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8
1부 198화
– 6 –
“왜선 십여 척이 앞을 막고 있습니다!”
“포를 쏘아라!”
대마도에서 일기도까지는 배로 하룻길이다. 5월 27일 아침에 대마도에서 배를 띄운 우군은 다음날 새벽녘에 일기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대마도 출신인 왜별영 군사들 중 왜 본토를 자주 오갔던 이들이 뱃길 안내를 맡았다.
“출범하자마자 앞바다에서 왜선을 마주쳤으니, 그 놈들이 알린 거겠지.”
왜선을 만난 건 선단이 출범하고 두 시진도 되지 않아서였다. 우군 병력 5천 명과 치중을 실은 조운선, 그리고 이들을 호위하는 전선까지 70여 척에 달하는 선단이 동쪽을 향해 떠나자 곧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왜선과 마주쳤다.
처음에는 표류선인가 했지만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아군 중선이 접근해서 살피려 하자 적선은 그대로 방향을 돌려 뺑소니를 쳤다. 누워 있던 돛대가 벌떡 일어서더니 돛을 펼쳤고, 스무 개가 넘는 노가 일제히 뱃전으로 뻗어 나왔다.
“왜적이 보낸 척후선입니다! 대감, 쫓으시겠습니까?”
“아니, 그대로 둬라. 고작 한 척, 잡기도 어렵고 잡은들 크게 얻을 것도 없다.”
대마도 주변 해역은 그동안 수군이 계속 순시하면서 감시했다. 저들은 필시 그 시야 바깥에 숨어서 이쪽의 정세를 살폈음이 분명했다. 아마도 조선군이 언제 대마도를 평정하고 일기도 방향으로 진격할지, 또는 혹시 대마도에서 탈출하는 우군이 없는지 살피고자 했으리라.
“일기도에 있는 왜군은 이미 농성태세에 들어가 있을 터, 저 왜선을 쫓아 잡는다 해도 적을 기습하기는 난망할 것이다. 그대로 보내라.”
전임은 성격이 난폭하여 예전부터 대간들에게 탄핵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무예가 뛰어나고 학문도 상당한 수준이라 성종 때부터 계속 중용되었다. 지나간 두 차례 원정에도 빠지지 않고 매번 종군하여 상당한 공을 세웠다.
“예, 대감.”
종사관이 허리를 굽혀 군례를 올린 뒤 곧바로 돌아서서 기패관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수군 전체를 지휘하는 권한은 이번에도 도해원정수사로 임명받은 이양이 지휘했지만, 지금 이 선단 지휘는 전임이 직접 맡고 있다.
명령을 받은 선단은 눈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왜 척후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일기도를 향해 전진했다. 전임이 호쾌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코끼리가 앞으로 가는데 쥐새끼 따위가 알짱거린들 뭐 어떻단 말인가!”
전임은 전라도에서 근무할 때, 태종 때 들어온 코끼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태종 11년에 왜국에서 코끼리를 한 마리 바쳤는데, 사람을 죽인 탓에 도성에서 쫓겨나 삼남 지방을 돌면서 사육하게 했었다. 그 코끼리를 접했던 노인들이 아직 살아있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 우리는 수가 많은 만큼 질서정연하게 움직여야 하니 움직임이 마치 코끼리와 같다. 저 왜선 한 척은 덤빌 엄두도 못 내고 도주하니 쥐 한 마리와 같다. 쥐가 어찌 설치건 우리가 가는 길에 지장이 될 것은 없다.”
코끼리가 쥐 한 마리를 밟겠다고 쫓다가는 잡지도 못하고 발이나 꼬여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대로 목적지로 달려가 쥐구멍을 통째로 밟아버리는 편이 낫다.
전임은 저 왜선이 그대로 일기도로 달려가 소식을 전하게 놓아둘 생각이었다. 어차피 섬에 있을 왜인들도 싸울 준비는 하고 있었을 터, 별 차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군이다! 대열을 유지하고, 흩어지지 않도록 하라!”
“역시 바다에서 마주친 적 척후선을 놓아 보내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랬으면 놈들이 한층 더 허둥거렸을 텐데요.”
“어둠 속에서는 어차피 우리도 제대로 공격에 나서기 힘드네.”
육지 싸움이라면 어둠 속에서 적진을 급습하기도 쉽다. 하지만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라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너무 어두워도 좀 곤란했다. 그리고 상륙이 무난하게 이루어질 정도로 주변이 밝다면 수비하는 왜군에게도 이편 전선들이 보일 게 분명하다.
“그리고, 놈들을 배에 탄 채로 한 번에 수십 명씩 바다에 가라앉히는 편이 수고를 절약할 수 있지 않은가? 육지에서 하나하나 잡으러 다니는 편보다 말일세.”
전임이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입술 사이로 드러난 이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햇빛을 받고 살짝 빛을 발했다.
– 7 –
왜병들은 이쪽 뱃전으로 뛰어들 모양이었다. 조선군이 쏘아대는 화살과 총탄에 맞아 연달아 쓰러지면서도 이쪽에 배를 붙이려고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무용한 헛수고였다.
“조란환을 쏘아라!”
흔들리는 배 위에서 하는 조준사격은 맞히기 힘들었다. 전임은 잘 맞지도 않는 원거리에서 포를 쏘아 화약을 낭비하기보다는 적을 가까이로 끌어들여 한 방에 쓸어버리기로 했다.
총통이 불을 뿜자 한 번에 수십 개나 되는 납덩어리들이 왜선을 휩쓸었다. 불벼락을 맞은 왜병들은 그대로 피떡이 되어 널브러졌다. 갑옷을 입은 무사건, 누더기 한 벌만 걸친 수부건 상관없이 모조리 팔다리가 토막난 시체가 되었다.
사람만 쓰러지지도 않았다. 왜선은 구조가 가볍고 약한 목재로 만든다. 새알만한 납덩이가 코앞에서 쏟아지자 선체도 벌집이 되었다. 삽시간에 왜선 여러 척이 피범벅에 구멍투성이가 된 채 바다 위를 표류했다.
“총통을 맞고 살아남은 놈들은 활과 조총으로 쓰러트려라! 등선을 허용할 필요가 없다!”
창을 든 군사들이 뱃전에 서서 대기하고 있는 만큼 몇 명쯤 뛰어오른다고 해서 큰일이 날 염려는 없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능성이 있었다. 혹시라도 난폭한 왜병이 갑판에 오른다면 큰 피해가 날 수 있었다. 미리 제거하는 편이 좋다.
“오호, 저기도 한 놈 있군.”
주상께서 건조를 명하신 판옥선이라는 새 전선은 높은 장대가 있어 전장을 내려다보기 무척 편했다. 역시 지휘를 하는 장수는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하는 법이다.
“이 왜놈아, 화살이나 받아라.”
더불어 직접 싸움에 끼어들기도 편했다. 전임은 부서진 배 위에 서서 이쪽으로 활을 겨누는 왜병을 향해 장대 위에서 그대로 화살을 날렸다.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이 목을 꿰뚫자 왜병이 활을 놓치면서 그대로 물속으로 떨어졌다.
“모조리 죽여라! 혹시 살려달라고 비는 놈이 있으면 살려주어도 좋다.”
왜인들에게는 화포가 없고, 왜인들이 가진 활은 사정거리가 짧아서 가까이 다가와야만 쏠 수 있다. 그래서 전임은 안심하고 좌선을 선두에 세워 적과 싸우고 있었다. 여러 차례 싸우다 보니 어느 정도까지 가까이 가도 괜찮은지 대략 짐작이 갔다.
“마지막 왜선을 격파했습니다! 물에 뛰어들어 육지로 도망치는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둬라. 어차피 육지도 곧 쓸어버릴 테니까.”
왜선 10척과 그 위에 올라탄 왜병들을 전멸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각(45분) 정도였다. 물에 뛰어들어 살아남은 많은 왜인들이 일기도를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자기들 편이 패하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크게 탄식하는 소리가 육지에서 들려왔다.
“진격하라! 물에 빠진 왜적들은 그대로 버려라!”
일기도 함락이 최우선이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왜적 따위를 잡기보다 어서 섬에 군사를 내려놓아야 했다. 저놈들이야 어차피 빠져 죽기 싫으면 해안으로 헤엄쳐 올 게 아닌가.
싸움이 벌어진 바다는 육지에서 기껏해야 5리(2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 정도면 너끈히 헤엄쳐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항구로 들어가야 하는데, 저 성이 지키고 있군.”
대마도 출신 길잡이가 이야기해준 항구 이름은 승본(勝本, 가쓰모토)이라고 했다. 그 옆에 있는 언덕 꼭대기에는 서둘러 쌓은 듯한 허술한 성이 있었다. 안내인이 말하기를, 예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성이라고 했다. 언덕 높이는 250척쯤 될 듯했다.
“저 성에 총통이야 없겠지만, 활을 쏘며 석거(石車)로 돌을 날리기만 해도 항구로 들어서는 우리 군사들에게 피해가 클 것이다. 전선들은 앞으로 나가 진천뢰를 쏘아라!”
성이 산 위에 있다 보니, 동차를 아무리 움직여보아도 총통으로는 맞히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쪽에는 그 용도로 쓰기에 딱 좋은 무기가 있었다.
앞으로 나선 판옥선들이 천천히 배를 세웠다. 그리고 갑판 위에 마치 절구처럼 생긴 중완구 두 문씩을 끌어내 설치했다. 커다란 공처럼 생긴 비격진천뢰가 옆에 줄줄이 놓였다.
“준비가 되는대로 쏘아라!”
화포장이 화약을 넣는 사이 다른 포수들이 목곡에 감긴 심지에 불을 붙였다. 목곡을 속에다 넣고 뚜껑을 닫은 비격진천뢰를 포에 장전하자 곧바로 화포장이 포에다가 불을 댕겼다.
“방포!”
20여 개에 달하는 둥근 쇠공이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성 안에 떨어졌다. 잠시 후 날아간 포탄 숫자만큼 불기둥이 치솟았다. 굉음이 조선군 장졸들의 귀까지 뒤흔들었다. 비명소리가 그 사이에 섞여서 들려왔다.
“한 방 더 쏘아라!”
잠시 후 비격진천뢰들이 재차 허공으로 치솟았다. 성 안은 한 번 더 폭연에 휩싸였고, 폭발 와중에 어딘가 건물에라도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몇 곳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배를 대라! 이 정도면 저들도 겁을 먹어 대응하지 못하리라!”
기패관이 명령을 전하자 군사를 실은 조운선들이 앞서 해안을 향했다. 배가 얕은 여울에 도착하자 곧 군사들이 뛰어내려 정렬했다. 포구 안에는 마을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활을 쏘거나 창검을 들고 뛰어나오는 왜병은 없었다.
– 8 –
“머저리 같은 놈들!”
시로야마(城山) 위에서 조선군이 상륙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수비병들 중 한 사람인 덴스케(?助)는 창을 내던진 채 언덕 뒤편으로 내려뛰었다. 발길을 가로막는 나무둥치 따위는 단박에 뛰어넘었다.
지금 도망치는 사람은 덴스케 혼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수십 명은 되는 병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와 함께 산을 내려뛰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일반 병사들만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개중에는 지휘관급 무사조차 두어 명 섞여 있었다. 창 따위는 죄다 내팽개친 뒤였다.
“무리도 아니지. 그 엄청난 굉음과 불꽃을 보았으니.”
덴스케는 5년 전 쓰시마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포를 쏘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그때 관찰했던 조선군 화포 중에는 이번처럼 터지는 탄환을 쏘는 녀석이 없었다. 모두 그냥 쇳덩어리 포탄 아니면 커다란 통나무 화살을 날렸다.
지금 여기서 도망치는 병사들 중에도 5년 전 쓰시마 앞바다 싸움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자들이 많았다. 그 포화를 직접 맞았던 저들에게도 저 불벼락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두렵다는 이야기다.
조선군이 배에 화포를 싣고 다니는 줄 빤히 알면서도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산에다가 성을 쌓고 군사를 대기시키다니, 정말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쇼니 씨 편에는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이렇게 없다는 말인가?
“기껏해야 백여 명쯤 되는 조선군이 나타나서 약탈이나 시도할 줄 안 모양이군!”
이키 섬을 지키라고 놓아둔 군사도 고작 5백이다. 그나마 여기서 2백은 군선에 타고 있다가 그보다 훨씬 많은 수부들과 함께 단박에 전멸해버렸다. 나머지 3백은 허술한 성벽 뒤에 숨어 있다가 화포 세례를 받고 궤멸되었다.
“모두 멈춰라! 멈춰!”
말을 탄 무사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고함을 질렀다. 자기 앞으로 도망쳐오는 병사들이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자 무사는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뽑아들었다.
“멈추지 않으면 베겠다! 너희가 그러고도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고용된 잡병은 다르지만, 주력 병사인 아시가루들은 대개 마을 단위로 소집 및 편제된다. 즉 전장에서 도망친다는 이야기는 남도 아닌 자기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한다는 뜻이며, 살아서 돌아가더라도 고향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게 된다.
“멈춰! 멈추란 말이다! 에잇!”
무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멈추는 자는 없었다. 무사는 화가 치민 듯, 뽑아든 타치(太刀)를 그대로 내리쳤다. 도주대열 선두를 달리던 병사가 무사 옆을 빠져나가려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튀어 오른 피가 주변을 적셨다.
“서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과 오니(鬼)처럼 험악한 얼굴을 본 아시가루 병사들이 주춤했다. 그때 그들과는 처지가 다른 덴스케가 허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 그대로 던졌다.
“이, 이놈들이!”
날아간 단도는 말의 목에 박혔다. 말이 비명을 지르며 뒷발로 일어서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타고 있던 무사는 미처 뛰어내릴 틈도 없이 그 밑에 깔리고 말았다.
“됐다, 뛰어라!”
막고 있던 무사가 사라지자 잠시 멈췄던 병사들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무사는 규슈에서 왔지만 이들은 대부분 이키 출신이었고, 섬 중심부로 도망친 가족을 챙기러 뛰는 중이었다. 덴스케가 단도를 던진 사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듯, 누구도 묻지 않았다.
한동안 다른 병사들과 함께 뛰던 덴스케는 조금 으슥한 숲길에 이르자 옆으로 빠져나왔다. 이 섬에는 그가 굳이 찾아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나야 하는 상대방은 바다 건너 규슈 본토에 있었다.
혹시 누가 따라오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 덴스케는 곧바로 남쪽을 향해 달렸다. 섬 남쪽 끝, 안도지(印通寺) 인근에 혼자 저을 수 있는 배를 숨겨놓았다. 어서 그 배를 타고 규슈로 가서 주군에게 알려야 한다. 조선군이 이키를 점령했다고 말이다.
그에 더불어서 보고할 것도 있다. 쇼니 씨가 얼마나 졸렬하게 이키 섬 방위를 준비했는지, 주군이 들으면 아마 폭소를 터트릴 것이다. 아주 상세히 말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