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64
4부 348화(1964화)
21.
한 달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발랐다. 내가 천사동에 도착한 날이 양력으로 6월 1일이었고 나폴레옹이 도착한 날이 하루 뒤였는데, 벌써 7월이 다 되었다니. 정말 휴가라는 건 언제나 번개처럼 빠르게 끝난다는 걸 실감했다. 나폴레옹이 누벨 프랑스로 떠나는 전날 밤에는 아주 성대한 송별연이 열렸다. 나와 함께 건너온 수행원들은 물론 천사동에 주재하는 관원들과 동네 유지들까지 참석해서 모두 함께 주연을 즐겼다.
“한국 음악과 춤을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아칸소에서 본 것들과는 분위기가 다르군. 참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데.”
“폐하께서 그동안 보신 한식 예술이란 결국 미주에서 변형된 것들이니까요. 춤도, 노래도 한양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는 수준이 다릅니다.”
나폴레옹도 ‘한국식’ 춤과 노래를 접하기는 접했다.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는 한국계 누벨 프랑스 주민들이 ‘황제 폐하를 위해’ 그런 것들을 선보였으니까. 대남도 원주민이나 북구주 일본인들이 태황 앞에서 자기네 민속음악과 춤을 공연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말이다. 아칸소가 언급된 건 누벨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인 대부분이 아칸소에 몰려 있어서다. 그 지역이 벼농사를 짓기에 가장 적절한 기후인 탓이다.
하지만 미주에서 즐기는 춤과 노래는 이미 본국 것과는 확연히 그 형태가 달라진 상태다. 수준이 낮다는 소리가 아니다. 원형과는 다르게 변형이 이루어졌다는 말이지. 정통 무대와 멀어진 데 따라, 주된 고객들의 취향에 따라.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미국도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 부터 이미 영국과 문화적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 미주에서 보이는 문화가 본국과 똑같다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말이다.
그걸 손을 대서 바로잡겠다거나 뭐 어쩌겠다거나 그런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 풍속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고, 나는 그저 한양에 갈 수 없는 나폴레옹에게 정통 한양 예술을 보여주고 싶을 뿐.
“연극은 또 다른 맛이 있으실 겁니다.”
반촌극단 배우들을 데려와서 무대에 올린 특별 공연 작품은 우리 연극계 부동의 히트작인 홍희동전과 고다지전이었다. 나도 좋아하고, 대중들에게도 세기를 넘나들며 여전 히 인기를 끌고 있는 양대 산맥이다. 반촌극장의 장기 중 하나가 셰익스피어지만 이쪽은 생각도 안했다. 나폴레옹이 옛날부터 셰익스피어를 쓰레기 취급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 일부러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여줬다가는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그래 서 순수한우리 대본을 썼다.
나폴레옹은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퍽 흥미를 품고 무대에 집중했다. 그리고 주빈인 나폴레옹은 그저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데, 이곳 천사동의 토관들과 유지들 이 공연을 보고 먼저 뒤로 자빠졌다.
“세상에, 내가 반촌극단 공연을 보는 날이 다 오다니…..!”
“폐하께서 베푸신 이 은전을 어찌 갚으면 좋을꺼!”
예상한 결과기는 했다. 나폴레옹 앞에서 공연하기 전에 예행연습도 할 겸, 임금이 직접 찾아온 덕도 좀 보게 해줄 겸해서 지선성에서 먼저 두어 번 공연하고 오게 했더니 그 쪽에서 이미 똑같은 꼴이 벌어졌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세상에!’
‘주상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몰려들어 극장 앞에서 치열하게 악다구니가 벌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반촌극단은 미주는커녕 대남도나 누손에서도 한 번도 무대를 펼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지로 이어진 북한 지방이나 북경, 상도 등에만 몇 차례 나간 적이 있을 뿐이다. 물론 미주에도 극단은 있다. 하지만 그 극단들이 보이는 수준은 반촌극단에 비하면 낮을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외모도, 연기력도, 극 중에서 사용하는 소품까지도 비교하기 어려운 차이가 난다.
게다가 반촌극단은 평범한 극단이 아니다. 2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황실에서 직접 후원하는 극단 아닌가. 그 이름값에서도 소규모 촌 극단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공연 소식을 듣고 몰려든 관람객들로 극장 이 터져나갈 수밖에.
‘이게 다 태원백 어르신이 폐하께 말씀드린 덕이라며?“
여기에 김재정 덕분에 반촌극단이 찾아온 거라는 엉뚱한 소문이 퍼져서 김재정의 명성이 더 올랐다. 본인은 급히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지선성 백성 대부분 이 그 소문을 믿고 김재정을 칭송하며 난리를 쳤으니까. 그나마 여기 천사동에서는 관병을 풀어 극장 안팎의 질서를 확실하게 잡았기에 며칠 전 지선성에서 있었던 것 같은 소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극장에 입장할 수 있었던 현지 유력자들의 반응은 예상한 대로였다.
“허허, 이 연극이 인기가 매우좋은 모양이군.”
“작품 자체는 이미 유명합니다. 그보다는 황실 전속 극단의 방문이 처음이라서 더 그러는 겁니다.”
원래는 나폴레옹을 위한 공연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미주 백성들이 더 환호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쪽에서 더 좋은 결과가 나와버렸으니, 결과만 놓고 보자면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인가. 미주는 문화적으로도 변방에 속한다. 이번에 반촌극단을 보면서 난리를 치는 미주인들을 보니, 변방인 미주 백성들 이 중앙의 문화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생각 없이 무시했던 과거의 내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반촌극단 주요 출연진이 7년에 한 번 정도는 북대동양을 한 바퀴 돌면서 미주, 하와국, 누손, 대남도 등을 모두 찾아 순회공연이라도 열게 해야겠다. 그러면 속령 에서 본국 문화를 숭앙하는 기세도 지금보다 왕성해질 테고, 자연스럽게 유대감도 더 강해질 테니.
22.
나폴레옹과의 마지막 밤은 부어라 마셔라 하는 방탕한 술잔치 대신에 이처럼 분위기 있고 품위 있는 예술의 밤으로 마무리됐다. 덕분에 이별을 맞이하기도 조금 덜 힘겨웠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 따위 없이 점잖고 품위 있게 서로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맨정신이라고 해서 슬픈 이별이 슬프지 않게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별을 맞아 생각나는 표현을 아쉬운 마음을 품고 꺼내놓았다.
“만남과 헤어짐은 주화의 양면 같은 것이라, 언제나 공존하고 따로 둘 수 없음이 아쉽게 여겨집니다.”
“하늘의 섭리가 그런 것을 어찌하겠소. 지난번에는 내가 환송하고 그대가 떠나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 이번에는 반대로 놓여 그대가 남고 내가 떠나게 된 것도 같은 이치요.”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건넨 인사를, 나폴레옹도 웃으며 받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그간 수많은 사람을 옆에서 떠나보냈고, 그만큼 떠날 이에게 미련을 품는 게 바보짓임을 알았다.
“섭리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헤어지는 시간이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폐하가 또 뵙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누벨 아작시오에 오라니까? 대서양 바닷물 색깔을 모른다지 않았소. 바닷물 색깔 보러 와야지.”
“12년 전에 제가 직접 항해하기까지 한 멕시코만의 바닷물은 아틀라스의 바다(대서양)가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바다였기라도 합니까. 저희 대한이 태평양의 제국이라 대서양과는 큰 인연이 없다는 뜻으로 비유해서 드린 말씀을 그리 이해하시다니.”
“아 난 몰라. 난 그대가 ‘저는 대서양의 바닷물 빛깔이 궁금합니다’라고 스스로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이오.”
끝까지 토를 달던 나폴레옹이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웃으면서 이 우습지도 않은 가벼운 논쟁은 끝을 맺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또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예상은 처음부터 이미 하고 있었으니까.
“건강하시오. 그리고 훌륭한 군주가 되어 한국을 반석 위에 올리시오.”
“감사합니다, 폐하. 폐하께서도 하늘의 뜻을 받은 훌륭한 후임자를 얻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리 대한과 누벨 프랑스 사이의 우정은 그를 통해서 영구히 계승될 겁니다. 그럼으로써 미국과도 균형을 이룰 수 있겠지요.”
“물론이오. 세 마리 맹금이 사이좋게 나란히 하늘을 나는 한, 이 북아메리카에서는 영구한 평화만이 있을 거요.”
여기서 말한 세 마리 맹금이란 미국의 국조 흰머리수리와 누벨 프랑스의 국조 검독수리, 그리고 우리 미주의 상징 인 캘리포니아 콘도르를 말한다. 따지고 보면 본래 우리 대한의 국조는 봉황이다. 하지만 봉황은 애초에 신화 속에 나오는 날짐승이다 보니 나폴레옹 같은 서양인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았고, 우리 미주에서 가장 큰 맹금인 콘도르를 자연스럽게 자기들의 국조와 같은 자리에 놓게 되었다.
본국에서도 이에 관해 알고 있기는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봉황은 애초에 모든 새의 조상으로서 다른 새들과 같은 격으로 놓일 수 없다. 그러니 미주의 양인들이 콘도르 – 우리말로는 ‘미주독수리’라고 부른다 – 를 미주의 상징으로 간주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놈들 전부 하찮은 미물로서 영물인 봉황의 수하들일 뿐이므로.
“자, 그러면 이번에는 정말로 가리다. 건강히 계시오, 임금.”
“안녕히 가십시오, 폐하.”
우리는 다시 한번 굳게 악수했다. 그리고 서로의 팔을 당겨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제는 나보다 키가 작아진 나폴레옹의 몸이 주는 느낌을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이번 만남이 야말로 정말로 끝일 테니까.
우리 의장대가 늘어서서 환송하는 가운데 나폴레옹이 탄 기차가 떠났다. 기적을 울리며, 연기를 뿜으며 동쪽으로 떠나는 기차를 보고 있으려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참을 승강장에 서 있었다. 맨 마지막 객차가 모퉁이를 지 나 시야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23.
“자아, 우리도 귀경할 준비를 하자꾸나.”
“예, 폐하.”
‘귀국’이 아니다. ‘귀경’이다. 여기 미주도 역시 대한의 강역이므로 나는 지금도 내 나라에 있는 거다. 그런데 어찌 귀국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바로 출발할 수는 없다. 며칠이라도 지선성에 머물 면서 민심을 좀 추슬러야지. 기껏 건너온 임금이 신불랑 황제만 만나고 훌쩍 가버린다고 하면 어느 백성이 좋다 하겠는가.
그래서 귀경 준비를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선성 안팎을 둘러보았다. 사실 쉽게 방문할 수 없는 환경임을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니만큼, 나왔을 때 볼 수 있는 만큼은 보고 갈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말이다.
“12년 전보다 산업이 발달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구나. 대공조선도 선대가 늘었고.”
성친왕 시절 내가 처음 세웠을 때 대공조선의 선대는 6개였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숫자가 무려 12개로 늘었다. 12년 전만 해도 10개 였는데. 그만큼 선박 수요가 늘었다는 의미다.
“관리들이 그동안 징수하던 관례를 따르지 않고 더 많이 내라고 합니다.”
“만사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다. 일단 총관부에 호소하여 잘못을 바로잡도록 하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본국 조정에 호소하라.”
주변에서 모여든 백성들의 민원도 들었다. 내가 천사동에 근 한 달을 머무르지 않았는가. 그만하면 민원서류를 움켜쥔 백성들이 지선성으로 몰려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 간이었다. 12년 전에는 이런 게 없었다. 나는 백성들이 바친 민원을 해결해 줄 권한이 없는 태손에 불과했고, 미주 관민도 내게 해결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어린 태손께서 미주에 조금이라도 더 친근감을 느끼시기를’ 바랐을 분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지위와 권력을 모두 갖춘 현직 태황이다. 그러니 사방에서 부디 해결해 달라면서 민원이 쏟아질 수밖에. 천사동에 가기 전에는 한가하게 고을 주변을 돌아볼 여유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본 용무를 끝내고 돌아오니 뒤늦게 밀려든 민원 때문에 생각도 안 했던 일복이 터졌다.
「저희 고을에도 어서 기차가 들어오게 해주십시오. 옆 마을에 장 보러 가기가 불편하니 기차를 타고 좀 편하게 다니고 싶습니다.」
“그런 산골에 어떻게 기차를 다니게 하라는 거냐. 장 보러 갈 때 정 뭔가가 타고 싶으면 노새나 타고 가라고 해라.”
「속오군 훈련에 안 나가는 대신 내는 대속금이 너무 과합니다. 좀 낮춰 주십시오.」
“아니, 미주에서 속오군 훈련이 폐지된 게 언제인데 그 걸 핑계로 대속금을 받아먹는 놈이 있다는 말이냐? 미주총 관부는 당장 이놈을 추포할지어다.”
「순회판관이 찾아올 때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송사 하나 해결하는데 2년 넘게 걸리기도 하니 답답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판관들 숫자 좀 늘려주십시오.」
“미주대총관은 양성 중인 미주 향판의 숫자를 좀 더 늘리는 쪽으로 고려해 보도록 하라. 그리고 어리석은 백성이 법적 절차를 몰라 송사가 지연되는 일을 피할 수 있도록, 대송인의 활동도 권장하라.”
이런 식으로 또 한참을 보냈다. 나 혼자 나폴레옹이랑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자기를 혼자 방치했다고 토라진 김씨를 챙겨줄 시간도 모자랐다. 그러는 와중에 처리한 큰일이 한 가지 또 있었다.
“천사동의 고을 이름을 바꿔야겠다.”
자잘한 일들을 대충 마무리하고 나니 전부터 벼르던 일 하나를 마무리할 때 였다. 내 명을 들은 미주 관리들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천사동은 본래 서반아인들이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번역만 해서 쓴 것이다. 진즉에 새로 적당한 이름을 지었어야 했는데 적절한 제안이 없어 미루고 미뤘다. 하지만 이번에 신불랑 황제가 찾아와 짐과 우애를 나누었으니, 이를 기념 하여 제회부(帝會府)로 개칭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고을 이름을 바꾼다고 하면 분명 귀찮은 일들이 많으리라.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태조 이성계 이래 450여 년, 이 나라가 세워진 뒤에 이름을 바꾼 고을 숫자만 따져도 어디 한두 개던가.
어쨌든, 이로써 이번 미주 방문에서 하고자 했던 바는 다 이뤘다. 미주 지역 지리정보를 갱신하여 새 지도를 편찬하고자 미주 일대를 돌아다니던 내무부 지리국 주부 김정호도 맡은 일을 마치고 복귀했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야지.
“더 있고 싶으나 본국에서 기다리는 국사가 다망하여 그대들을 믿고 돌아가노라. 미주도 대한의 땅이고 그 거민은 대한의 백성임을 잊지 말고 공평하게 대할지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폭풍과 같은 인사를 받으며 다시 배에 올랐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를 환송하는 수천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진심으로 아쉬웠다. 아마도 이번 생에서 내가 여기 다시 올 여유는 없겠지. 부디 다들 평화롭게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