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74
4부 358화(1974화)
19.
북쪽으로 귀환 길에 오르기 전에, 예정에 없었던 연회를 열었다. 군사들에게는 이미 술과 고기를 잔뜩 베풀었지만, 가스파르를 비롯한 술루인들에게도 한번은 대접해야 하니 말이다. 알고 온 건 아니라지만, 번왕이 직접 왔는데 어찌 맨입으로 떠나게 한단 말인가.
“태황폐하만세!”
“건배! 승리를 위하여!”
이희영 휘하 장수들과 가스파르를 따라온 술루 장수들이 함께 잔을 부딪쳤다. 술루인들을 고려하여 이번 연회는 유럽식 스탠딩 파티가 되었다. 초토군 장수들도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면을 좋아해서 편하게 돌아다니며 차려진 음식과 술을 즐겼다.
악공들의 연주와 무희들의 춤은 있었지만, 연극 공연은 없었다. 배우들이 말라리아 감염 후유증으로 여태 누워있는 탓이다. 그래서 참석자들끼리 대화나 나누게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군사작전과 관련되는 주요한 논의는 대화 주제에서 빠졌다. 그런 건 이미 연회 전에 마쳤기에 연회 자리에서는 훨씬 가벼운 화제가 오갔다. 나 역시 그렇게 여러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기억에 있는 얼굴을 하나 만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이제는 완전히 성숙한 군주가 되셨습니다.”
“오, 벨라르디 경이 아닌가. 오랜만이로군.”
조르조 벨라르디는 술루군 이탈리아 연대 연대장이자 디에고의 옛 검술 스승이었다. 그가 술루에서 오는 정기 사절단의 단장으로 나를 만났던 건 7년 전, 광덕 4년(1833)이었다. 그 만남은 내게 다소 유쾌하지 않은 뒷맛을 남겼었다. 그때 벨라르디는 디에고와 동갑이었던 자기 고조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다 보니 그의 고조부가 디에고와 마찬가지로 성친왕의 사생아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술루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괜히 씁쓸한 기분이 느껴졌다. 세상에 성친왕의 생물학적인 후손들, 즉 대한 황실의 혈손들이 그 말고도 많이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예감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말로 있었지. 내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나삼이 들려준 이야기. 케이프타운의 술집 여주인에게 들었다는, 그녀의 몇 대 이전 조상 할머니 이야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황상 성친왕이 뿌린 씨가 분명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여자 말고도 세상 어딘가에 여럿 더 있으리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불안해진 건 그놈들이 지금 나타나서 황족으로 인정해달라고 떼를 쓰는 상황이 걱정되어서 가 아니다. 아무 증거도 없이 나타나서 자기가 중종의 후손이라고 주장해 봐야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따위 놈들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쪽이다. 다음번 생에서 내가 그런 놈들의 후손으로 눈을 뜨기라도 하면 어떡할지, 그게 걱정 인 거다. 만약 내가 로마의 빈민가나 아프리카의 구석진 항구도시 같은 곳에서 눈을 뜬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자리를 되찾을 수는 있을까. 설마 천녀가 그렇게까지 할까, 싶기도 하지만 안심할 수가 없다. 천녀가 내게 이런저런 방식으로 엿을 먹인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게다가 이번 생에는 상희도 만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벌써 생을 시작한 지 18년이나 되었는데도.
다른 두 중전이나 올렝카 같은 사람들이야 한 번의 생을 함께 했으니, 나와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였다고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상희는 계속 만날 수 있고 또 만나야 하는 사람이건만 만나지 못하고 있다. 생각할 때마다 심장 이 타들어 가고 내장이 뒤틀린다. 타오르는 작열감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 해서 손에 든 술잔을 그대로 들이켰다.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화끈한 감각이 심장의 열통을 작게나마 가라앉혔다. 그러자 쓴웃음이 났다. 하, 이것도 이열치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볼내공께서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기쁩니다. 도성 생활이 편안하신 모양이지요.”
“물론이지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하.”
내 심기가 조금 불편해 보였는지 벨라르디가 슬쩍 자리를 피했다. 그 빈자리에서 새롭게 다가온 가스파르가 내게 인사한 뒤 내 뒤에 있는 디에고에게 말을 걸었다. 숙질간인 가스파르와 디에고 사이에서는 늘 묘한 긴장이 흐르곤 했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디에고는 예전과 똑같은데 가스파르 쪽에서 벽을 허물고 친근하게 대하는 느낌이었다. 뭐지, 우리가 소식을 못들은 사이에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건가.
“비록 도성보다 좀 덥고 습하기는 하지만, 이사벨라는 볼내공…. 숙부께도 고향이 아닙니까. 고향에도 좀 다니러 오고 하시죠. 근위대에 복무하다가 귀국하는 우리 병사들을 볼 때마다 고향 생각도 안 나셨습니까, 공작부인께서도 가족과 고향이 그리우실 텐데요.”
“전하께서도 제가 술루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아실 텐 데요.”
그 이유, 지금은 나도 안다. 선왕 아구스틴 1세의 왕비, 대비 발레리아가 디에고를 아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여겨 없애려고 했다고 했지. 그래서 디에고는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한양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형 아 구스틴 1세의 배려가 있었다. 술루로 돌아갔다가는 형수인 발레리아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그동안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공작부인인 소피아가 고향을 꽤 그리워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 가 돌아왔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비께서 두 달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숙부님이 술루에 돌아오신다고 눈살을 찌푸릴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가스파르가 말하길, 대비는 지병이 있었다고 했다. 작년 가을부터 병세가 안 좋아지더니 두 달 전에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나. 본인도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했는지, 큰 미련도 없이 고요히 눈을 감았다고 했다. 한양에는 바로 알 렸다는데,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어허, 짐은 미주에 있느라고 소식을 듣지 못하였구나. 애도를 표한다. 국상을 치르면서도 군사를 물리지 않았다니,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주군이신 폐하께서 모비들을 무찌르느라 고심하고 계시는데, 어찌 신하인 제가 집안일을 명분으로 전선에서 빠지겠습니까. 마땅히 싸움을 계속해야지요.”
하기야 유럽에서는 국상 따위에 전쟁이 큰 영향을 받지 않지. 국왕 본인이 사망했다면야 몰라도 국왕의 모친이 죽은 정도로는 전쟁을 멈추지 않을 거다. 국왕이 멈추고 싶을 때라면 적당한 핑계가 될 수야 있겠지만 말이다.
“어떻습니까, 숙부. 돌아오지 않으시렵니까? 고향으로요.”
가스파르는 확실히 디에고에게 친근감을 품은 듯했다. 자기가 왕이고 숙부는 공작이니까 얼마든지 말을 낮출 수 있는데도 공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디에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 제게 마음을 써주시는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폐하의 친위대장이고, 이런 중책을 내주신 폐하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나중에 이 자리를 그만두게 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단호한 거절에 가스파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폐하께 대한 숙부의 충성이 참으로 깊군요. 폐하가 부럽습니다.”
“내가 뭘 한 게 있겠소. 볼내공의 뜻이 대견한 것이지.”
조금 더 대화하다가 자리를 옮기니 대붕영 파병연대장 김정규 참장이 나타났다. 전임자인 조신원이 파직당한 뒤에 부임한 후임자다. 목에는 자응장 3등장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대가 전임자보다 군사들을 잘 챙긴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그리 해주기를 바란다.”
“황은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신원이 연대장 자리에서 쫓겨나서 한직으로 전출되는 꼴을 본 탓인지, 김정규는 연대장 자리에 앉자마자 결사적인 노력으로 성의를 보였다. 자기가 연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적은 일지를 제출하고 주요 결정에 관해서는 전부 기 록해서 보고할 정도로.
시간이 없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런 보고를 받으니 김정규가 맡은 역할을 다하느라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성의껏 칭찬해 주었다.
“그대의 노력은 분명히 보답 받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토록 책무에 매진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 외에 다른 장수들도 내게 다가와 허리를 깊게 숙여 절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에 물러갔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연회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 관군이든 술루군이든 언제 또 나와 만날지 알 수 없는 이들이다 보니 한순간 한 순간이 참으로 귀중했다.
20.
“태황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수무강하소서!”
군사들이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사말도를 떠났다. 여기서 가스파르를 만났으니까 갈로도 시찰은 생략하고 곧바로 북으로 움직였다. 떠나기 전에, 가스파르가 내게 여기까지 온 김에 조홀국도 방문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하기는 했다.
“자기 나라에만 들르지 않았다고 조홀국왕이 서운해 할 지도 모릅니다.”
“짐도 거기까지 들르고는 싶으나, 이미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 않소. 바닷길이 거칠어지기 전에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오.”
이미 양력으로 11월이다. 괜히 조홀국까지 방문하고 안남에도 들르고 하다 보면 겨울이 닥쳐 본국 주변 바닷길이 거칠어지고 새해가 되도록 한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계획을 짤 때는 순행에 들어가는 기간을 최소 4개월로 잡고, 실제로 움직일 기간은 한 달 정도 가산하면 되지 않을까 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여기까지 오는데 이미 7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조홀국까지 들를 시간은 없었다. 어서 내 집으로 돌아가야지.
누손에 와서 들은 본국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국정은 국상 이종선이 거의 이끌고 있다. 중전은 작년 조모의 상을 치를 때 범한 실수에다 출산까지 하느라 국정에는 전혀 상관하지 못하고, 태후 박씨가 사실상의 수렴청정을 진행하는 중이다. 다만 이종선이 워낙 직설적이고 과감한 성품이다 보니, 태후도 그를 이기지 못해 국정에 크게 개입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태후의 정치적인 능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 국상은 잘 뽑은 듯하다.
“조홀국왕에게 나를 대신해서 안부나 전해주시오. 들르지 못해 내가 무척 아쉬워하더라는 이야기도 좀 전해주고.”
“알겠습니다, 폐하.”
생각 같아서야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조홀국까지는 안 가더라도 가는 도중에 있는 주요 고을들은 들러야 한다. 먼저 남중성, 즉 마닐라에 들렀다. 남중성은 누손을 다스리는 도독의 치소인지라 10만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하는 대읍(大邑)이 되어있었다. 누손주 도독 김원태가 항구에 나와 나를 영접했고, 그의 안내를 받아 남중성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남중성은 처음 와보는 곳이기에 김원태의 안내를 받으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12년 전 순행 때 왔으면 보았을 여러 역사적인 장소들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여기가 계미남변 당시 승룡대를 놓고 기구를 띄우던 자리입니다. 저쪽에 포대가 있어서 농성하는 서반아군을 무자비하게 짓부쉈지요. 그리고 바로 이 위치에 사다리를 걸치고 우리 군사들이 성벽을 넘어 성내로 쇄도했습니다.”
스페인어로 ‘인트라무로스’라고 부르던 내성은 여전히 남아서 성내와 성외를 나누고 있다. 주요 관공서는 스페인 식으로 쌓은 내성 내부에 위치하고, 성외 지구는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거주지구와 상업지구, 일부 수공업 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성외 지구는 지난 백여 년 동안에 사실상 싹 밀고 우리 측의 주도로 새로 지었다. 그래서 재활용하는 편이 유리한 조선소와 항만 시설을 제외하면 계미남변 때 전투가 벌어진 자취는 물론이고 스페인 지배 시절의 흔적 같은 것은 그 다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성 내부 구역은 스페인인들이 지은 석조건물 같은 게 꽤 많이 남았다. 김원태가 근무하는 도독부 건물도 옛 스페인 총독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가 다스리는 속령 중 문화적으로 가장 이질적인 땅이라고 하면 역시 누손이다.
“그렇더라도 무척 중요한 곳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폐하. 누손에서 생산하는 상품작물과 금, 구리와 목재만 따져 보아도 그 양이 얼마나 막대한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짐도 알고 있소, 도독. 여기가 얼마나 중요한 땅인지 말이오.”
그런 땅이니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았지. 물론 환대동양 방어선을 완성하기 위한 의도적인 작업도 좀 있기는 했지만, 이 누손 자체가 쓸모없는 똥땅이었다면 순전히 지도를 색칠하기 위해서 이 땅을 뺏지는 않았을 거다. 풍부한 자원이 있으니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때도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내면서까지 내 욕심을 채울 의도는 없었다. 그래서 계미남변의 계기가 되었던, 스페인군의 학살로 죽은 우리 백성들의 혼을 모신 사당을 찾아 제를 올렸다. 남중성 동쪽 교외에 있는 현남사라는 사당이다.
“고생하셨사옵니다, 폐하.”
“그대는 편안히 지냈소?”
“예, 폐하!”
내가 이렇게 다니는 동안 동비는 남중성에서 아주 즐겁게 지냈다. 이곳은 백여 년 전부터 번성한 도읍이었으니만큼 사교계도 발달했고, 동비보다 지체가 높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비가 자기 소원대로 갑질을 벌이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물론 동비가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닌지라, 자기 앞에 굽히고 엎드리는 사람들을 짓밟는 것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으스대고 뽐내면서 잘난 척하는 건 실컷 즐겼다. 아주 실컷.
그렇게 며칠 동안 나는 나대로, 동비는 동비대로 보람 있는 시간을 즐긴 뒤에 다시 배에 올라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다음 방문지는 대남도였다.
“태황 폐하 만세! 만세!”
“임금님 만세!”
미리 앞서간 연락선으로부터 미리 연락을 받은 대남도에서도 성대한 환영의 물결이 나를 기다렸다. 수천이나 되는 백성들이 몰려와서 대한 역사상 처음으로 대남도를 찾아온 임금을 환영했다. 알현을 청하는 백성들과 온갖 선물이 끝없이 이어졌다. 미주에서처럼 민원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를 한 번 이라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백성들이었다. 이런 건 이미 누손에서 겪은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진즉에 한 번쯤 을 걸 그랬나.”
중종 때 한번 와줄 걸 그랬다. 대남도 정도라면 가까우니까 상희와 함께 여행 삼아 와도 좋았을 텐데. 하지만 뭐 이번에 선례를 만들었으니 , 다음에는 조금 더 자유롭게 올 수 있지 않을까. 여기도 사적지가 많았다. 정일한이 처음 세운 토성의 흔 적부터 시작해서 정준석이 지어서 지금도 사용하는 코끼리 외양간 같은 것들까지 .
“지금도 코끼리는 작업용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대남도 개척 초기에는 작업용보다는 전투용으로 유용했지. 코끼리를 모르는 고산족들한테 코끼리를 들이밀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기 일쑤였다. 지금이야 대남도 내에서 도, 밖에서도 코끼리는 전투용이 아니라 작업용, 의식용이 지만 말이다.
호기심이 일어 외양간 안팎의 창고도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외양간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데 쓰는 이런저런 낡은 도구들이 좀 있는데, 개중에 ‘元(원)’이라고 적힌 쇠스랑과 넉가래가 보였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
“모릅니다. 아마 옛날에 누가 관에서 원래 쓰던 물건이라는 뜻으로 써 놓은 거 겠지요.”
하긴 그럴 법도 하겠다. 개인적으로 가져온 도구와 관에서 지급한 물건을 별개로 볼 수도 있겠지. 오래 있을 여유는 없어서 진남성 안팎만 이틀쯤 돌아본 뒤에 다시 배에 올랐다. 동비는 그 이틀 동안에도 윗사람 대접을 실컷 받아서 아주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그 상태로 우리 선단은 북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진짜 마지막 방문지, 유구를 거쳐 본국으로 가는 마지막 뱃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