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82
4부 366화(1982화)
8.
태평천국 때문에 후송이 흔들리면서 우리가 입은 가장 직접적인 손해는 교역량의 감소다. 후송과 우리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꽤 많은 교역이 진행되고 있는데, 후송으로 나가던 우리 상품의 수요가 내란 때문에 대폭 감소했다.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당장 전비가 엄청나게 나가는데 홍삼이나 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우리가 파는 게 홍삼밖에 없어서 홍삼을 거론하는 건 아니다. 한국산 상품의 대표 격으로 늘 거론되는 게 홍삼이라 그렇지.
무기 수출은 늘었다. 후송 조정이 자기편 향용들을 무장 시키느라 대량으로 총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사가는 건 싸구려 수석총이 태반이라서 딱히 우리가 이윤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재고를 터는 효과는 있지만. 후송 사회에 우리가 미치던 영향력도 격감했다. 현지에 형성된 덕성도 교단 조직이 거의 마비, 붕괴 상태로 몰린 탓이다.
송태후가 알면 펄쩍 뛰겠지만, 후송 내의 덕성도 신도 조직은 우리가 후송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 꽤 괜찮은 정보 수집원이었다. 덕성도 교단이 우리 앞잡이 노릇을 하지는 않지만, 신도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물밑으로 우리 익문사에 건네는 정도는 해왔던 탓이다. 하지만 후송 조정이 온갖 사탕발림으로 덕성도 조직을 물 위로 끌어낸 다음 그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희대의 막장 짓을 벌인 덕분에 탄압이 극심했던 암흑기에도 유지되던 조직들이 무더기로 붕괴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우리 측의 영향력 상실이다.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일이나, 현지 신도 태반이 본산(本山)과의 연계를 단절하고 역도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저들이 환난을 겪을 때 본산에서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한 일로 인해 분격한 신도들이 많아, 역도와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타이름이 통하지 않습니다…..』
덕성도 지도자, 천사 현도는 서한을 통해 내게 사죄를 구했다. 덕성도가 근본적으로 우리 땅에서 시작한 종교인 데다 지금처럼 교세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조정의 덕을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보니, 역대 천사들은 대체로 조정 방침에 협조해 왔다.
현도 역시 그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단 여기서 훙수전 일당을 ‘역도(逆徒)’라고 지칭한 건 후송 조정에 반기를 든 반란군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덕성도 교단에 반기를 든 것으로 간주해서 역도라고 부르는 거다.
『…일을 제때 수습하지 않고 역도를 방치한 탓으로 천하가 어지러워졌으니 이는 다 제가 부덕한 탓입니다. 죄를 씻기 위해서 구월산에 초막을 지은 뒤 목욕재계하고 안에 들어가서 예수불께 천일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아니, 결론이 왜 이렇게 나오는데? 뭔가 좀 실제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쪽으로 넘어간 신도들을 설득해 이쪽으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천사가 직접 고른 특사를 파견하겠다거나, 의병대라도 조직하겠다거나?
물론 덕성도 의용군을 정식 관군으로 인정할 거는 아니고 후송 조정 쪽에서 받아들일지도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걸 파견해서 진압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만으로도 저들이 우리 쪽에 빚을 지게 만드는 일 아닌가. 덕성도 의용군을 일단 조직하게 되면 그 구성에 손을 대는 거야 여반장이다. 진짜 신자들 대신에 대붕영 소속 정예병들을 옷만 갈아입혀 파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형식을 갖추고 싶다면야 파병할 인원들을 목욕탕으로 보내 물 한 바가지씩 퍼붓게 해주면 된다. 덕성도에서는 새롭게 입교한 신자를 꿇어앉히고 머리 위에서 물 한 바가지를 부어서 그동안 지은 죄를 깨끗이 씻어내는 의식을 치르는 데, 이를 가리켜 ‘수계(水禊)’라고 한다.
불교의 수계(受戒)에서 이름을 따오고 천주교의 세례(洗禮)에서 내용을 따와 새롭게 만든 의식이니, 덕성도의 특징을 참 잘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비신자들에게는 그저 시원하게 물 한 바가지 끼얹는 행위일 뿐이라, 참 하잘것없는 과정이기도하다.
“도승선은 구월산에 서한을 보내 교두(敎頭, 종교 지도자를 낮춰 부르는 말)가 정말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는지 한 번 더 확인하도록 하라. 그 연유야 어찌 되었든 교단을 이탈한 자기네 신자들이 사고를 일으켰는데 어찌 이다지도 하는 게 없다는 말이냐?”
듣자니, 덕성도 교단 내 장로들은 홍수전을 비롯하여 교단 주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모두 파문하고 따르는 이들만 거둬들여 후송 내 덕성도 조직을 재정비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도가 적어도 수십만은 될 그 숫자를 차마 버리지 못해 채택하지 않았다고. 아마 지금 초막에 틀어박혀 기도나 하겠다는 것도 홍수전 일당을 제때 쳐내지 못한 탓에 후송 관군이 덕성도 교단을 그들과 한패로 간주하고 공격한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이겠지만, 그런 태도는 지금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실질적인 일을 해야지.
“그러고 보니, 후금 쪽 상황은 어떤가. 상행(商行)은 제대로 오가느냐?”
“열차는 아직 제대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전을 비롯한 상품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기차는 들어오는데 화물은 없다는 말인가?”
내 질문을 받은 재무대신 최승조가 기운 빠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연성이 좀 부족하긴 해도 능력은 있는 사람인 데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답답한 모양이다.
“삼패륵과 다라극근군왕이 서로 군사를 모으며 대치하다 보니 치안을 유지할 군사가 없어 초원에 도적이 횡행한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계약한 상품이 제날짜에 오지 않는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꼭 백 년 전이랑 똑같구먼. 그때도 파포태랑 부수가 자기 옆으로 병력을 모으니까 초원이 치안 부재 상태에 빠져서 도적이 날뛰었었지.
“모전 수입이 안 되니 가난한 백성들이 겨울을 나기가 큰일입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지 않소. 낡은 것이라도 잘 쓰라고 이르시오.”
무종 때는 이런 미래가 닥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세상에, 모전(毛氈)…. 그러니까 바닥에 까는 카펫 공급이 부족해서 서민들이 추위에 떠는 날이 오다니.
9.
본래 고려 때만 해도 입식 생활을 해서 카펫을 많이 썼다. 그런데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온돌이 보급되면서 좌식 생활이 널리 퍼지고, 고려식으로 화려한 사치품을 사용하는 관습이 배격되면서 카펫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카펫이 사라진 바닥은 장판지가 메웠다. 한지에 옻을 칠 하거나 콩기름이나 들기름을 먹여 반지르르하게 만든 바닥은 튼튼할 뿐더러 위생적으로도 꽤 우수했다.
그렇게 사라진 카펫이 다시 나타나게 된 건 건복 20년(1698)의 한양대화재 때문이었다. 그 뒤에 새로 세워진 건 흥옥의 난방 수단 부재가 모전 도입으로 이어졌다.
몇 번이나 반복한 이야기지만, 건흥옥 2층과 3층에는 아주 작은 쪽구들 이외에는 온돌을 넣지 못한다. 바닥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마룻장만 까는 게 고작이라서다.
초기에는 위층에 사는 가구가 겨울마다 1층으로 내려와 겨울을 나기도 했다. 난로 사용이 늘면서 요즘은 자기 집에서 그냥들 살게 됐지만, 대신 층간 분쟁이 늘었다.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난로만으로는 집을 따뜻하게 유지하기에 부족했다. 마루를 뚫고 올라오는 냉기를 다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펫이 다시 등장했다.
양털로 짠 모전은 차가운 마루를 직접 밟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고 벽에 걸면 벽돌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도 막아주었다. 추위를 견디는 데 아주 큰 보탬이 된다. 물론 여름에는 습기가 차서 불편하므로 걷어내고 대나무나 왕골로 짠 돗자리를 깐다.
처음에는 이렇게 건흥옥에 사는 서민들이 사용하는 생필품이었다. 하지만 일단 시장에서 모전이 팔리게 되자 고급품에 대한 수요도 생겨났다. 온돌방이라고 해도 모전을 깔면 조금 더 따뜻한 건 사실이기도 하고, 집을 꾸미는 장식 적인 의미도 있었다.
장식용으로 모전을 구비하는 대갓집에서는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제작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물건을 산다. 가격이 웬만한 서민 가정의 10년 치 수입에 버금가는 비싼 양탄자를 말이다.
후금에서 들어오는 모전은 그런 고급품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후금제 모전은 가장 싼 물건으로, 건흥옥에 살거나 온돌방에 살면서도 마음껏 불을 땔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물품이다.
“이런 게 다 속을 썩이다니.”
그동안 후금과 우리 사이 관계는 모든 면에서 평온했다. 정치적으로는 심양회맹으로 묶인 데다 우리 황실의 분가인 심왕부가 양측 건주 황가와 번갈아 혼인하며 친분을 계속 다졌고, 경제적으로도 깊게 얽혀 있다.
후금에서 들어오는 상품은 생축과 보존육으로 가공한 고기, 가죽, 비료와 도자기 원료로 쓰는 뼈, 양모와 그 가공품 등이 대부분이다. 모전 역시 여기 들어간다. 후금에서 들어오는 이런 물품들은 우리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우리 대한으로서는 후금 이 내란에 휩싸일 때마다 교역에 지장이 생기고 물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이 상황을 그대로 견딜 수가 없다.
“옛날 120여 년 전, 후금 성종이 대칸을 참칭한 역적을 토벌했을 때 걸린 시간이 여섯 달 정도였다. 이를 참고하면 이번 난리도 내년 중에는 끝을 보게 될 터, 내년 겨울에는 일상이 회복되리라. 백성들에게 그리 일러 안심하게 하라.”
이렇게 신하들을 통해 백성들을 위무해야 하는 건 앞에서 말했듯이 120년 전보다 우리와 후금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그만큼 영향도 많이 받기 때문이다.
120년 전에는 보도 통제로 소식을 제한할 수도 있었다. 시보들은 마음대로 떠들어댔으나 그 기사는 대개 부정확하기 짝이 없었고, 가장 정확한 정보를 보유한 조정에서는 조보에 그 소식을 싣지 않음으로써 시중의 정보를 통제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이야기다. 상도까지 열차가 오가는 시대가 되고 보니, 조정에서 소식을 제한하는 게 의미가 없다. 상도나 북경에 상주 특파원 – 원보(遠報)꾼이라고 부른다 – 을 두고 직접 소식을 모으는 시보들까지 있을 정 도니까. 간혹 그런 시보들이 조보보다 더 빨리 소식을 전할 때도 있을 지경이다.
이번 후금 내란에 관한 소식도 제법 정확하게 보도되고 있다. 덕분에 북쪽에서 후금 내란 소식을 실은 기차가 도착 할 때마다 종합상품거래소 – 상평시(常平市)라고 한다 -에서는 큰 소란이 벌어진다. 선물거래에 걸린 막대한 돈 때문이다.
“북방으로 전신이 통하게 되면 이런 소식도 더 빨리 전해지겠지.”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사옵니까.”
내가 만든 세상이지만, 이젠 정말 내 손으로 통제가 안 된다. 너무 커지고 너무 변했다. 내 손 밖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역할에 관해 잠깐 생각하다 보니 손님이 찾아왔다. 승선이 들어와 러시아 공사 안드레이 김노프 백작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이 다 되었다. 회의는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
“들라 이르라.”
중신들을 각자의 집무실로 돌려보내고 나도 인정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편전인 선정전은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는 곳이지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곳은 아니니까 말이다. 사신을 맞는 장소로는 역시 인정전이 좋다.
그나저나 러시아 공사가 왜 갑자기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 사람을 보내 급하게 알현을 청한 걸 보면 밤기차로 러시아 본국에서 뭔가 훈령이 내려온 모양인데, 딱히 짐작 가는 게 있어야 말이지. 혹시 후금 내전에 같이 개입하자는 건가?
10.
“아침부터 폐하를 귀찮게 하여 죄송합니다.”
“괜찮소, 공사. 그대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겠지.”
김노프 백작의 얼굴을 보면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전형적인 러시아 귀족이다. 다만 이름을 보면 티가 나듯이 실은 한국계 조상을 둔 사람이다. 루시아 황후 연대의 초대 한인 연대장이었던 김홍선의 후손으로, 백작 작위는 알렉세이가 내려주었다.
안드레이 김노프 백작은 김홍선의 5대손으로, 계속 러시아 귀족 가문과 혼인하면서 피가 섞인 탓으로 외모만 보면 그냥 러시아인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본래 한국 출신임을 잘 알고 있어서 우리를 무척 호의적으로 대한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매우 슬픈 소식이 있습니다, 폐하. 간밤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급전입니다.”
슬픈 소식이라는 걸 보니 자기들과 손을 잡고 후금 내전에 개입하자는 말은 아닐 듯하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슬픈 소식이기에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별궁에 은둔했던 황태후 – 마리 앙투아네트 – 가 죽은 것도 벌써 7년 전 일이니 딱히 황실에서 죽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텐…..
“차르께서 병으로 붕어하셨다고 합니다. 이 슬픈 소식을 최대한 빨리 폐하께 직접 알리고 홀몸이 되신 황후 폐하께 드리는 위로의 말씀을 받아 보내기를 희망한다는 전문입니다.”
“차르께서 붕어하셨다고….?”
아니, 알렉산드르 2세는 이제 겨우 쉰다섯밖에 안 됐을 텐데?! 아직 일고여덟 해 정도는 더 살아야 할 나이 아닌가?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죽어도 되는 거야??
“황자분들을 데리고 낚시를 가셨다가 실수로 물에 빠지셨는데, 열이 나는가 싶더니 그게 그만 폐렴이 되셨다고 합니다. 폐하, 부디 영면에 드신 차르께서 평안을 누리시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언뜻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지만, 김노프 백작은 내게 ‘누구한테’ 기도해 달라고 콕 집어 부탁하지는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상대 아무한테나 빌면 된다는 뜻이기에, 나도 여기에서 굳이 토를 달지는 않았다.
“알겠소. 동소문 밖 성당에 예물을 보내고 위령미사를 올려 달라고 청해야겠구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으셨을 텐데 이렇게 떠나셔서 참으로 애통하오. 홀로 남게 되신 차리나께 깊은 위로와 경애를 보낸다고 전해주시오.”
그놈의 폐렴. 주변에서 폐렴에 걸려 죽는 사람이 몇 번째인지 세지도 못하겠다. 나부터도 두 번째로 죽었을 때 사인이 폐렴이었으니까. 어서 항생제가 나와야 하는데. 곰팡이로 만든다는 것만 알지 그 곰팡이를 어떻게 가공해 항생제 성분을 뽑아내는지를 알아야 말이지. 생화학이 더 발달하기를 기다려야 하나.
동소문 밖 정교회 성당에 알렉산드르 2세를 위한 위령미사를 부탁하고, 예를 갖춰 준비한 예물과 조서(弔書)를 지참한 조문 사절을 파견하고 나니 자연스레 다음 생각이 났다. 이제 다음 차르가 된 니콜라이 황태자. 과연 어떤 성품 일까.
부친처럼 진중한 성품이라면 좋겠다. 나는 아무래도 경망스러운 사람들한테는 호감이 잘 안 생기니 말이다.