에 나폴레옹 쪽에서 그려 보낸 그림만 몇 개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그래서 예무대신을 다그쳐서 도화서 화원 중 가장 솜씨 좋은 사람 6명을 특별히 뽑았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내 만남을 철저히 기록하게 했다. 물론 그 화공들이 제물포에서 여기까지는 놀고먹으면서 온 건 아니다. 울릉도나 현토도에 들렀을 때 내 모습, 주변 풍경, 바다 위에서의 생활 같은 주제로도 여러 점을 그렸다. 나만 그린 게 아니라 동비 김씨나 민지의 초상도 좀 그리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작업은 앞서 말했듯이 나와 나폴레옹 사이에 있는 모든 순간을 그려 남기는 거다. 비록 다음 생에서 나는 지금과 또 다른 얼굴로 살겠지만, 이 그림들을 보면서 나폴레옹과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도록.
이미 유럽에서 사진술이 발명되기는 했다. 루이 다게르라는 프랑스인 화가가 새 은판사진 촬영법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이미 들었지만, 그게 아직 우리 대한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들어왔어도 문제다. 사진 한 장 찍으려면 20분 동안 꼼 짝 말고 있어야 한다는데 어떻게 그걸로 우리가 함께 걷고 움직이는 장면을 사진에 담는단 말인가. 그러니 이번 만남은 그림으로 기록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쉽지만 별수 있겠는가. 기술적인 한계는 감수하고 넘어가야지.
“그대의 프린세스, 아내는 어디 있소? 이제는 그녀보다 키가 크겠지?”
나폴레옹이 웃으며 물었다.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아이들과 본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신 그때는 뵙지 못했던 동비가 함께 왔습니다. 동비는 미주 출신이라 폐하께 훨씬 가깝게 느껴지시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폴레옹 황제 폐하. 일세의 영걸을 만나 뵈어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김씨는 프랑스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따라온 역관이 조심스럽게 통역해 주었다. 내가 하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임금 체통에 남들이 보는 앞에서 통변 노릇이나 할 수는 없다. 이건 내가 직접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문제다. 나폴레옹은 조금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자기와 자유롭게 대화하던 중전 권씨를 만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중전은 내가 보고도 놀랐을 만큼 프랑스어를 잘 했으니까.
인사를 나눈 뒤 나폴레옹을 직접 안내해서 역 앞 광장으로 나왔다. 그러자 광장에 도열한 채 대기하던 1천 명에 달하는 군사들이 일제히 깃발을 들었다. 우렁찬 함성이 함께 했다.
“태황 폐하 만세! 신불랑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이들은 특별히 선발해서 데려온 금군청 소속 금군 5백 명에 미주순검대 중에서도 정예만 골라 뽑아서 편성한 의장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폴레옹을 맞이하는 데 이 정도는 예를 차려 야 하지 않겠는가. 전립에 꽂힌 꿩과 공작의 깃털이 아름답게 바람에 휘날린다. 전복에 장식한 금실과 은실, 놋쇠 단추와 금은 단추가 반들거리며 빛을 낸다. 기병들이 착용한 강철 투구와 흉갑에서도 번쩍이는 광채가 빛을 발했다.
예전에 내가 누벨 프랑스에 갔을 때 나폴레옹은 제국근 위대 7천 명을 투입해서 나한테 사열식을 열어 주었다. 이 곳 미주 사정상 그만한 규모는 어렵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성의를 보일 생각이었다. 규모가 부족한 부분은 관함식으로 채울 생각이다.
“한국군도 꽤 정예로구먼. 음, 예전에 본 하와인들도 있고….. 저건 스페인인 부대인가?”
“속국인 술루 공국에서 보내온 파견대입니다.”
나폴레옹은 나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면서 연신 질문을 던졌다. 애초에 군인 출신이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궁금할 수밖에 없으리라. 유럽 군대와 약간 비슷하면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그 모습이 무척 신기한 듯했다.
“책에서 읽은 맹호왕 전쟁 시절의 군장과는 무척 다르군.”
“프랑스에서도 루이 13세 시절의 군대와 지금의 군대가 똑같지 않듯이, 저희 쪽도 변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만났을 때, 그리고 편지로도 종종 대화를 나눈 주제다. 하지만 직접 보지 못하면 아무래도 실감이 안 나게 마련이다. 나폴레옹은 내가 특별히 가져온 육혈포와 갑식보총에도 흥미를 보였다.
“이건 퍽 괜찮아 보이는군. 몇 자루 줄 수 있겠소?”
“물론이지요. 폐하께 선물할 물건들은 따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금은과 자개를 상감해서 아름답게 장식한 육혈포 세 자루와 갑식보총 세 자루다. 석유로 돈을 벌면 나폴레옹이 최신식 총을 사들이고 싶어지리라고 생각하고 선보이는 견본품이다. 누벨 프랑스군은 아직 상당수가 수석총으로 무장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갑식보총은 아직 우리 군대에도 배치가 안 된 최신 무기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총을 주문한다면 생산량을 늘려 단가를 낮출 수 있으니까 우리한테도 좋은 일 아닌가.
우리밖에 총이 없었던 옛날, 무종총을 처음 만들던 시절과는 다르다. 그때는 유출된 총이 복제되어 우리를 겨누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이미 강선총도 미니에탄도 우리만 가진 보물이 아니다. 후송군조차 뇌관총에 미니에탄을 일부 쓰고 있다. 교역망은 세계를 연결한다. 그러니 내가 팔지 않아도 유럽에서, 미국에서 신형 총기를 누벨 프랑스에 팔 거다.
그러니 기왕이면 내가 먼저 팔아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다음 모델 개발하고. 그게 선순환이지 뭐.
즐겁게 사열을 마치고 숙소가 될 저택으로 향했다. 나는 관아에 딸린 객사에서 머물기로 했지만, 나폴레옹의 숙소로는 천사동에서 가장 큰 부자가 사는 집을 빌렸다. 도착해서 저택 안팎을 둘러본 나폴레옹은 무척 마음에 드는 듯 크게 기뻐했다.
“좋은 숙소구려. 처녀궁보다 세 배는 넓은 것 같은데? 기념사진을 찍어야겠소.”
“뭐…라고 하셨습니까? 기념….. 사진이요?”
“그렇소, 사진. 임금께서는 사진이 뭔지 모르시오, 혹시?”
아니 알기는 알지. 그런데 그게 여기서 왜 나오냐고. 어안이 벙벙한 사이 나폴레옹 일행 중에 있던 사진사가 잽싸게 달려 나와 카메라를 설치했다. 나폴레옹의 시종들은 접이식으로 된 휴대용 의자를 펼쳤다. 아니, 이미 준비가 다 되어있었던 건가?
“앙드레, 두 개 펼쳐야지! 한국 임금께서도 앉으셔야 할 게 아닌가!”
“죄…죄송합니다, 폐하.”
얼떨떨한 상태로 나폴레옹 옆에 놓인 의자에 이끌려 앉았다. 그리고 20분 동안 그 위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영겁의 세월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든 뒤에야 사진사가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끝났습니다, 폐하!”
이렇게 내 첫 사진이 찍혔다. 거참, 확실히 유럽 쪽 소식이나 최신 발명품은 우리보다는 북미 쪽에 먼저 전해지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가까우니 그렇겠지.
11.
“사람의 화상을 뽑아내는 기계라니, 이는 필시 귀신의 조화가 분명합니다. 어찌 붓 한 번 대지 않고 화상이 그려진다는 말입니까?”
“옳습니다. 신불랑 황제가 우리 대한의 정기를 뽑아가고자 폐하의 혼백을 훔치는 기계를 가져온 게 분명합니다.”
나폴레옹이 바로 현상해서 만찬 전에 보내준 사진 탓에 내 수행원들 사이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다들 사진이라는 물건을 생전 처음 보는 판국이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딱히 무리는 아니다. 전신선에 편지를 매단 촌민들과 생각하는 수준이 똑같다고 할 수 있다.
“혼을 뽑는 게 아니다. 유주에서 새로 만든 기계로, 눈에 보이는 화상을 그대로 찍어내는 장치니라. 그대들이 눈으로 세상을 보면 밝고 어두운 부분이 나뉘지 않느냐? 유리판에 미리 발라둔 약물이 그 음영에 따라 색이 변하여 찍힌 모양이 화상으로 비치는 것이다.”
사진의 원리에 관해 최대한 쉽게 설명했다. 무슨 약품을 어떻게 바르는지, 그 이치까지는 내가 정확히 모르기도 해서 간략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행원들의 반발을 어떻게 대충 눌러 앉히는 데는 성공했다. 솔직히, 그냥 임금의 권위를 써서 억지로 조용하게 만든 거나 마찬가지지만. 여기서 누군가는 분명히 나중에 또 트집을 잡겠지.
“본국에 사진이 들어가면 전신 못지않은 난리가 나겠구나.”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으니 이상할 게 없는 이야기기는 하다. 아니, 조선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사실상 전 세계에서 사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다 그랬다. 아무래도 사진도 전신과 같이 조보에 소개문을 실어야겠다. 과학보에는 좀 더 자세한 기사를 쓰고.
저녁 만찬은 천사동 관아에서 열렸다. 손님으로 찾아온 나폴레옹은 사진 때문에 벌어진 소동에 관해 듣더니 껄껄 거리며 웃었다.
“사진을 처음 보는 이들은 그럴 수도 있지. 음, 사실 우리 누벨 프랑스에서도 사진이 많이 퍼진 건 아니라오. 누벨 오를레앙 사람들이나 좀 알고 있을까…. 신기한 물건이라고 가져온 사람이 있기에 사용해 보니 정말 기가 막히게 화상 을 찍어내기에 애용하고 있소.”
나폴레옹은 옛날부터 신기술에 개방적이었다. 철도로 병력을 수송하면서 기동전을 벌였고 증기 트랙터로 중포(重砲)를 견인하면서 적을 압도하는 화력을 발휘했으며 병조림을 제작해 보존식량을 공급했다. 그러니 사진 같은 신기술에도 거부감이 없는 것이리라.
“다만 이 사진을 책이나 신문에 넣는 건 아직 어렵더란 말이지.”
“저도 인쇄술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지라.”
그 사진 덕분에 엉뚱하게 첫 만찬에서의 주된 화제가 사진과 인쇄술이 되었다. 정치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에 서도 논해야 할 주제가 얼마든지 있건만 말이다. 식사 자리에서의 가벼운 화제라고 생각한다면야 나쁠 거 없기도 하고.
우리는 음식을 뜨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탁 위에는 고령인 나폴레옹을 배려하여 대체로 씹기 편한 요리가 많이 놓였다. 갖가지 두부 요리에다 우유를 넣은 계란찜, 그리고 가장 연한 부위만 골라 부드럽게 조리한 고기 요리 등등. 하지만 나폴레옹이 가장 손을 많이 댄 요리는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이것도 뜻밖이었다.
“흠, 이 달콤한 쌀 와인에 이 채소와 해물을 얹은 독일식 팬케이크를 곁들여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군. 이 치즈를 얹어 구운 옥수수도 그렇고.”
나폴레옹도 동동주에 해물파전을 마음에 들어 할 줄이야. 몰트케가 동동주를 맛보고 무척 좋다고 하기에 혹시나 하고 준비하게 했는데, 나폴레옹도 좋아했다. 아니, 정말 의외네. 치즈를 얹어 구운 옥수수….는 요즘 미주에서 인기 좋은 요리다. 소금을 탄 설탕물에 절인 옥수수를 버터와 마요네즈로 볶고 그릇에 담아 치즈를 얹은 뒤 화덕에 굽는다. 그렇다. 이 요리는 콘치즈….다.
풍요로운 식생활을 자랑하는 미주다 보니 이런 요리도 유행한다. 본국에서는 옥수수야 뭐 흔하더라도 버터와 치즈 같은 유제품이 비싼지라 이런 요리가 없다. 이런 게 유행할 줄은 참.
둘째 날은 나폴레옹의 여독을 풀 겸 숙소에서 한담이나 나누면서 보냈다. 이제 70이 넘은 나이다. 아무리 나폴레옹이라고 해도 3천km가 넘는 길을 엿새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기차가 21세기 기차처럼 편안한 것도 아니고. 본격적인 회담은 내일 관함식을 치르고 나서 진행하기로 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그동안 서로 지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급히 사자가 달려왔다. 이용갑이 열차편으로 도착했다는 보고였다.
“어이 이리 늦었다고 하더냐?”
“그것이, 동미주에서 복속을 거부하고 반항하던 마지막 맥비 수괴를 체포하느라 늦었다고 하옵니다.”
“호오, 그래?”
9년에 걸친 제압이 비로소 끝날 판이구나. 서미주 때도 이 정도는 걸렸던 것 같으니. 퍽 다행한 일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저런 도적놈들이 계속 나타나긴 하겠지만, 적어도 지역 기반을 갖춘 대규모 반란군이 나타날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