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68
4부 352화(1968화)
8.
“잘들 있거라. 일이 있을 때 또 보자꾸나.”
“올 연말이라도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고.”
하와첨사진이 있는 오아도 방문을 마친 다음에는 남은 두 섬, 가와도(카우아이)와 니하도(니하우)까지 찾아가서 발을 디뎠다. 이로써 하와국을 이루는 주요 섬 일곱 곳을 모두 찾은 셈이다. 가와도에 가니 옛날 가와공 집안과 하와국 왕실이 으르렁거리던 생각이 난다. 카우이하고 가우성이 평생을 두고 서로 으르렁댔었지. 가우성은 자기 집안이 마우이보다 더 강력하니까 자기네가 왕가가 되어야 한다고 우겼었고.
지금도 가와도는 여섯 섬 중에 독립성이 가장 강하다. 가와도는 하와이 제도의 서쪽 끝에 있고 왕이 있는 본도는 동쪽 끝에 있어서 왕실에서 간섭하기 어렵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유다. 그래서 가와공은 포경선 기항 금지 조치에도 가장 끝까지 맞섰다고 들었다. 결국에는 돈 받고 물러서기는 했지만.
여기도 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섬인데 느긋하게 둘러볼 수 없어서 유감이다. 내가 도성을 비워놓고 온지라 하와국 경유 일정 자체가 잠깐 들른 거에 불과해서다. 그래서 가와도 답사도 가와공의 저택을 방문하는 정도로 끝을 맺었다. 저택 벽에, 옛날에 내가 가우성에게 하사했던 이런저런 선물들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무척 감개무량했다. 그 뒤에 마지막 순서로 니하도를 잠시 둘러보고 배에 올라서 서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번 하와도 순행은 여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한양에 가려면 아직 남은 날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냥 갈 수 있을 때 가야지요.”
‘지난번’이라고 하면 하진교의 방문 명분이었던 선황의 죽음과 조모의 죽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다음 차례인 태후는 이제 겨우 30대에 접어드니 죽으려면 한참 남았다. 하진교는 그 부분을 지적하면서 자기가 당분간은 한양에 가기 어렵지 않겠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거야 알아서 하고. 하지만 네가 너무 몸을 빼면 왕사가 너무 힘들어지니 적당히 일 좀 하고. 공주를 너무 힘들게 하지도 말고.”
우리 옆에서는 현순공주와 동비 김씨가 얼싸안고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둘은 전부터 ‘고향을 떠나 바다 건너로 시집갔다’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서 꽤 가까웠는데, 이번에도 마치 친자매가 해후한 것처럼 반가워하며 일정 내내 붙어 다녔다.
“이렇게 헤어지면 왕비 마마를 언제 또 뵐지 모르겠습니다.”
“또 만날 날이 있겠지요. 동비께서 여기 또 오시기는 아무래도 힘드실 테니, 제가 기회를 봐서 본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정말이요? 고맙습니다!”
이별도 이렇게 요란했다. 아무래도 이 부부는 무슨 핑계를 대서든 결국 본국에 오겠구나 싶어서 쓴웃음이 났다. 명분은 뭐….. 자기들이 알아서 만들겠지.
“그나저나, 왕비는 그렇다 쳐도 저는 폐하와 함께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됐다. 너는 나랏일을 챙겨야지. 싸우는 건 네 수하들만 해도 충분하다.”
내 어승선 동진과 호위를 맡은 전선 네 척으로 이루어졌던 우리 선단에는 지금 수송선이 한 척 따라붙었다. 하진교가 특별히 고른, 모로족 토벌전에 파병할 하와군 정예병 5백 명이 탑승한 배다. 실전 경험 풍부한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노예사냥 부대까지 전원 들어갔다.
근래에 하와군이 파병된 전선은 별로 없었다. 우리 대한군 자체가 대규모 전쟁을 치르지 않는데 하와군을 동원할 일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하와병들이 도성으로 와서 친위대 노릇이나 하고 있었던 거고. 하지만 2년 전부터 진행된 이번 모로족 토벌은 하와병들이 모처럼 전선에서 대대적으로 활약할 기회였다. 우리 군에 복무하는 하와병들은 이미 개별적으로 참전해서 싸우고 있지만 하진교는 그와 별개로 하와군이 하와국 깃발을 들고 정식으로 참전하기를 바랐다.
“술루군은 이미 백 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는데 말이 지요.”
“그 말도 옳기는 하지.”
애초에 두 나라 왕가가 주군을 모시는 방식 및 깃발을 보는 인식 자체가 서로 달랐으니까 이런 차이가 당연하게 나왔다. 스페인 귀족 출신인 디에고 한테는 자기 깃발을 든 병사들을 따로 부대로 편성하는 게 당연했고, 마우이와 카우 이는 깃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부자만이 아니라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기를 들고 전장에 서는 게 중요하지 자기 머리 위에서 나부끼는 깃발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군이신 대한 태황 폐하를 위해서 적과 싸운다, 그거면 됐지 않은가.
우리 쪽 입장? 그야 당연히 상관없지. 하와국이 병력을 보내기만 한다면 깃발을 들건 안 들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와군의 별도 참전 같은 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하진교는 달랐다. 나를 따라다니며 온갖 것을 배웠으며 그중에는 깃발이 상징하는 의미도 있었다. 어디에 나 존재하는 충성의 대상, 군주를 대신하는 존재, 국가의 상징
.
자연스레 하와국 국기 –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반원과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 반원 사이에 하와이를 상징하는 섬을 그리고, 위쪽에 북두칠성과 아래쪽에 남십자성을 넣은 – 아래 국가 통합을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진교에게 싹텄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국 이래 태황의 이름으로 보장된 평화를 깨고 여섯 공을 처형하거나 숙청하고 영토를 몰수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영주들의 반란으로부터 왕실을 지켜주는 존재인 하와첨사진이 이럴 때는 도리어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하진교는 부지런히 각 섬을 돌면서 자기 권위를 확립하는 한편으로 원정군을 꾸릴 준비를 했다. 호랑이 사냥차 발리에 다녀온 것도 왕국 전체에서 가장 용감한 용사들을 뽑기 위한 안배였다…..0라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솔직히 핑계 같지만.
“그렇게 공들여 뽑은 전사들인데 제가 거느리고 가지 못 하게 하시다니요.”
“안 된다면 안 된다. 옛날 장조께서도, 중종께서도 보위에 오른 뒤에 적병과 칼을 맞대신 적은 없었다.”
내가 직접 창칼을 휘두른 건 어디까지나 성친왕 시절뿐이다. 보위에 오른 임금이 적진에 칼을 들고 돌격하다니, 알렉산드로스도 아니고 나나 하진교가 할 일이 아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전하. 제가 형님 대신 폐하를 위해 싸울 테니까요.”
옆에서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건 하진교의 이복동생인 하성교였다. 비글호와 처음 접촉한 녀석이기도 하고, 아주 충성스러운 형님바라기 동생이다. 여기서 하성교가 덧붙였다.
“그런데 폐하, 에콰도르 놈들이 거북섬을 두고서 자꾸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그냥 놔둬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으니 내버려 둬라. 그놈들이 불만이 있으면 어쩌겠느냐.”
그란 콜롬비아가 해체되어 에콰도르가 독립하고도 한동안은 아무 일 없었다. 그런데 대충 3년쯤 전부터 그놈들이 갈라파고스는 자기네 소유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한다.
‘그 섬들이 어디에서 가까운 지를 생각하면 누가 주인인 지도 명확한 거 아닙니까?’
우리와 에콰도르는 아직 직접적인 외교 관계가 없다. 그래서 누벨 프랑스 주재 공사관이 외교 창구 노릇을 맡아 이 문제를 주고받고 있다. 이 문제로 감정이 격해진 일부 에콰도르인들은 멋대로 섬에 상륙해서 에콰도르 영토라고 새긴 표지석을 세워놓고 가기도 한다. 작은 정착지를 만들기도 했지만 순시하러 간 하와국 관원들이 곧바로 때려 부숴서 내쫓아 버렸다.
“목종께서 우리 영토로 선언하시고 아무 문제없이 60년을 내려왔다. 서반아 왕실도 아무 반발이 없었던 것을 에콰도르 따위가 무슨 이의란 말이냐. 그냥 무시하라.”
이 문제에 관해 이미 알고 있던 – 누벨 오를레앙에서 양국 공사관이 다투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다 – 나폴레옹도 그렇게 조언했다. 그냥 무시하라고.
‘에콰도르의 후안 플로레스 대통령은 국내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일 거요. 감히 그대에게 도전하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테니 그냥 무시하면 되오.’
그란 콜롬비아 공화국이 분열되고 연맹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각국 간에 국경 분쟁이 꽤 있었다. CEA가 개입해서 종결을 짓기는 했지만, 무력 충돌도 있었다. 특히 에콰도르는 아직 CEA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던 페루와도 영토 문제로 전쟁을 치렀다. 여유가 없긴 하겠다.
“그러니, 신경 쓸 것 없다. 무시하면 그만이다.”
만약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 때문에 우리한테 전쟁을 건다면 그 결말은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킨 아르헨티나보다 더 나쁠 거다. 에콰도르 자체가 제대로 된 해군도 없는 소국이고, 포클랜드 근처에 거점이 없었던 영국과 달리 우리한테는 서미주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나폴레옹과 CEA가 에콰도르를 도와줄 리도 없다. 애초에 나폴레옹은 내 친구고, 에콰도르가 선공을 걸기까지 한 상황이니까 명분도 적당하다. CEA는 외부의 위협을 막으려 결성한 조직이지 외부를 위협하려고 만든 조직은 아니니까 말이지.
하여간 지금 중요한 건 하진교를 주저앉히는 문제다. 하진교는 여전히 누손주에 출정하고 싶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비비적대고 있었다.
“정말 안 되겠습니까, 폐하? 저는 전사들의 우두머리로 서 싸워야 할 의무가 있는데요.”
“안 된다니까. 무슨 하와국의 명운이 걸린 결전도 아니고, 그런 하잘것없는 싸움에서 네가 죽기라도 하면 내가 무슨 낯으로 네 처를 보란 말이냐.”
이미 현순공주가 절대 안 된다고 한바탕 포달을 부린 뒤인 걸 내가 알고 있다. 하성교도 옆에서 변죽을 울렸다.
“제가 형님 전하 몫 이상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본국을 지켜 주십시오!”
“예라, 이놈! 내가 모은 전사들을 훔쳐간 도둑놈아! 기껏 출정해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면 호적에서 파 버릴 테다!”
우리 일행의 열흘에 걸친 하와이 체류 일정은 이렇게 형제간의 화목한 대화로 마무리가 되었다. 덕분에 각자 다른 배에 올라 손을 흔들며 헤어지면서도 슬프지는 않았다.
9.
하와이에서 누손까지는 대략 40일 정도 걸린다. 침안도(웨이크)와 구도(괌) 두 곳을 거쳐 이동한다. 침안도에는 급수원이 없어서 상주하는 인력은 아직 없지만, 기점 역할은 한다.
이 40일 동안은 미주에 갈 때처럼 홀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몰트케에게 받은 군사 분야 개선안을 검토할 여유로 아주 좋았다.
「….현재 한국군 최고사령부는 육해군 대표단의 협의체로 구성되는데, 이는 예하 부대를 확실히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모본부의 재량권을 강화해 예하 부대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갖도록 하는 편이 좋습니다.
또한, 현재 한국 육군은 연대 이상의 상설부대를 따로 편제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병력을 차출해서 새로 부대를 편성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 부대의 원활한 연계에 장애가 됩니다. 여러 병종을 혼합한 상비사단 또는 여단의 편성이 필요합니다.
예비군을 소집하는 체계도 정비가 필요합니다. 기존 체계는 명부만 유지하고 실제 훈련은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넘어갈 위험성이 있다고 추측됩니다. 이는 각 지역사령부가 기존 행정 중심지에 위치하여 새롭게 설치된 교통 및 통신 중심지와 떨어진 곳이 많은 탓이 큽니다.
이를 보완하자면 교통과 통신을 중계하는 요지로 각 지역을 담당하는 사령부를 이전해서 새롭게 정비하고 예비군의 소집 및 훈련 체계를 프로이센식으로 쇄신하시기를 권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 예비역, 속오군이 현재로서는 큰 전투력을 기대하기 힘드니, 프로이센식 란트베어 체계를 도입하는 편이 좋겠다는 이야기다. 상비군단의 편성 역시 마찬가지. 과거 우리는 이 체계로도 잘 싸우긴 했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소관이 보기에도 합당한 내용이라 보이옵니다. 우리 관군은 근래 들어 전장에서 대규모 실전을 치른 적이 없으니, 포뢰선의 경험이 유용하리라 생각됩니다.”
북경에 갈 때 막 임관한 참위였던 신헌은 지금은 정위가 되어 군사를 지휘하는 경험을 꽤 쌓았다. 그런 탓으로 몰트케가 지적한 부분을 바로 이해했다. 역시 나폴레옹이 그 자질을 금방 알아볼 만한 사람이다.
“양 참위, 자네는?”
“소관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목 참령 – 몰트케는 강무관에 출강하면서 목도경(穆道敬)이라는 한명(韓名)을 쓰고 있다 – 의 강의를 들어보니 참으로 논리정연한 것이 그 말이 참 합당하다 싶기는 했습니다.”
프랑스인 교관들도 아예 무능한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실전에서 손을 놓은 지 25년이나 된 데다가, 교육 내용도 전술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보병, 기병, 포병을 망라한 실전 전술 부분 말이다.
하지만 몰트케가 건넨 건의안에는 군사 체계 자체의 개편과 운영에 관한 부분까지 포함돼 있다. 훨씬 시야가 넓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신헌은 그 요지를 아주 잘 이해했다.
“우리 군은 장조께서 체계를 크게 개편하신 이래 2백여 년이 넘도록 잘 운영해 왔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났고 주변 여건이 바뀌고 있으니, 우리도 그 세태를 따라 바꾸는 편이 더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신 대전(大戰)을 치른 자들이 그 경험을 나눠준 다는데 굳이 사양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신헌에 이어 양헌수도 같은 의견을 냈다. 다행이구나 싶었다.
“일본군도 이런 식으로 바꿔나가고 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폐하.”
신헌이 고개를 숙였다. 일본군이 프로이센에서 고문관을 데려온 지 오래라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폐하, 신은 생각이 다릅니다. 신도 목가가 비록 포뢰선에서는 촉망받는 인재라고 듣기는 했으나, 그 역시도 지난번 유럽 대전에는 참여한 적도 없는 애송이 아닙니까? 적을 향해서 포를 발사해 본 적도 없는 애송이의 탁상공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예전에 육군대신을 지낸 바 있는 육군제조 이원달은 인상을 팍팍 쓰면서 몰트케가 제출한 개선안에 거부감을 표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이었다.
“지난 2백여 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잘 운용한 체제입니다. 그런 것을 어찌 우리 대한을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의 말 한마디에 대뜸 바꾸려 하십니까? 이리 귀엣말에 팔랑거리는 행동은 계집이나 할 짓으로, 천하를 다스리시는 임금께서 하실 행동이 아닙니다.”
….임금을 위한 진언이라는 명분만 있으면 돌려가면서 욕을 해도 참아야만 하는 이 풍토는 또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에라, 옛날에 무종이나 장조 때는 이보다 심한 쌍욕도 잔뜩 듣고 살았으니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
“더구나 이 목가의 제언을 들어주면 그동안 폐하를 위해 충성한 연로한 장수들이 수없이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야 하옵니다. 어찌 이방인의 한마디 말 때문에 그리 흉한 일을 벌이려 하십니까?”
“제조는 참기를 바라오. 짐이 당장 그 제언을 따라 군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게 아니잖소. 어디까지나 유주의 최신 정세를 듣고 참고하자는 것이지.”
“유주의 정세라는 것도 참고할 의미가 없습니다. 유주는 유주, 아주는 아주입니다. 서로의 사정에 따라 군제도, 군략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어찌 남의 것을 함부로 따르겠습니까?”
“알겠소, 알겠다고.”
40일 동안 이런 식의 말다툼이 몇 차례나 더 있었다. 아무래도 본국에 있는 노장들이라고 해서 이원달과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니, 앞으로 장애물이 많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